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처럼 생각하라 -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아르네 네스.존 시드 외 지음, 이한중 옮김, 데일런 퓨 삽화 / 소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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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9일 새벽 5시 30분 평화활동가들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J화약 정문 앞에 차량과 함께 인간 띠를 이어서 해군과 삼성물산이 구럼비 발파를 위해 사용하는 화약의 이동을 막았다. 이들의 인간 띠는 비폭력 평화행동으로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손과 손을 등산용 끈(자일)로 묶었으며, 팔과 팔 사이에 PVC 관을 끼웠다. 밖에서는 물리력으로 인간 띠를 함부로 해체하기 어렵다. 함부로 PVC 관을 깨려고 들었다가는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귀포 경찰은 9시 30분부터 강제연행에 들어갔다. 인간 띠를 물리력으로 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서귀포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은 망치질로 PVC 관을 깨기 시작했다. 그래도 양심이 있었던지 망치질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전경들을 불러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으며, 기자들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완장과 기자증을 착용한 기자들의 멱살을 잡고, 현장에서 쫓아낸 것이다. 또한 인권감시를 위해 현장에 있던 민변 변호사의 접근 역시 막았다. 경찰의 망치질에 여성 활동가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을 질렀다.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손에 상처를 입었다. PVC 관을 깨뜨린 경찰은 가위로 손을 묶은 끈(자일)을 잘랐다. 경찰이 연행을 위해 사용한 도구들, 망치와 가위가 얼마나 위험한 흉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결국 경찰은 활동가들을 모두 연행하고, 차량을 모두 견인했으며, 화약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도 구럼비 발파는 강행되었다.

 

그 자리에 녹색당 당원들도 여럿 있었다. 특히 녹색정치에 대한 열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함께 대화를 나누곤 했던 한 여성 당원이 있었다. 그이의 연행 소식에 무척 마음이 아팠다. 혹시 망치질에 다친 것은 아닌지. 망치와 가위를 휘두른 경찰에 대한 분노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제발 다치지 않았기를 바라는 염려 등 복잡한 마음으로 강정마을 소식을 찾아보았다. 언론 사진을 통해 연행되기 전, 그이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았다. 그 눈빛 덕분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 그런 각오였다면 잘 버티고 있겠구나. 부디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았기를 바랐다.

 

1970년 8월 26일 노르웨이에서는 댐 건설과 폭포 파괴에 반대하기 위해 마르달스폭포 정면 바위에 무려 300여명을 몸을 묶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는 심층생태학의 창시자라는 아르네 네스(Arne naess)라는 사람도 직접 참여했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사람이지만, 여러모로 무척 흥미로운 위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였으며, 27세에 오슬로 대학에서 최연소 철학교수가 되었고 스피노자 연구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심각한 생태적 위기를 깨달은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직접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후에 노르웨이 고산지대의 작은 오두막에서 평생을 보냈다.

 

최근 데이비드 로텐버그가 아르네 네스와의 대화를 엮은 『생각하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가요?』를 살펴보다가 어려워서 손을 놓고 있었는데, 또 다른 아르네 네스의 책을 만났다. 『산처럼 생각하라』는 아르네 네스, 존 시드, 조애나 메이시, 팻 플래밍 4명의 글과 데일런 퓨의 독특한 삽화를 엮은 책이다. 책을 딱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제목이나 부제인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보다 ‘산처럼 생각하고 인디언처럼 노래하라’는 문구였다. 조금 길더라도 이 문장을 제목으로 정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단순히 ‘산처럼 생각하라’는 말은 조금 어려운 느낌으로 남지만, 뒤에 ‘인디언처럼 노래하라’는 다소 서정적인 표현이 붙어줌으로써 훨씬 더 편안한 느낌으로 자리 잡으며, ‘인디언’이란 단어 덕분에 무엇을 말하려하는지도 더 쉽게 와 닿는다.

 

이 책은 말한다. 이 지구상의 만물은 모두 다 나름의 역사를 갖고 살아있으며,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 하나 마음대로 파괴하면 안 된다. 이 책의 3장에서는 만물협의회라는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5명이 야생의 땅(아마도 숲이나 들판 같은 자연 상태라는 의미겠지)에서 인간이 생명의 그물에 속해있다는(번역에는 ‘묻혀있다’고 되어 있었으나 좀 더 자연스러운 단어로 바꿈) 사실을 깊이 의식하기 위한 연습들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이들은 산이 되어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느껴보기도 하고, 들풀이 되었다가, 초록비둘기가 되었다가, 얼룩소가 되었다가 기러기가 되었다가 민달팽이가 되었다가, 이어서 캥거루, 이끼, 멧돼지, 병코돌고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차례로 인간에게 충고와 경고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열대우림은 자신이 1억3천만 살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신문지와 판자와 가구 때문에 나무들을 쓰러뜨리고, 도로를 뚫는 인간을 꾸짖는다. 그리고 주머니쥐와 병코돌고래와 이끼와 콘도르 등의 고통과 분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인간이 나서서 잘못을 인정한 후로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민달팽이가 인간에게 느리게 살기를 권하고, 물은 끈기와 유연한 태도를 권하고, 콘도르는 예민한 시력을 강조하고, 이끼는 아주 긴 시간에 걸친 인내심을 선사하겠다고 하고, 열대우림은 균형과 조화를 창조하는 힘을 주겠다고, 낙엽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겠다고 하는 등 인간을 위한 권유와 선물 공세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만물이 인간에게 주는 축복을 받으며 만물협의회는 막을 내린다.

