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파괴할 힘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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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읽었던 [테세우스의 배]를 쓴 이경희 작가의 소설이다. 혹시 그 작품과 연결되는 것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읽다보니 익숙한 이름이 하나 나왔다. 바로 ‘트라이 플래닛‘ 이라는 대기업. 저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석진환이 회장 자리에 앉아있는 군수산업으로 성장한 엄청난 대기업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그 영향력이 막강한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몇차례 이름이 언급될 뿐, 핵심 이야기에 얽혀있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맨 뒤쪽 작가의 말 바로 앞에 있는 짧은 부록 ‘데비안트 능력에 대해‘ 부분을 잘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맨 앞에 나와있는 등장인물 페이지도.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랜 습관 때문에 앞, 뒤 양 표지와 책 날개 그리고 판권 면을 가장 먼저 읽은 후, 맨 뒤쪽 작가의 말 혹은 옮긴이 후기, 추천사나 해설 등을 먼저 읽는 편이다. 이번 작가의 말에는 그 맨 앞에 굵은 글씨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경고가 있었다. ˝세상에는 책을 펼치자마자 맨뒤로 달려와 후기부터 읽어대는 폭주족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경고. 이 경고에서 멈추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책을 다 읽고 이 후기로 돌아오라는 얘기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폭주족 같은 부류라고 지칭한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후기를 먼저 읽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스포일러 경고와 같은 효과일 것이다. 나는 스포일러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소설도 영화도. 그래서 언젠가부터 맨 앞에 스포일러 경고를 적는 것이 유행하는 상황이 좀 우스웠다. 원래 어떤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내용을 다룰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게 소설이던 영화던 그걸 쓰는 건 당연히 내용 중 일부를 드러내는 행위다. 당연한 걸 굳이 빨간 글씨로 그리고 굵은 글씨로 경고까지 해야하나?

다시 강조하지만,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꼭 사전에 복잡하기만 한 ‘데비안트‘ 라는 존재와 그들의 기이한 능력들을 꼭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점퍼, 텔레파스, 키넨시스, 보이안트 라는 네 가지 초능력을 지닌 데비안트의 유형과 그 각각의 유형이 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간단히 소개한 내용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

일단 데비안트 라는 용어부터 낯설고 입에 붙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와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설명에도 뮤턴트 혹은 코리안 프릭 등 멸칭 대신 사용하는 공식명칭이라고 나와있다. 주로 2020년대 한국을 중심으로 많이 발현되었다고 했다. 이런 설정은 이 소설보다 더 이후에 출간한 [SF 보다 vol.2 벽]에 실린 첫 단편 소설 [아레나]의 설정과 거의 비슷하다. 듀나의 아레나에서도 주로 한국에서만 초능력자들이 나타난다는 설정이었다. 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듀나의 소설 두 개를 언급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둘을 읽어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설정도 영향을 받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엑스맨 1편을 보았을 때 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를 잘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영화에도 나오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억압, 일본 제국이 저지른 조선인에 대한 억압 등. 이 이야기에서도 데비안트 능력이 발현되는 청소년들은 수용소 같은 곳에 갇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나는 소록도를 떠올렸다. 일제가 한센인들을 격리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지옥. 최근 거의 모든 이슈를 삼켜버렸던 하영이라는 여배우가 자랑스럽게 언급했던 그 소록도. 그리고 예전에 소록도에서 읽었던 당시 학생들의 시집들과 일기들을 통해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소설의 초반에 주인공 화경이가 갇혀 지냈던 그 수용소 같은 학교 생활을 읽으며 소록도의 희생자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엑스맨도 그렇고 이 소설도 평범한 인간과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가 나타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 차별의 문제까지 연결한다. 성별, 인종, 성 정체성, 장애 여부, 종교, 신념, 이념 등등. 등장인물들 중 일부는 데비안드이자 성 소수자이며 흑인이었다. 주인공 일행 다수는 여성이자 데비안트였다. 데비안트이지만 장애를 가진 인물들도 나온다. 이 사회에서 특정 개인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차별의 굴레에 처해있음을 잘 드러내는 지점이다. 예컨대 나는 중년 남성으로 사회적으로 절대 약자로 볼 수 없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라는 차별을 당해왔고, 경제적 가난이라는 구조적 차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엑스맨이 아주 다양한 초능력들을 보여주는 반면, 여기서는 네 가지 범주로 묶이는 한정적인 능력들이 발현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단 점프. 이건 아마도 영화 [점퍼]에서 개념을 가져온 것 같다. 순간이동이나 텔레포트 라는 단어 대신 점프 라는 단어를 쓴 것 부터 그렇고, 작중 점퍼들이 활약하는 모습들도 이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음은 키넨시스. 부록의 설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능력은 염력 혹은 염동력이라 부를만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영화 [푸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능력인 것 같다. 키넨시스의 다양한 능력들 중에 스윙은 스파이더맨에게서 따왔음을 암시해놓았다. 그리고 파이어스타터 라는 개념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중 등장인물인 리웨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비밀스러운 인물이라 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보이안트는 천리안 능력과 투시 능력이 결합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일 난해한 능력이 텔레파스다. 부록의 설명도 난해하고 모호하며, 작중 등장하는 주요 텔레파스들의 능력도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 이야기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능력이다.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세 명의 여성이 모두 이 비밀스러운 능력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다른 작품들에서 접했던 텔레파시 능력은 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 사람 혹은 여러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 작품의 텔레파스는 다수의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는 허브 능력과 상대와 심리적 매듭을 묶는다는 바인드 능력 그리고 상대의 기억을 읽고 지우는 능력 등이 있고 심지어 상대를 조종하기도 한다. 이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데비안트는 모두 텔레파스로 묘사된다. 제1차 텔레파스 전쟁의 팔레스타인 쌍둥이와 제2차 텔레파스 전쟁의 홍콩 출신 아이리스 쳉이 모두 아주 강력한 텔레파스였다. 그리고 주인공 신화경 때문에 제3차 텔레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주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강력한 텔레파스는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일종의 정신지배자로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데비안트들이 손을 잡거나, 신체접촉을 통해 서로 다른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현한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여기서부터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다.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아서 인물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 작가는 여성 등장인물들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 일단 절대적으로 여성들이 많다. 주인공 일행 중 남성은 하태빈이 유일한데, 나는 중반까지 이 인물도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중간에 수염 묘사가 있어서 남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경의 엄마 동료들 중에서도 장 폴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다. 가장 악랄한 악역처럼 그려지는 급진주의 데비안트 단체 ‘여성들의 목소리‘ 주요인물들도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이다. 특히 무니야 알 바크르는 악녀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또 극초반과 극후반에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존재 최서윤도 전체 이야기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악역 여성이다.

