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동일기

하루하루가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 뭔가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운동일기를 쓴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그 간의 성취를 평가하기 편할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해봤다. 처음엔 공책을 하나 마련해 운동의 종류와 대략적인 세트수, 반복수 등을 적었고, 전반적인 느낌도 적었다. 이렇게 해보니 일주일 단위로 분할 운동하기도 편하고 전날의 운동 강도를 객관적인 숫자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여기에 적기 위해서라도 귀찮아서 움직이기 싫어하는 몸을 움직여 억지로라도 운동을 시작하는 나를 보면서 운동일기를 쓰기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심삼일은 인류 보편적인 진리인 것. 한 이삼주 정도 기록하다가 그 기록이 귀찮아진 나는 운동을 하고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일 한꺼번에 이틀치를 쓰면 되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에는 사흘치를 쓰지 뭐 그거 5분도 안 걸릴텐데 그랬다. 그 다음날에는 나흘치를 써야지 했다가 기억이 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떤 동작을 했었는지는 다 떠올릴 수 있었지만, 세트수와 반복수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공책에 적는 운동일기는 끝났다.

이번에는 늘 갖고 다니는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찾아봤다. 역시 운동 다이어리 개념의 앱이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이 헬스클럽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헬스클럽도 가지 않고, 만약 가더라도 머신운동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류의 앱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다양한 맨몸 운동들 그리고 기존 운동을 응용해 나에게 필요한 운동도 기록할 수 있는 앱이 필요했다. 운동 다이어리로 검색되는 십여개의 앱들을 설치해봤는데 원하는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메모장에 기록하기로 했다. 방식은 공책에 썼을 때와 동일하게 날짜와 운동 종류와 세트수와 반복수 등. 그리고 나는 날짜만 조금 더 길어졌을 뿐, 공책에 적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상황을 반복했다. 그후로 태블릿에 전용 펜을 이용해 공책에 쓰듯이 펜으로 쓰는 운동일기를 만들어봤지만, 역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내가 만약 앱을 개발자였다면 딱 내가 원하는, 내가 이용하기 편한 앱을 개발해서 사용해볼 수 있을텐데. 불행히도 나는 앱 개발자가 아니기에 운동 일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2. 통증일기

관절 통증을 겪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다. 정형외과와 한의원 등을 여러군데 다녀봤지만, 왜 이런 통증을 겪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고, 당연히 해결책도 알 수 없었다. 주로 아침에 손가락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온 몸의 여러 관절을 돌아다니며 불규칙적으로 통증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나와 정형외과 의사 모두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지만, 검사를 몇 차례 받아본 결과는 류마티스성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능성들을 두고 검토해봤으나 딱 맞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작년 사고로 입원했던 병원에서 퇴행성 관절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고, 이후 다른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아본 결과 어쩌면 퇴행성 관절염일지도 모르겠다는 답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확정이 아닌 추정이지만, 그나마 그게 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매일 달라지는 통증 부위와 강도. 통증이 없는 날과 있는 날의 차이점과 공통점 등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 어떤 통증을 어느정도 강도로 느꼈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통증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날짜와 통증 유무. 통증이 있는 날엔 구체적으로 부위를 적고 그 강도를 기록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통증 부위를 깨닫고 느끼는 짜증과 고통과는 달리 통증일기를 적는 행위는 의외로 재밌었다. 이 통증들이 매일매일 불규칙적으로 바뀌고 양상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꼈다. 전날 왼손 엄지에 극심한 통증이 있었다면 다음 날 아침에 왼손에는 전혀 통증이 없고 오른손 중지에 약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고, 전날 왼발 무릎이 아팠다면, 다음날엔 왼발 무릎의 통증이 더 심해지고 여기에 더해 오른발 발목이 아프기도 했다. 이렇게 양쪽 발 모두에 통증이 생기면 걷기도 힘들었다. 한쪽 무릎과 발목에 통증이 몰리면 한쪽만 절뚝거리며 걸을 수 있는데, 양쪽 모두 통증이 생기면 발을 내딛는 행위 자체가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에. 이 통증일기를 쓰면서 재미를 느끼는 나 자신을 깨닫고 참 이상한 인간이다 생각이 들긴 했다.

