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고 싶지는 않지만......


한때는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많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여하는 단체나 단위에서 책 모임이 있다면, 혹은 새로 생긴다면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부러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해 보다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생명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심으로 모인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한 독서모임이 하나 있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여했던 시절에는 전성기는 지난 후여서 얘기를 들었던 정도로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고, 예상했던 정도의 적극적인 활동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그 모임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었다. 만약 일정이 안 맞으면 늦더라도 꼭 뒤풀이는 가고 싶었었다. 그만큼 그 모임 참가자들이 정말 좋았었다. 


독서모임을 거의 나가지 않게 된 건 녹색당을 탈당하면서였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는 만독(만만한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매번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녹색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는 반민주적인 만행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한 후로 우리 지역에서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원들 20여명은 다같이 탈당했다. 그리고 만독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탈당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활동은 이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만독도 유지하고 싶었으나, 모임을 주도하셨던 분들은 의욕을 잃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독서모임이 많았던 시절에는 읽어야 할 책들과 바쁜 일정 중에 억지로 모임에 참여할 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 막상 참여할 독서모임이 없어지고 나니 많이 허전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 몇 분들께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다들 좋다고는 했지만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첫 모임이 이뤄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면서 또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러다 예전에 만독을 주도하셨던 선배 한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분이 최근(그러니까 그 당시에) SF를 읽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의외였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 분이시지만, 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 책들을 읽으셨고, 문학 쪽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 분이 SF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같이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역시 그 선배님이 움직이니 드디어 첫 모임이 만들어졌다. 막상 모이고 나니 아주 중요하지는 않지만, 꼭 짚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 소모임을 어느 단위에 속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들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든 이들이 최우선 순위로 활동하는 단위가 달랐다. 이런 문제는 의외로 사람 마음을 건드려 불화의 씨를 퍼뜨릴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연합 소모임으로 만들자고. 그래서 모인 사람들 다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세 단위(협동조합 두 곳과 지역정당 한 곳)가 연합해서 만든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처음 몇 번의 모임은 정말 좋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녹색당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자주 만나고 함께 고생했었지만, 탈당 이후로 몇 년 동안은 그만큼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모두 정말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그 애정과 관심이 식을 수 밖에 없는 법. 늘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이 모임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번 빠졌는데, 그날 이후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첫 모임을 만든 구심점이 되어 주셨던 선배가 갑자기 "이젠 SF에 관심이 없어졌어." 라는 이유로 모임에 안 나오셨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 바빴던 구성원들은 각자의 바쁨을 이유로 모임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모임 날짜를 잡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


나 역시 계속 바빴기 때문에 한동안 이 모임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주로 추리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SF 소설을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다시 SF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다들 "그래. 모여야지. 모이면 너무 좋지." 라고 말을 했지만, 일정 정하는 것이 늘 숙제였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일단 투표창을 띄워서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날짜를 정하자. 일단 다시 모이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굴러갈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SF 모임은 꽤 성공적이었다. 세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게 소수의 참가자들만 남았지만, 새로운 참가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뭐든 저절로 잘 굴러가는 일은 없다. 누군가 시간과 노력을 부어야 굴러갈 수 있다. 어렵게 다시 모인 이 모임이 다시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나는 SF 라는 장르를 한참 늦게 만났다. 아마 제일 먼저 접한 작가는 필립 케이 딕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아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SF 라는 장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 계기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라는 책을 읽은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시 운동가로서 내가 가진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확인했고,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내 태도와 자세가 너무 경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SF 라는 장르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소중한 SF 읽기 모임이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이 책을 냈던 메이데이 출판사에 영업 담당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메이데이 출판사의 영업 업무 일부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SF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저번에 읽고 짧은 글을 쓰기도 했던 이 책 [모두를 파괴할 힘]에서는 차별에 맞선 전세계적 규모의 혁명이 일어난다. 그 혁명은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해방구가 된 도시에 모인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혁명을 즐겼다. 그래서 다시 저 책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가 생각났다.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이 집에서의 기억이 아니었던가? 이사 오기 전의 집이었나?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오고 난 후에는 내 취향대로 책 정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찾아볼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주말에 짬이 나면 다시 찾아봐야지.


암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혁명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혁명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그 혁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몸치라서 춤을 추지는 않겠지만, 노래라면 함께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할 수 있겠지. 모든 차별을 무너뜨리고 모든 억압을 깨부수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아주 짧은 시간 기분은 좋았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8월 말에는 가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갑자기 훅 가을이 와버렸다. 이젠 반팔과 반바지가 안 어울리려나. 다시 긴팔, 긴바지 입는 것이 너무 어색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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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1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2026년에 SF소설을 접하신 것이 다행이세요.한 15년전만 하더라도 SF소설 간행하는 출판사도 적었거니와 판매 부진으로 절판되기 십상이라 실제 서점에서 책 구하기기 매우 힘들었거든요.개인적으로 많은 SF소설을 수집했지만 일반 책방에서 거의 절판 상태라 구입하지 못하고 거의 전국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기억이 나네요ㅜ.ㅜ

잉크냄새 2026-09-1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모임이든 구심점이 될 누군가와 그의 희생 없이는 오래 지속되기 힘든 모양입니다.
독서 모임이라는 것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입장에 그 경험이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