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반만에 다시 일터로 출근했다. 최근 몇몇 지인들에게 계속 이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살면서 6개월 반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도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6개월 이상의 무직 기간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일하던 시절보다 더 바쁘게 지냈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은 내게는 정말 사실로 느껴졌었다.


오래전 시민단체에 활동하던 시절에는 정말 교통비와 식비 조차도 해결이 안 될 수준의 급여(그 시절엔 활동비라고 불렀다.)를 받았기 때문에 일을 쉬는 기간이나 이직을 위한 휴식 기간에는 늘 다른 일을 통해 돈을 벌어야 했다. 학원 강사일을 주로 했고, 노가다라고 부르는 공사장 잡부일도 했다. 결혼 후 큰 아이가 태어날 때는 사전에 아내와 협의한대로 내가 육아휴직을 받아 6개월 동안 아기를 돌봤다. 당시 아내의 급여 좋건이 나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육아휴직 기간을 재밌게 알차게 잘 보냈다. 낮에 심심하면 유모차를 끌고 백화점에 놀러가서 수유실에서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면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육아휴직이었으니 다른 무엇보다 아기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한 기간이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이어온 여러 사회활동들에도 신경을 쓰곤 했다.


나중에 시민단체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이직할 때,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다른 출판사로 옮길 때 등에도 바로 옮겨가지 않고 중간중간 이직 기간이 있었지만, 그때는 늘 여러가지 활동들 때문에 바빴다. 아까 말한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은 주로 이 기간들에 해당된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쉰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은 여러 층위의 활동가들이 앞다퉈 연락해서 이런저런 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거나, 아예 너 밖에 없다며 맡겨버리곤 했다. 돈 한 푼 못 받고 이런저런 일들을 참 많이도 떠맡았었다.


이번에는 교통사고로 입원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정말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가끔 연락이 오는 지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걱정과 응원을 보낼 뿐, 그 전처럼 무슨 일이 있는데 라면서 말끝을 흐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말 처음으로 아무 원없이 편하게 놀고 먹었던 기간이었다.


오늘 오랜만에 출근하는 일은 사고 전까지 매일 해왔던 일이었음에도 참 낯설었다. 그래도 사무실에 딱 들어섰을 때, 동료들이 유난떨지 않고 그저 어제 퇴근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주어서 그게 고마웠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말 많은 분들이 내 걱정을 해주셨구나. 이 은혜를 다 어떻게 갚아야 할까 생각이 들때가 많다. 은혜의 다른 말은 빚일텐데, 평생 빚을 갚아가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낯설기만 한 사무실 내 책상 위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내가 이런 책을 샀었구나. 집에 있었다면 쉬는 동안 완독은 못했더라도 간간히 들춰봤을텐데, 사무실에 두고 온 탓에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구나. 미안한 마음에 이제라도 읽어줘야겠다.


사고가 나기 전에 당연히 다시 출근할 거니까 아무 생각없이 놓고 나왔던 물건들이 꽤 있었다. 지난 초겨울 한참을 찾았던 조끼와 USB 메모리 스틱을 보고 안도했다. 사무실에 놓고 온 줄도 모르고 어딘가에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출근하는 삶. 아침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날들이 돌아왔다. 아직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일 생각보다는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차츰 적응해나가야 하겠지. 당장 중요한 일정들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예전에 일 잘했던 나로 다시 바뀌어라.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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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01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건강은 계속 조심하시구요~

감은빛 2021-02-07 23:0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비연님.
응원과 염려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1-02-01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업무에 복귀하는 첫날만 뭔가 조심스럽고 다시 적응하는건 순식간이더라구요. ㅎㅎ 건강 조심하시면서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시고 조금만 열심히 일하세요. ^^

감은빛 2021-02-07 23:09   좋아요 1 | URL
네, 바람돌이님.
저도 너무 열심히 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이제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살고 싶기도 하고,
또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기도 해서요.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2-02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오랜 기간 몸조리 하시면서 블편한 점도 있으셨을텐데 잘 쉬었다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곧 적응하셔서 언제 쉬었나 싶게 잘 하실 거 같은 예감이 팍팍 듭니다. 복귀 축하드려요!!^^

감은빛 2021-02-07 23:1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다시 일을 하려니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네요.
말씀처럼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고맙습니다!
 

1. 운동일기

하루하루가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 뭔가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운동일기를 쓴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그 간의 성취를 평가하기 편할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해봤다. 처음엔 공책을 하나 마련해 운동의 종류와 대략적인 세트수, 반복수 등을 적었고, 전반적인 느낌도 적었다. 이렇게 해보니 일주일 단위로 분할 운동하기도 편하고 전날의 운동 강도를 객관적인 숫자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여기에 적기 위해서라도 귀찮아서 움직이기 싫어하는 몸을 움직여 억지로라도 운동을 시작하는 나를 보면서 운동일기를 쓰기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심삼일은 인류 보편적인 진리인 것. 한 이삼주 정도 기록하다가 그 기록이 귀찮아진 나는 운동을 하고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일 한꺼번에 이틀치를 쓰면 되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에는 사흘치를 쓰지 뭐 그거 5분도 안 걸릴텐데 그랬다. 그 다음날에는 나흘치를 써야지 했다가 기억이 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떤 동작을 했었는지는 다 떠올릴 수 있었지만, 세트수와 반복수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공책에 적는 운동일기는 끝났다.

이번에는 늘 갖고 다니는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찾아봤다. 역시 운동 다이어리 개념의 앱이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이 헬스클럽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헬스클럽도 가지 않고, 만약 가더라도 머신운동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류의 앱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다양한 맨몸 운동들 그리고 기존 운동을 응용해 나에게 필요한 운동도 기록할 수 있는 앱이 필요했다. 운동 다이어리로 검색되는 십여개의 앱들을 설치해봤는데 원하는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메모장에 기록하기로 했다. 방식은 공책에 썼을 때와 동일하게 날짜와 운동 종류와 세트수와 반복수 등. 그리고 나는 날짜만 조금 더 길어졌을 뿐, 공책에 적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상황을 반복했다. 그후로 태블릿에 전용 펜을 이용해 공책에 쓰듯이 펜으로 쓰는 운동일기를 만들어봤지만, 역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내가 만약 앱을 개발자였다면 딱 내가 원하는, 내가 이용하기 편한 앱을 개발해서 사용해볼 수 있을텐데. 불행히도 나는 앱 개발자가 아니기에 운동 일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2. 통증일기

관절 통증을 겪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다. 정형외과와 한의원 등을 여러군데 다녀봤지만, 왜 이런 통증을 겪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고, 당연히 해결책도 알 수 없었다. 주로 아침에 손가락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온 몸의 여러 관절을 돌아다니며 불규칙적으로 통증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나와 정형외과 의사 모두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지만, 검사를 몇 차례 받아본 결과는 류마티스성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능성들을 두고 검토해봤으나 딱 맞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작년 사고로 입원했던 병원에서 퇴행성 관절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고, 이후 다른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아본 결과 어쩌면 퇴행성 관절염일지도 모르겠다는 답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확정이 아닌 추정이지만, 그나마 그게 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매일 달라지는 통증 부위와 강도. 통증이 없는 날과 있는 날의 차이점과 공통점 등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 어떤 통증을 어느정도 강도로 느꼈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통증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날짜와 통증 유무. 통증이 있는 날엔 구체적으로 부위를 적고 그 강도를 기록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통증 부위를 깨닫고 느끼는 짜증과 고통과는 달리 통증일기를 적는 행위는 의외로 재밌었다. 이 통증들이 매일매일 불규칙적으로 바뀌고 양상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꼈다. 전날 왼손 엄지에 극심한 통증이 있었다면 다음 날 아침에 왼손에는 전혀 통증이 없고 오른손 중지에 약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고, 전날 왼발 무릎이 아팠다면, 다음날엔 왼발 무릎의 통증이 더 심해지고 여기에 더해 오른발 발목이 아프기도 했다. 이렇게 양쪽 발 모두에 통증이 생기면 걷기도 힘들었다. 한쪽 무릎과 발목에 통증이 몰리면 한쪽만 절뚝거리며 걸을 수 있는데, 양쪽 모두 통증이 생기면 발을 내딛는 행위 자체가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에. 이 통증일기를 쓰면서 재미를 느끼는 나 자신을 깨닫고 참 이상한 인간이다 생각이 들긴 했다.

