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인연, 그리고 첫사랑


지난 주에 했던 SF모임은 역대 최고의 흥행을 이뤘다. 일단 3개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참석자 수가 많지 않았던 경험을 극복하고 현재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이 모두 다 참여했다는 점이 중요하고(그래봐야 몇 명 되지도 않지만 ㅠㅠ) 그 다음으로 참석자 대부분이 이 책이 참 좋았다는 것을 고백하듯 이야기를 나눈 점이 정말 좋았다. 한동안 소원했던 이 모임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자 내가 제안한 방법, 미리 공유 문서에 나누고 싶은 주제와 내용을 간단히 적어 달라고 한 것이 꽤 괜찮은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중에 기록으로 남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오늘 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다. 나는 책 모임에서 주제나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연결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혹은 연상 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소설이던, 만화나 웹툰이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던 상관없이 그로 인해 확장해서 다른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고 여기고 또 중요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꽤 재밌게 읽었던 이 책의 두 번째 단편소설 [우리를 아십니까]를 두고 연결되는 작품들을 생각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것이 딱 없었다. 조금 더 고민하거나 조금 더 확장하면 연결되는 작품들이 없을 수 없지만, 그 당시엔 나도 여유가 없어서 조금 고민하다 그만 비워두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모임을 앞둔 시점에 뭐라도 하나는 적어야 할텐데, 계속 생각나는 작품들이 조금씩 애매하다는 생각에 고민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이렇게 순수한 사랑, 게다가 작중 두 사람은 첫사랑이었을텐데, 첫사랑을 그려낸 작품은 생각보다 많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순간 번뜩하고 뭔가를 떠올렸다. 바로 내 첫사랑. 그 달콤하고도 쓰린 기억을 담았던 단편 소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1996년으로 가야 한다. 학생회 활동과 학회 활동과 동아리 활동 그리고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감정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던 시절. 대학교 2학년은 사실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시기였음에도 외부에서 끊임없이 많은 것을 요구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욕심이 많았던 나는 빨갱이 운동권으로서 학생운동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학회와 동아리 활동도 하느라 정말 너무 바쁜 시간을 보냈고, 그 와중에도 너무 좋아했던 여성에 대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물론 곧 군대를 갈 에정이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라는 생각으로 거의 자포자기와 가까운 마음이기는 했다. 그런 와중에 동아리 후배 하나가 본인이 동아리를 잘 지키고 있을테니, 군대에 잘 다녀오라는 얘길 하면서 자신이 동아리 소식지를 만들테니, 나에게 단편 소설 하나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고, 입대를 위해 부산을 떠나는 바로 전날까지 단편소설을 하나 썼다.


그 시절엔 피씨도 타자기도 없어서 나는 공책에 손으로 직접 글을 써서 소설을 적었었다. 나는 꽤 유명한 악필이라 이 글씨를 과연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다만, 그 후배도 나 못지않은 악필이라 생각해서 그 녀석은 알아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대를 앞두고 소설을 써나갔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자세히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 첫사랑은 묘하게도 신경숙 소설가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의 제목과 형식을 신경숙의 소설들에서 차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창작이라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들고 어렵다. 그 당시에도 그랬다. 나는 생전 처음 군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더 많이 흔들렸고, 당시 짝사랑했던 여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많이 괴로웠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도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했으니, 지켜야 하는 법. 나는 입대하기 바로 전 날 이 소설을 완성했고 두꺼운 공책 한 권을 후배에게 넘기고 열차에 올랐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들은 소식은 그 후배가 결국은 제대로 동아리를 운영하지 못하고 잠수를 타버렸고, 준비했던 소식지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는 거였다. 뭐, 세상에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일이 뭐가 있을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그렇게 완전히 포기하고 있던 어느 시점에 휴가를 나와서 한참 후배들과 만났을 때 묘한 상황을 겪었다. 그때 나는 아마 상병 말호봉 정도, 곧 병장이 될 것이고, 병장이 되고 나면 조금만 더 버티면 제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고, 군생활 자체를 경멸하면서도 이왕이면 잘 해야 한다는 어찌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본능 때문에 포상휴가도 제법 받았었는데, 그 날도 포상 휴가를 나왔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동아리 선후배들 자리에 낄 수 있었고 별 말 없이 시간을 지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을 물어본 한 후배가 깜짝 놀라며 자기 옆 친구에세 호들갑을 떨며 내 이름을 강조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동아리를 책임지고 소식지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쳤던 후배 녀석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적해 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주고 갔던 그 공책을 두 세명의 여성 후배들에게 던져 주고 타자를 쳐서 문서 파일로 만들라고 지시 했었다고, 그리고 그 지시를 받아서 순진하게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를 억지로 타이핑 했던 사람들이 바로 내가 만났던 후배들이었다. 그런데 그 후배들의 반응이 좀 심상치 않았다. 내 소설은 첫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것인데 당연히 100퍼센트 경험은 아니고 허구의 이야기이다. 아직 어렸던 여성 후배들은 내 소설을 소설이 아닌 에세이 처럼 받아들였고, 나를 마치 비련의 주인공처럼 대하며 자신들이 내 소설을 열심히 타이핑 했다는 것을 알려줬다.


입대하기 바로 전 날까지 공책에 써서 넘겼던 소설이었기에 나에게 복사본은 없었다. 다만 정말 긴 시간 고심해서 썼기에 전반적인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우연히 만난 후배들이 자신들이 타이핑한 문서, 결국 소식지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문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첫 사랑의 기억을 소설로 남긴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소설의 작품성이나 내용은 절대로 다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지만.


