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네이버에 황석영이 연재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부터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륜때문인지 왠지 황석영은 앉은뱅이 책상에서 원고지와 씨름하며 연필로 책을 쓸 것 같았기 때문에 컴퓨터와 황석영은 왠지 어색한 조합처럼 느껴졌다. 나름 젊은 독자들과 교감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담긴 연재였지만, 모니터 속에 펼쳐지는 문장의 향연을 느끼는 것이 늘 어색해 미뤄오다 단행본이 나오고서야 드디어 읽어보게 됐다. 

  흔히 청소년기를 말할 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대부분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방황하며 청춘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을 걸으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너무나 당연하게 중,고등학교를 거쳐 남들도 가니까라는 이유로 대학에 진학해 어느덧 졸업을 하고, 남들도 그러니까 용을 써서 취직을 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뜻대로 자신을 찾으려하면 어른들은 "그런 건 대학가서 해도 늦지 않아."라고 궤도를 벗어나려는 이들을 마치 중력이 붙잡는 것처럼 붙잡아놓는다. (대학에 가도 학점이니 취업이니 빡빡한 삶에 뜻대로 행동하는 것은 힘들지만.) 혹자는 이런 패기없는(?) 현대의 젊은이들을 보며 그래도 우리 때는 학점이나 뭐나 신경쓸 거 없었는데.라고 그들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듣고 있으면 정말 한 편의 청춘영화처럼 느껴지는,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는 비일상적인 이야기들. 황석영도 자신에게 일상적이었던 그런 비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풀어놓는다.

  월남으로 파병을 떠나기 전 집에 돌아온 주인공 준이 자신과 친구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각 챕터마다 준과 그의 친구들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등장하고, 더불어 그들의 치열한 젊은 시절이 그려진다. 고등학생이지만 함께 술을 마시며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북한산의 암굴에 들어가 몇 달씩 살기도 하고, 무전여행을 하며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노가다 현장에서 뛰기도 하는 등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그저 하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대를 살았다하더라도 결국 남들이 정해준대로 대학에 진학해 원하지 않는 전공을 공부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현대를 살아가면서도 무모하리만큼 체제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물질적인 가치를 떠나 달리 잃을 것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무모하다면 무모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 싶어져 부럽기도 했다.  

  흔히 성장소설하면 뭔가 밝고 따뜻한, 그리고 희망에 가득찬 분위기를 떠올리는데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시대적 배경이 어두웠기때문인지 일반적인 성장소설의 그림자같은 소설이었다. 방황과 방랑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는다는 여느 성장소설과 달리 방황과 방랑의 끝에서 뚜렷한 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 또한 다르게 느껴졌다. 결국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주어진 '오늘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독자에게 남겨준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어디까지가 작가 황석영이고, 어디까지가 주인공 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책을 읽으며 역시 작가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젊은 작가들에게서 부족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하고.) 평범한 성장소설을 기대했기에 실망한 부분도 있었지만 작가 황석영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었고, 나의 사춘기를 한 번쯤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그래봐야 나의 사춘기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밋밋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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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9-3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처음에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겉도는 느낌으로 읽었었어요.
그러다가 중간 조금 넘어가면서 갑자기 확 와 닿더니 다시 앞을 뒤적거리며 읽었지요.
오.. 내가 확실히 조금(어쩜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 맞긴 한가부다..
그래도 물에 기름 뜨듯 완전 겉돌다 책장을 덮은게 아니고 늦게라도 어설프게나마 책의 맛을 느껴서 좋았어요 :)

이매지 2008-09-30 20:18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는 책장이 잘 안 넘어가서 그냥 그만 읽을까 했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읽다보니 정들어서 끝까지 읽었어요.
근데 읽으면서 든 생각은 10~20대의 젊은 독자보다는
오히려 그 시절을 살았던 연령층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어요.
나름 얻은 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전의 작품보다는 좀 아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