통증일기는 한동안 통증이 아예 없는 날이 길게 이어지면서 쓰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통증이 없었으니 쓸 내용도 없을 수 밖에. 나중에 다시 통증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다시 쓰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안 쓰기도 했지만, 꽤 오랫동안 안 쓰다가 다시 쓰려니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3. 외국어 일기

특별히 잘 하는 외국어는 하나도 없으면서 여러 외국어를 찔끔찔끔 익히기 시작한지도 몇 해가 지났다. 어쩌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처음엔 중국어를 다시 해봐야지 했다가, 그럼 일본어도 그랬다가, 예전에 배웠던 독일어도 다시 해보면 많이 기억해낼텐데 싶었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 싶다. 운동일기와 통증일기에 실패한 후 나는 외국어 일기 쓰기에 도전해봤다. 날짜와 어떤 외국어를 얼마나 했는지를 기록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얼마나가 좀 애매했다. 그리고 어떤 행위를 기록하고 어떤 행위는 기록하지 않을건지도 애매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때까지 혼자가 되는 시간에는 거의 항상 노래나 뉴스나 라디오 따위를 틀어놓는데, 일부러 외국어로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샤워하면서 프랑스어 노래를 5곡 듣고, 중국어 노래를 3곡 아니 2곡이었던가 들었다고 쓰려면 밥을 준비하는 동안 들었던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노래나 뉴스 따위도 기록해야 하는 건지 애매했다. 게다가 얼마나라는 부분에서 시간으로 하기엔 매번 시간을 잴 수 없는 노릇이고, 내가 특정한 교재로 공부하는 것은 또 아니라서 ˝장˝ 이나 ˝챕터˝ 따위의 단위도 쓸 수 없었다. 결국 그날 어떤 외국어를 듣거나 따라 말해 보거나 써보거나 했다면, 그냥 그 이름만 기록하는 것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1월1일: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1월2일: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터키어
1월3일: 인도네시아어, 독일어
1월4일: 중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힌디어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쓰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영어를 단 한번도 기록해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앞서 글에서 쓴 적이 있지만, 여러 외국어들을 익히기 위한 기본 언어를 영어로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어를 익혀도, 독일어를 익혀도, 인도네시아어를 익혀도 나는 늘 영어로 돌아왔다. 그러니 영어를 일부러 익히지 않아도 영어가 제일 빨리 늘었다. 게다가 외국어 채팅앱을 대화를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 며칠 전부터 나는 일부러 영어도 시간을 내어 익히기 시작했다. 음, 뭔가 원칙에 어긋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번에도 귀찮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양상은 앞서 운동일기와 마찬가지다. 내일 하지 뭐 그랬다가 다음날 또 다음날 한꺼번에 몰아서 기록해야지 했던 것이 결국 포기로 이어졌다.

결론

결론은 나는 일기를 지속적으로 쓰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기를 써서 좋은 점 수백가지를 알아도 실제로 꾸준히 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 잠깐만 이거 실제로 쓰는 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늘 무언가 말하거나 쓰기 전에 머리 속으로 미리 내용을 정리해두는 편인데, 그 말은 미리 머리에서 한 번 써본 것이 된다. 오늘 운동을 하고 기분좋게 샤워를 하면서 외국어 노래를 듣고, 운동했으니 먹어줘야지 하면서 식사를 준비하며 영어 뉴스를 좀 듣고, 그러면서 머리 속으로 나는 자 오늘 케틀벨 스윙, 푸쉬업, 레그 레이즈, 풀업 등을 했는데, 오늘은 쓰기 귀찮은데 내일 써야지 라고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머리 속으로 쓴 것과 실제 기록한 것의 차이는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썼느냐 혹은 키보드를 두드렸느냐 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글씨를 쓰지는 않았지만, 머리로 이미 한 번 내용을 정리했다면 그것을 기록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가? 왜? 결과물이 없어서? 내 뇌에는 그 생각을 했던 기억이 한동안 남아있을테니, 내 머리 속에는 분명 결과물이 있을 것이다. 물론 기억이 금방 사라질테니 당분가이겠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내가 기록을 남겼던 공책도 금방 잊어버려서 못 찾을 수도 있고, 태블릿에 남긴 기록도 실수로 삭제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결론은 공책이나 어플리케이션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이니 가능하면 열심히 해보고, 만약 귀찮아서 하기 싫어진다면 머리로만이라도 생각해서 그 생각을 했다는 기억을 내 뇌에 기록으로 남겨라. 이만 인생이 귀찮은 어느 불쌍하고 불행한 인간의 넋두리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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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31 0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록하는 건 좋은 거겠지요 언젠가 읽은 소설에서 공부한 걸 그렇게 적고 나중에 보면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알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건 할 때 적는 게 좋을 듯해요 나중에 써야지 하면 미루니, 시작할 때와 끝났을 때...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뭔가 쓰는 게 낫겠지 하는데, 정말 그럴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언젠가 자신이 적은 것도 잊어버리겠지만...


희선

감은빛 2021-02-01 15:07   좋아요 1 | URL
네, 희선님.

기록은 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하기는 또 쉽지 않네요.
특히나 사소한 일일수록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독서 기록도 쓰기도 했었는데,
이젠 귀찮아서 못할 것 같아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거서 2021-01-31 09: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기 쓰기에 도움되는 앱으로 북플 추천합니다. 저는 ‘독.보.적’하면서 다시 거의 매일 책을 읽게 되었어요. 새해에 원하시는 대로 변화가 생기고 성취하기를 응원합니다.

감은빛 2021-02-01 15:10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오서거님.
북플의 [독보적] 기록(?) 때문에 저도 매일 조금이라도 읽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되지 않더라구요.
어떤 날엔 단 한 줄도 못 읽는 날들도 있더라구요.

추천과 응원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서거님께서도 새해 원하시는 일들 이루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1-31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일기를 쓰고 계시는군요. 모든 일기가 독특해요. ㅎㅎ 마지막으로 내 뇌에 기록으로 남겨라는 저의 모토와 일치합니다. ^^

감은빛 2021-02-01 15:1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댓글이 중복으로 남았네요.
오래 전에 알라딘에 이런 오류가 좀 심했던 것 같은데,
같은 오류가 또 생기나봐요. ㅎㅎ

다양한 시도를 해 보지만, 늘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탈입니다.
이외에도 독서일기와 시 일기를 별도로 쓴 적도 있었는데,
역시 오래가진 못했어요.

