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재개발하는 것이 샘나서 독극물 요구르트를 배달했다는 사람, 아이가 살려달라고 외치는데도 산채로 저수지에 던져버린 사람, 헤어지자는 애인의 말에 불끈해 불을 질러버린 사람, 그냥 재미로 연예인들의 기사에 악플을 다는 사람 등등. 하루에도 몇 건씩 우리는 '어떻게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냐?'라고 생각될 만큼 비인간적인 사건들을 접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도 역시 그런 비인간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느 때처럼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스기무라 사부로. 그의 회사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겐다가 편집장과 심하게 싸우고(심지어 편집장에게 물건을 던지기까지) 일주일이 넘도록 출근하지 않는다. 이에 스기무라는 새로운 직원을 구하기에 앞서 겐다에게 연락을 취해 그녀를 자르기로 했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하지만 겐다는 좀처럼 연락이 안되고 기껏 통화를 해서 자르기로 했다고 얘기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고 회장님께 직접 편지를 보내 자신이 부당한 취급을 받았으며, 성희롱도 당했다고 정식으로 고소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스기무라는 회장인 장인으로부터 이 일의 해결을 하라는 명령을 듣게 되고 겐다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전 회사에도 찾아가보고, 사설탐정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치카라는 소녀가 쓰러진 것을 보고 조취를 취한다. 알고보니 미치카는 최근 잇달아 발생한 청산가리 음료 살인사건에 할아버지를 잃은 소녀였고, 미치카의 어머니와 이야기한 끝에 미치카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씀으로써 심리치료를 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한다. 이렇게 스기무라는 또 다시 자신도 모르게 사건의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책 속에는 다양한 '독'이 등장한다. 그 독은 어디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 지 알 수 없다. 때로는 우롱차에 든 청산가리로, 때로는 토양 오염에 의한 질병으로, 때로는 과도한 양의 수면제가 든 커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이름도 정할 수 없을 인간 내면의 독으로 등장한다. 그 하나하나의 독은 모두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고, 파괴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한 악의를 품은 인간들은 사회적인 면보다는 개인적인 분노에 의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얘기할 지도 모른다.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아서 그랬노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너희가 옳지 않다, 어떻게 인간으로 그럴 수 있느냐라고 그들에게 얘기한다면 그들은 그저 코웃음만 칠 뿐 반성의 기미따위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조금 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의 그런 비뚤어짐을 개개인의 것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 사회가 그들의 악을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책에 언급된 스기무라의 생각처럼 '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라는 부분이 와닿았다.

  행복한 탐정을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의도처럼 이 책 속의 스기무라는 남이 보기엔 꽤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먹고 살 걱정도 없고, 사람도 좋아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겪는 사건은 결코 행복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오히려 행복한 그의 삶과 대비가 되서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아닐까했다. 만약 그가 어두움을 가지고 있고, 세상의 찌든 때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면 이 책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 같다.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좀 더 편안한 그였기에 작가가 전달하려고 했던 부분이 더 잘 전달된 것 같다. 끝 부분에 얼핏 흘린 것처럼 취미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립탐정의 모습으로 스기무라의 이야기는 계속 될 듯 싶다. 역자는 일설에 따르면 앞으로도 현대물은 이 시리즈에 전념하게 될 거라는 소문도 있다고 전하니 앞으로 스기무라를 계속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통해서 과연 우리 안에는 어떤 독이 들어있는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독이 숨어있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때문에 현대 사회의 모습이 더 몸서리치게 다가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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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7-03-18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 쪽에 실망을 하고 있어서^^; 근데 이 책 읽고 나니까 미야베 미유키 작품 중에서는 평작에 속하는 것 같아요. <모방범>이나 <화차>보다는 확실히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던. 그래도 뭐 형편없지는 않았어요^^;

2007-03-18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넷 2007-03-1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화차를 읽고 중입니다만... 정말 좋군요. 미미여사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이매지 2007-03-1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차>와 <모방범>이 젤 좋았어요 정말^^ <화차> 개정판 나온걸로 다시 읽어보려고 했는데 어째 시간이 영 안나네요^^;;

사소리 2007-03-3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저는 화차나 모방범 같은 장~~편과 다른 매력이 충분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진범이 범행을 고백하는 장면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많이 울었어요...ㅠ.ㅠ 그런데요...화차(인생을 훔치는 여자)랑 백야행(히가시노 게이고) 이랑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물론 문체와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가끔 두 작가의 비슷한 설정에 놀라게 됩니다 ^^;;

이매지 2007-03-3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이 책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화차>나 <모방범>이 더 좋았다는거예요^^ 화차와 백야행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둘 다 왠지 밝음과는 먼 느낌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