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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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악몽의 주인공인 잭의 인형을 들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김중혁의 사진을 보며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최근 부쩍 한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젊은 작가들 중의 한 명인 그의 첫 번째 소설집인 <펭귄 뉴스>는 갓 나왔을 때부터 읽어봐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됐다. 전반적으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잘 오고가며 기발한 부분들도 있어 흥미롭게 읽어갔다. 

  첫 작품인 무용지물 박물관에서는 레스몰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공이 우연히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방송국의 DJ를 맡고 있는 메이비를 알게 되며 사물을 단순히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메이비의 설명으로 하나씩 하나씩 머리속에 그려내는 과정을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물의 실체를 털어내고 온전히 설명에만 의존해 사물을 머리 속에서 조금씩 조립해가는 과정. 그 과정은 어쩌면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사물을 정말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실재하는 것은 100프로 동일한 것이 아니기에. 

  두번째 이야기인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에서는 개념발명가인 이눅씨를 만나는 사진기자의 이야기가, 세번째 이야기인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는 지도 오차 측량원인 주인공이 어머니를 잃고, 외국의 삼촌으로부터 이상한 나무 조각을 선물받게 되면서 겪는 일들이 그려진다. 그 다음 이야기인 <멍청한 유비쿼터스>에서는 해커가 등장해 너무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기업 보안에 대해 보여준다. 사람들의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를 이용해 태연하게 기업 내부에 들어가 해킹을 하는 주인공이 전하는 유비쿼터스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회색괴물>에서는 키보드 디자인을 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중고 타자기 한 대를 구입하면서 겪는 이야기가, <바나나 주식회사>에서는 친구가 자살하면서 남긴 한 장의 지도를 가지고 바나나 주식회사를 찾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사백 미터 마라톤>에서는 사백 미터만 뛰고나면 더는 뛸 수 없는 육상 선수와 그의 친구의 이야기가, 마지막 이야기인 <펭귄 뉴스>에서는 우연히 비트 해방 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전반적으로 우리 일상에서 이제는 지워진 아날로그적인 물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옛 것에 대한 추억이 아스라히 느껴진다. 이 때 옛것이라는 것은 끽해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일상에 있었던 것이지만. 작은 것의 소중함, 일상의 소중함 등에 대해 적당히 흥미롭게 잘 풀어간 듯 싶다. 아무래도 비슷한 성향이다보니 박민규와 비교가 되는 것 같은데 박민규의 경우가 허무맹랑한 그야말로 소설같다는 느낌이라면 김중혁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코믹한 부분이 있긴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딘가 현실에 있을 것 같기도 한 이야기라 오히려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집을 읽을 때면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다는 생각을 갖고 읽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너무 비슷비슷한 맛의 음식들이라 그 점은 다소 아쉬웠다. 각각의 직업이나 설정은 다르게 등장하지만 기본적인 인물의 성향이나 갈등의 배경은 엇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무난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굉장하다!'라고 생각할 정도의 수작은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적당히 괜찮다는 느낌 정도) 뒤로갈수록 왠지 작품의 질이나 힘이 빠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구성이 역순이더라. 이왕이면 발표된 순서대로 만들어놨다면 한 작가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는 신문사의 기자(음식/여행 기사 담당이라고)가 되어 "지금은 기자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소설을 쓰고 싶어질 것", "긴 인생에서 소설이 아닌 신문에서 잠시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는 그의 말처럼 언젠가 다시 좋은 소설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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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10-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집을 읽을 때면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다는 생각을 갖고 읽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너무 비슷비슷한 맛의 음식들이라 그 점은 다소 아쉬웠다."

라고 쓰신 걸 보니까 저의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무엇이었는지 설명이 되어요. 저도 기대를 (많이) 갖고 읽었는데 뭔가 밍밍한 것 같아서 서운했거든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역시, 참 잘도 쓰셔. :)

이매지 2007-10-06 13:24   좋아요 0 | URL
처음에 접했을 땐 신선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뒤로갈수록 정말 밍밍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별 셋과 넷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