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그리고 9년 후 새로운 사건이 펼쳐진다.

낙원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모방범>의 9년 후를 그린 작품이라고 해서 <모방범>을 다시 한 번 읽고 <낙원>을 읽어야할까 고민했는데, 차마 <모방범>을 다시 읽을 엄두와 시간이 나지 않아서 애써 기억을 더듬어보며 <낙원>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다행히 <모방범>의 사건이 슬쩍 슬쩍 언급되서 어려움없이 읽어갈 수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여전히 <모방범>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르포라이터 마에하라 시게코를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느 날 시게코에게 중년의 여자(도시코)가 찾아와 죽은 아들(히토시)에게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며 한 장의 그림을 보여준다. 얼마 전 떠들썩했던 마루 밑에 자식을 묻어뒀다 화재로 인해 자수를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을 보고 시게코는 마음이 움직여 그 사건과 애초에 사건을 의뢰한 도시코의 히토시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묻혀져있었던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드러나는데...

  시효가 지난 사건이지만 타인도 아닌 자신의 딸을 살해해 집 아래 묻어둔 채 살았던 도시자키 부부의 이야기는 일단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시게코의 조사를 통해 하나하나 밝혀지는 도시자키 부부의 사연은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을, 한 편으로는 서글픔을 느끼게 했다. 왜 부모는 딸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왜 그 사실을 16년이나 숨겨왔던 것인지, 히토시는 진짜 예지 능력이 있었던 것인지 등 시게코는 다양한 의문을 풀기 위해 팔방으로 뛰어다닌다. 9년 전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대로 삶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며 시게코는 자신의 생각보다 어쩌면 더 강한 여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를 잘라내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행복이 있다. 시게코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잘 만들어낸 이야기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바다 건너의 종교는, 인간이 원죄를 안고 있다고 말한다. 금단의 열매를 먹은 뒤 지혜를 얻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사서 낙원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낙원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고, 확실히 그것을 손에 넣을 때가 있다. 착각이 아니다. 환각이 아니다. 바다 건너 이국의 신이 어떻게 가르치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반드시 자신의 낙원을 찾아낸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잠시일지라도 -p. 384

 
  제목인 낙원과는 거리가 먼 내용의 마지막 장이 '낙원'인 것은 의미심장했다. 고단한 삶을 살다가 아들인 히토시마저 먼저 보낸 도시코도, 부모가 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이코도, 딸을 죽이고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간 도시자키 부부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의문들을 풀어가는 시게코도 누구나 저마다의 낙원을 갖고 있었다. 비록 그것을 손에서 놓쳤다 해도, 비록 그것이 다시는 넣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전작인 <모방범>에 비해서는 확실히 속도감이 떨어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낙원>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던 책이었다. 뭔가 애잔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한 편으로는 시게코가 풀려고 하는 궁금증 또한 독자의 흥미를 자극시켰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모방범>을 읽을 때만 해도 시게코와 또 만나게 될 지는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고 보니 새삼 시게코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드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다 리쿠의 경우에는 이제는 식상해져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물론 SF류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아직 남겨진 미미 여사의 작품이 많다는 게 다행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