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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은 작품이 출판되었지만, 이시다 이라의 작품이라고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만 접했을 정도로 아직 그는 내게 낯선 작가다. 이전에 읽은 <이케부쿠로->에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활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은 그 책과는 달리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라 과연 같은 작가의 책인가하고 놀랐다. 물론 연애를 소재로 삼은 여느 일본소설처럼 가벼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시다 이라만의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총 1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남자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거의 30대의 여성이다. 남성 작가가 묘사하는 여성은 때론 묘하게 현실감이 떨어지는데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써내려갔기 때문인지 이 책 속의 여성들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는 소박하면서도 일상적인 내용이라 크게 부담없이 읽어갈 수 있었는데, 유독 표제작인 '1파운드의 슬픔'은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꽤 열정적인 내용이라 행여나 누가 내 책을 엿보지 않을까하고 잔뜩 긴장해서 방어자세를 취하고 읽어갔다.
이 책 속의 여성들의 사랑은 결코 '운명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 정도로 그동안 생활에 녹아들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을 발견하는 쪽에 가깝다. 안면만 있던 사이지만 공통의 취미(책을 좋아한다)라는 매개체로 묶여지기도 하고, 갑자기 목소리를 잃었을 때 별로라고 생각했던 직장 동료의 의외의 면을 발견하게 되며 사랑의 시작을 예감하기도 한다. 또,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각자의 물건에 이니셜을 새겨넣는 동거인 사이에 고양이라는 공통 소유의 생명체가 끼어듬에 따라 내 것 니 것을 표시하던 사이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듯 이 책 속에 있는 이야기들은 소설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일상에서도 '혹시나...'라는 생각을 품게끔 만드는 상황들이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내 반쪽이 오늘 스치듯 길에서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우연히 물건을 사러 간 매장의 직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아직 내 반쪽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외로워하기보다는 누가 과연 내 반쪽인지 찾아가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제목만 봐서는 엄청 슬픈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지만, 이 책은 소위 최루성 멜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이 가득 녹아있다. 외로움, 슬픔. 이런 것들은 이 책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랑을 만나기 전 잠깐 느끼는 괴로움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이 책의 주역은 찬란히 빛나는 사랑이다. 사랑, 사랑. 그 모습은 제각각 다를 지라도 이 책은 결국 사랑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10개의 이야기인 것이다. 가벼우면서도 센스가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지금 사랑을 한참 하고 있다면, 이제 갓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리고 언제쯤 내 반쪽이 나타날까하고 안달하고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며 이 핑크빛 이야기를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이케부쿠로->와는 다른 분위기때문에 과연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 궁금증이 들었다. 책장을 덮으며 <4teen>과 <LAST>와 같은 이시다 이라의 다른 작품들도 한 번 접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