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less
인공지능 전문가인 지인에게 이 앱 이야기를 듣고 설치를 했던 건 아마 한 달도 더 전이었다. 예전에도 말하는 걸 받아서 기록하는 기능을 가진 앱이나 프로그램들은 있었다. 그런데 영어는 몰라도 한국어는 오류 아니 오탈자라고 해야 하려나? 암튼 정확하게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회의를 정말 많이 참여하는 편이고, 회의를 주최하는 경우도 많은데, 회의할 때마다 자주 사용하는 '클로버 노트' 라는 앱도 편리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잘못 인식하는 말들이 제법 많다. 그래서 이 'Typeless' 라는 앱도 깔아 놓기는 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이 앱이 떠올랐다. 낮에 일을 하던 중이었다. 즉, 운전 중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들을 가끔 두드리기는 하는데, 늘 좀 더 체계적으로 주제에 맞는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배송기사 라는 직업을 지금 약 8개월 정도 하고 있는데, 여러 일들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들을 엮어서 글을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종의 르포르타주가 될 수도 있으려나? 뭐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조금씩 기록해두고 나중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건 내가 꽤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당장 생각난 김에, 지금까지 겪었던 여러 일들을 범주화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운전 중이었기 때문에 폰 자판을 두드릴 수 없었다. 순간 생각난 것이 이 앱이었다. 신호에 걸렸을 때 앱 목록을 열어서 이 앱을 찾았다. 처음엔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몰라서 조금 헤매였지만, 기본 키보드를 이 앱으로 바꾸고 문서 앱을 열어서 마이크 버튼을 사용해 말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금방 알아냈다.
그리고 운전하면서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키워드 중심으로 기록할 꺼리들을 말했다. 잠깐 써보니 생각보다 정확도가 괜찮다고 느꼈다. 앞서 언급했던 클로버 노트 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가 도로 위를 달리며 말을 한 거라 도로 위의 많은 소음들이 있었음에도 내 발음을 잘 알아듣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좋았던 것이 생각보다 길게 말해도, 말 하다가 한참을 쉬어도 중간에 꺼지거나 끊지 않고 끝까지 다 기록해주는 것도 좋았다. 말을 하다가 길어지면 스스로 판단해서 문단을 띄우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내 여러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해 두서 없이 일단 떠드는 것들을 받아 적는 용도로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지만, 일상적으로 기본 키보드로 두고 쓰기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일단 나는 매번 배송갈 곳의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해 길을 찾아야 하는데, 주소를 입력하려니 자꾸 엉뚱한 발음을 채웠다. 숫자도 의외로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숫자 사이에 들어가는 '-' 이 기호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다시 기본을 원래 쓰던 키보드로 바꾸고 네비 입력을 한 후에 다시 기본을 타이프리스로 바꿔 문서 앱을 열어 생각들을 기록하다가 배송을 마치고 다음 배송지로 가면서 또 키보드를 바꾸는 일을 반복했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번거로웠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는 다시 자주 쓰지는 않았다. 여러 기억들과 생각들을 남기는 일도 첫 날에 어느 정도 했기 때문에 이후로는 사실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글을 새로 쓸 일만 남았다. 다만, 그날 이후로 급하게 뭔가 떠오른 것을 기록으로 남길 때, 자판으로 두드리는 것 보다는 얼른 키보드를 바꿔 생각들을 말로 남겨 놓고, 나중에 열어보고 보완하는 방법을 써보니 훨씬 빠른 시간 안에, 그러니까 금방 떠오른 생각이 휙 날아가 버리기 전에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지난 글에서 인공지능 언어 익힘 앱 이야기를 하면서 참 세상이 빠르게 변해서 정말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썼었다. 이 앱을 써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사실 네이버 지도에서도 마이크 버튼을 누르면 음성으로 장소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단어를 입력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늘 시끄러운 도로 위에서 주위 소음들도 걸림돌이다. 자주 쓰지는 않겠지만, 가끔 필요한 순간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괜찮은 앱이다.