마지막 모토가 일치하는 분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1-02-01 22:30   좋아요 1 | URL
앗 왜 중복이지? 손가락이 떨렸나봐요. ㅎㅎ

붕붕툐툐 2021-02-02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명상 일기 쓰고 있어요. 한 놈만 팬다 정신이라 그런지 지금까진 꾸준히 쓰고 있네요(약 두 달?ㅋ)
예전에 <몸의 일기>란 책을 잼나게 읽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뭔가 적는걸 엄청 중요시 생각하진 않고 그냥 잊으면 잊히는 대로 흘려보내자 쪽이 더 강한 거 같긴 해요~ㅎㅎ

감은빛 2021-02-02 18:2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덧이름을 발음하기가 쉽지 않네요. ^^

명상일기라니! 멋져요. 게다가 꾸준히 쓰고 계신다니 더 멋지구요.

제가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네요. 잘 부탁 드립니다.

붕붕툐툐 2021-02-02 19:26   좋아요 0 | URL
ㅋㅋㅋ붕붕이나 툐툐로 불러주셔도 됩니당!!ㅎㅎ 사실 제게 배울 점은 1도 없지만, 자주 소통하며 지내용!!^^
 
 전출처 : 감은빛 > 막걸리와 홍어무침 그리고 김해자

9년 전에 올린 글이라고 북플이 알려준다. 그날 김해자 선배와 마신 막걸리 맛이 지금도 혀 끝에 남아있는 듯한데, 어느새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작년 사고 후 걱정해주는 이들의 안부 인사를 많이 받았는데, 그중 한 지인이 종종 시를 한 번씩 적어 보내주셨다. 그 시들을 읽을 때마다 그 분이 나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시를 찾아 읽고 보내주신다고 느껴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요즘 일부러 시를 조금씩 찾아 읽는다. 김해자 선배의 시집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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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3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액자에 넣어진 글 같아요. 어떻게 하신 거에요?? 가르쳐 주세요. 😅

감은빛 2021-01-31 19:30   좋아요 0 | URL
라로님. 알라딘 웹에서는 링크만 보이고, 북플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방법은 정말 간단한데요. 북플이 몇 년 전에 쓴 글이라고 알려줄 때, 공유하기 버튼이 생겨요. 아마 전체공개 글만 공유가 가능할 거예요.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면 액자처럼 아래에 몇 년 전 오늘 쓴 글이 보이고, 그 위에 글을 쓸 수 있어요. 거기 원하는 글을 쓰고 등록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간단하죠?
 

[회복일기04] 전치 8주 이후 6개월 경과


작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입원해 있는 동안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폰 메모장에 이런저런 심정과 병원 내 사소한 일들을 참 많이도 타이핑 해놓았었다. 그땐 병원에 갇혀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좁은 병실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만이 내가 생각하고 기록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에 사소한 일들도 잊지 않으려고 잔뜩 써놓았었다. 그 기록들 속에는 40대 중반을 지나는 내 삶의 주요 궤적들을 돌아보고 향후 얼마가 될지 모를 인생을 어떻게 대할지 자세를 바로 잡아보는, 그러니까 나 자신을 나름대로 성찰해보는 내용들도 있었다.


퇴원 후, 그 기록들을 정리해서 여기 알라딘에 남겨볼 생각이었다. 아마 이제는 남은 인생보다는 지나온 인생이 많을 것 같은데, 딱 이 시기에 병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여기 남기고 싶었다. 또 사고와 그로 인한 부상에 대한 세부 내용들, 병원에서 겪었던 나로서는 나름 새로운 경험들을 함께 엮어서 '회복일기'라고 기록할 예정이었다. 다만 폰 메모장에 남겨놓은 양이 제법 많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마구 섞여 있어서 분류가 필요했고, 단상 중심으로 짧게 메모해 놓은 것들은 살을 보태 써나가야 했다.


그 첫 글을 알라딘에 쓰기 시작했는데, 6시간 가량 쓴 내요을 날려먹었다. 예전에도 가끔 겪었던 알라딘 서재 웹 글쓰기의 오류로 분명 로그인 상태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몇 시간동안 쓴 글을 저장하려고 등록 버튼을 누르면 로그인 화면으로 돌아가면서 써놓은 글이 다 사라져버리는 마법 같은 오류다. 너무 오랜만에 알라딘에 글을 쓰느라 잊어버리기도 했고, 또 당시에는 독한 진통제를 먹던 시기라서 약만 먹으면 엄청 졸린데, 그 졸음을 참아가며 억지로 책상 앞에 오래 앉아서 글을 쓰느라 제 정신이 아니기도 했던 것 같다. 암튼 당시 글을 두드린 시간이 6시간에 달할 정도로 글의 내용이 많았다. 주로는 병원에서 내내 생각했던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글을 고민하는 시간이 아닌 정말 두드리는데 들어간 시간이라 글의 분량은 엄청나게 많았다.


그렇게 한번 날린 글은 다시 쓰고 싶지가 않더라. 돈 받고 써야 하는 꼭 써야하는 그런 글이 아니라면. 그래서 나는 글의 방향을 바꿔 그냥 부상당한 부위와 수술 및 치료 과정만을 나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것만 해도 부상 부위가 다양해서 몇 개의 글이 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회복일기라는 이름으로 글을 달랑 3개 쓰고 얼굴 부상 3가지 종류를 마쳤다. 그보다 더 많은 몸의 부상 부위는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나는 더이상 글을 쓰지 못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앞서도 언급했듯이 먹기만하면 엄청나게 졸리는 진통제를 하루 3차례 먹어가며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밥 먹고 약 먹고 잠시 쉬다보면 졸려서 그냥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둘째는 부상 이후 체력이 많이 약해져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이 힘들었다. 타자가 느린 편은 아니지만, 내가 두드리는 글은 워낙 양이 많은 편이라 그래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꼭 책상 앞이 아니라도 이불 속에서라도 폰으로 북플 앱을 사용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다른 글은 몰라도 이 [회복일기]는 그렇게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폰을 이용하더라도 시간이 더 걸리면 걸렸지 적게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는 어느 순간부터 좀 바빠졌다. 일터에서는 공식적으로 병가 중이었지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성격의 일도 있었고, 내가 다치는 바람에 모든 사무국 일을 다 떠맡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젊은 활동가가 원할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알려줘야 할 일도 있었다. 또 가해 차량의 보험사와 소통하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런 일 자체를 겪어 본 적이 없으니, 원래 이런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는 것이 없었다. 보험사 직원은 그 나름대로는 어쩔수 없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너무나도 불친절하고 어이없는 태도를 보였다. 자동차 사고 과실 비율 인정 기준에서부터 다양한 사고 사례와 법적 처리 과정 및 결과 등 찾아보고 공부해야 할 정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주 오랫동안 연락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변호사 친구에게 염치없이 전화를 걸었고, 교통사고를 주로 다루는 변호사 사무실을 검색해서 온라인 상담도 받았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진통제 때문에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이 적은 편이었고, 나름 열심히 살았음에도 계속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결국 나름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보험사와의 합의도 마무리했다. 딱 거기까지 하고나서 나는 정말 너무나도 지쳐서 아무것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가을이 끝나고 추위가 시작되어 있었다. 책상이 있는 작은 방은 겨울에 너무 추워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었다.


