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반만에 다시 일터로 출근했다. 최근 몇몇 지인들에게 계속 이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살면서 6개월 반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도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6개월 이상의 무직 기간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일하던 시절보다 더 바쁘게 지냈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은 내게는 정말 사실로 느껴졌었다.


오래전 시민단체에 활동하던 시절에는 정말 교통비와 식비 조차도 해결이 안 될 수준의 급여(그 시절엔 활동비라고 불렀다.)를 받았기 때문에 일을 쉬는 기간이나 이직을 위한 휴식 기간에는 늘 다른 일을 통해 돈을 벌어야 했다. 학원 강사일을 주로 했고, 노가다라고 부르는 공사장 잡부일도 했다. 결혼 후 큰 아이가 태어날 때는 사전에 아내와 협의한대로 내가 육아휴직을 받아 6개월 동안 아기를 돌봤다. 당시 아내의 급여 좋건이 나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육아휴직 기간을 재밌게 알차게 잘 보냈다. 낮에 심심하면 유모차를 끌고 백화점에 놀러가서 수유실에서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면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육아휴직이었으니 다른 무엇보다 아기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한 기간이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이어온 여러 사회활동들에도 신경을 쓰곤 했다.


나중에 시민단체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이직할 때,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다른 출판사로 옮길 때 등에도 바로 옮겨가지 않고 중간중간 이직 기간이 있었지만, 그때는 늘 여러가지 활동들 때문에 바빴다. 아까 말한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은 주로 이 기간들에 해당된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쉰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은 여러 층위의 활동가들이 앞다퉈 연락해서 이런저런 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거나, 아예 너 밖에 없다며 맡겨버리곤 했다. 돈 한 푼 못 받고 이런저런 일들을 참 많이도 떠맡았었다.


이번에는 교통사고로 입원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정말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가끔 연락이 오는 지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걱정과 응원을 보낼 뿐, 그 전처럼 무슨 일이 있는데 라면서 말끝을 흐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말 처음으로 아무 원없이 편하게 놀고 먹었던 기간이었다.


오늘 오랜만에 출근하는 일은 사고 전까지 매일 해왔던 일이었음에도 참 낯설었다. 그래도 사무실에 딱 들어섰을 때, 동료들이 유난떨지 않고 그저 어제 퇴근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주어서 그게 고마웠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말 많은 분들이 내 걱정을 해주셨구나. 이 은혜를 다 어떻게 갚아야 할까 생각이 들때가 많다. 은혜의 다른 말은 빚일텐데, 평생 빚을 갚아가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낯설기만 한 사무실 내 책상 위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내가 이런 책을 샀었구나. 집에 있었다면 쉬는 동안 완독은 못했더라도 간간히 들춰봤을텐데, 사무실에 두고 온 탓에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구나. 미안한 마음에 이제라도 읽어줘야겠다.


사고가 나기 전에 당연히 다시 출근할 거니까 아무 생각없이 놓고 나왔던 물건들이 꽤 있었다. 지난 초겨울 한참을 찾았던 조끼와 USB 메모리 스틱을 보고 안도했다. 사무실에 놓고 온 줄도 모르고 어딘가에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출근하는 삶. 아침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날들이 돌아왔다. 아직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일 생각보다는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차츰 적응해나가야 하겠지. 당장 중요한 일정들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예전에 일 잘했던 나로 다시 바뀌어라.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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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01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건강은 계속 조심하시구요~

감은빛 2021-02-07 23:0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비연님.
응원과 염려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1-02-01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업무에 복귀하는 첫날만 뭔가 조심스럽고 다시 적응하는건 순식간이더라구요. ㅎㅎ 건강 조심하시면서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시고 조금만 열심히 일하세요. ^^

감은빛 2021-02-07 23:09   좋아요 1 | URL
네, 바람돌이님.
저도 너무 열심히 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이제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살고 싶기도 하고,
또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기도 해서요.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2-02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오랜 기간 몸조리 하시면서 블편한 점도 있으셨을텐데 잘 쉬었다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곧 적응하셔서 언제 쉬었나 싶게 잘 하실 거 같은 예감이 팍팍 듭니다. 복귀 축하드려요!!^^

감은빛 2021-02-07 23:1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다시 일을 하려니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네요.
말씀처럼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