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품절


이 이야기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사색하게 한다. 이야기가 우리를 살게 한다(구원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이야기에 의해 내일과 내일과 내일이, 그러니까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야기의 부재는 죽음이고, 이야기의 존재는 삶이다. 삶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가 삶을 만드는 것 또한 진실이다. 이야기가 없으면 삶도 없는 것. -14쪽

그런데 이 호기심, 타인의 삶, 타인의 세계를 엿보고자 하는 이 호기심의 숨은 동기는 무엇일까? 정말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확인해서 무얼 하려고? 정말로 궁금한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가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처럼 살고 있는가, 가 아닌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불안하게 한다.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확인함으로써 자기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고 있지 않다고 안도하려고 하는 이런 심리는 아마도 동일시 욕구의 발현일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같아지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일시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배타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22~3쪽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글쓰기의 일종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그 책이나 영화를 읽거나 본 사람 수, 또는 읽거나 본 횟수만큼의 <이방인>과 <동사서독>이 존재한다. 우리는 읽으면서, 보면서, 들으면서 이야기를 변형시킨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와 섞인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는다. 이야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의 자궁이다. 책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많은 책들의 모태이다. -23~4쪽

주변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이 다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썼다고 해서 다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그러나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착상의 단서를 잡아내는 일이다. 거미줄을 친 거미만이 잠자리를 잡는다. 사물과 현상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호기심, 그것들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을 꿰뚫어보는 상상력, 그리고 지속적인 독서와 사유(나는 그것을 문학적 자장이라고 표현하는데)를 유지하는 사람이 소설의 씨앗을 찾아낸다. 세상의 모든 일이 만만하지 않는 것처럼 소설 역시 만만하지 않다. 좋은 소설을 얻기 위해서는 소설의 자장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자장 안에서 놀아야 한다. -55쪽

현실을 '있는 대로' 베끼지 말고 '보는 대로' 가공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다'는 것.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다는 것. 현실 경험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충실히 옮겨 적으려는 작가의 욕구가 장황하고 진부하고 지루한 소설을 만든다. 생각해보라. 그 작가는 왜 모조리 다 쓰려고 하는 것일까. 자기만 따로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본 것이 없기 때문에 있는 대로 쓰려고 하고, 그렇게 쓸 수 밖에 없다.
차별화된 시선에 의해 '있는' 현실의 어떤 것은 배제되고 어떤 것(본 것)은 선택된다. -63쪽

소설을 쓰는 것은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게임이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참과 거짓 가려내기가 아니라 그럴듯하게 꾸미기(조형)이다. 그럴듯하지 않은 참이 아니라 그럴듯한 거짓이어야 한다. 그럴듯하지 않은 참은 소설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거나 소설의 흐름을 방해한다. -96쪽

당신 주위의 모든 것이 소설의 재료이다. 인물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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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의 자궁이다."

이매지 2007-03-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펴는 페이지마다 밑줄 그을 구절이 많아서 감당이 안되는 책이예요.
꽤 얇은데 말이죠. 쩝.

향기로운 2007-03-2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밑줄 그을만 하신거 같아요. 읽고 싶어요^^

이매지 2007-03-2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 님도 한 번 읽어보셔요^^ 쉽게 써있어서 부담없고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