암튼, 나는 그 두번째 단편에서 연결되는 작품을 내가 썼던 단편 소설을 언급했다. 그때는 시간에 쫓겨서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썼고,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 읽은 이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편 소설이기는 하니까 그게 뭔 문제야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모임에서 내가 이 이야기를 전하자 모임 구성원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소설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하던가. 아무도 모르는 소설을 제목과 내용만 던지고 그렇다고 하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이건 내가 쓰긴 했지만, 발행된 적이 없는 어쩌면 그럴 가치조차 없는 글이었기에 언급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암튼 나는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글을 썼는지, 입대를 앞둔 어린 청년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는지를 전달하며 달랬다.
















그리고 며칠 시간이 지나서 꿈을 꾸었다. 저번에 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여러 상황에 처한 꿈을 꾸었지만 반대 성별인 여성이 되어 보는 꿈을 꾼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을 썼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며칠 후에 거짓말처럼 여성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좀 신기했다. 꿈에서 나는 꽤나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현실의 나는 외모로는 정말 볼품없는 늙은 남성일 뿐인데, 꿈 속의 나는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를 좋아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꿈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어서 꿈 속에서의 내 삶도 그리 평탄치 않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 꿈은 확실히 신기했다. 꿈을 한창 꾸는 과정에 중간에 깨달았는데,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내가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이게 꿈이라고 깨달은 시점이었고, 이후로는 그 전과 달리 좀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상황이었다. 아,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하는 순간 그게 꿈이란 걸 깨달은 것이고, 그게 꿈에서 깨어나는 흐름으로 넘어갈 확률을 높인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대학 시절 꽤 긴 시간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꿈을 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너무나도 소심해서 아주 오래 좋아하고도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꿈 속의 나는 너무 대담하게 그 시절 그 여성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꿈이구나. 현실은 절대 그랬을 리 없으니. 그리고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너무나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결말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 여성은 나를 거절했고,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삶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었다. 비록 꿈 속의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멍청하고 바보같은 일이 아닌가. 나 같은 인간을 누가 어찌 좋아할 거라고 그렇게 바보처럼 고백을 한 단 말인가. 제발! 


딱 그 시점에서 꿈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하며 꿈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정말 긴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떠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한 편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설레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30년 전 일이다. 이미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다.


그 시절 우리


원래는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건데, 이건 다음에 써야겠다. 올해 2월 4일 나는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 라는 작품에 대한 글을 썼었다. 내 소중한 이웃 잉크냄새님께서 소개해 주신 [後來] 라는 노래 덕분에 알게 된 류뤄잉 감독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실제로 본 것은 25년 연말이었다. 아주 좋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에 두 번을 더 보고 류뤄잉의 노래를 수백번 들으며 곱씹고 또 곱씹어 쓴 글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 리메이크 영화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아니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원작 영화가 꽤나 좋았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을 보고 다시 꼭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영화를 봤는데 실망이 컸다. 어쩌면 기대가 큰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원작인 중국영화를 꽤나 좋아했으니까. 한국 영화는 정말 너무나도 그냥 한국 영화였다. 세속적이고, 적당히 후려치고, 적당히 뭉개고, 적당히 빠져나가는. 너무나도 젼형적인 한국 영화였다. 원작의 감흥이나 감동은 많이 사라졌다. 다만 그렇다고 이야기 자체의 감동이나 감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식으로 포장된 이야기는 중국 이야기 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나는 해당 이야기의 주인공 세대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곧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들이 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시절의 그런 감성들을 잘 살려냈다고 본다.


SF 모임에서 읽었던 책 이야기와 [먼 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글을 쓸 생각이다. 다만 오늘은 그냥 그냥 그냥 멍하니 자판을 두드려 본다. 생각의 끝에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첫 사랑의 그 분을 꿈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쁜 현실에서 내가 늘 놓치는 어떤 것들을 꿈에서라도 챙겨 가기를.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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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10-01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멍하니 자판을 두들겨도 이런 글이 나온다는거죠? 공을 많이 들인 그 글들은 기대를 갖고 기다리겠습니다. ^^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는 저도 전에 볼까하고 찜해뒀다가 저런 식으로 특정한 주제로 작가들이 각자 글을 쓰는 방식의 작품집이 저에게는 안 맞더라구요. 맞는 작가와 안 맞는 작가가 너무 뒤섞여 있어요. ㅎㅎ 하지만 감은빛님 글을 보니 이 책에 다시 호기심이 생기네요. ^^

감은빛 2026-10-03 18:07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두드렸던 새벽에 너무 피곤하고 졸렸는데, 이 글은 꼭 쓰고 자고 싶어서 억지로 자판을 두드리며 버텼는데, 나중에는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바람돌이님.

그죠. 저렇게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들은 호불호가 명확하죠. 상대적으로 일정한 퀄리티를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죠. 근데 저 책은 확실히 괜찮았습니다.

잉크냄새 2026-10-01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의 짝사랑이나 첫사랑이 완성형의 결말을 가지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소식지에 실리지 못한 글의 내용이 더 궁금해지네요. ㅎㅎ

감은빛 2026-10-03 18:09   좋아요 0 | URL
네, 잉크냄새님. 당연히 제 첫사랑도 처참하게 실패했었죠. 달콤했던 기억과 쓰리고 아픈 기억을 담아 썼던 소설이었습니다. 궁금하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저 소설 문서 파일이 더이상 열리지 않더라구요. 아주 오래된 파일이라 그런 것인지, 뭔가 오류가 생긴 것인지. 저도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열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chika 2026-10-02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몇개이상 혹은 감은빛님 소설에 대한 호기심 인원이 많으면 글 업로드 해주기... 뭐, 이런거 없을까요? ^^;;

감은빛 2026-10-03 18:11   좋아요 1 | URL
치카님. 요 바로 위에 잉크냄새님 댓글에 답글로 썼는데, 해당 소설은 파일이 열리지 않아서 저도 다시 읽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 물론 소설의 완성도가 너무 처참해서 잘 열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ㅎㅎㅎㅎ
 

춤을 추고 싶지는 않지만......