결국 내가 쓰려고 마음 먹었던 [회복일기]는 겨우 3번 만에 멈추고 2020년이 다 지나가버렸다. 12월 말에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라도 남은 내용들을 갈무리한 후에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몸은 하루종일 따뜻한 이불 속에 머물며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제 1월도 거의 끝나가고 슬슬 일터에서 복귀를 원하고 있었고, 음력 설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회복일기]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실은 오늘 저녁 온라인 회의가 있어서 두 시간 가량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조금 피곤하긴 했지마) 다시 일터에 나가기 전에 이걸 마무리 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자판을 두드린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 외상외과 주치의가 작성한 진단서에 내 부상 부위는 총 9곳이었고, 최소 8주간의 치료기간이 필요하다고 적혀있었다. 그 내용을 읽기 쉽게 살짝 바꾸고 (내 판단으로 겹치는 부분을 합치면) 다음과 같다.



1. 안와하벽 및 내벽 골절

2. 비골 골절

3. 안면부 열상

4. 네 개 또는 그 이상의 늑골을 포함하는 다발골절

5. 어깨 및 위팔 부위의 다발성 근육 및 힘줄의 손상

6. 흉강 내로의 폐 손상

7. 흉강 내로의 외상성 혈기흉

8. 다발성 외상



1번부터 3번까지가 얼굴 부위 부상이고 지난 3개의 글을 통해 주저리 주저리 내용을 늘어놓았던 부분이다. 이제 남은 4번부터 8번까지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4. 네 개 또는 그 이상의 늑골을 포함하는 다발골절

6. 흉강 내로의 폐 손상

7. 흉강 내로의 외상성 혈기흉



4번, 6번, 7번은 모두 흉부외과에서 담당했던 내용이라 묶어서 이야기하겠다. 이번 사고로 나는 처음으로 갈비뼈 골절을 당했다. 엑스레이 상으로 4개가 부러진 것을 확인했다고 들었다. 그 중 하나가 폐를 찔러서 폐가 찢어졌고, 그로 인해 폐에 공기가 들어차 기흉이라는 증상이 생겼다고 했다. 이것이 내가 들은 4번, 6번, 7번에 대한 설명이었다.


흉부외과에서는 우선 오른쪽 옆구리에 엄지손가락 반정도 크기의 구멍을 내서 폐에 관을 삽입해 폐에 들어찬 공기와 피를 빼냈다. 이 관을 나는 약 2주 가량 계속 달고 지내야 했다. 처음에는 어차피 늑골 골절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계속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관을 달고 지내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지만, 나중에 수술을 통해 부러진 갈비뼈를 고정시킨 후, 그러니까 걸어다닐 수 있게 된 후엔 늘 이 관과 관으로 연결된 피와 체액을 담는 통(이걸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뭐라고 부르던데 기억나지 않는다.)을 매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제일 힘든 것은 화장실 갈 때였다. 그냥 매달아놓기만 한다고 폐에서 피와 공기가 저절로 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석션이라고 부르는 빨아들이는 기계를 작동해놓고 있었는데, 이 기계가 제법 무거웠다. 다행히 손잡이와 바퀴가 달린 봉에 이 기계를 매달아놓고, 그 기계에 연결된 통을 고정시키고, 통에서 내 옆구리로 연결된 관이 꼬이지 않고 잘 늘어져 있도록 조심하면서 움직여야 했다. 이 기계는 제법 무거웠고, 바퀴가 달려있긴 했지만, 이걸 밀고 움직이는 것은 제법 근육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신 부상으로 제법 오랫동안 근력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당연히 아프고 힘이 들었다. 남들은 링거액을 매단 가벼운 바퀴달린 봉 하나를 끌면서 화장실을 다녀오던데, 나는 그 무거운 기계를 매단 봉에 링거액과 몸에 매달린 관 등을 조심하면서 한발 한발 힘주어 밀어서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화장실 이야기를 한 김에 소변줄(폴리 카테터) 이야기도 잠시 해야겠다. 최초 이송된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소변줄을 차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 엑스레이와 컴퓨터단층촬영 등을 한 후 의식이 없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고려해 채웠을 것이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생식기에서 지속적으로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생식기에도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알고보니 소변줄을 채워놓아서 방광에 소변이 고이면 저절로 배출하도록 시술을 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나는 꽤 충격을 받았고,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이미 몇 년전에 이혼해서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애들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간호사가 애들엄마에게 내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소변백을 비워야 한다고 말한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내 곁을 지켜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만으로도 나는 미안해서 어쩔줄 모를 지경이었는데, 정기적으로 소변백을 비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옮겨간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아예 한 명도 머물 수 없었으므로, 애들 엄마는 내 곁에 머물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단 하루 그가 내 곁에 머물며 지켜준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한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 어쩔 줄을 몰랐다.


옮겨간 병원에선 처음에 중환자실에 며칠을 머물렀고, 이후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나중에 소변줄을 풀기 전까지 소변백을 비우는 일은 간호조무사들이 맡아서 했던 것 같다. 소변줄을 며칠이나 차고 있었는지는 생각하기 싫지만, 수술 후 걸어서 화장실을 갈 수 있을 정도가 된 후에야 소변줄을 풀어줬다. 그때의 감각을 아마 평생 잊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오래 소변줄을 차다가 풀어준 후에는 스스로 소변을 잘 보지 못하기도 하나보더라. 소변줄을 제거한 날부터 이삼일 가량 외상외과 인턴들이 자주 와서 내가 소변을 제대로 잘 보는 지 계속 확인했다. 첫날 밤에는 혹시 내가 침대에서 실수라도 할 것이 걱정된 것인지 당직을 서는 여성 인턴이 찾아와 내 방광 위치에 잔뇨를 감지하는 기구를 대고 검사하면서 소변이 남아있다고 확인시켜줬고, 나는 잠을 자려다가 억지로 일어나 다시 화장실로 향하기도 했다.


이 글이 점점 지저분한 이야기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지만, 소변 얘길 했으니, 대변 이야기를 아주 짧게 잠시만 하고 지나가겠다. 처음 사고를 당하고 나흘 동안 나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입으로 넘기지 않았다. 아니 병원에서 먹을 것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아마도 사흘째 되는 날, 이제 슬슬 미음이라도 먹자고 인턴이 와서 얘길했었는데, 나는 그때 대변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소변은 계속 저절로 빠져나가는데, 대변은 그럴 수 없을테니까. 어떻게든 화장실로 가서 혼자 해결해야 할텐데, 상체를 일으켜 앉지도 못하는데, 걸어서 화장실을 갈 수 없으니 걱정이 될 수 밖에. 그런데 여성 인턴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기저귀를 채워놓는 거라고 했다. 그랬다. 나는 줄곧 알몸에 기저귀만 채워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하루에 서너번 정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와서 내 몸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려 눕혔다가 바로 눕히기를 반복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고 했다. 암튼 나는 절대 기저귀에 대변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음을 거부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음을 먹어야 하루라도 빨리 낫는다는 의사와 인턴의 말에 나흘째부터 먹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히도 수술을 받고 걸을 수 있게 되는 날까지 기저귀에 대변을 보는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수술을 받은 날 밤에 내 발로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서 해결했으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하긴 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처음 입원할 때 애들엄마가 사서 넣어준 기저귀들은 하나도 쓰지 않았고, 퇴원할 때 전부 간호조무사에게 주고 나왔다. 간호조무사는 내가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된 다음날부터 기저귀를 차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줬다. 기저귀가 없으니 나는 알몸에 바로 환자복을 입고 지내게 되었다. 사고 당시 입고 있던 옷은 속옷을 포함해 모두 찢어졌고, 애들엄마에게 전해졌다고 들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애들엄마가 넣어준 기저귀와 물티슈 외에 내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휴대폰과 책 한 두권과 수건과 면도기를 비롯한 세면도구들 그리고 퇴원할 때 입을 속옷을 포함한 옷들을 갖다달라고 요청해서(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해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입원 기간 내내 속옷 없이 지내야 했는데, 나는 모든 환자들이 다 그런 건지, 나 같은 교통사고 환자들만 그런 거지 궁금했다. 하긴 어차피 수시로 간호사들과 인턴들이 와서 온 몸의 상처들을 돌봐주어야 했기 때문에 속옷을 입고 있었다면 거추장스러웠을 것 같다. 나는 엉덩이와 허리, 허벅지 등에도 큰 상처들이 여럿 있었다.