"너무 말랐어요." 와 "배가 있네." 사이에서
2010년 가을에 여기 알라딘 서재에 <"날씬 하시네요."와 "네가 임신했냐?" 사이에서>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둘째를 갖고 싶다고 한 애들 엄마가 임신했을 때 이상하게 내 배도 따라서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와 둘째가 태어난 후에 애들 엄마의 배가 들어가는 시점에 맞춰 나도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려 결혼 전의 몸매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작은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기띠를 채워주다가 놀라서 했던 말, "날씬 하시네요." 를 넣은 것. 2010년 봄에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그해 여름에 나는 아주 오래 손을 놓고 있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해 가을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꽤 열심히 운동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너무 말랐어요. 많이 드시고 살 좀 찌셔야 할텐데." 라는 말을 들었고, 며칠 후에 다른 사람에게 "날씬한 줄 알았는데 배가 있네. 거 자세를 좀 바로 앉아봐. 배 들어가게." 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두번째 대사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들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저녁마다 회의나 일정이 있는데, 그날도 무슨 일정이 있어서 9시 넘을 때까지 밥을 먹지 못했었다. 뒤늦게 식당에 들어가 허겁지겁 밥을 먹었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차서 배를 내밀고 가슴 위쪽 상체를 뒤로 제친 상태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누군가에게 받은 문자에 뭐라고 답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맞은 편에 있던 분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사실 평소에 배가 안 나온 사람이라도 밥을 먹은 직후에는 배가 나오는 법이다. 게다가 그날 나는 너무 배가 고픈 상태에서 과식을 했기 때문에, 더 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밤에 잔뜩 먹은 후에는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공복을 유지한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뽈록 나왔던 배가 다시 납작해지기는 한다. 문제는 또 저녁을 먹으면 다시 배가 나온다는 것. 오후 늦게까지 공복을 유지한 상태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 후에는 선명하지는 않지만 복근도 볼 수 있는데, 확실히 최근에 내가 먹는 양이 많아지기는 했다. 다시 먹는 양을 줄여야 복근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듯.
앞서 너무 말랐다는 말은 지금 배송일을 하고 있는 생협 이사장님께 들었다. 지난 주였는데, 평소 가는 매장이 아닌 곳에 재고 이동을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마침 그 날 그 매장에서는 시식 행사를 비롯해 몇 개 행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고, 사무국 활동가를 비롯해 이사장님도 지원을 나와 계셨다. 내가 도착해서 가져온 짐을 옮기고 있는데, 멀리서 나를 본 이사장님께서 갑자기 다가오더니 위와 같이 말을 하면서 시식 음식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가셨다. 그리고는 돈까스와 돼지고기와 계란 프라이 등을 얼른 먹으라고 권하셨다. 사실 무거운 짐을 옮기다보면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든다. 음식이 앞에 있으니 사양하지 않고 조금씩 먹었다. 이사장님이 더 먹으라고 권하시는데, 나는 얼른 배송을 가야 하기 때문에 사양하고 차에 올랐다.
이제 몇몇 점장님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점장님들과 친해지면 가장 좋은 것이 가끔 이런 저런 먹거리를 준다는 것이다. 새삼 느끼는 건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먹을 것을 챙겨주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자주는 아니지만 몇몇 점장님들과 팀장님 등이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챙겨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직접 삶은 옥수수나 구운 고구마, 가끔은 과일을 주시기도 하고, 떡이나 구운 계란 등을 챙겨주시기도 한다. 오늘은 출근하자 마자 짐을 실으러 갔던 매장에서 점장님이 그냥 인사말로 "식사 하셨어요?" 라고 물었는데, 내가 '아니요.' 라고 답을 했다. 평소 점심을 안 먹기 때문에 낮에 누군가 인사로 물어도 나는 아니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또 왜 아직도 안 먹었느냐고 막 호들갑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어서 가끔은 일부러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특히 여기 활동가들이나 점장님들은 밥도 안 먹고 어떻게 일을 하냐고 걱정을 하기도 해서 그냥 거짓말을 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한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그냥 사실대로 말을 한 것이다. 말을 하고 곧바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점장님이 매장에서 과자 하나를 가져다 주셨다. "이거라도 드세요." 그냥 말로 "아유, 왜 아직 안 드셨어요?" 이러고 말 수도 있는데, 바로 눈에 띄는 걸 갖다주는 마음씨가 참 고맙다! 매장으로 이동하면서 한 손으로 과자를 먹으며 가는데, 생협 과자라서 기름기도 거의 없고, 짜지도 않고 담백하니 맛이 괜찮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정도 양이면 식사 대용이 될 만 했다.
갑자기 기온이 확 떨어져 추워졌다. 불과 10여일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더워서 잠깐씩 에어컨을 켰다가 끄면서 일을 했었는데, 이젠 창문을 열어 놓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추워졌다. 내일부터는 잠바를 입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늘 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모기가 확 줄었다. 정말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로 기승을 부렸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이 짧아도 너무 짧은 것 아닌가! 9월 중순까지는 덥고 10월 말부터 추워지면 어쩌라는 것인가?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늘 아쉬운 마음인데, 일주일이 휙 지나가는 것은 그래도 나쁘지 않네. 이제 이틀만 더 일하면 주말이다. 물론 주말에도 일정이 있어서 마냥 놀거나 쉬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주말은 주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