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택시노조 조합장이셨고, 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하셨다. 잠시 아버지가 감옥에 계실 때는 끼니 걱정까지 해야만 했다. 가수 지오디의 유명한 노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 노래는 나에게는 실화다. 아마 초등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머니와 함께 어디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배가 고팠다. 마침 중국집이 보여서, 배가 고프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고, 나는 주머니를 뒤져서 5백원을 보여줬다. 외갓집에서 용돈으로 받았던 걸 갖고 있었다. 그걸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서 둘이 나눠먹었는데, 어머니는 한 두 번 드시고는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별로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돈과 관계없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반대한 것은 어머니였다. 당신께서 오랜세월 생활비가 없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그토록 심하게 반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른 인생을 꿈꾸기에는 너무 세상을 많이 알아버렸다. 돈 때문에 모든 사회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돈과 관계없는 삶. 욕심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지역 환경단체에 일할 때, 한 달 밥값도 안되는 활동비를 받고도 아무 탈 없이 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하루종일 일 생각만 하고 살았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대부분 술자리에 끼어 해결했다. 담배값과 교통비외에는 돈 쓸일이 없었다. 이 말도 안되는 돈으로도 살아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도 아이 둘 키우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입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늘 돈 때문에 쪼들릴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더 아끼고 살아야지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 욕심은 왜 이렇게 버리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몇 해전 지인이 전하기를, 자신이 존경하는 교수님이 '자발적 가난'의 실천으로 물건 등을 기증하거나 나눠줬는데, 그때 그 교수님의 서가에 있던 수만권의 책들도 함께 처분했다고 들었다. 얘기를 전해준 지인은 당시에 아주 희귀하고 좋은 책들을 몇 권 얻었다고 좋아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도 꽤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평소에 다른 일에서는 늘 욕심을 버려야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이 무슨 모순인가. 

요즘도 아이들이 계속 아파서, 병원비와 약값 지출이 어마어마한데, 다른 지출은 아끼고 있는데, 책은 자꾸 사들이고 있다. 알면서도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이 책 욕심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관심이 가는 책인데, 책 값이 조금 부담스럽긴하다. 평소라면 그냥 질렀을 터인데, 요즘은 조금 망설이고 있다. 물론 이러다가도 언젠가 그냥 확 질러버릴 확률이 높다. 

 

 

 

 

 

 

 역시 관심을 갖고 있는 책. 책값 부담보다는, 어차피 지금 사도 연말에는 못 읽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아직 구매를 미뤄둔 책. 역시 조만간 책장 한 구석에 쌓여있을 확률이 높다. 

 

 

 

  

 

 

 인천 지역신문 문화부 기자이자, 소설가인 조혁신의 두번째 소설집.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동안은 구매를 미뤄두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좀 읽고나서 다시 사야겠지. 

 

 

 

 

 

마지막으로 지금 읽고 있는 책.  

 

 딴지일보에 연재중인 글. 무신론자가 성경을 해석하고,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다. 처음에 딱 펼치자마자 딴지일보 특유의 말투 때문에 좀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인데, 지금은 오히려 그 말투 때문에 술술 잘 읽힌다. 그리고 재밌다. 같은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무척 공감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읽기는 좀 부담스러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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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옛날에는요, 편한 길을 택한 제가 나름 대견스럽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요, 순수하게 무엇인가를 위해 선택을 하신 분들,
남들과 좀 달라도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분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분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겨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최선의 문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은빛님, 멋지세요.

감은빛 2010-12-16 14:19   좋아요 0 | URL
아, 이러시면,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데요.
누구나 다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철저하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쫓아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공익을 위하거나, 희생하거나, 봉사한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좋아서 한 일이고, 또 그거 외에는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었거든요.
저는 누구나가 다 자신의 자리에서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녀고양이님 말씀 무척 고맙습니다!

