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남 차별주의

친한 형 중에 아주 심각한 여남 차별주의자가 있다. 만약 이 인간이 인종차별주의자였다면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쌍욕을 퍼붓고 다시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남 차별주의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일단 차별은 분명한데 이걸 뭐라고 하기가 참.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이 형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이 사람은 ˝뭐, 임마!˝ 혹은 ˝뭐, 이 자식아.˝ 라는 반응을 보인다. 꼭 내가 아니라도 상대가 남성이면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만약 여성이 뭐라고 말을 건네면, 거의 무조건 ˝그래?˝ 혹은 ˝정말? 그렇구나˝ 라고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답한다. 언젠가는 그런 적도 있었다. 이 형이 어떤 상황에 대한 법적 절차를 오해해서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내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꾸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 당연히 의심할 수 있다. 나도 성별에 관계없이 처음 접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러니까. 다만, 다각도로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는 경우에는 의심을 거두고 스스로 알아보겠다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내가 긴 시간 힘들게 설명해도 듣지 않더니, 옆에서 이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어느 여성이 내 편을 들면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자,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 여성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이 형 기준에서 성별이 여성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언니‘ 라고 부르며 거의 대체로 그 말을 믿고 따르는 편이다. 반대로 남성이 하는 말은 대체로 의심하고 반발하고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주 심각한 차별주의자의 태도다. 최근에 내가 이런 사실을 지적했더니 그제서야 깨달은 듯 아주 크게 웃으며 그 사실을 인정했다. 본인은 그렇다고. 본인에게 아들은 아들놈이고 딸은 귀한 따님이라고. 딸만 둘인 내 입장에서는 아들을 키워본 적이 없어 공감하기 어렵지만, 아들을 차별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형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조건 여성의 말만 듣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뭐, 어쩌겠나? 하필 내가 생물학적 남성이라 이 인간에게 아무 이유없이 무시당하는 것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어떤 이유에도 관계없이 무조건 여성을 옹호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 사회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여전히 여성은 차별당하고 무시당하고, 남성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범죄 통계를 보면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절대 다수는 남편이거나, 남자 친구이다. 대체로 가장 가까운 남성이 가해자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나 역시 남성으로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 매우 불쾌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이 그런 것을. 언제나 여성은 남성들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 물론 반대의 경우도 없지는 않다. 영화 [미저리]의 경우도 있고, 아주 가끔 아내에게 매 맞는 남성도 있다고 들었다. 엄여인으로 알려진 엄인숙이라는 범죄자도 있고, 이은해 라는 범죄자도 있다. 그리고 이름은 모르겠지만 모텔에서 남성에게 약물을 먹여 살해한 소위 말하는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김모씨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수만건? 혹은 수십만건의 범죄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소수일 뿐이다.

아, 그러니까 이렇게 여성에게 불합리한 세상에 무조건 여성의 편이 되어주는 차별주의자 한 명 정도는 괜찮지 않나? 라는 얘기다. 물론 앞서 말했듯 나는 남성으로서 그 인간에게 차별을 당하는 입장이므로 늘 최선을 다해 제대로 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하겠지만, 뭐 내가 가끔 무시당한다고 해도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조금 기분이 나쁠 뿐이겠지. 수많은 여성들이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 남성들에게 불쾌감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아니, 물론 그게 무조건 다 남성 탓이 아닐수도 있다. 어떤 여성들은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실수로 착각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계속 얘기하지만, 그런 실수나 착각을 감안하더라도 절대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한때 출판 영업자로 살던 무렵에 아주 친했던 친구이자 동료가 있었다. 정말 둘도 없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떠올릴 정도로 친했었다. 내가 출판사를 그만두고 환경운동 판으로 돌아간 후로 그는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만나 너무 반가운 자리였었다.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던 여성들의 집회와 행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페미니즘을 차별이라 말하며, 여성들을 비난했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여성인 어머니와 아내가 있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울 딸을 키우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몰상식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물었다. 너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그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답했다. 나는 성별을 떠나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상식적으로 인간이라면 살인이라는 범죄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목소리를 비난할 수 없을 거라고 답했다. 내가 두 딸을 키우는 아빠라서가 아니다. 나는 결혼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러니까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기도 더 전부터 남녀를 떠나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부장적인 태도로 여성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 부당한 태도를 보일 때 나는 누구보다 강하게 반발하고 저항했다. 사회를 바꾸고자 운동을 한다는 인간들이 자신의 삶은 성차별적인 태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나는 이 형 처럼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가끔은 그런 태도가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어이없는 그 일관적인 태도, 무조건 여성만 존중하는 차별주의 태도가 이 불합리한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온 세상이 다 여성의 편이 아닌데, 절대로 여성의 편이 되어줄 남성이 하나 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심지어 목사마저도 여성에게 자신 앞에서 빤스를 벗어야 신도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성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 처벌조차 받지 않는 세상인데! 종교마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세상인데 말야.

