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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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떠올리는 키워드가 '마술적 사실주의' 혹은 마르케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요새 들어 조금씩 제3세계 문학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그동안 영미 문학 중심으로 소개됐던 지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르케스 외에는 딱히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접하기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뿐이지 이 책의 저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도 엄연히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국내에 몇 권의 책이 소개된 바가 있는데 언제 읽어봐야지 하고 쌓아만 놓고 있다가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로 드디어 요사와 첫만남을 갖게 됐다. 

  아마존에 배치된 페루군. 습한 기후와 무더위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좀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인근 마을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 군 대내외적으로 골머리를 썩인다. 이에 페루 군 윗선에서는 일평생 여자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삶을 살아온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에게 특별봉사대를 만들게 해 이 문제를 해결코자 한다. 병사들의 성욕을 채우면서 민간에 피해를 주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었지만, 문제는 외부에 군에서 매춘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 이에 판토하 대위는 자신이 군인임을 숨긴 채 특별봉사대를 조직하게 된다. 자신의 가족에게도 임무를 비밀로 한 채, 판토하 대위는 특별봉사대를 좀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특별봉사대를 이끌고 가는데...

  애초에는 아무도 이렇게 특별봉사대가 잘 꾸려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판탈레온 대위의 놀라운 분석력과 꼭 특별봉사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의지 때문에 특별봉사대는 점점 덩치가 커진다. 각 대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봉사를 할 수 있게 시간 제한을 둬 한 사람당 20명 정도의 군인만 받게 한다던지, 대기 시간동안 야한 소설을 보여줘 바로 서비스에 돌입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으로 판탈레온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분석한다. 그렇게 점점 규모가 커지자 당연히 눈에 띄게 된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 군 내부에서도 부사관이나 장교 들까지로 범위를 확장해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군인 뿐 아니라 오지에 있는 민간인들에게도 서비스를 해달라는 항의까지 수국초특의 명성은 점점 하늘을 찔러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때 수국초특 외에 또 하나의 조직이 아마존을 흔들고 있었으니 신흥종교라 할 수 있는 프란시스코 형제가 이끄는 '방주의 형제단'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흉내낸 그들의 신봉자들은 동물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심지어는 어린아이까지 그 대상으로 삼는다.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수국초특과 방주의 형제단. 이들은 아마존 사람들을 점점 욕망이라는 광기로 몰아넣는다.

  처음에 이 책을 몇 페이지 읽고는 대체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방식으로 서술이 진행된다. 흔히 볼 수 있는 액자식 구성의 경우는 어느 정도 그 경계가 느껴진다면 이 책은 한 문단 단위로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서술된다. 게다가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전지적 작가의 서술로 사건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판탈레온 대위가 상부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형식으로, 때로는 아마존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는다는 '신치의 소리'라는 라디오 멘트 혹은 신문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쌓여간다. 그동안 많은 책들 읽고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이 조각조각을 짜맞춰간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이야말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쪽 구석을 조금 맞췄다가 저쪽 그림 형상이 나올 때까지 맞췄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조각을 맞추는 것 같았다. 딱히 어떤 시점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통통 튀는 구성에 일명 짱꼴라라고 불리는 이의 독특한 말투 등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더 유머러스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군인을 상대로 한 매춘봉사대라는 설정 때문에 자연스럽게 위안부 문제가 떠올라 읽고 나면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단 위안부와는 그 성격 자체가 달라 크게 개의치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소재 자체는 굉장히 무겁고, 중간중간 사회·정치적 비난이 담겨 있어 만약 요사가 이 작품을 진지하게 써내려갔다면 읽으며 '도무지 지루해서 견딜 수 없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익살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에게 뼈 있는 웃음을 안겨주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인 성욕을 중심으로 성공에 대한 욕망, 부귀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 등 갖가지 욕망에 대한 작가의 냉소와 촌철살인이 유머러스하게 등장하는 이 책 때문에 지하철에서도 몇 번이나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는지 모른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후의 요사의 소설은 유머러스하다고 하는데, 조만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도 읽어봐야겠다. 유쾌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판티랜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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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0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이런 내용이었군요! 저도 읽어볼게요, 이매지님.

군인들에게도 그렇지만 요즘엔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가장 큰 문제가 풀지 못하는 성욕이라고 하더군요.
말씀하신 것 처럼 위안부 문제가 떠올라 불편해지지 않을까 걱정될 것 같긴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읽을 수 있다니, 믿고 도전해볼랍니다. 잘 읽었어요, 이매지님. 안그래도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매우 궁금했던 참이었거든요.

이매지 2010-02-07 12:56   좋아요 0 | URL
저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 문제에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
그래도 이 책은 세계문학전집 다른 책들과는 달리 멋진 리뷰가 많던데요 뭐^^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구성도 신선해서 저는 좋았어요. 다락방님 취향에도 맞는 책이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