2010-12-16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6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8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9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0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0-12-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마음에 딱 들어오는 글에는 오히려 댓글을 아끼게 돼요.
저 여기말고 다른 데서도 감은빛님 글을 봤을 텐데 그때도 지나치고 방금도 또 그냥 나갈 뻔했어요. 멋진 분 같아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감은빛 2010-12-27 00:49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저도 아이리시스님 글 읽으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했었는걸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2010-12-25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2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에 날치기로 통과된 내년 예산에 대한 기사들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저것들이 무식하고, 지들 이익만 챙기는 파렴치한 것들이라도,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1. 영유아 예방접종비 400억 전액 삭감 

2.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 전액 삭감(작년 542억, 올해 203억) 

3. ‘보호자없는병원’ 시범사업 24억원 전액 삭감 

4. 전국 5만9천 경로당난방비지원(동절기 월 30만원) 전액 삭감(411억) 

5. 한시생계구호비(4181억원) 전액 삭감 

6. 저소득층 에너지지원 (903억원) 전액 삭감 

7. 장애인 의료비 지원(107억원) 등은 전액 삭감 

반드시 지출해야 할 복지예산을 다 없애놓고, 무슨 '친서민' 정책을 펴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궁금한건 이 돈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거다. 뭐 뻔한거 물어서 뭐하겠나. 4대강 예산이 무려 9조 5,895억이나 된다. 그 외에 형님 예산(이건 뭐냐!)이 1,369억이고, 영부인 김윤옥의 한식세계화예산 310억이나 된다고 한다. 

당장 다음 달부터 보건소에서 우리 아가 예방접종도 못 맞추게 되는건가? 이제 예방접종은 무조건 병원가서 비싼 돈내고 맞추라는 건가?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 밥 굶기고, 추운 겨울 어르신들 난방비 뺏아서, 강바닥 파내고 그 이익으로 지들 배만 채우면 끝인가? 아 진짜 욕나온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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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0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2-1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요즘 뉴스 보기 너무 싫습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습니다.

감은빛 2010-12-10 16:53   좋아요 0 | URL
저는 명바기가 대통령 된 후로 뉴스 안보고 삽니다.
신문은 안 읽을 수 없으니 받아보긴 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찢어발기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습니다!

잘잘라 2010-12-10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짜믄 좋노.. 이거야 원.. 무어라 할 말이 없게 만드네요. 증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근데 진짜 이 일을 우짜믄 좋은긴가요? 쿨럭~ 흩어져서 백날 욕해봐야 욕먹는 애들 수명만 늘려주는 일일테고.. 아휴.. 약올라.

감은빛 2010-12-13 16:38   좋아요 0 | URL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답합니다!

귀를기울이면 2010-12-10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기념으로 주워들은 한마디 옮겨봅니다.

"형님예산으로 건설되는 도로의 명칭 : 결식아동급식지원비路(만든 길)"

감은빛 2010-12-13 16:41   좋아요 0 | URL
재밌네요!
트위터에서 이번 사태를 풍자하는 토막글들이 많던데,
다들 어쩜 그렇게 감각이 좋은지!
멋진 글이 많던데요.
 
