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아사히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드라마를 3부작으로 방영했는데 그 중 첫 편이 바로 이 드라마 <검은 가죽 수첩>이다. 사실 처음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다른 작품인 <짐승의 길>과 <나쁜 녀석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물론, <검은 가죽 수첩>과 <짐슴의 길>, <나쁜 녀석들>은 원작자가 같다는 점과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같다는 것, 그리고 악녀가 주인공이라는 점만 빼곤 공통점이 없지만.)
은행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하라구치 모토코. 매일매일 은행 창구를 지키며 부지런히 살아간다. 하지만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지만, 밤에는 긴자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는 이중생활을 한다. 그녀의 비밀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은행의 가공 명의 계좌를 알아내 1억 2천만엔의 대금을 횡령한다. 지점장이 눈치를 채자 도망간 그녀. 며칠 뒤 은행을 찾은 그녀는 가공 명의 계좌의 내용을 적은 검은 가죽 수첩을 가지고 지점장과 차장의 입을 막는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긴자에 자신만의 클럽을 갖게 된 모토코. 수첩 속의 인물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의 음모도 시작되는데...
여주인공을 맡은 요네쿠라 료코는 이번 드라마에서 처음 만났는데 연기는 물론 좋았고, 기모노도, 양장도 모두 멋지게 소화해 긴자의 마담다운 모습이 인상깊었다. 자신의 야심을 위해 거침없이 남을 짓밟고, 결국 자신이 벌인 일때문에 배신도 당하지만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믿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꽤 카리스마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긴자 안에서 여자들 사이의 알력과 모토코를 놓고 벌어지는 음모와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모토코의 이야기가 긴장감있게 그려지고 있어서 끝까지 궁금증을 안고 봤던 드라마였다.
초반에는 다소 천천히 진행되다가 반전이 생기며 조금 빠르게 진행되는데 7편까지밖에 없어서 그런지 다소 얼렁뚱땅 끝난 것 같아 결말이 아쉽긴 하지만(이후 스페셜 판이 하나 나오긴 했는데 그건 아직 안 봐서;;) 전체적으로는 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장면마다 바뀌는 모토코의 의상을 보는 재미와 모토코가 긴자의 최고 클럽을 손에 넣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잃고 추락하는 과정 등이 박진감있게 그려져 마음에 들었다. 악녀 캐릭터에는 별로 정이 가지 않지만 이 드라마 속의 모토코를 보면서 왠지 후련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제목은 다소 재미없어보이지만 알고보니 진작에 볼껄이라는 생각을 했던 드라마였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원작소설도 읽어보고 싶은데 이건 우리나라에 나올라나... (마쓰모초 세이초의 소설은 워낙 몇 권 출간이 안되서.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