한때는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많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여하는 단체나 단위에서 책 모임이 있다면, 혹은 새로 생긴다면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부러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해 보다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생명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심으로 모인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한 독서모임이 하나 있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여했던 시절에는 전성기는 지난 후여서 얘기를 들었던 정도로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고, 예상했던 정도의 적극적인 활동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그 모임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었다. 만약 일정이 안 맞으면 늦더라도 꼭 뒤풀이는 가고 싶었었다. 그만큼 그 모임 참가자들이 정말 좋았었다. 


독서모임을 거의 나가지 않게 된 건 녹색당을 탈당하면서였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는 만독(만만한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매번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녹색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는 반민주적인 만행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한 후로 우리 지역에서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원들 20여명은 다같이 탈당했다. 그리고 만독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탈당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활동은 이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만독도 유지하고 싶었으나, 모임을 주도하셨던 분들은 의욕을 잃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독서모임이 많았던 시절에는 읽어야 할 책들과 바쁜 일정 중에 억지로 모임에 참여할 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 막상 참여할 독서모임이 없어지고 나니 많이 허전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 몇 분들께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다들 좋다고는 했지만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첫 모임이 이뤄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면서 또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러다 예전에 만독을 주도하셨던 선배 한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분이 최근(그러니까 그 당시에) SF를 읽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의외였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 분이시지만, 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 책들을 읽으셨고, 문학 쪽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 분이 SF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같이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역시 그 선배님이 움직이니 드디어 첫 모임이 만들어졌다. 막상 모이고 나니 아주 중요하지는 않지만, 꼭 짚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 소모임을 어느 단위에 속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들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든 이들이 최우선 순위로 활동하는 단위가 달랐다. 이런 문제는 의외로 사람 마음을 건드려 불화의 씨를 퍼뜨릴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연합 소모임으로 만들자고. 그래서 모인 사람들 다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세 단위(협동조합 두 곳과 지역정당 한 곳)가 연합해서 만든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처음 몇 번의 모임은 정말 좋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녹색당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자주 만나고 함께 고생했었지만, 탈당 이후로 몇 년 동안은 그만큼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모두 정말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그 애정과 관심이 식을 수 밖에 없는 법. 늘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이 모임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번 빠졌는데, 그날 이후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첫 모임을 만든 구심점이 되어 주셨던 선배가 갑자기 "이젠 SF에 관심이 없어졌어." 라는 이유로 모임에 안 나오셨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 바빴던 구성원들은 각자의 바쁨을 이유로 모임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모임 날짜를 잡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


나 역시 계속 바빴기 때문에 한동안 이 모임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주로 추리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SF 소설을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다시 SF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다들 "그래. 모여야지. 모이면 너무 좋지." 라고 말을 했지만, 일정 정하는 것이 늘 숙제였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일단 투표창을 띄워서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날짜를 정하자. 일단 다시 모이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굴러갈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SF 모임은 꽤 성공적이었다. 세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게 소수의 참가자들만 남았지만, 새로운 참가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뭐든 저절로 잘 굴러가는 일은 없다. 누군가 시간과 노력을 부어야 굴러갈 수 있다. 어렵게 다시 모인 이 모임이 다시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나는 SF 라는 장르를 한참 늦게 만났다. 아마 제일 먼저 접한 작가는 필립 케이 딕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아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SF 라는 장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 계기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라는 책을 읽은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시 운동가로서 내가 가진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확인했고,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내 태도와 자세가 너무 경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SF 라는 장르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소중한 SF 읽기 모임이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이 책을 냈던 메이데이 출판사에 영업 담당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메이데이 출판사의 영업 업무 일부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SF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저번에 읽고 짧은 글을 쓰기도 했던 이 책 [모두를 파괴할 힘]에서는 차별에 맞선 전세계적 규모의 혁명이 일어난다. 그 혁명은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해방구가 된 도시에 모인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혁명을 즐겼다. 그래서 다시 저 책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가 생각났다.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이 집에서의 기억이 아니었던가? 이사 오기 전의 집이었나?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오고 난 후에는 내 취향대로 책 정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찾아볼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주말에 짬이 나면 다시 찾아봐야지.


암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혁명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혁명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그 혁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몸치라서 춤을 추지는 않겠지만, 노래라면 함께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할 수 있겠지. 모든 차별을 무너뜨리고 모든 억압을 깨부수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아주 짧은 시간 기분은 좋았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8월 말에는 가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갑자기 훅 가을이 와버렸다. 이젠 반팔과 반바지가 안 어울리려나. 다시 긴팔, 긴바지 입는 것이 너무 어색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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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10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2026년에 SF소설을 접하신 것이 다행이세요.한 15년전만 하더라도 SF소설 간행하는 출판사도 적었거니와 판매 부진으로 절판되기 십상이라 실제 서점에서 책 구하기기 매우 힘들었거든요.개인적으로 많은 SF소설을 수집했지만 일반 책방에서 거의 절판 상태라 구입하지 못하고 거의 전국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기억이 나네요ㅜ.ㅜ

감은빛 2026-10-03 18:1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제 글을 잘못 이해하셨네요. 올해 SF 소설을 접한 것은 당연히 아니구요. 제가 처음 필립 케이 딕 책들을 읽었던 것은 20년도 더 지난 옛날입니다. 그리고 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를 읽고 SF 소설에 흥미를 가진 것은 대략 16년 전이었어요. 그런데 또 저는 SF를 그리 열심히 읽지는 않았습니다.