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 중에 나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김도사’라고 부르는 녀석이 있다.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어딘가로 떠나곤 했던 날들 때문일 것이다. 내 여행은 늘 갑작스러웠다. 따분한 일상에 지치면 어김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나는 계획 없이 그냥 즉흥적으로 떠나는 것을 좋아했다. 술을 한 잔 마시다가 문득 기분이 동하면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서 새벽부터 훌쩍 나서서, 한 열흘쯤 여기저기 헤매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그 방랑의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영화 <비포 썬라이즈>를 보면,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우연히 여행 중에 만나서 하루 종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아도 전혀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들의 만남과 대화가 참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과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여행을 통해 사랑에 빠진 특별한 인연들. 어느 여행에선 매력적인 여성을 만났고, 또 어느 여행에서는 마애불을 만나기도 했다. 언젠가는 그림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느 날엔가는 책을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 밤 훌쩍 떠나고 싶은 맘을 억제할 수 없었다. 꼭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지도책을 펼쳐들었다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기도 하며, 어디를 갈지 고민했는데, 마침 온라인에 접속 중이던 문학동호회에서 지인이 순천으로 오라는 제의를 해왔다. 평소에 그의 글을 좋아했던 지라, 날이 밝는 대로 버스에 올랐다. 순천대 문창과를 다니는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그의 소개로 곽재구 시인과 잠시 말씀을 나누기도 했다. 순천대를 여기저기 돌아보며 일상의 이야기, 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저녁에는 그의 집이 있는 여수로 옮겨갔다. 돌산공원에서 돌산대교를 내려다보며 뜨거운 문학에 대한 열정들을 토해냈다. 글만 읽었을 때에도 참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만나서 한나절을 함께 보내고 보니,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고, 삶에 대한 확고한 자기 생각도 맘에 들었다. 밤이 되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그 역시도 아쉬움이 남은 듯 보였지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지는 못했다. 왠지 다음을 기약하는 순간, 지금 느꼈던 이 설레임이 다 사라져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헤어지고 후회로 밤을 보낸 다음날 여수 여기저기를 떠돌며 몇 번이나 다시 연락을 해볼까 망설였지만, 결국 발길을 돌려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끔 여수나 순천을 떠올릴 때면, 돌산대교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리곤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처럼, 그렇게 갑작스럽고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몽골의 사막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한국과 일본의 환경단체에서 몽골로 ‘사막화 방지 운동’의 일환으로 생태투어를 갔다. 단순한 참가자가 아닌, 진행요원쯤 되는 역할로 갔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생을 좀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며칠 간의 일정을 마치고, 하루 종일 초원을 가로질러 사막을 향해 달렸다. 저녁이 되어 하라호름의 게르(몽골 천막)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일본 학생들과 함께 사막을 걸으러 출발했다. 사막은 여름이라도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듯도 했는데, 나는 미처 긴 옷을 챙기지 못했다. 그냥 반바지에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따라 나섰다. 한참을 걸어서 마침내 풀 한포기 없는 사막에 들어서서 밤하늘의 별들과 저 멀리 지평선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간간히 일본 친구들과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추웠다.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포를 두르거나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추위를 견뎠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며칠 동안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던 일본 여학생이었다. 너무 추워 보인다고, 괜찮다면 모포를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나는 입이 얼어서 말도 잘 안나오는 상태에서 겨우 좋다고 대답했다. 한참동안 그에게 안겨있었다. 그의 체온과 모포 덕분에 얼었던 몸이 비로소 풀렸다. 나는 덕분에 살았다고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수줍은 듯 웃었다. 우리는 일본과 한국의 밤하늘과 별자리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또 환경오염과 사막화 현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밟아본 사막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여성과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런 상황들이 묘한 설레임이 되어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울란바토르나 바양고비에서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인연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동안 사막을 서성이다가 다함께 돌아가는 길. 우리는 여전히 모포를 나눠쓰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서로의 보폭을 신경 쓰며, 발을 맞춰 함께 걷고 있었다. 이 밤을 보내고 나면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가서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각자의 나라라 돌아가게 된다. 뭔가 말을 해야 한다면 지금 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게르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사박사박 메마른 땅을 밟는 발소리만이 우리를 따라왔다. 잘 자라는 인사와 웃음을 마지막으로 각자의 게르로 돌아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두 명의 특별한 인연을 떠올렸다. 보는 순간 푹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사진들을 보면서,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시베리아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막에서는 생텍쥐페리를 읽었다는 저자의 글을 하나하나 꼼꼼히 곱씹으며, 내 지나온 여행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게 되었다. 작가에게 한동안 잊고 살았던 방랑의 기억을 되돌아보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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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09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자의 독서를 찜해야 하는데,저는 님의 몽골사막이 황홀한걸요~
과연,전 시베리아에선 도스토예프시키를,사막에선 생택쥐베리를 떠올리기나 할까요?
님의 몽골사막에서의 담요는 오래 기억할 것 같네요~^^

감은빛 2010-12-09 11:16   좋아요 0 | URL
이 책 먼저 사진에 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글도 좋더라구요.
책을 읽는 동안 지나온 여행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12-0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합니다.
여자라서 훌훌 터는 여행을 못 한다고 하면, 너무 치졸한 변명이겠지요.
여자라는 점 보다는, 항상 현실적인 이유가 먼저였던 듯 해여.
아마 장녀라는 책임감이 먼저였고, 부모님이나 남편의 눈치를 보는게 먼저였겠죠.