 

인간은 이 지구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지배자가 아니다. 인간은 강과 산과 바다와 새와 동물과 곤충과 풀과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일원이다. 인간이 오만함에서 벗어나 만물의 생명과 가치를 깨닫고 느끼는 순간, 발파로 괴로워하는 구럼비 바위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고, 4대강 개발로 파헤쳐진 강가 모래알의 외침을 듣게 되며, 골프장 공사 덕분에 사라진 야생화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고, 송전탑 공사로 베어진 나무의 아픈 상처를 쓰다듬어 줄 수 있게 된다. 제발 인간들아, 산처럼 생각하고 인디언처럼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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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3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할 좋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 중 "인간은 무엇 하나 마음대로 파괴하면 안 된다"
라는 말씀은 정말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 마음속에도 깊이 새겨둘 것입니다.

인권을 그처럼 외쳐대는 사람들도
물권을 위해 애쓰려하지 않습니다.
인권과 물권은 언제나 공존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절대로 지구를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됩니다~!!!

감은빛 2012-04-08 02:49   좋아요 0 | URL
원래 이런 건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그리고 마을에서 어른들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이 자본주의의 물질만능 시대에는
어른들의 행동에서 배울 점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문제인 것이죠.

나와 내 새끼들 입에 풀칠하기 위해,
당장 제주도로 달려가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 2013 생활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F세대 자성론
함영훈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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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세대의 패자부활전

 

대학을 다닐 때였다. 한창 ‘오렌지 족’이나 ‘X세대’, ‘신세대’라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배꼽티’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걸 입은 여학생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교수님이 재밌는 과제를 냈다. 요즘 젊은 세대를 흔히 X세대라고 표현하는데, X세대의 정의를 내려 보라. 그리고 자신이 X세대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답하고 그 이유를 증명하라는 과제였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무슨 세대라고 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세대를 분류하는 기준은 주로 나이였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주로 언급하는 그 세대의 주요 특징이 있고, 그 특징에 얼마만큼 해당하느냐에 따라 그 세대로 분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당시 나는 과제를 하기 위해 X세대의 주요 특징을 기술하면서, 나는 그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X세대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주요 특징으로 기술했던 것들을 몇 가지 떠올려본다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었다. 서태지, 배꼽티, 락카페, 찢어진 청바지, 삐삐(pager) 등등.

 

지방대학이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몰라도, 당시 주위에는 그렇게 젊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문화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느 동기는 영어가 크게 적힌 티셔츠를 입고 강의실에 들어왔다가 혼이 나서 쫓겨났고, 어느 여자선배는 배꼽티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다가 주변의 시선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학과방에 갇혀있었다. 락카페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 거의 없었고, 찢어진 청바지는 아예 보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는 80년대 말 학번들과 어울려 소주방에서 밤새 정치얘기와 NL이니 PD니 하는 정파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낮에는 또 학교 뒷산에 올라 막걸리를 마시며 또다시 정치와 학생운동에 대한 논쟁을 이어갔다. 이렇게 밤낮없이 술만 마시는 우리에게 어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너희가 이렇게 술만 마시고 공부를 멀리하는 것은 너희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사회가 너희에게 아무런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조금 충격을 받았다. 맨날 술만 마신다고 꾸중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하시니 말이다. 그때부터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현상과 개인의 역할 및 책임 등에 대해 질문을 품고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이 책의 부제는 ‘2013 생활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F세대 자성론’이다. F세대라는 말은 현재 40세 전후의 연령층을 지칭하는 말로 Forgotten 세대라고 한다. 50세를 전후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비교로서 ‘잊혀진 세대’ 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IMF와 개인주의 등으로 젊은 시절에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잊혀진 세대. 하지만 그들이 지금 인생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40대를 맞아, 인구대비로도 베이비붐세대를 추월하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다시 링 위에 올랐다. 이른바 패자부활전이라고 부를만하다. 책을 읽다보니 저절로 X세대에 대한 과제와 술만 마시던 우리에게 던진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F세대 안에 포함된 X세대를 바라본 당시의 느낌이 궁금해졌기 때문이고, 총선과 대선이 있는 정권말기의 사회현상과 맞물려서 지금 이 사회의 중심에 있는 40대 전후의 사람들의 특징을 갖고 사회적 맥락에서 세대론 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그때 교수님 말씀과 닮았기 때문이다.