잉크냄새 2026-09-10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모임이든 구심점이 될 누군가와 그의 희생 없이는 오래 지속되기 힘든 모양입니다.
독서 모임이라는 것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입장에 그 경험이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하네요.

감은빛 2026-10-03 18:16   좋아요 0 | URL
다양한 주제와 형태의 취미 모임들이 있겠지만, 언제나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이 독서모임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지만, 해당 책에서 상상과 현실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 꺼리들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또 너무 좋더라구요. 게다가 지금 이 SF 모임은 대부분 저와 아주 친하고 긴 시간 활동을 함께 해 온 좋은 동료들과 함께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께서도 그런 즐거운 경험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6-09-18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을 해 본 경험자로서 느낀 건데 구성원의 열정이 밑바탕 되어야 하더라고요.
열정과 신뢰, 가 중요해요. 같은 대목을 읽어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음은 독서 모임에서 얻는 큰 수확이었어요.^^

감은빛 2026-10-03 18: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페크님.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그 차이가 흥미와 재미로 이어지는 것이죠. 한동안 모임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모인 거라서 더 모임 분위기가 좋아져서 정말 다행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피로


이번 주는 시작부터 너무 힘들었다. 낮에 배송할 때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가끔 미친듯이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짧은 순간에 옷이 다 젖어 버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짐을 옮길 때에는 우산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몇 번은 우비를 입고 일하기도 했는데, 우비를 입고 운전석에 앉으면 운전석이 다 젖어 버려서 내리고 탈 때마다 매번 우비를 입고 벗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번거로워서 나중에는 그냥 비를 맞고 일하고 있다. 암튼 이틀 동안 비를 맞아가며 일을 했고, 하필 그 기간에 매장 한 곳의 할인 행사가 있어서 배송 건수도 많았고, 물량도 많았다. 이런 할인 행사를 할 때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이상 빌라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무거운 물건들 주문이 제법 들어온다. 배송 주문을 하시는 조합원들 중 고령인 분들이 많고, 본인이 무거운 상자들을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배송 주문을 하는 심리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번에 옮겨야 할 상자들이 너무 많고, 너무 무거우면 나도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상자 하나만 다음에 주문했어도 좋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7월 중순부터 약 1달 반 이상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폭염과 열대야의 영향이 크다. 내가 일하는 오후 시간에는 폭염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릴 수 밖에 없고, 열대야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피로를 회복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친구들 집을 떠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매일 그럴 수는 또 없었기도 했고,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고 해도 남의 집을 떠돌아다니는 일이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기도 해서 결과적으로는 피로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밤에 조금 기온이 떨어져서 집에서 잘 수는 있지만, 이 낡은 빌라는 여전히 밤에도 덥다. 최근 몇 년을 생각해보면 9월 말까지는 그럴 것 같다.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의 수혜자는 누구?


오랜만에 최신 에너지 뉴스와 자료들을 좀 찾으려고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지금 페이스북은 온통 용혜인 이야기 밖에 없었다. 이 정치인이 2차례나 위성정당에 참여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던 사실이고, 이렇게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이 스스로를 진보정치인으로고 내세우는 꼴이 너무 보기 싫어서 그 이름을 듣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이번에 장관 후보를 수락하면서도 의원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데, 그야말로 기름을 덮어쓰고 불에 뛰어든 꼴이다. 내가 이 인간을 과소평가 했구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이었구나. 그 정도가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혜인에 대한 다양한 비판 중에 과거 언더 조직에서 있었던 활동들을 들춰내는 부분들도 있었다. 사실 운동판에 몸 담은 사람들이라면 기본소득당 이라는 정당 자쳬가 어떤 언더 조직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일종의 가면 같은 거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당을 대표해 두 차례나 위성정당에 파견 나가서 국회의원이라는 엄청난 과실을 따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언더 조직에서 엄청난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라는 보수 정당의 하수인을 자처해 국회의원이라는 더러운 과실을 챙긴 기본소득당과 진보당에 대해서 절대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용혜인 개인과 당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듯 일을 벌리는 상황은 정말 놀랍다. 그야말로 전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오늘 소위 말하는 진보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공동 성명을 냈다. 그 성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장관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사항을 적어놓았더라. 이걸 읽고 의문이 들었다. 이게 지금 대통령에게 요구할 사안인가? 지금 철회할 거라면 애초에 후보로 올리지 않았겠지. 사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위성장당이라는 편법의 최대 수혜자는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인 것 같지만, 아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당이며, 이재명이라는 인간이다. 이재명은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하수인으로 부려 먹으면서 지금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간이다. 용혜인을 어울리지도 않는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로 올린 것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향후 기본소득당을 더 충성스러운 하수인으로 부려 먹기 위해서다. 그런데 무슨 대통령에게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단 말인가? 애초에 녹색당 역시 과거에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려고 시도했다가 민주당의 외면을 받아 결국 의석을 얻지 못한 정당이다. 결과적으로 위성정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실패했지만, 그들은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고 공식적인 결정을 내렸던 집단이다.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우연히 박권일 씨의 페북을 봤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페친께서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는 '박원순', '조국', '위성정당'"이라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뢰도 99.99% 수준의 시험지임." 이 말을 읽자마자 정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컨 한때 존경했던 박래군 선배가 용혜인을 감싸고 도는 어이없는 글을 올린 것을 보며, 이 사람도 이젠 진보라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위성정당으로 인한 논란은 긴 시간 다양한 곳에서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 건으로 벌어진 논쟁이었다. 결국 표결을 통해 위성정당에 참여한 두 정당이 자유롭게 참여하게 되면서 운동 진영 안에서도 위성정당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위성정당은 분명한 잘못이며, 해당 잘못을 저지른 정당과 인물에 대해서는 명확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로 흘러왔고, 그 결과가 이번 용혜인 사태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슈가 없어서 잠잠하지만, 여전히 고 박원순 씨를 옹호하는 인간들, 조국 씨를 옹호하는 인간들이 진보라고 자처하는 꼴을 볼 수 있다. 만약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진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걸린거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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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3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보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해 집니다.