통증일기는 한동안 통증이 아예 없는 날이 길게 이어지면서 쓰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통증이 없었으니 쓸 내용도 없을 수 밖에. 나중에 다시 통증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다시 쓰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안 쓰기도 했지만, 꽤 오랫동안 안 쓰다가 다시 쓰려니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3. 외국어 일기

특별히 잘 하는 외국어는 하나도 없으면서 여러 외국어를 찔끔찔끔 익히기 시작한지도 몇 해가 지났다. 어쩌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처음엔 중국어를 다시 해봐야지 했다가, 그럼 일본어도 그랬다가, 예전에 배웠던 독일어도 다시 해보면 많이 기억해낼텐데 싶었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 싶다. 운동일기와 통증일기에 실패한 후 나는 외국어 일기 쓰기에 도전해봤다. 날짜와 어떤 외국어를 얼마나 했는지를 기록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얼마나가 좀 애매했다. 그리고 어떤 행위를 기록하고 어떤 행위는 기록하지 않을건지도 애매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때까지 혼자가 되는 시간에는 거의 항상 노래나 뉴스나 라디오 따위를 틀어놓는데, 일부러 외국어로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샤워하면서 프랑스어 노래를 5곡 듣고, 중국어 노래를 3곡 아니 2곡이었던가 들었다고 쓰려면 밥을 준비하는 동안 들었던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노래나 뉴스 따위도 기록해야 하는 건지 애매했다. 게다가 얼마나라는 부분에서 시간으로 하기엔 매번 시간을 잴 수 없는 노릇이고, 내가 특정한 교재로 공부하는 것은 또 아니라서 ˝장˝ 이나 ˝챕터˝ 따위의 단위도 쓸 수 없었다. 결국 그날 어떤 외국어를 듣거나 따라 말해 보거나 써보거나 했다면, 그냥 그 이름만 기록하는 것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1월1일: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1월2일: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터키어
1월3일: 인도네시아어, 독일어
1월4일: 중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힌디어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쓰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영어를 단 한번도 기록해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앞서 글에서 쓴 적이 있지만, 여러 외국어들을 익히기 위한 기본 언어를 영어로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어를 익혀도, 독일어를 익혀도, 인도네시아어를 익혀도 나는 늘 영어로 돌아왔다. 그러니 영어를 일부러 익히지 않아도 영어가 제일 빨리 늘었다. 게다가 외국어 채팅앱을 대화를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 며칠 전부터 나는 일부러 영어도 시간을 내어 익히기 시작했다. 음, 뭔가 원칙에 어긋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번에도 귀찮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양상은 앞서 운동일기와 마찬가지다. 내일 하지 뭐 그랬다가 다음날 또 다음날 한꺼번에 몰아서 기록해야지 했던 것이 결국 포기로 이어졌다.

