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품절


사실, 고교생이 '찐따'가 되는 데에도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눈알이 축소돼 보이는 두꺼운 안경알, 악어가죽도 쥐포처럼 쭉 찢어먹을 공포의 쇠붙이(치아교정기), 뺨에서 기름기를 뽑아 올린 여드름, 더불어 교실용 책상 밑으로 두 다리를 한꺼번에 집어넣기 벅차게 만드는 비곗살. -12쪽

알리앙스 프랑세즈? 나는 아이들의 입에서 모르는 말이 흘러나올 때마다 입안의 교정기를 감추듯 입술을 꼭 다물었다. 나는 외국어고등학교가 외국어를 배우러 들어가는 학교인 줄 알았지, 외국어를 배워서 들어가는 학교인 줄은 미처 알지 못한 채 입학을 한 거다. 이곳은 뉴욕도, 파리도 아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니 국어가 아니라 영어와 불어를 잘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연합고사 평균점수가 이백 점 만점에 백구십오라는 불어과 아이들 대부분은 고등학교 일이학년 과정을 미리 떼고 온 눈치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나로서는 모를 노릇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과외금지령으로 대학생 과외가 내내 불법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나 하다못해 삼촌도 없는 나 같은 아이는 누구에게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온단 말인가. 나는 영어교사의 말대로 이곳에서 한번 뒤떨어진 사람은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건지, 한번 열등생은 영원한 열등생인 건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16~7쪽

나는 교사들이 무슨 이유로 아이들을 일으켜세워 질문하는지 궁금할 적이 많았다. 불어교사뿐 아니라 영어교사도 시간마다 아이들을 지적하며 영어해석을 시켰다. 그날이 2일이면 2, 12, 22, 32, 42, 52번 아이들이 바짝 긴장을 했다. 물론 2번 학생을 일으켜세운 후, 그 뒷줄에 앉은 아이들을 주르륵 일으키는 방식도 심심치 않았다. 방식에 일정한 논리가 없다는 점에 아이들은 더 겁을 먹었다. 지뢰는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기에 무서운 거였다.
쉰일곱 명의 아이들 가운데 일으켜세워진 한 명이 입시학원 교재의 영어지문을 읽고 빠른 속도로 해석하는 동안 영어교사는 한 줄이라도 잘못 해석하면 넌 끝장이야, 라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나는 교사들이 그런 수업방식을 고수하는 까닭이 다음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1. 고도의 집중력으로 외국어 습득능력을 높이기 위해.
2. 혼자 다 읽고 해석하면 목구멍이 너무 아프니까.
3. 기분 나쁜 일을 약자에게 풀려는 의도.
4. 학생들의 정신력 강화를 도우려고.
5. 남을 괴롭히는 일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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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9-08-20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찐따가 뭐예요?
왕따와 비슷한 말인가요.
암튼 학교 다닐 때 저런 친구들 몇 명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네요.

이매지 2009-08-20 09:28   좋아요 0 | URL
왕따랑은 좀 다르구요,
찐따=찌질이랄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