감은빛 2026-10-03 18:19   좋아요 0 | URL
저는 위성정당 따위에 참여한 약삭빠르고 비열한 인간들을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파괴할 힘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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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읽었던 [테세우스의 배]를 쓴 이경희 작가의 소설이다. 혹시 그 작품과 연결되는 것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읽다보니 익숙한 이름이 하나 나왔다. 바로 ‘트라이 플래닛‘ 이라는 대기업. 저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석진환이 회장 자리에 앉아있는 군수산업으로 성장한 엄청난 대기업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그 영향력이 막강한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몇차례 이름이 언급될 뿐, 핵심 이야기에 얽혀있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맨 뒤쪽 작가의 말 바로 앞에 있는 짧은 부록 ‘데비안트 능력에 대해‘ 부분을 잘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맨 앞에 나와있는 등장인물 페이지도.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랜 습관 때문에 앞, 뒤 양 표지와 책 날개 그리고 판권 면을 가장 먼저 읽은 후, 맨 뒤쪽 작가의 말 혹은 옮긴이 후기, 추천사나 해설 등을 먼저 읽는 편이다. 이번 작가의 말에는 그 맨 앞에 굵은 글씨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경고가 있었다. ˝세상에는 책을 펼치자마자 맨뒤로 달려와 후기부터 읽어대는 폭주족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경고. 이 경고에서 멈추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책을 다 읽고 이 후기로 돌아오라는 얘기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폭주족 같은 부류라고 지칭한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후기를 먼저 읽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스포일러 경고와 같은 효과일 것이다. 나는 스포일러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소설도 영화도. 그래서 언젠가부터 맨 앞에 스포일러 경고를 적는 것이 유행하는 상황이 좀 우스웠다. 원래 어떤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내용을 다룰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게 소설이던 영화던 그걸 쓰는 건 당연히 내용 중 일부를 드러내는 행위다. 당연한 걸 굳이 빨간 글씨로 그리고 굵은 글씨로 경고까지 해야하나?

다시 강조하지만,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꼭 사전에 복잡하기만 한 ‘데비안트‘ 라는 존재와 그들의 기이한 능력들을 꼭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점퍼, 텔레파스, 키넨시스, 보이안트 라는 네 가지 초능력을 지닌 데비안트의 유형과 그 각각의 유형이 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간단히 소개한 내용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

일단 데비안트 라는 용어부터 낯설고 입에 붙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와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설명에도 뮤턴트 혹은 코리안 프릭 등 멸칭 대신 사용하는 공식명칭이라고 나와있다. 주로 2020년대 한국을 중심으로 많이 발현되었다고 했다. 이런 설정은 이 소설보다 더 이후에 출간한 [SF 보다 vol.2 벽]에 실린 첫 단편 소설 [아레나]의 설정과 거의 비슷하다. 듀나의 아레나에서도 주로 한국에서만 초능력자들이 나타난다는 설정이었다. 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듀나의 소설 두 개를 언급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둘을 읽어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설정도 영향을 받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엑스맨 1편을 보았을 때 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를 잘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영화에도 나오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억압, 일본 제국이 저지른 조선인에 대한 억압 등. 이 이야기에서도 데비안트 능력이 발현되는 청소년들은 수용소 같은 곳에 갇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나는 소록도를 떠올렸다. 일제가 한센인들을 격리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지옥. 최근 거의 모든 이슈를 삼켜버렸던 하영이라는 여배우가 자랑스럽게 언급했던 그 소록도. 그리고 예전에 소록도에서 읽었던 당시 학생들의 시집들과 일기들을 통해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소설의 초반에 주인공 화경이가 갇혀 지냈던 그 수용소 같은 학교 생활을 읽으며 소록도의 희생자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엑스맨도 그렇고 이 소설도 평범한 인간과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가 나타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 차별의 문제까지 연결한다. 성별, 인종, 성 정체성, 장애 여부, 종교, 신념, 이념 등등. 등장인물들 중 일부는 데비안드이자 성 소수자이며 흑인이었다. 주인공 일행 다수는 여성이자 데비안트였다. 데비안트이지만 장애를 가진 인물들도 나온다. 이 사회에서 특정 개인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차별의 굴레에 처해있음을 잘 드러내는 지점이다. 예컨대 나는 중년 남성으로 사회적으로 절대 약자로 볼 수 없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라는 차별을 당해왔고, 경제적 가난이라는 구조적 차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엑스맨이 아주 다양한 초능력들을 보여주는 반면, 여기서는 네 가지 범주로 묶이는 한정적인 능력들이 발현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단 점프. 이건 아마도 영화 [점퍼]에서 개념을 가져온 것 같다. 순간이동이나 텔레포트 라는 단어 대신 점프 라는 단어를 쓴 것 부터 그렇고, 작중 점퍼들이 활약하는 모습들도 이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음은 키넨시스. 부록의 설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능력은 염력 혹은 염동력이라 부를만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영화 [푸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능력인 것 같다. 키넨시스의 다양한 능력들 중에 스윙은 스파이더맨에게서 따왔음을 암시해놓았다. 그리고 파이어스타터 라는 개념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중 등장인물인 리웨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비밀스러운 인물이라 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보이안트는 천리안 능력과 투시 능력이 결합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일 난해한 능력이 텔레파스다. 부록의 설명도 난해하고 모호하며, 작중 등장하는 주요 텔레파스들의 능력도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 이야기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능력이다.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세 명의 여성이 모두 이 비밀스러운 능력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다른 작품들에서 접했던 텔레파시 능력은 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 사람 혹은 여러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 작품의 텔레파스는 다수의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는 허브 능력과 상대와 심리적 매듭을 묶는다는 바인드 능력 그리고 상대의 기억을 읽고 지우는 능력 등이 있고 심지어 상대를 조종하기도 한다. 이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데비안트는 모두 텔레파스로 묘사된다. 제1차 텔레파스 전쟁의 팔레스타인 쌍둥이와 제2차 텔레파스 전쟁의 홍콩 출신 아이리스 쳉이 모두 아주 강력한 텔레파스였다. 그리고 주인공 신화경 때문에 제3차 텔레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주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강력한 텔레파스는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일종의 정신지배자로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데비안트들이 손을 잡거나, 신체접촉을 통해 서로 다른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현한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여기서부터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다.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아서 인물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 작가는 여성 등장인물들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 일단 절대적으로 여성들이 많다. 주인공 일행 중 남성은 하태빈이 유일한데, 나는 중반까지 이 인물도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중간에 수염 묘사가 있어서 남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경의 엄마 동료들 중에서도 장 폴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다. 가장 악랄한 악역처럼 그려지는 급진주의 데비안트 단체 ‘여성들의 목소리‘ 주요인물들도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이다. 특히 무니야 알 바크르는 악녀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또 극초반과 극후반에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존재 최서윤도 전체 이야기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악역 여성이다.