다시 부상 이야기로 돌아와서 처음 엑스레이를 통해 부러졌다고 확인한 4대의 늑골 중에 폐를 찔렀던 하나는 수술을 통해 위치를 바로 잡아서 고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받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그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 받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그 수술 덕분에 드디어 혼자 상체를 일으킬 수 있었고, 걸을 수도 있었다. 그 전까지 며칠동안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를 드디어 벗어났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에 보호자가 머물수 없었던 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했는데,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초기에는 좀 서럽기도 했다. 목이 말라도 누군가 물을 먹여주지 않으면 마실 수 없었고, 안와하벽 골절 때문에 초기에는 눈에 눈꼽이 아주 심하게 끼어 잠에서 깨어도 눈을 뜨지 못했는데, 누군가 눈꼽을 떼어주지 않으면 앞을 볼 수도 없었다. 수술 후 몸을 움직이게 되고 나중에 팔을 다 쓸수 있게 된 후로는 보호자가 없는 것이 확실히 장점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들엄마나 부산에서 올라오신 부모님 중 한명씩 번갈아가며 내 곁을 지켜야 했을텐데, 나는 너무 죄스럽고 미안해서 그걸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고, 또 완전히 망가져서 흉측하게 변해버린, 평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꿈에 나타날까봐 겁나서 도저히 거울을 볼 수 없게 망가진 내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나조차도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보는 건 더 싫었다. 


입원 중반까지도 의사들은 처음에 발견한 4대의 늑골 골절만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 전신 뼈 검사를 통해 또 다른 늑골 손상을 발견했다. 그 전에 나는 자려고 눕기만 하면 등쪽 갈비뼈에서 통증을 느껴 밤마다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처음 며칠은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고 잠들었는데, 매번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통증의 정도가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의사들과 인턴들은 통증의 원인을 알지 못했었다. 그 뼈 검사를 통해 갈비뼈 후면도 금이 가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4대가 아닌 그 이상의 골절이었던 거였다.


암튼 전신마취 수술과 폐에 튜브를 삽관하는 시술과 제거하는 시술을 통해 4번, 6번, 7번 부상은 많이 나아졌다. 덕분에 내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에서 옆구리를 따라 마치 뱀처럼 기다란 흉터가 하나(수술 자국) 있고, 그 아래 십자가 모양의 흉터가 하나(폐에 튜브를 꽂았던 자국) 더 생겼다. 그리고 부러진 늑골을 고정해놓은 체인 모양의 띠(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는 특별히 이상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그냥 하고 지내도 된다고 했다. 만약 내가 전쟁터에서 죽거나, 어딘가에서 살해당해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로 발견된다면 늑골을 고정해 놓은 저 띠가 나를 구별하는 단서가 될 수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5. 어깨 및 위팔 부위의 다발성 근육 및 힘줄의 손상


처음 응급실에서 눈을 떠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엄청난 통증과 함께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들엄마에게 갈비뼈가 부러져서 그렇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시 찬잔히 온 몸을 움직여보니 양 다리는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로 인해 통증은 느껴졌지만, 움직일 수 있었고, 왼손도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움직이긴 했다. 다만 오른팔은 손목부터는 움직이는데, 팔굽치를 접거나 위로 들어올리지 못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와서 내 어깨와 팔을 움직여보고 내가 통증을 호소하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이래저래 해보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특별히 뭔가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뼈가 다친 것은 아니고 인대 손상이 의심되긴 하지만 크게 손상된 것 같지도 않은데,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했는데, 이게 또 엄청나게 힘든 일이더라. 때는 한 여름이었고, 나는 엠알아이 촬영실에 침대 째로 옮겨졌다가 폐에 꽂아놓은 튜브와 연결된 피와 체액을 모으는 통 때문에 한참을 대기했다. 외상외과 주치의와 인턴들이 와서 저 통을 안고 엠알아이 촬영을 위한 통 속으로 들어가도 괜찮은지를 논의하는 것 같았다. 저 안이 거대한 자석이라 금속으로 된 것은 들어가면 안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나는 그 통을 껴안은 채로 자석으로 된 통 속에 넣어졌다. 그리고 약 1시간 가량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소리가 나고 시야에 여러 단색의 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나는 자꾸만 숨이 가빠져 버티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소리가 너무 커서 계속 머물다가는 글자 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숨을 헐떡거리며 몸을 움찔하면 마이크를 통해 어디서 들리는지도 모를 목소리가 움직이면 안 된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했다. 


사전에 시간을 알려주지 않아서 나는 얼마나 그 시끄럽고 어두운, 사람의 혼을 빼놓는 통 속에 머물러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알았다고 해도 그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느끼기는 불가능했으니 별로 소용은 없었겠다. 그 고문(내겐 정말 고문처럼 느껴졌다.) 은 멈출듯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이제 끝이겠지 하는 순간 다시 이어지길 반복했다.


결국 누군가 통 속에서 나를 꺼내주었을 때, 얼마나 걸렸는지 물으니 약 50분이었다고 답을 들었다. 나는 욕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힘들게 엠알아이 촬영을 했는데, 며칠 후 정형외과 의사가 전한 내용은 정말 허무한 것이었다. 일부 인대 손상을 확인했으나, 관절을 움직이지 못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처음부터 계속 했던 설명과 별 다를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다만 의사는 인대 손상을 설명하면서 사고로 인한 손상 외에 퇴행성 관절염도 의심된다고 했는데, 약 2년 가량 이어져 이제는 고질병이 되어버린 내 관절통증, 손가락부터 발가락, 손목, 어깨, 무릎, 발목 등으로 문득 나타났다가 하루 이틀만에 사라지곤 하는 온 몸을 돌아다니는 통증이 류마티스성 관절염이 아니라 퇴행성 관절염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나중에 나는 다른 병원에서 다시 류마티스성 검사를 받았다가 그 의사에게서도 류마티스성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고 퇴행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또 들었다.


암튼 원인을 모르고 오른쪽 팔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고 제법 오래 지냈는데, 퇴원을 앞두고 서서히 팔이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팔을 완전히 위로 뻗는 동작 외에 일상적인 움직은 모두 가능할만큼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사고 후 6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가끔 어깨가 아프고 팔이 완전히 올라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이 사고 후유증인지, 아까 언급했듯이 두 의사가 말한 퇴행성 관절염의 증상인지는 모르겠다.