제가 제일 먼저 가보고픈 곳은 천연의 자연 뉴질랜드 계곡,
그다음에는 일곱 빛깔을 꿈꾼다는 터키의 바다,
그리고 숨막히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인도의 사막 패키지,
신비의 문명을 가지고 있는 남미 잉카 유적과 티티카카 호수.

하아. 정말 먼 꿈을 꾸는 아침입니다.

감은빛 2010-12-09 11:2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여성이 겪는 여러가지 차별 중에 혼자, 맘껏 여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죠.
여러 이유로 좋아하는 여행을 많이 못해보셨다니 안타깝습니다.
저는 여행만큼은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여행을 같이하면 피곤하더라구요.
이제는 혼자 여행할 일이 없어졌는데, 가끔 그리울 것 같네요.

아, 마녀고양이님 말을 들으니,
저도 다 가보고 싶어집니다. ^^

마녀고양이 2010-12-09 13:32   좋아요 0 | URL
그래서여,,, 저는
영화관을 혼자 갑니다.... 크크크.

혼자 자유롭게 마음대로 느끼는 그때,
감은빛님은 알고 계시죠?

감은빛 2010-12-09 23:45   좋아요 0 | URL
잘 알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양보하기 어려운 게,
저에게는 바로 여행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영화이겠고, 또 어느 순간에는 독서일 수도 있지요.

저도 한때는 혼자 영화관에 가곤 했는데,
영화관에 안 가본지 좀 되었어요.
아직 아기도 어리고, 여러모로 여유도 없고 그러네요.

stella.K 2010-12-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러고 보면 인연은 따로 있어요. 그렇게 모포를 같이 뒤집어 써도 아무 일도
없었던 걸 보믄.ㅋ
영화 비포선라이스와 연결을 시키다니!
그러니 누가 감은빛님이 반항남이라고 생각하겠어요?흐흐.
이 책을 놓친 게 아쉬워요. 저도 읽을 수 있었는뎅...잉잉~

감은빛 2010-12-09 23:48   좋아요 0 | URL
언어의 장벽이 작용 할 수 밖에 없었죠.
저는 일본어를 못하고, 그는 한국어를 못하고,
서로 짧은 영어로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공감을 얻었던 것 자체가 참 신기했구요.

이 책 재밌었습니다.
다음에 한번 읽어보세요! ^^

2010-12-09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2-1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꼭 가보고 싶은 곳..
마음 속에 숨겨 놓았던 그 장면들을 꺼내게 하는 감은빛님의 페이퍼네요.

여행지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사람. 언젠가 저도 그런 사람을 만난적이 있는데 그 시간을 그 사람은 기억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오랜만에 다시 천천히 글을 읽어 보고 갑니다. 왠지 잠자리에 들면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갈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10-12-14 17:20   좋아요 0 | URL
네, 여행하다보면 소중한 인연들, 특별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 분도 아마 바람결님과 지낸 시간을 기억하실걸요!
언제 바람결님의 여행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나를 보고 갖는 편견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얌전하다거나, 착하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장담하지만, 나는 절대 얌전하지 않고(예의상 혹은 아직 충분히 본색을 드러낼 사이가 아니라서 얌전을 가장하는 경우는 많지만) 절대 착하지도 않다. 중, 고등학교를 깡패학교를 다닌 덕에, 패싸움도 자주 했고, 파출소나 경찰서도 들락거렸으며, 자랑은 아니지만 폭력전과로 청소년교정프로그램을 이수했던 기억도 있다.

