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장바구니담기


<세한도>의 무엇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일까? 뛰어난 그림 솜씨 때문일까? 가슴 뭉클하게 하는 사연 때문일까? 아니면 청조 문사들의 제영題詠 때문일까? 물론 어느 하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한도>에 서문이 없다면 이처럼 감동이 밀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세한도>에 청조 문사들의 제영이 없었다면 이처럼 자랑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한도>에 인장 하나 제목 하나라도 지금처럼 붙어 있지 않았다면, 이런 찬사가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한도>가 탄생하고 지금껏 전해지기까지 가슴 뭉클한 사연이 없었다면 이렇게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세한도>가 탄생하고 유전流轉된 과정은 그 자체가 19세기 조선 학예의 총화이다. 단순히 그림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림이기 이전에 한 시대 학술과 문화의 결정체이다. <세한도>에 대한 연구가 미술사 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7쪽

추사 김정희는 연행과 북학의 시대, 19세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 서, 화에서부터 감상, 금석학, 경학, 고증학에 이르기까지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자신만의 경지를 구축함으로써 일찍부터 역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역관들과 교유하며 그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한편, 역관들은 훗날 청조 문사들과의 교유에 있어 추사의 중요한 정보원이 되었고, 지식의 공급원이 되었다. -18쪽

나와 이재와 추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석교石交이다. 서로 만나면 정치적 득실과 인물의 시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영리榮利와 재물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고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화를 품평할 뿐이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문득 슬퍼하며 실성한 듯하였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근심과 질병을 제외하고도 오르막과 내리막, 슬픈 일과 즐거운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루라도 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하루라도 만나지 않는 날이 없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도장은 그 사람의 성명과 자호字號가 모두 그곳에 있으니 마치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옛 그림 하나를 구하면 오른쪽 왼쪽 여백에 모두 두 사람의 도장을 찍어 얼굴을 대신하는 자료로 여겼다. 그러면 만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77쪽

아! 나는 형벌을 받을 때도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이제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마음을 진정할 수 없으니 이 무슨 까닭인가요. 아!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마련이지만 부인만은 죽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죽어서는 안 되는데 죽었으니 죽어서도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기막힌 원한을 품어서 뿜어내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지아비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이 형벌보다도 유배보다도 더욱더 심했던 게 아니겠습니까. 아! 삼십 년 동안 그 효행과 그 덕망은 종당宗黨에서 칭찬했을 뿐만이 아니라, 친구와 외인外人들마저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도리상 당연한 일이라 하며 부인은 그 칭찬을 즐겨 받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나는 장난 삼아 "부인이 죽는다면 내가 먼저 죽는 게 낫지 않겠소?"라고 했더니, 부인은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크게 놀라 곧장 귀를 가리고 멀리 달아나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91~2쪽

이상적은 추사가 유배를 떠나기 전 이미 5차례에 걸친 연행을 했었다. 그는 연행할 때마다 추사를 위해 청나라 학계의 최신 정보를 전해주었고, 진귀한 서적들을 구해다주었다. 평소에 교분이 있던 사람들도 바다 밖 멀리 유배된 자신을 위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우선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가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우선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선에게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바다 멀리 유배객 신세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적의 뒤를 봐줄 수도 없었고, 그에게 돈을 줄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붓을 든 추사는 자신의 처지와 우선의 절개를 비유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95쪽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한겨레] 은행원이 ‘세한도 비밀’ 매듭 풀었다
    from 毘盧峰 想像頭에서 2010-01-16 21:29 
    은행원이 ‘세한도 비밀’ 매듭 풀었다 한겨레 | 입력 2010.01.12 14:40 | 수정 2010.01.12 15:31 | #EXTENSIBLE_WRAP {position:relative;z-index:4000;height:250px;} #EXTENSIBLE_BANNER_WRAP {} #EXTENSIBLE_BANNER {position:relative;width:250px;height:0px;z-index: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