외모 지상주의

아마 이런 이름의 만화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이버 라는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던? 아니 어쩌면 지금도 연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웹툰 제목이다. 어쩌다 그 만화를 봤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키가 작고 좀 뚱뚱하고 상대적으로 외모가 좀 부족한 어느 고등학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주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쉽게 말해 근육질의) 잘 생긴 새 몸이 하나 더 생기는 얘기다. 어쩌면 남성 버전의 [서브스턴스]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웹툰의 시작이 훨씬 먼저였다. 아, 혹시 저 영화에 원작이 있다면, 그게 먼저일 수도 있겠는데,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암튼 웹툰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내 기준에서 이 웹툰은 그야말로 볼 가치가 없는 작품이다. 제목이 마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만화는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내용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냥 쓰레기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외모에 대한 동경은 있다고 본다. 예쁜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 만큼이나 멋진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도 많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며 남성들은 대놓고 여성의 외모를 맘놓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크게 거리낌없이 남성의 외모에 대해 말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 주변의 여성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렇게 외모 이야기를 꺼내는 건 최근에 본 중국 배우 때문이다. 일본에 천년에 한 번 나올 정도의 미소녀(1000年に1人の美少女)라는, 소위 말하는 천년돌이라는 하시모토 칸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외모가 돋보이는 것은 확실히 맞지만, 몇몇 영화에서 본 모습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 물론 미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암튼 천년돌이라는 명성에 비해 그 정도로 예쁜 얼굴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중국에서 4천년에 한 번 나올 미녀(四千年美女) 라는 쥐징이 라는 아이돌 출신 배우를 보았다. 하시모토 칸나에게는 미안할 얘기지만, 쥐징이의 외모는 확실히 돋보인다고 느꼈다. 이 사람 정말 예쁘긴 예쁘구나. 아니 근데 일본엔 천년돌이 있고, 중국엔 4천년돌이 있는데, 한국에는 그런 아이돌이 없나?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들어본 적은 없다. 아, 물론 나 같은 늙다리가 알고 싶어도 알수 없을 수도 있겠지.

결혼하기 전, 연애하던 시절에 애들엄마가 질투하던 대상은 모니카 벨루치였다. 아마 그 질투라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장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몇 차례 내가 모니카 벨루치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뭔가 불만을 표현했던 적이 있었다. 20대 중반에 영화 [라빠르망]을 보고 완전히 반해서 이후 [도베르만]과 [늑대의 후예들] 그리고 [말레나] 등 출연한 영화들을 열심히 찾아봤었고, 나중에 [매트릭스] 시리즈에 나와서 너무 유명해진 배우다. 그냥 그는 내가 절대 닿을 수 없는 어떤 존재, 말 그대로 이상에 가까운 이상형이었다. 현실에서 내가 평생 그를 마주칠 확률조차 0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모니카 벨루치 이전에는 소위 말해 책받침 여신들이라 불렸던 배우들이 있었다.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왕조현. 음 그리고 누군가 외국 배우가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네. 한국 배우 중에 책받침에 종종 등장했던 건 최진실이었다. 사실 그땐 오히려 어려서 그 여신들이 얼마나 예쁜지 실감하지 못했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 이젠 더 이상 책받침을 갖고 있지 않을 시절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이 정말 뛰어난 외모를 가졌었구나 생각했었다.