8. 다발성 외상


휴, 이제 마지막이다. 사고 덕분에 머리부터 발까지 온 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작은 상처들이 아니라 큰 상처들이었다. 어려서부터 머리나 무릎, 손 등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참 많았는데, 이번에 단 한 번의 사고로 지금까지 얻은 상처들보다 훨씬 더 큰 상처들을 더 많이 얻었다. 약 15개 가량의 상처(얼굴의 열상은 제외)들이 생겼고,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몸 여기저기에 선명한 흉터들이 남아있다.


초기에는 뒷 머리쪽 상처가 가장 아팠는데, 상처의 크기와 깊이로 보면 왼쪽 허리에서 엉덩이를 걸친 상처와 오른쪽 대퇴부에 세로로 길게 난 상처 그리고 왼쪽 어깨 뒤쪽 등에 깊게 난 상처가 가장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았다. 


이 전신에 난 상처들 때문에 병원에서 내가 입고 지낸 환자복은 일반적인 바지와 티셔츠 모양이 아니라 양 옆이 완전히 트인 형태를 매듭을 단추처럼 잠그고 열어서 입고 벗는 형태였다. 필요할 때마다 양 옆을 열어서 상처를 소독하고 다시 잠그는 방식이었다. 다른 환자들은 수술할 때만 이렇게 생긴 수술복을 입던데, 나는 나중에 대부분의 상처가 낫기 전까지 이렇게 생긴 환자복을 입어야 했다.


속옷이 없었던 나는 주기적으로 상처를 소독할 때마다 바지 양 옆을 열면서 "제가 속옷을이 없어서요." 라고 (여성인) 인턴들이나 간호사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그들은 대체로 쿨하게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자신이 할 일에 집중했지만, 막상 맨 몸의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소독약이 상처를 헤집어대는 통증을 견뎌야 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외에도 나중에 정리하려고 기록해둔 이야기들이 많은데, 시간 관계상 이정도로 [회복일기]를 마무리 하련다. 사고 이후 6개월하고도 10일 가량이 지났다. 몸의 손상들은 거의 대부분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얼굴은 아직도 신경쪽의 통증과 이상한 감각 등이 있고, 흉터를 비롯해 외모적으로 회복이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친한 친구 중에 자주 내 못생긴 외모를 일깨워주는 (즉, 넌 못 생겼어 라고 말해주는) 녀석이 있어서 내 얼굴이 그닥 봐줄만한 외모가 아니었던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이었다. 비록 못생긴 얼굴이었어도 내겐 소중한 얼굴이었다. 최근 만난 몇몇 선후배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얼굴이 괜찮다는 말을 계속 해준다. 그들 입장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정도면 괜찮네 이런 건데, 거울을 보는 내 입장에서는 전혀 괜찮지가 않다.


언제가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얼굴 쪽은 추가 수술을 남겨두고 있다. 그 수술을 통해 보기 흉한 흉터를 해결할 수 있을지, 낮아진 코를 원래 내 코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신경 쪽의 통증과 이상한 감각들은 나아질지 등을 아직은 알 수 없다. 


길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론 짧았던 6개월이 훨씬 지났음에도, 이제 2월 1일부터 일터에 복귀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몸은 오히려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고 들었는데, 얼굴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이 글을 두드리기 시작한 지 거의 4시간이 되었다. 남은 이야기는 또 다음에 두드릴 기회가 오겠지. 오늘은 이만 하고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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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0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8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1-2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저렇게 엄청난 부상을 이겨내신 감은빛님 훌륭하십니다. 환자가 된다는것, 내가 내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건 정말 인간적인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는 것과 동의어더라구요. 이번에 엄마 병간호한다고 병실에 있다보니 그런것들이 제일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구요.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을 훌륭하기 이겨내신 감은빛님 멋지셔요. ^^

감은빛 2021-02-01 14: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마음 써주시고 이렇게 말씀도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네, 말씀처럼 아픈 사람, 어딘가 불편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약자인 것 같아요.
자신의 의지로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복받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치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제 주위에 저를 걱정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엄청 많더라구요.
많은 분들의 걱정과 응원 덕분에 무사히 회복했습니다.
앞으로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바람돌이님의 마음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희선 2021-01-2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병원에 오래 있어본 적은 없지만, 부모님이 있을 때가 있어서 병원에서 수술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요 안 아파야 할 텐데... 사고 나고 힘들게 지냈을 감은빛 님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자기 몸을 자기가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한테 도움을 받아야 하면 싫을 듯합니다 여섯달이 지난 지금은 처음보다 나아지셔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시겠습니다

감은빛 님은 글 쓰시면 오래 쓰시는군요 바로 쓰지 마시고 메모장 같은 데 먼저 쓰시고 올리세요 이런 블로그에서 글쓰기 창을 오래 켜두고 등록하기 누르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말을... 여섯 시간이나 쓴 글이 다 날아갔다는 말을 보니...


희선

감은빛 2021-02-01 15:05   좋아요 0 | URL
희선님. 안녕하세요.

공감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많이 회복되었지만, 다치기 전과는 완전 다르네요.
이젠 더이상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겠죠.

이상하게 저는 글을 길게 그리고 오래 쓰더라구요.
그래서 예전에는 말씀처럼 메모장에 먼저 쓴 후에 옮기곤 했었는데,
지난 번에는 워낙 오랜만에 글을 쓰느라 깜빡했던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꿈에서 쓴 편지

며칠 전 꿈 속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는 내내 뭔가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을 잘 전하고 싶은데, 내 글은 그 마음을 담을 수 없어 답답했다. 편지를 쓰기 위해 미리 머릿속으로 내용과 표현을 다듬고 또 다듬다가 마침내 펜을 쥐고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잠에서 깼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꿈에서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편지를 쓰기 위해 준비하다가 그냥 깨어난 것이다. 잠에서 깬 후에도 한동안 꿈 속의 그 간절한 감정에 빠져있었다. 꿈에서 쓰지 못한 편지를 지금이라도 써야지 생각하고 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꿈에서 쓴 편지라고 제목만 타이핑하고 잠시 꿈 속에서 구상했던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하필 폰에 내용을 기록 중이었는데, 화면이 전화 착신 화면으로 바뀌었다. 내가 저장해 둔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과 직책명이 큰 글씨로 보이고, 폰을 쥔 내 손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받을까 말까. 나는 아직 병가중이라 업무 전화를 받을 의무는 없는데.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이 타이밍에 업무 전화를 받고 싶지는 않은데. 잠시 기다렸지만, 전화는 금방 끊어지지 않았다. 결국 검지 손가락을 옆으로 밀어서 전화를 받았다.

