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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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싸대기 맞을 각오는 되어 있다"며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소감을 밝힌 작가. 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런 말을 할꼬하는 궁금증에 이 책 <캐비닛>을 집어들게 되었다. 아니, 그런데 이야기의 제일 앞에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캐비닛이다."라는 말이 쓰여있다. 대체 캐비닛이 어쨌단말인가하고 책장을 넘기다보니 '오호, 이거 꽤 재미있네'하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최근 한국문학에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들은 제법 유머러스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박민규나 김영하, 박현욱 등의 젊은 작가들이 그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류에 이 책의 저자 김언수도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신인치고는 꽤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기업의 연구소에 취직한 주인공. 하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할 일이 없다.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싶어 직장상사에게 물어봤지만 '원래 그렇다. 그냥 자리를 지켜라'라는 대답만이 돌아온다. 너무 무료했던 그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13호 캐비닛과 만나게 된다. 다른 캐비닛에는 없는 자물쇠를 떡하니 달고 있는 13호 캐비닛. 과연 그 속에는 무엇이 들었기에 자물쇠를 채워놨을까하는 궁금증을 안고 그는 4자리 비밀번호를 하나씩 맞춰가고 결국 자물쇠를 풀고는 그 안에 든 문서를 접하게 된다. 그 문서는 심토머라고 불리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는 존재가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람들에 관한 것. 몰래몰래 심토머들의 파일을 보던 그는 어느 날 심토머를 연구하는 권박사에게 불려가게 되고 그의 협박아닌 협박에 권박사의 보조로 일하게 된다. 기이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 13호 캐비닛에는 이런 것들이 가득 쌓여 있다.

  심토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일까?과연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와 같은 궁금증이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내의 그것처럼 무럭무럭 커져만 갔다. 마치 작가는 자신만 불행한 것 같다고, 자신만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심토머들보다는 이 도시에서 견딜만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뭐 이런 진지한 생각을 굳이 하지 않고 심토머들의 그럴싸한 이야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결말부분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기존에 등장한 유머러스한 작가들과는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 작가가 과연 다음에는 어떤 작품으로 찾아올 지 궁금해진다. 신인다운 신선함이 오히려 득이 된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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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정말 옥의 티라고나 할까요.

이매지 2007-02-0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그렇게 떨어뜨려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더군요. 갑자기 고문이나 당하고 말예요.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