이 많은 여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리야 사무체예바 이다. 아주 짧게 등장하여 비중이 별로 없는 인물이지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이리스 쳉 역시 인상적인 인물이지만, 마리야의 활약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주인공 3인방으로 칭할 수 있는 신화경, 조유영, 리웨이 이 세 여성은 좀 많이 답답하다.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이자 문제라고 느낀다. 이건 이 소설의 구조와 시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작가가 다른 구조와 시점을 사용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그려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 바로 시점이다. 맨 첫장면은 3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이 가장 자연스러운 서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1인칭 시점으로 서술 주체가 바뀐다. 부자연스러웠다. 바로 앞의 시작 부분이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그 부자연스러움이 더 잘 느껴졌다. 이거 등장인물이 엄청 많은데 매번 서술자를 바꿔가며 1인칭으로 가려나 하고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나니 다시 2인칭으로 바뀌었다.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서술자가 너, 바로 주인공 신화경 그리고 독자에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이건 앞서 1인칭 보다 훨씬 더 부자연스러웠다. 2인칭이라면 서술자가 계속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설명해야 한다. 주인공 옆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아니,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왜 2인칭으로 서술하지? 주인공 곁에 유영이 등장하는 것 조차 한참 후인데, 그보다 더 과거를 과연 누가 주인공에게 설명할 수 있지? 이건 일종의 오류이고 잘못된 서술 방식이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이후 다시 3인칭과 1인칭이 나오기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서술한다.

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내‘가 ‘너‘에게 하는 이야기다. 제가, 당신들에게.˝ 라고 적었다. 작가가 굳이 가장 중요한 시점의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고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작가의 의도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것이 문제이자 패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의 반전 효과를 노리고 2인칭 시점을 사용하며, 그 서술자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도록 정보를 차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조유영의 능력과 리웨이의 능력이 주인공 화경의 능력과 엮이며 뭐가 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전개를 그려낸다. 게다가 작가의 말 이후에는 쿠키 라고 결말까지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에 대해 리웨이 시점을 추가로 적어놓았다. 마블 시리즈 덕분에 쿠키 영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과 그 기능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했는데, 소설에도 쿠키 분량을 넣다니! 참신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이 소설의 가장 안 좋은 점은 세 개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2인칭의 과거 시점이자, 인터넷 방송 대본 및 댓글 형식을 차용한 2장의 서술 방식이다. 일단 너무 산만하고 쓸데없이 분량을 키운 방식이다. 이 책이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여기서 내용에 비해 공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본의 형태로 서술한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댓글들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달았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말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나는 작가의 욕심이 과했다고 본다.