한참 통화를 하고 나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기 위해 작은 방에가서 노트북을 집어들었다. 책상 앞에 앉을까? 안방으로 가져가 이불 위에 앉을까? 겨울에 작은 방은 늘 춥고 쌀쌀하다. 나는 노트북과 마우스 그리고 전원 케이블을 찾아들고 안방으로 돌아와 앉은뱅이 책상 위에 놓았다. 노트북을 켜고 자료를 찾았다. 내가 생각했던 폴더에 없었다. 이메일 계정에 로그인하고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다. 원하는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단어를 바꿔 다시 검색했다. 그래도 안 나왔다. 이번에는 머리를 굴려 그 자료를 주고받았던 시기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그게 아마도 그걸 했던 때였으니까, 그래서 그 전후로 무슨 일이 있었더라. 아마 이 때였던 것 같은데. 혼잣말을 하면서 메일함을 과거로 돌렸다. 메일함의 발송 시기가 과거로 돌아가며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 시기에 내게 있었던 업무 관련 일화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래. 여기있네! 마침내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 원하던 자료를 찾았다. 자료를 그의 이메일로 발송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아침식사로 간단히 먹을 것들을 찾아 냉장고를 뒤졌다. 썰어놓은 파프리카를 꺼내고 올리브 병을 열어 몇 알을 꺼내 과도로 잘랐다. 아무래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자몽 쥬스 병째로 입에 대고 마시며 잠시 고민했다. 먹다가 말고 다시 뭔가 준비해야하는 건 참 싫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더 없었다. 불을 켜고 프라이 팬을 올려 잠시 달궈 두는 동안 계란 세 알을 꺼내 그릇에 깨어 넣고, 젓가락 한 짝으로 젓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반쪽 남은 양파와 절반이 채 안되게 남은 당근을 찾아 조금씩 썰고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소금을 아주 조금 넣고, 간장을 아주 조금 넣고, 굴소스도 아주 조금 넣고 다시 젓기 시작했다. 달궈진 프라이 팬에 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잠시 더 기다렸다가 그릇을 부었다. 소리와 함께 계란액이 퍼져나간다. 동그란 모양의 프라이 팬 크기만큼 퍼진 후에 올리브 기름을 가장자리를 따라 둘러준다. 음, 네모 프라이 팬에 계란말이를 할 걸 그랬나? 손이 많이 가는 계란말이는 내게 귀찮은 음식이고, 애들이 오는 날이 아니면 잘 시도하지 않는다. 계란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라디오를 켜고 노란색과 빨간색 파프리카를 집어 먹는다. 올리브도 손으로 집어 먹는다. 잠시 후 프라이 팬을 들어 계란을 공중으로 던져 뒤집는다. 뒤집개를 사용하면 거기 묻은 기름을 닦아내기 위해 설겆이를 하는 것이 너무 싫다. 단 한번 사용하고 그를 닦기 위해 써야하는 물이 너무 아깝다. 게다가 기름기를 지우려면 세제 거품도 써야한다.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아닌가. 언젠가 주점 행사 때 전을 엄청나게 많이 부친 이후로 전을 공중으로 던져 뒤집는 동작에 익숙해져서 이젠 더이상 뒤집개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익숙해도 어쩌다 한 번씩은 내용물을 흘리기도 하고, 딱 완벽하게 뒤집어지지 않고 일부가 접혀서 모양이 망가지기도 한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뒤집혔다. 잠시 후 가스 불을 먼저 끄고 팬에 남은 잔열로 잠시 더 익힌다. 조금이라도 더 에너지를 아끼겠다는 습관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서서 아침을 다 먹고 그 자리에서 사용한 접시와 그릇을 설겆이한다. 내가 얼마나 게으른 인간인지 스스로 잘 알기에 바로 설겆이를 해야 한다. 기름이 묻은 것은 세제를 아주 조금만 묻힌 털 수세미로 문질러 두고, 기름기가 없는 접시는 천연 수세미로 그냥 물로만 닦는다. 털 수세미는 참 대단한 발견인 것 같다. 기름기를 아주 잘 흡수해서 정말 세제를 거의 쓰지 않아도 잘 닦인다. 지금 내가 쓰는 털 수세미는 몇 년 전 친한 선배가 직접 털실로 떠서 줬는데, 술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시는 중에 잠시도 손을 쉬지 않고 여러 개를 완성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받았었다. 천연 수세미는 어느 행사장에서 경품으로 받았었다. 천연 수세미는 처음에는 모양이 잘 살아있어서 좋은데, 조금만 써도 금방 허물어지고, 나중에는 너무 흐물거려서 조금 아쉽다. 세제 거품을 쓰는 경우는 털 수세미로, 세제 없이 물로만 닦을 때는 천연 수세미를 사용한다.

라디오를 끄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태블릿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다시 폰을 들었다. 아까 메모장에 제목만 타이핑 해놓은 화면 그대로다. 어, 그래서 꿈에서 쓰려고 했던 편지 내용이 뭐였더라. 머리 속은 하얗게 아무 것도 떠오리지 않는다. 그새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한번 잊어버린 것을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잊게 되는 법. 다시 그 꿈 속의 편지 내용을 기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누구에게 쓰려던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편지를 포기하고 이제는 다시 지금 쓰고 싶은 내용을 써봐야겠다. 어라, 그러면 이 글의 제목을 바꿔야하는 건가? 아니, 귀찮다. 제목은 그냥 내버려두자.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잘 지내? 아마 너는 그 먼 곳에서도 잘 지낼거라고 믿어. 너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씩씩하게 잘 헤쳐나가겠지. 나도 잘 지내. 최근에 좀 큰 일을 겪기는 했지만,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 여긴 며칠 전에 정말 많이 추웠어. 북극 제트기류에 이상이 생겨 강력한 한파가 북극에서부터 내려왔다고 하더라구. 이대로 계속 기후위기가 진행되면 곧 인류가 멸종할 거라는 말들도 이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마다 지구 여기저기서 혹한, 폭설, 폭염, 가뭄, 폭우, 쓰나미, 산불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지.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과 호주 산불을 보면 정말 지구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지 않아?

아, 이런 얘길 하려던 것은 아니고. 다시 돌아가서. 여긴 며칠전까지 엄청 추웠다가 다시 좀 따뜻해졌어. 겨울이니 따뜻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춥지만 말야. 알지? 내가 자주 하던 말, 따뜻한 남쪽 나라(?) 출신이라서 여기 겨울은 너무 추워서 견디기 힘들다는 말. 해마다 겨울이면 입에 달고 살았던 아니 지금도 여전히 달고 사는 말이잖아. 철새처럼 겨울이면 따듯한 남쪽 나라로 가서 지내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며칠 전에는 눈도 엄청나게 많이 내렸어. 저녁에 차를 몰고 퇴근하던 사람들이 다음날 아침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을만큼 도로가 엉망이 되었다고 하더라. 특히 강남에선 후륜구동인 값비싼 외제차들이 눈길에서 꼼짝을 못해 차를 버려두고 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 언젠가 내가 들려준 드리프트 이야기 기억나? 우리나라 차들은 전륜구동이라 드리프트를 할 수 없는데, 외제차들은 후륜구동이라 가능하다고. 꼭 한번 드리프트를 해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아직 드리프트를 해보지는 못 했지만, 빙판길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값비싼 외제차라면 돈이 있어도 별로 사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어. 물론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라면 상관없겠지.