두 번째는 어리게 보는 것인데, 이십대 때는 이게 좀 기분 나빴는데, 요즘은 무척 기분 좋다! 물론 아이랑 함께 있을 때, 아빠 맞나. 삼촌 아니냐. 이러면 경우에 따라서는 좀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어리게 보여서 제일 나쁜 경우는 상대방이 나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이다. 특히 40~50대 아저씨들이 그러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30대 여성분들이 그러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여성이 첫 대면에서 나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말을 턱 놓은 적도 있었다. 진지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면, 처음부터 일부러 실제 나이를 밝히지 않고, 마음껏 추측하게 내버려 두거나, 27이라고 소개할 때도 있다. 오래전에 같은 학원에서 일했던 선생님 한 분은 늘 자신의 나이는 29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절대로 실제 나이를 밝히지 않았는데, 나랑 무척 친하게 지냈지만, 나는 끝내 그 분의 실제 나이를 알지 못했다. 아마 40대 중반일거라고 추측만 했을 뿐이다.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도 늘 29이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작년에 어느 자리에서 27이 아니냐는 말을 들은 후로는, 두 살 낮춰서 27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세 번째는 첫 번째랑 연결되는 이미지인데,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아내도 나를 과묵한 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건 평상시에 일상적인 대화에서 경상도 남자다운 경제적인(?) 언어구사능력 때문인 것 같다. 그래 평상시에는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말이 없는 편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 말을 할 때는 말이 엄청 많다. 어릴 때부터 이웃에 살았고, 거의 의형제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고향 동생 녀석이 있는데, 이 녀석과 만나면 둘의 수다가 장난이 아니다. 밤새 떠들어도 모자랄 정도로 쉴 새 없이 떠든다.

네 번째는 편안한 인상 때문에 남의 말을 잘 들어줄 것 같다는 얘길 듣곤 한다. 이건 두 가지인데, 단순히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부탁을 잘 들어줄 것 같다는 의미도 있다. 글쎄 예전에는 사람을 좋아해서, 남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학생운동, 사회운동, 직장생활 등을 거치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좀 바뀌었다. 쉽게 정을 주지 않고, 쉽게 믿지 않고, 쉽게 벽을 허물어주지 않는다. 다만 표면적으로는 우호적으로 대해주고, 정을 주는 것처럼, 믿는 것처럼, 적당히 속을 보여주는 것처럼 대할 정도의 요령은 생겼다.

생각해보면 더 있을 것 같은데, 큰 틀에 서보면 첫 번째 이미지에 속하는 이야기들이 될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만두고, 이렇게 편견을 갖고 나를 대했던 사람들이 곧 나를 알게 되면서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꾸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런 편견이나 오해를 갖게 만든 내가 잘못인걸까? 아니면 혼자 그렇게 착각한 사람이 잘못인걸까? 잘 모르겠다.

꾸밈없이 상대를 대하고, 관심사나 성향이 맞으면 곧바로 마음을 열어주곤 했던 시절이 그립다. 하나하나 계산하고 따져가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 참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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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감은빛님..

마지막 남기신 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계산없이(왜 자꾸 계산이 "게" 로 씌여지는지..ㅎ.. 아마 계산 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어하는 마음에 그런 것 같네요^^) 누군가를 만나고, 또 상대방도 계산없는 시선으로 보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오늘 처음 인사드리고, 또 들렸던 흔적도 남기고 갑니다. ^^

감은빛 2010-11-26 01: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아! 마녀고양이님께서 멋진 작품을 쓰게 만든 바로 그 바람결님 맞으시죠?
제가 알라딘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먼저 찾아뵙질 못했네요.

인사남씀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계산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당연해야 할텐데,
요즘은 그렇게 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람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두서없이 끄적인 잡글입니다.