이 많은 여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리야 사무체예바 이다. 아주 짧게 등장하여 비중이 별로 없는 인물이지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이리스 쳉 역시 인상적인 인물이지만, 마리야의 활약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주인공 3인방으로 칭할 수 있는 신화경, 조유영, 리웨이 이 세 여성은 좀 많이 답답하다.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이자 문제라고 느낀다. 이건 이 소설의 구조와 시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작가가 다른 구조와 시점을 사용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그려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 바로 시점이다. 맨 첫장면은 3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이 가장 자연스러운 서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1인칭 시점으로 서술 주체가 바뀐다. 부자연스러웠다. 바로 앞의 시작 부분이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그 부자연스러움이 더 잘 느껴졌다. 이거 등장인물이 엄청 많은데 매번 서술자를 바꿔가며 1인칭으로 가려나 하고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나니 다시 2인칭으로 바뀌었다.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서술자가 너, 바로 주인공 신화경 그리고 독자에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이건 앞서 1인칭 보다 훨씬 더 부자연스러웠다. 2인칭이라면 서술자가 계속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설명해야 한다. 주인공 옆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아니,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왜 2인칭으로 서술하지? 주인공 곁에 유영이 등장하는 것 조차 한참 후인데, 그보다 더 과거를 과연 누가 주인공에게 설명할 수 있지? 이건 일종의 오류이고 잘못된 서술 방식이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이후 다시 3인칭과 1인칭이 나오기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서술한다.

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내‘가 ‘너‘에게 하는 이야기다. 제가, 당신들에게.˝ 라고 적었다. 작가가 굳이 가장 중요한 시점의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고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작가의 의도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것이 문제이자 패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의 반전 효과를 노리고 2인칭 시점을 사용하며, 그 서술자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도록 정보를 차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조유영의 능력과 리웨이의 능력이 주인공 화경의 능력과 엮이며 뭐가 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전개를 그려낸다. 게다가 작가의 말 이후에는 쿠키 라고 결말까지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에 대해 리웨이 시점을 추가로 적어놓았다. 마블 시리즈 덕분에 쿠키 영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과 그 기능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했는데, 소설에도 쿠키 분량을 넣다니! 참신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이 소설의 가장 안 좋은 점은 세 개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2인칭의 과거 시점이자, 인터넷 방송 대본 및 댓글 형식을 차용한 2장의 서술 방식이다. 일단 너무 산만하고 쓸데없이 분량을 키운 방식이다. 이 책이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여기서 내용에 비해 공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본의 형태로 서술한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댓글들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달았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말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나는 작가의 욕심이 과했다고 본다.