이걸 읽는 너는 분명 웬 편지? 이러겠지. 그래 어울리지도 않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할 말이 있어서야. 음, 그런데 그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니 전해도 되는 건지, 과연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편지를 써놓고도 부치지 못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네가 이 편지를 읽으며 웬 편지? 이럴 일도 없겠네. 정말 만에 하나라도 내가 편지를 부쳤다 해도 우편 사고 네가 편지를 받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 생각해보면 그 먼 곳까지 이 작은 편지 한 장이 무사히 도착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기적처럼 신기한 일인 것 같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그래, 너는 언제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는 성격이었지. 그에 반해 나는 늘 본론에 이르기까지의 분위기와 과정을 중요시하는 편이었고. 내 글은 늘 서론이 너무 길다고 그랬잖아. 나는 어쩌면 본론이 아니라 그 긴 서론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른다고 답하고 싶었어. 물론 그 순간에는 그 말처럼 마땅한 대답을 생각하지 못해 그냥 그래? 하고 넘어갔지만. 생각해보면 우린 참 많이 달랐어. 네가 할 말이 있다고 부르면 난 다가가다가도 멈춰 일정 거리를 유지했는데, 넌 그런 내 팔을 잡아끌어 당겼지. 반면 내가 뭔가 보여주려고 널 부르면 넌 얼굴이 닿을만큼 가까이 다가왔어. 식당에 가면 나는 늘 음식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데, 너는 들어서기도 전부터 결정해 놓은 상태였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지친 네가 화를 내며 내 음식까지 같이 주문한 게 몇 번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야. 길을 걷다가 네 작은 손을 잡아보고 싶어서 슬쩍 손을 뻗었다가 갑자기 네가 돌아보는 바람에 깜짝 놀라 고개를 획 돌려버린 나를 보고, 너는 조금 틈을 두었다가 다가와 내 팔을 감싸고 함께 걸었어.

반면 어떤 주제를 두고 대화할 때는 반대였어. 나는 늘 확고한 신념 같은 걸 갖고 있었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너의 의견에 격하게 반론을 제시하곤 했지. 문학, 정치, 사회문제, 음악 심지어 영화까지도. 우린 어쩌면 그렇게 많은 말다툼을 했던 걸까? 어쩌면 너는 말다툼을 피하려고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봉합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어. 끝까지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나봐. 풀리지 않는 매듭도 있다는 걸, 어쩌면 매듭을 굳이 풀지 않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다는 걸 몰랐나봐.

있잖아. 며칠 전에 문득 네 생각이 났어. 해가 기울어가던 늦은 오후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어. 숨이 차서 잠시 멈춰 서서 올려다 본 하늘이 참 예쁘더라. 시계를 보며 좀 있으면 해가 지겠네 싶었지. 해가 질 때의 노을이 보고 싶어졌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옥상으로 올라갔어. 우리집 옥상에서는 온 동네가 다 내려다보여 경치가 무척 좋아. 아주 먼 곳까지 시야가 확 트여있지. 이 가파른 언덕 위 낡은 집에 살면서 딱 하나 좋은 점이 바로 이 경치야. 산 등성이로 가까이 다가가던 해를 지켜보는데, 하늘이 빨갛게 물들지는 않더라. 그러고보니 이 집에 살면서 노을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산이 너무 가까워 해가 미처 떨어지기 전에 산 등성이를 넘어가버려서 그런가봐. 정말 오랜만에 노을이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실패해버렸어. 그때 네 생각이 간절했어.

네 얼굴 뒤로 빨갛게 노을이 물들어 있었고, 바람이 네 머리칼을 자꾸만 헝클어놓고 있었지. 너는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때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바람 소리가 조금 크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왜 영화에서 보면 그런 장면 있잖아. 여주인공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 장면. 너는 가만히 입술을 움직이며 노을을 보다가 눈을 돌려 멀리 바다를 보았어.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지. 그 순간의 네가 마치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처럼 나의 마음 속에 걸려있어.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아주 오랜만에 펜을 든 거야. 맞아. 알고 있어. 이미 아주 오래되어버린 얘기지. 그 후로 너도 나도 아주 많은 일들을 겪었을테고. 수없이 많은 일상을 지나왔겠지. 이제와서 꺼내봤자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 그냥 전하고 싶었어. 아무 소용도 아무 의미도 없어도 상관없어. 그냥 며칠 전에 네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

으아, 이렇게 쓰고 보니 진짜 이 편지 부치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이 편지는 내 마음 속에 걸려있는 그 시절의 너에게 보내는 걸로 할게. 그럼 언제나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랄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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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1-2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제가 무슨 알라딘에서 이런 분야를 대표하는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syo가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종종 쓰는 종류의 글을 쓰셨네요!
아 좋아라....
알라딘에서 이런 글 올리는 사람 나밖에 없는 줄 알고 외로웠는데..... ㅠㅠ

감은빛 2021-01-27 21:28   좋아요 0 | URL
쇼님께서 이렇게 반가워해주셔서 무척 영광입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제가 워낙 부족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이런 분야‘라고 지칭하시는지를
제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네요.

당연히 쇼님의 글은 제가 무척 좋아해서 자주는 접속하지는 못하지만,
알라딘에 접속하면 항상 읽어보는 이웃 분인신데도,
어떤 특징일까를 바로 알아채지를 못 했네요.

부디 미천한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syo 2021-01-29 15:16   좋아요 0 | URL
혹시 제 댓글에 기분이 상하셨을까요? 그러셨다면 죄송합니다.
어쩐지 댓글에서 언짢아하심이 느껴져서.....

저는 그냥 이렇게 달달(?) 애틋(?) 아련(?)한 분위기의 편지글 같은 게 알라딘에 올라오는 걸 별로 본 적이 없는데 저는 이런 감성의 글을 자주 쓰는 편이라서요.

쓰신 글을 읽으며 장면이 그림처럼 떠오르면서 너무 좋기도 했고요.
그냥 좋았고, 이런 글을 더 많이 자주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표현하려고 한 거였어요 ㅎㅎ^-^

감은빛 2021-01-29 15:59   좋아요 0 | URL
쇼님, 전혀 아니예요.
제 답글이 그렇게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정말 말 그대로 어떤 느낌을 말씀하시는지 전혀 알수 없어서 여쭤본 거였어요.
저를 낮추고 쇼님을 올려서 적은 것은 아주 약간의 장난기였는데, 그것 때문에 오해하신 건지도 모르겠네요.

감은빛 2021-01-29 16:02   좋아요 0 | URL
달달, 애틋, 아련 이런 분위기를 말씀하신 거였군요. 제 기억에 오래 전에 제가 그런 글들을 좀 쓰지 않았었나 싶긴한데, 잘 모르겠네요.

암튼 어떤 건지 알려주셨으니, 앞으로 그런 글을 써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쇼님이 좋아하신다니 노력 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죠. ^^

syo 2021-01-29 16:0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아니라시니 다행입니다 휴우 ㅎㅎㅎㅎ
괜히 오해했네요. 쫄보라서.....

저때문에 노력까지 하실 필요야 ㅎㅎㅎ
저는 감은빛님이 쓰시는 모든 글이 다 그대로 좋습니다. 감은빛님도 좋구요.
저의 센스부족으로 해프닝이 좀 있었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희선 2021-01-2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속에서 편지를 쓰려다 못 쓰다니 아쉬웠겠습니다 꿈에서 쓰면 보내지 못하겠지만... 저는 예전에 친구하고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때 편지 받는 꿈 자주 꿨어요 그 편지를 하나도 못 읽어봤어요 꿈이니 그렇겠지요 책 읽고 자면 책 이야기 쓰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깨고 나면 참 아쉬웠습니다 실제 쓴 게 아니어서... 늘 먼저 쓰고 잤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어쩌다 한번입니다


희선

감은빛 2021-01-29 16:0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안그래도 꿈에서 깬 순간 무척 아쉬어서 글을 써야지 생각했던 건데, 바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해 다 잊어버려서 아쉬웠어요.

저도 희선님처럼 꿈에서 이뤄놓은 것들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하는 날 새벽에는 꼭 프리젠테이션 하는 꿈을 반복하는 꾸곤 해요. 항상 깨고 나면, 꿈에서 했던 걸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