두번째는 해방구였던 예카테린부르크가 함락되는 날의 최종 묘사가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이 강력한 텔레파스가 폭주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라고 보인다. 앞서 팔레스타인의 쌍둥이와 아이리스 쳉의 전례가 있었듯이. 그러면 이게 왜 어떻게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 에반게리온을 언급했던데, 가장 중요한 폭주의 순간을 화경에게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도록 수많은 글씨들을 중첩되게 겹쳐 인쇄한 방식으로 연출한 것이 에반게리온의 결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라는 질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문제는 주인공 3인방의 관계와 능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은 점이다. 유영은 조용하고 튀지 않으려던 화경이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수용소와 같은 학교를 지배하고 있던 존재임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인 것처럼 나온다. 그래서 유영은 이후에 마치 도장깨기 하듯 전국의 수용소와 같은 학교들을 해방하러 다닌다. 유영과 화경의 관계와 애증은 그래도 좀 드러나는 편이다. 하지만 일부러 꽁꽁 감춰두었던 리웨이와 화경 그리고 유영이 얽힌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화경의 엄마가 분신할 때 불은 붙인 존재가 리웨이임을 밝히며 리웨이가 왜 화경에게 집착하는지 그 단서는 보여줬지만, 본질적으로 리웨이가 화경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화경을 무조건 보호하려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예카테린부르크 함락 시점에서 화경을 죽이려 했던 리웨이가 나중에 달에서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것도 단순히 의뢰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 이 소설의 시작시점에서 화경이 느낀 명백한 살의는 리웨이가 거의 확실한데, 리웨이가 왜 이 우주선의 모두를 죽이려 한 것인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왜 유영의 능력인 몸을 바꾸는 것을 리웨이가 쓸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혹시 리웨이의 몸은 유영이 장악한 상태였던 걸까? 그래서 사실 죽은 것은 유영이 아니라 리웨이였던 걸까? 이런 부분들은 단순히 난해하다기 보다는 작가가 확실하게 드러냈어야 할 부분들을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외에도 사소한 단점들이 몇가지 눈에 띄지만, 글에 반해 장점들도 명확한 소설이다. 일단 68혁명으로부터 68년 후를 시간 배경으로 정한 것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역사상 존재했던 대표적인 혁명을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혁명의 한가운데 해방구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담아내려고 애쓴 것이 인상적이다. 파리 꼬뮌, 68혁명,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홍콩 민주화 운동,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독립을 이끈 발트의 길 비폭력 저항운동 등이 이 해방구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살바도르 아옌데 등 남미의 혁명가들과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을 떠올릴 수 있는 상황들도 인상적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는 일을 주로 하는 활동가로서 전 지구적 혁명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화경이라는 엄청난 능력자가 만든 예카테린부르크 라는 해방구가 너무나도 멋진 무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해방구를 지키려 애쓰는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존재들을 떠올렸다. 한편으로 선의로만 가득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부조리한 인간의 본능을 마주하는 상황도 인상적이었다. ˝구제하지 못할 모순덩어리들. 독재에 맞서는 숭고한 존재인 동시에 누군가를 성적으로 음행하는 존재며,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왔으면서도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존재며, 퀴어 퍼레이드를 주관하면서도 인종이 다른 누군가를 우스개 삼는 존재며, 전쟁 난민을 포용하는 일에 기부금을 내면서도 타국에서 온 소녀의 몸을 돈으로 희롱하는 존재며, 자신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누군가의 가족을 파괴하는 존재며......˝

완벽한 인간이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숭고한 영웅이자 혁명가라고 해도 인간적인 결함들은 존재할 것이다. 그런 혁명가들이 아무리 선의로 해방구를 열었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온갖 부조리한 더러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혁명은 너무나도 가슴 뛰는, 매력적인 단어이지만 그 혁명의 이면과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촛불을 통해 내란 수괴를 몰아냈지만, 그 다음 대통령은 촛불과는 관계없이 기득권의 편에 서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글을 마치자. 소설을 읽으며 너무 오글거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예카테린부르크를 점령한 직후 노래를 이어부르는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발트3국 독립을 이끈 당시에 불렀던 노래라던가 프랑스 국가 라던가 혁명과 관려한 외국 노래들을 이어부르다가 한국인인 주인공 일행들로 순서가 이어지자 처음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더니 그 다음에는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시간 배경은 1968년으로부터 68년 후라고 했으니, 2036년이다. 2036년의 10대들은 여전히 소녀시대 노래를 듣고 부를 것인가? 이화여대 시위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고 들었고, 이번 윤석열 탄핵 시위에서 소녀시대 뿐 아니라 여러 아이돌들의 노래가 불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작가가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사용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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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년


탈핵신문 기사를 읽고 오늘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주년이 되었음을 알았다.

해당 기사 보러 가기: http://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2048


기사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던 2023년 8월 당시 약 134만톤의 오염수가 저장되어 있었고, 3년 동안 16만 7천톤을 버렸지만, 그 사이에 약 7만톤의 새 오염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후쿠시마에서 수소폭발을 일으킨 발전소 4기 모두 데브리 라고 부르는 녹아내린 핵 연료봉 다발이 어떤 상태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흘러 들어가는 지하수와 온도를 낮추려고 일부러 붓고 있는 냉각수 등이 매일 끊임없이 나온다. 핵폭발 사고가 일어난 것이 2011년 3월 11일인데, 지금 2026년 8월 중순까지 공기 중으로 그리고 지하수로 그리고 오염수 방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있다. 탈핵 강의를 할 때마다 반복하는 얘기인데, 아마 백여년이 더 지나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지금 이 4기의 발전소 잔해를 수습할 기술이 없는데, 사오십년 혹은 칠팔십년 지난다고 그런 기술이 금방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기사를 보니 일본의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가 어제 "어업인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계속되는 ALPS 처리수 해양 방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바다에 버리는 오염수는 일본의 동쪽 바다를 통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과연 일본 국민들은 안심하고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해산물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일본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살고 있었다면 못 먹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니다. 방사능은 계속 새어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새어나올 것이다. 현재 인류는 이걸 막을 기술 자체가 없다. 꾸준히 새어 나온 수백가지 방사능 물질들은 해양 생물들에게 축적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방사능에 오염된 해양 생물들이 태평양 전체를 돌아다니게 되므로 한국에서 먹는 해산물들이 완전히 안전한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해양 생물들이 한국 어민들의 배와 그물만 피해갈 리는 없으니까.