두번째는 해방구였던 예카테린부르크가 함락되는 날의 최종 묘사가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이 강력한 텔레파스가 폭주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라고 보인다. 앞서 팔레스타인의 쌍둥이와 아이리스 쳉의 전례가 있었듯이. 그러면 이게 왜 어떻게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 에반게리온을 언급했던데, 가장 중요한 폭주의 순간을 화경에게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도록 수많은 글씨들을 중첩되게 겹쳐 인쇄한 방식으로 연출한 것이 에반게리온의 결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라는 질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문제는 주인공 3인방의 관계와 능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은 점이다. 유영은 조용하고 튀지 않으려던 화경이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수용소와 같은 학교를 지배하고 있던 존재임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인 것처럼 나온다. 그래서 유영은 이후에 마치 도장깨기 하듯 전국의 수용소와 같은 학교들을 해방하러 다닌다. 유영과 화경의 관계와 애증은 그래도 좀 드러나는 편이다. 하지만 일부러 꽁꽁 감춰두었던 리웨이와 화경 그리고 유영이 얽힌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화경의 엄마가 분신할 때 불은 붙인 존재가 리웨이임을 밝히며 리웨이가 왜 화경에게 집착하는지 그 단서는 보여줬지만, 본질적으로 리웨이가 화경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화경을 무조건 보호하려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예카테린부르크 함락 시점에서 화경을 죽이려 했던 리웨이가 나중에 달에서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것도 단순히 의뢰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 이 소설의 시작시점에서 화경이 느낀 명백한 살의는 리웨이가 거의 확실한데, 리웨이가 왜 이 우주선의 모두를 죽이려 한 것인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왜 유영의 능력인 몸을 바꾸는 것을 리웨이가 쓸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혹시 리웨이의 몸은 유영이 장악한 상태였던 걸까? 그래서 사실 죽은 것은 유영이 아니라 리웨이였던 걸까? 이런 부분들은 단순히 난해하다기 보다는 작가가 확실하게 드러냈어야 할 부분들을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외에도 사소한 단점들이 몇가지 눈에 띄지만, 글에 반해 장점들도 명확한 소설이다. 일단 68혁명으로부터 68년 후를 시간 배경으로 정한 것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역사상 존재했던 대표적인 혁명을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혁명의 한가운데 해방구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담아내려고 애쓴 것이 인상적이다. 파리 꼬뮌, 68혁명,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홍콩 민주화 운동,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독립을 이끈 발트의 길 비폭력 저항운동 등이 이 해방구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살바도르 아옌데 등 남미의 혁명가들과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을 떠올릴 수 있는 상황들도 인상적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는 일을 주로 하는 활동가로서 전 지구적 혁명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화경이라는 엄청난 능력자가 만든 예카테린부르크 라는 해방구가 너무나도 멋진 무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해방구를 지키려 애쓰는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존재들을 떠올렸다. 한편으로 선의로만 가득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부조리한 인간의 본능을 마주하는 상황도 인상적이었다. ˝구제하지 못할 모순덩어리들. 독재에 맞서는 숭고한 존재인 동시에 누군가를 성적으로 음행하는 존재며,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왔으면서도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존재며, 퀴어 퍼레이드를 주관하면서도 인종이 다른 누군가를 우스개 삼는 존재며, 전쟁 난민을 포용하는 일에 기부금을 내면서도 타국에서 온 소녀의 몸을 돈으로 희롱하는 존재며, 자신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누군가의 가족을 파괴하는 존재며......˝

완벽한 인간이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숭고한 영웅이자 혁명가라고 해도 인간적인 결함들은 존재할 것이다. 그런 혁명가들이 아무리 선의로 해방구를 열었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온갖 부조리한 더러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혁명은 너무나도 가슴 뛰는, 매력적인 단어이지만 그 혁명의 이면과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촛불을 통해 내란 수괴를 몰아냈지만, 그 다음 대통령은 촛불과는 관계없이 기득권의 편에 서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글을 마치자. 소설을 읽으며 너무 오글거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예카테린부르크를 점령한 직후 노래를 이어부르는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발트3국 독립을 이끈 당시에 불렀던 노래라던가 프랑스 국가 라던가 혁명과 관려한 외국 노래들을 이어부르다가 한국인인 주인공 일행들로 순서가 이어지자 처음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더니 그 다음에는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시간 배경은 1968년으로부터 68년 후라고 했으니, 2036년이다. 2036년의 10대들은 여전히 소녀시대 노래를 듣고 부를 것인가? 이화여대 시위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고 들었고, 이번 윤석열 탄핵 시위에서 소녀시대 뿐 아니라 여러 아이돌들의 노래가 불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작가가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사용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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