2010-11-26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30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11-26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은빛님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사람이 첫인상 그대로여서 좋기도 하지만
그런 의외성 때문에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요.
아무튼, 누군가는 감은빛을 두고 알흠답다고 말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정오입니다.ㅋㅋ
오늘 날씨 꽤 쌀쌀하죠?^^

감은빛 2010-11-30 15:57   좋아요 0 | URL
그 누군가님께서 너무 잘 봐주셔서 늘 황송할 뿐이랍니다.
글에서 말했듯이 그렇게 좋은 이미지로만 볼만한 놈이 아니라서요.
댓글이 좀 늦었습니다.
주말부터 엄청 춥더라구요!
건강 잘 챙기세요! ^^

2010-11-26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30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11-2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동안이시라 좋으시겠어요.ㅎㅎ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옳지 않지만 여하튼 좋은 인상을 주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좋으시겠어요.^^

감은빛 2010-11-30 15:5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어리게보는 편인데,
잘 아는 사람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던데요. ^^

양철나무꾼 2010-11-3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동안이시라 좋으시겠어요.ㅎㅎ.2

꾸밈없이 상대를 대하고, 관심사나 성향이 맞지 않아도 마음을 맞춰가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산하고 따져가며 사람을 만나는거...게산하고 따짐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괴롭지만,
계산하고 따져야 하는 사람의 머릿 속도 쥐나지 않을까요?

그냥 인생이라는 강의 물고기 한마리들처럼,이렇게 저렇게 흐르다가 만나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또 다른 누군가와 만나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은빛 2010-12-01 02:24   좋아요 0 | URL
오호! 제 글에도 릴레이 댓글이 달리다니! 영광인데요! ^^

와! 물고기이야기 참 멋지네요.
어쩜 이렇게 멋대가리 없는 글에,
이렇게 멋진 댓글들을 남겨주시나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12-0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동안이시라 좋으시겠어요. ㅎㅎ3

그런데
'쉽게 정을 주지 않고, 쉽게 믿지 않고, 쉽게 벽을 허물어주지 않는다. 다만 표면적으로는 우호적으로 대해주고, 정을 주는 것처럼, 믿는 것처럼, 적당히 속을 보여주는 것처럼 대할 정도의 요령' 이건 좀 슬픈데요? ^^

저는여, 요즘 꾸밈없이 상대를 대하고 관심사나 성향이 맞으면 곧바로 마음을 열어주지만, 설령 제가 기대한 모습이 아니더라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저를 바랍니다. 그런데.. 절대 불가능한 모습 같아요, 요즘 하는 짓을 봐서는. 큭큭.


감은빛 2010-12-08 11:06   좋아요 0 | URL
답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

사람 대하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 이후로 아예 마음을 닫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또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저절로 마음이 열리기도 하더라구요.

잘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대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실제로 어떨지는 잘 모르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2-0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파출소에서 해결이 안되어 본서까지 갔다면 좀 골치 아팠겠는데요.

감은빛 2010-12-08 11:08   좋아요 0 | URL
네, 본서에서 밤새 취조 받고, 지문찍고, 법원까지 갔지요.
법원에서 재판 받기 직전에 검사 직권으로 강제합의를 했습니다.
거기서 멈췄기에 형을 살지는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 합의금을 좀 많이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귀를기울이면 2010-12-10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반대시군요. 저는 동년배쯤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처음엔 정중한 대우를 받는데 말입니다. 물론 실제 나이를 이야기 하면 조금씩들 의외라고 하지요.-.-;;

그리워하시는 그시절.. 다들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네요. 누구나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어린시절처럼 관계맺기는 쉽지 않겠죠. 연말인데, 오히려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10-12-13 16:43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오히려 그런 타입이 부럽던걸요.
그리고 나중에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젊어보인다는(어려보인다는 아니고!)말을 듣던데요.^^

오히려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요.
일상에 묻혀 잊고 사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어요.
찾아보고 싶어도 잘 찾아지지 않는 사람들.