이재명 대통령은 2023년 8월 23일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방사능 오염수 방류 규탄 촛불집회 자리에서 “대통령의 직무가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제일인데 대한민국의 영토와 바다를 오염시키겠다는 일본에 왜 우호적인 것이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본인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원전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방사능 오염이라는 현실에 대해 눈과 귀를 닫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통령에 대해 거의 기대하는 바가 없었기에 본인이 했던 말조차 안 지키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본인이 다른 정치인들을 비판할 자격은 절대 없을 것이다. 


모기


며칠 전 차에 모기가 한 마리 들어왔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팔과 다리 등 여기저기 가려운 곳이 생겨 살펴보니 방금 막 모기에 물린 상태였다. 그때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사이로 유유히 날고 있는 모기를 보았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모기를 잡기 위해 휘저었다. 처음 몇 번의 시도는 계속 빗나갔지만,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 중일 때 모기도 잠시 차 천장에 내려 앉은 것을 보고 얼른 손을 휘둘렀다. 감각이 있었다. 모기는 죽었고, 내 손가락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모기 피가 아니라 내 피였다.


한창 더웠던 8월 초까지는 모기를 거의 보지 못했는데, 아주 조금 기온이 떨어지자 마자 모기들이 엄청 기승을 부리는 느낌이다. 거의 매일 대여섯 곳 이상 물리는 느낌이다. 대체로는 물리고 몇 시간 지나면 크게 가렵지 않고 물린 자국이 작아지는데, 가끔 물리자 마자 긁지 않았는데도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엄청나게 가려운 경우가 있다. 지금은 팔에 두 군데, 허벅지에 하나, 등에 하나 크게 부푼 자국들이 있다. 아무 미칠 것 같다. 참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벌레 물린 곳에 바르는 약을 사서 갖고 다니며 가려울 때마다 바르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 가렵지만 않으면 내 피를 좀 빨아먹는 것 정도는 참아줄 만한데, 가려워도 너무 가려워서 견디기가 어렵다. 


다시 날이 더워졌다. 아마 9월 초 정도까지는 다시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날 것 같다. 가을이 오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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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24 2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모기는 한 여름에는 오히려 한마리도 보이지 않아요.너무 폭염이라 물 구덩이가 없어 앙을 깔수 없기 떄문이죠.오히려 태풍이 오는 9월이후 물 구덩이가 주변에 많아지면서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근 11월까지 날라다니는 것 같아요.
그래 전 9월 이후부터 버물리를 주변에 두고 잠을 청하는데 모기 잡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그렇지요ㅜ.ㅜ

감은빛 2026-08-31 17:4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말씀처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11월까지 모기를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올해도 마찬가지겠죠. 요즘 거의 매일 모기 때문에 잠을 잘 못 자고 있어요.

chika 2026-08-25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모기는 예전 풀모기 크기의 반도 안해서 잡기도 쉽지 않아요. 가려움을 느낄 때 약을 발라도 물린 자리주위로 부풀어 오르고 다음날은 빨갛게 상처처럼 남아서 벌레물린 자국처럼 보여요. 이거 모기 알러지... 라는 것 같았어요.
주말부터 폭염이 다시 시작되니 모기도 잠시 들어간듯한데 정말 9월에 모기가 창궐할 듯요.

방사능오염은 이미 우리손을 떠난듯하고요 ㅠㅠ

감은빛 2026-08-31 17:51   좋아요 2 | URL
모기 알러지도 있군요.
최근 몇 차례 물린 곳이 정말 크게 부풀어 오르던데, 이게 알러지인지 궁금하네요.
오늘이 8월의 마지막 날. 내일부터 9월이네요.
모기가 창궐할테니 잠을 어찌 자야 하나 두렵네요.

방사능 오염이 우리 손을 떠났다고 해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향후 30년 안에 수소폭발이 일어난 4기의 발전소를 폐쇄할 거라고 장담하면서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적어도 그때까지는 이어가겠다고 했다는데, 30년은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00년 안에는 손도 못 댈거라고 봅니다. 그럼 100년 동안 계속 오염수를 방류하게 둘 것인가? 이건 또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고 제대로 된 정부라면 국민을 위해서 일본을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어요. 그런 정부를 언젠가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꼬마요정 2026-08-29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새벽에 발바닥이 물려 깼답니다. 발바닥을 무는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ㅠㅠ 피를 잔뜩 먹은 모기가 벽에 붙어 있어서 잡고 또 한 마리가 다리 사이를 날길래 딱 잡으려고 하는데!!! 저기 탁자 위에서 카프가 우웩우웩 토하려고 하는 거예요. 바닥으로… 모기를 포기하고 잽싸게 카프를 바닥으로 내린 뒤 다시 모기 잡으러 갔는데 사라졌어요ㅜㅜ 결국 한 마리만 잡고 토쟁이 땜에 한 마리 놓쳤죠. 근데 아침에 화장실에서 피 먹은 모기 두 마리 잡았습니다. ㅎㅎ 방사능 오염은 정말 우리 손을 떠난 듯 합니다ㅜㅜ

감은빛 2026-08-31 17:55   좋아요 1 | URL
발바닥과 손바닥 그리고 팔굼치 등은 정말 미칠 것 같아요.
하필 모기를 잡으려는 순간에 카프가 그랬군요. ㅠㅠ

저도 안방에서는 잘 안 잡히는 모기들을 화장실에서 잘 잡는 편입니다.
잡는 순간 대부분 피가 팍 터지더라구요.
안방에서 저를 물었던 놈들이 화장실에서 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방사능 문제는 요 위에 치카님 댓글에 적어 놓은 답글을 참조하세요.
그냥 포기할 문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