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와로 수사집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설영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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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내세운 주인공 가운데 포와로를 특히나 싫어하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포와로의 그 회색 뇌세포 운운하는 잘난척이 거북스럽기 때문이다. 탐정이 똑똑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포와로는 그걸 제 입으로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니 왠지 배알이 꼬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언제나 포와로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을 땐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는데 이 책은 <포와로 수사집>임에도 불구하고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총 14개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한 이야기의 분량이 10장이 조금 넘는 분량이라 이제 이야기가 좀 진행되나 싶으면 벌써 끝나버리는게 아쉬울 정도로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등장하는 사건들은 결코 가볍고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영국의 수상이 납치되기도 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포와로의 눈 앞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며, 마치 파라오의 저주라도 내린 것처럼 이집트 무덤을 발굴한 사람들이 잇달아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등 장편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법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먼저 포와로의 약점 때문이었다. 이 책 속에서 포와로는 몇 번이나 배로 여행을 한다. 그 때마다 포와로는 어찌나 배멀미를 심하게 하는지 "뱃멀미를 할 때면... 결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단 말야!"라고 헤이스팅스에게 투정을 부리며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헤이스팅스에게 "됐네, 됐어! 가만히 잠자코 있어. 자네, 알겠지? 무엇을 생각하는 데는 위와 뇌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라베르기에가 뱃멀미 예방으로서 아주 멋진 방법이라고 하는 것을 개발해 냈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천천히. 그렇게 하고선 머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한 호흡 간격마다 여섯을 세는 거지."라고 말하며 열심히 체조를 하기까지 한다. 언제나 자신의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포와로가 갑판에서 마치 묘한 체조를 하다니! 역시 포와로라고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헤이스팅스의 존재이다. 사실 헤이스팅스의 역할은 와트슨 박사에 겨룰 수 있을 법 하다. 괴팍한 주인공의 옆에서 그를 이해하고 그가 해결하는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 때때로 주인공을 돕기도 하며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는 감칠맛 나는 조연. 이 책 속에서 헤이스팅스는 정말 굴욕스러울 정도로 포와로에게 구박당한다. 기껏 헤이스팅스가 '사건은 이렇게 된 게 아닐까요?'하고 해결책을 짜내놓으면 포와로는 이걸 비웃으며 "자네에겐 재능이 없으니까 별수가 없지. 자네의 추리는 틀렸어"라고 얘기한다. 암만 사람좋은 헤이스팅스라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는 언제나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언제나 그의 추리는 정확한 것이다'라며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놀림을 받을 때면 씩씩거리며 왠지 분해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또 다시 도전해보는 헤이스팅스. 그에게 마지막 단편이 그나마 힘이 되어주지만 역시 포와로의 기세를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인 듯. (하기사 기죽은 포와로는 포와로답지 않으니까)

  포와로를 볼 때면 괜히 심통을 내는 나지만 이번 책에서만큼은 포와로도 이런 저런 곤란을 겪고, 헤이스팅스가 나 대신에 포와로에게 심통을 부려주기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장편보다 짜임은 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가볍게 보기엔 적합한 책인 듯 싶었다. 포와로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이 책부터 시작해도 나쁘지 않을듯 싶었다. (물론, 순서상으로는 포와로가 등장하는 3번째 작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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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회색 뇌세포' 좋아했는데~ 그나저나 포와로씨 뵌지 15년도 넘었네요 ㅜㅠ

이매지 2007-01-2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 번 만나보셔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