잘잘라 2010-12-13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은빛님 남자?
감은빛이라는 말 뜻을 알았으면 이런 착각 안했을텐데, 감은빛이라는 닉네임을 보고 그냥 이쁜 말이라고 생각하고, 반짝이는 강물결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여자라고 생각했구요. 음.. 아쉬운데요? 그냥 계속 착각하구 지내다가, 나중에 혹시 만날 일 생겼을 때(출판기념회라던가.. 뭐 그럴때요), 알았더라면..?!^^

감은빛 2010-12-14 17:16   좋아요 0 | URL
아! 메리포핀스님도 저를 여성으로 착각하셨군요! ^^
알라딘에서 많은 분들이 처음에 그런 착각을 하시던데요.
아니, 알라딘 뿐만 아니라, 온라인공간에서 종종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감은빛의 뜻을 알아보셨나봐요?
강물결을 떠올렸다니, 그거 참 예쁘고 반짝이는 느낌이네요.
여성이라고 착각할만 하네요. ^^
 
훨훨 간다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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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생이 아직 어릴때 아버지는 우리를 재우기 위해 종종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목소리를 좌악 깔고 '옛날 하고도 아주 아주 머~언 옛날에'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고 '또 아주 아주 아주 먼 옛날에' 그리고 '또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먼 옛날에'가 반복되었다. 내 기억속에 아버지가 해주신 옛날 이야기가 온전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아주 먼 옛날에'가 무한 반복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와 동생은 그래도 무척 재밌어하고 많이 웃었다. 무한 반복 되는 '먼 옛날에'를 들으며 웃다 잠이 들곤 했다.

이제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옛날 아버지처럼 아이에게아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입장이 되고 보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이야기 꺼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 흉내를 내었다. '옛날 하고도 아주 아주 머~언 옛날에'로 시작해서 '아주 먼 옛날에'가 무한 반복되었다. 우리 아이도 처음에는 무척 재밌어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똑같은 전개가 반복되면 일단 나부터나부터 지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무렵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단 내가 재밌었다. 아이에게 읽어주니 아이도 무척 좋아했다. 아이도 나도 옛스런 멋을 잘 살리고 해학적인 느낌이 강한 이 그림이 무척 좋았다. 이 책은 이야기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억양과 운율을 잘 살려서 읽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이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을텐데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하고 흥미를 가졌다.

계속 읽어주었더니 나중에는 내용을 다 외웠다. 혼자 그림을 보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읽어준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 말하면서 읽었지만, 혼자 읽기도 여러번 하다보니 내용이 바뀌었다. 아이는 그림을 보면서 원래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이제는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원래 이야기를 잘 못 기억해서 그렇게 읽은 게 아니다. 아이는 매번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재밌었다. 아이의 상상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을 미처 몰랐다. 옛날 이야기 하나 제대로 못해준 못난 아빠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그 깨달음 이후로 나의 옛날 이야기도 진화했다. 나도 매번 상황을 조금씩 바꿔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녹슬었던 내 상상력에 조금씩 녹이 벗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와 내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며 어느 인물을 등장 시키면, 거기에 아이가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고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면 다시 아이가 다른 상황으로 몰고 가버린다.

어른의 스승은 아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새삼 그 말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를 깨닫는다. 나는 매일 아이를 보면서보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실들을 문득 깨우치게 된다. 소중한 깨달음을 일깨워준 이 책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면 이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다.


아, 그리고 김용철 작가님 그림이 참 멋지다! 이번에 <너희들의 유토피아>를 읽다가 김용철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이 그림책을 떠올렸다. 마침 예전에 써놓은 글을 알라딘에 등록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옮겨본다. 약 2년전에 적었던 글. 내년이나 내후년쯤 둘째아가가 자라면 또 이 책을 열심히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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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성장도 계속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그럴 때면 아이에게 감사하고, 또 가족 모두 무탈해서 감사하고...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아이는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를꺼야!
^^

감은빛 2010-11-25 19:38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 덕분에 저도 늘 새롭게 뭔가를 배웁니다.
요즘 아빠들은 다들 책 많이 읽어주는 것 같던데요.
저는 오히려 많이 안 읽어준 편입니다.
책은 주로 아내가 많이 읽어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