결론

결론은 나는 일기를 지속적으로 쓰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기를 써서 좋은 점 수백가지를 알아도 실제로 꾸준히 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 잠깐만 이거 실제로 쓰는 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늘 무언가 말하거나 쓰기 전에 머리 속으로 미리 내용을 정리해두는 편인데, 그 말은 미리 머리에서 한 번 써본 것이 된다. 오늘 운동을 하고 기분좋게 샤워를 하면서 외국어 노래를 듣고, 운동했으니 먹어줘야지 하면서 식사를 준비하며 영어 뉴스를 좀 듣고, 그러면서 머리 속으로 나는 자 오늘 케틀벨 스윙, 푸쉬업, 레그 레이즈, 풀업 등을 했는데, 오늘은 쓰기 귀찮은데 내일 써야지 라고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머리 속으로 쓴 것과 실제 기록한 것의 차이는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썼느냐 혹은 키보드를 두드렸느냐 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글씨를 쓰지는 않았지만, 머리로 이미 한 번 내용을 정리했다면 그것을 기록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가? 왜? 결과물이 없어서? 내 뇌에는 그 생각을 했던 기억이 한동안 남아있을테니, 내 머리 속에는 분명 결과물이 있을 것이다. 물론 기억이 금방 사라질테니 당분가이겠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내가 기록을 남겼던 공책도 금방 잊어버려서 못 찾을 수도 있고, 태블릿에 남긴 기록도 실수로 삭제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결론은 공책이나 어플리케이션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이니 가능하면 열심히 해보고, 만약 귀찮아서 하기 싫어진다면 머리로만이라도 생각해서 그 생각을 했다는 기억을 내 뇌에 기록으로 남겨라. 이만 인생이 귀찮은 어느 불쌍하고 불행한 인간의 넋두리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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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31 0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록하는 건 좋은 거겠지요 언젠가 읽은 소설에서 공부한 걸 그렇게 적고 나중에 보면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알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건 할 때 적는 게 좋을 듯해요 나중에 써야지 하면 미루니, 시작할 때와 끝났을 때...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뭔가 쓰는 게 낫겠지 하는데, 정말 그럴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언젠가 자신이 적은 것도 잊어버리겠지만...


희선

감은빛 2021-02-01 15:07   좋아요 1 | URL
네, 희선님.

기록은 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하기는 또 쉽지 않네요.
특히나 사소한 일일수록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독서 기록도 쓰기도 했었는데,
이젠 귀찮아서 못할 것 같아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거서 2021-01-31 09: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기 쓰기에 도움되는 앱으로 북플 추천합니다. 저는 ‘독.보.적’하면서 다시 거의 매일 책을 읽게 되었어요. 새해에 원하시는 대로 변화가 생기고 성취하기를 응원합니다.

감은빛 2021-02-01 15:10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오서거님.
북플의 [독보적] 기록(?) 때문에 저도 매일 조금이라도 읽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되지 않더라구요.
어떤 날엔 단 한 줄도 못 읽는 날들도 있더라구요.

추천과 응원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서거님께서도 새해 원하시는 일들 이루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1-31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일기를 쓰고 계시는군요. 모든 일기가 독특해요. ㅎㅎ 마지막으로 내 뇌에 기록으로 남겨라는 저의 모토와 일치합니다. ^^

감은빛 2021-02-01 15:1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댓글이 중복으로 남았네요.
오래 전에 알라딘에 이런 오류가 좀 심했던 것 같은데,
같은 오류가 또 생기나봐요. ㅎㅎ

다양한 시도를 해 보지만, 늘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탈입니다.
이외에도 독서일기와 시 일기를 별도로 쓴 적도 있었는데,
역시 오래가진 못했어요.

마지막 모토가 일치하는 분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1-02-01 22:30   좋아요 1 | URL
앗 왜 중복이지? 손가락이 떨렸나봐요. ㅎㅎ

붕붕툐툐 2021-02-02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명상 일기 쓰고 있어요. 한 놈만 팬다 정신이라 그런지 지금까진 꾸준히 쓰고 있네요(약 두 달?ㅋ)
예전에 <몸의 일기>란 책을 잼나게 읽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뭔가 적는걸 엄청 중요시 생각하진 않고 그냥 잊으면 잊히는 대로 흘려보내자 쪽이 더 강한 거 같긴 해요~ㅎㅎ

감은빛 2021-02-02 18:2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덧이름을 발음하기가 쉽지 않네요. ^^

명상일기라니! 멋져요. 게다가 꾸준히 쓰고 계신다니 더 멋지구요.

제가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네요. 잘 부탁 드립니다.

붕붕툐툐 2021-02-02 19:26   좋아요 0 | URL
ㅋㅋㅋ붕붕이나 툐툐로 불러주셔도 됩니당!!ㅎㅎ 사실 제게 배울 점은 1도 없지만, 자주 소통하며 지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