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 전,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진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 헤어짐이 아쉬웠던 두 사람은 6개월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만을 남긴 채 헤어진다. 그리고 9년 뒤. 남자는 유명한 소설가가 되서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하고 그 곳에서 다시 9년 전에 만난 그녀와 만나게 된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둘은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서로에 대해 다시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전작인 <비포 선라이즈>가 비엔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작의 배경은 두 사람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면 이번에는 여자의 현실 속의 공간이기때문에 어느 정도 제약이 따른다. 서로만을 바라보기엔 두 사람을 묶고 있는 현실의 끈이 무겁기만 하다. 서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상황,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두 사람의 대화를 새롭게 만든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사람의 재회시간과 일치한다. 그만큼 짧은 만남인 것이다. 전편에서는 관광객답게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며 대화를 나눴던 두 사람은 이번에는 관광객이라기보다는 그 곳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처럼 익숙한 커피숍에 가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한다. 파리의 풍경보다는 두 사람의 대화에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기때문에 두 배우의 연기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세월의 때가 묻은 두 사람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도 다가왔지만 엔딩부분의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이 계속 만나던, 다시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던 그 하루의 경험을 통해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보다 낭만전인 요소는 많이 떨어지지만 세월에 녹아든 두 사람의 감정도 나름대로 볼만했던 것 같다. 열린 결말에 대해 관객은 제각각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로맨틱한 선택인지, 냉소적인 선택인지는 제각각의 몫이겠지만 나는 씨익 웃는 제시의 표정을 통해 로맨틱한 상상을 좀 더 해보려고 한다. 전작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이 나름대로 괜찮았던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