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반양장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피천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인연'을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필이 바로 '인연'이다. 그 명성때문에 어린시절에 한 번 시도를 했었지만 당시에는 한문이 많이 섞인 책이라서 그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글자를 읽기에 급급했었다. 그러다가 다시금 <인연>이 읽고 싶어 골랐는데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새로운 판이 나오며 한자가 많이 빠진 것인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피천득 선생님께서 97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며 읽어나간 수필들은 그가 수필에 대해서 쓴 것처럼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하고, 마음의 산책으로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들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피천득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인연'이겠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수필 가운데에는 우리가 접해봤음직한 이야기들이 몇 편 더 숨어있다. 예를 들어, '은전 한 닢'의 경우에는 수많은 패러디 작품이 인터넷에 떠돌만큼 꽤 익숙한 수필이다. (내가 본 바로는 '이 성적표 하나가 갖고 싶었습니다'에서부터 '추천 한 개가 받고 싶었습니다' 등등 다양한 패리디 작품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든 그의 수필들을 읽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 그리고 작은 것을 통해 기쁨을 얻는 법을 알았던 한 사람의 모습이 이 책에는 녹아 있었다. 다른 수필들도 좋았지만 특히 두번째 장에서는 딸 서영이에 대한 애정과 도산 선생이나 셰익스피어, 춘원 등 흔히 위인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에 대해 쓴 부분이 인상깊었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그의 수필에 대한 글처럼 그의 글은 읽는 내게 잔잔한 감동을 남겨주었다. 비록 그의 몸은 이 곳을 떠났지만 그의 글만은 남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잔잔한 물결로 채울 것이라 믿는다. 5월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신 글을 보며 그래도 좋아하시던 이 계절에 가신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조용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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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6-01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 하면 무조건 국어 교과서가 떠 올라요. ^ ^.
저도 다시한번 읽어보면서 고인을 한번 더 기억하고 싶어지네요.

이매지 2007-06-0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인연도 물론 좋지만 다른 수필들도 참 좋았어요^^
정아무개님 / 생일날 영결식하신다는 말을 들은 듯. 그것도 그 분의 복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