아니 그러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이라기 보다는 그냥 정말 아름다운 사람을 동경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모니카 벨루치가 그런 존재였다면, 최근 갑자기 불쑥 쥐징이를 보면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 이 사람 정말 예쁘다. 아, 아까 일본의 하시모토 칸나 얘기를 했었는데, 일본어 공부한답시고 한참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던 시절 참 예쁘다고 느낀 배우는 이마다 미오와 코마츠 나나 였다. 음,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그러네. 연예인들 중에는 외모가 돋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구나.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연예인들을 얼마든지 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의외로 주위에도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남성 중에서도 여성 중에서도. 고등학교 시절 친구 중에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얼굴도 아주 잘 생긴 훤칠한 녀석이 있었다.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지만, 남자 녀석들도 그를 동경하는 혹은 부러워 하거나 질투하는 놈들이 많았다. 이렇게 잘 생긴 그는 본인 스스로 잘 생겼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늘 주위 사람들을, 특히 이성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늘 그는 여성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정말 눈에 번쩍 띌만한 미모의 여성이 있었다. 여상 야간 반에 다니며 낮에는 커피숍 등에서 알바를 하던 아이였다. 처음 본 순간 연예인이라고 생각할 만큼 눈부신 외모였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 예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그의 주변에는 남성들이 많았다. 한때 아까 언급한 잘 생긴 아이, 그리고 그 무리와 친하게 지냈던 시절에 이 아름다운 아이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이 두 남녀의 외모는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차마 사랑한다는, 아니 감히 좋아한다는 감정조차 가질 수 없었던. 그런데 이 두 사람과 친해진 후에 보니 이들의 삶도 너무 힘들고 피곤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출중한 외모로 인한 어려움들이 있었다. 한때는 그들과 친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자부심일 때도 있었지만, 점점 그들 역시 그냥 인간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새삼 그 시절을 떠올리니 그립기도 하다. 막상 그 시절엔 정말 인생 살기가 싫었었다. 그저 죽고 싶었던 시절들. 아니 그냥 훅 시간이 지나버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들.

아, 그러니까 외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훅 30여년 전으로 가버렸는데, 아마 추억 보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 그 두 사람 이후로 내가 실제로 만나본 사람 중에 그 정도로 멋진 외모는 없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의 모니카 벨루치를 본 적도 없고, 이마다 미오나 코마츠 나나 혹은 쥐징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아니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냥 그렇다고. 주위에 어린 아이돌이나 배우들을 좋아하는 중년의 남성들과 여성들이 있던데, 나도 언제까지나 책받침 여신들이나 모니카 벨루치만 좋아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나도 쥐징이나 이마다 미오나 코마츠 나나 같은 젊은 사람들을 좀 좋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이 먹었다고 늘 옛날 연예인들만 좋아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치이카와 혹은 먼작귀

아이들 덕분에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들(?)] 이란 애니메이션을 꽤나 보고 극장판 애니도 극장에서 보았다. 작은 아이는 평소에도 만화와 애니를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덕후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성인이 된지도 좀 지난 큰 아이까지 이 만화에 푹 빠져서 인형들과 공식 굿즈들, 한정판 굿즈들 구하느라 제정신이 아닌 걸 보며 의외다 싶었다. 일주일에 3일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버느라 노동의 고단함을 아는 녀석 마저 그런 쓸데없는 걸(전적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아빠 관점에서) 사느라 돈을 쓰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이 영화를 두번, 세번씩 보느라 계속 극장에 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이든 아빠가 무슨 힘이 있겠나? 아직 젊고 어린 딸들이 놀아주기만 한다면 무조건 따라야지. 아무리 재미없는 극장판 만화라도 같이 봐야지. 이 늙은 아비랑 같이 시간을 보내준다는데, 이보다 큰 영광이 어디 있으랴!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보고 나서도 작은 아이가 계속 물었다. 아빠는 누가 제일 귀여워? 음, 내 눈에는 아무도 귀엽지 않았다. 주인공 3인방도. 그 외 여러 인물들도 모두. 하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 눈에는 언제나 니들이 제일 귀엽단다. 너네가 아무리 자라도, 성인이 되어도, 설령 지금 아빠처럼 중년이 된다 하더라도, 아빠 눈에는 언제나 아기란다. 아빠 아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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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1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형님이란 분이 중국 고저 소설 홍루몽에 나오는 가보옥과 비슷한 성격이신것 같네요.소설속 가보옥이 남긴 명언이 “여자의 몸은 물로 만들어졌고, 남자의 몸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여자를 보면 온몸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탁한 냄새가 나 숨이 막힌다”이지요.
요즘 말로하면 그냥 여미새이신것 같습니다^^

yamoo 2026-10-1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님이란 분이 제가 아주 아주 혐오하는 부류의 사람이군요!ㅎㅎ

잉크냄새 2026-10-1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형님이란 분과 유사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네요. 그렇다고 딱히 여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아니었고 그냥 남녀간의 구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기억나지 않는 책받침 여신은 <그렘린>의 피비 게이츠 일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