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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 ㅣ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두툼한 분량의 책. 게다가 손때가 잘 타는 재질의 표지때문이라 왠지 손이 잘 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묵직하게 읽어가다보니 의외로 단순한 듯한 이야기에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자살한 영화감독 고로가 친구인 고기토에게 보낸 자신의 삶에 대해 30개에 가까운 테잎을 보낸다. 물장군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을 떠난 고로와 남은 고기토는 각자 떨어진 공간을 연결하여 교신을 시작한다. play 버튼과 stop버튼.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이어지는 둘의 대화. 물장군을 통해 고기토는 고로와 만나게 되고, 청춘을 함께 보낸 고로와 대화함으로 미래에 대해서 자각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 중반부까지는 고로와 고기토의 이런 다소 묘한 형식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후반부에는 고기토가 지칭하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과연 '그것'은 무엇이고, '그것'때문에 고로와 고기토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는가?
책장이 넘기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던 작품이라 끝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뿌듯한 느낌이 들었던 책이다. 고기토의 모습을 바라보며 주위에서 걱정했던 그와 물장군과의 대화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적이게 보였지만 되려 그랬기때문에 밑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모호한 느낌이 많이 들었고, 배경지식도 부족했기때문에 난 이 책을 100프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일단 책의 제목인 체인지링(changeling은 요정이 앗아간 예쁜 아이 대신에 두고 가는 못생긴 아이라는 의미라고)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해 등이 폭넓게 바탕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고 어느 정도 인생의 성숙기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이해하기 쉬울 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경험의 깊이가 얕은 내게는 여러모로 어려웠던 책이었다.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난 뒤,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든 뒤에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