 

서태지에 열광했던 X세대, IMF로 인한 청년실업의 원조, 8비트 컴퓨터에서 PC통신, 인터넷 카페와 미니홈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거치면서 네트워크 파워를 익혀온 세대, 나이 마흔에도 게임이나 SNS 등에 빠져있는 철들지 않는 중년. 이 책을 통해 살펴본 F세대의 주요 특징이다. 이들이 살아온 궤적과 현재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통계자료와 분석, 개인의 증언 등이 흥미롭다. 특히 <헤럴드 경제>와 케이엠조사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세대별 의식 여론조사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쓴 여러 필자들의 의도처럼 의미 있는 시기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잊혀진 세대가 많은 역할을 함으로써 진정한 생활민주주의를 열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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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22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혀진 세대에게
생활 민주주의가 피어오르는 시대가 오기를...

사회가 향하고 있는 곳이 어느 곳이냐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고 자체가 사회이고 사회가 곧 사고이니
좋은 나라, 좋은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당대의 사회가 노력해야 할
방향이고 과제인 것을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책,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2-03-28 18:08   좋아요 0 | URL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된다면 참 좋겠지요?
저 역시 그런 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좋은 글이라고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2-03-2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 이런 세상을 물려주게 돼서 정말 미안하지요.ㅜㅜ
하지만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일단 가까운 날에 있을 선거부터 확실하게!!^^

순오기 2012-03-22 15:43   좋아요 0 | URL
아이들 키울때는 정말 극장가기 어려워요.
저도 10년 세월을 극장과 단절하고 살아서, 이제 그 세월을 보상받는 거랍니다.^^
감은빛님도 아이들이 더 자라면 같이 영화관 나들이도 할 수 있어요, 아자아자!!

감은빛 2012-03-28 18:09   좋아요 0 | URL
그럼요! 선거부터 확실하게! ^^

요즘은 극장가고 싶단 욕심도 아예 사라졌습니다.
영화는 저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2-03-2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로 F세대군요, 그리고 확실하게 X세대입니다... 조건을 보니.. ^^

그리고 현 40대가 10-20대에게 미안해하고, 사회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견디어야 할 몫이야 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일들이 많은거죠. 그런데 삶이 점점 팍팍해지니, 큰일입니다.... 좋은 페이퍼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2-03-28 18:11   좋아요 0 | URL
확실하게 X세대일 것 같아요! ^^

이 사회가 더 망가지기 전에 정치부터 바로 잡고 싶단 심정으로,
녹색당에서 뛰고 있지만,
그 덕분에 제 삶은 더 빨리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
 
녹색당 선언 - 탈핵부터 프레카리아트까지, 녹색당이 필요한 7가지 이유
녹색당 기획, 김종철.하승수.이보아 외 지음 / 이매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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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어린이집에 들렀다 갈 때와 초등학교에 들렀다 갈 때의 출근길 느낌이 많이 다르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어린이집에 다니던 큰아이가 이젠 초등학교에 다닌다. 가방도 달라졌고, 안에 들어있는 책들도 다르다. 실내화 주머니도 하나 더 들어야 한다. 게다가 집에서 꽤 멀어졌다. 어린이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끝이지만, 학교는 교문을 들어서서 운동장 한쪽 곁으로 걸어서 건물까지 한참 더 걸어가야 한다. 그뿐인가 등원시간에 비해 등교시간은 더 빨라졌다. 혹 늦게 들어가서 선생님께 야단맞게 될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끌어당기며 걸음이 빨라진다.

 

 

 

아이를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데,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서너 명이 기호와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후보 이름을 부르면서 학교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선거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아직 3월 초인데 벌써 학생회장 선거를 하나 싶었다. 운동장을 거의 다 빠져나올 무렵 그 여자아이들의 진행방향에서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또 다른 팻말을 들고 후보 이름을 외치면서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은 경쟁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교문을 나서기 직전 게시판을 보니, 후보로 나선 아이들 숫자가 상당히 많다. 내 어릴 때 기억에는 두 팀(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이상 나온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얼핏 살폈는데 기호 5번이란 글씨를 본 듯하다. 아이들도 새 학기를 맞아 선거를 치르는구나. 전철역 근처에도 슬슬 정당 플래카드가 걸리기 시작하는데,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선거의 계절, 정치의 계절을 맞게 되는구나 싶다.

 

 

 

3월 초에 창당한 녹색당에서도 뒤늦게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명망가가 없고, 재력가도 없고, 유명한 정치인도 없는 갓 창당한 신생정당이라서 선거비용을 마련할 방법도 쉽지 않다. 십시일반 당원들의 특별당비를 추가로 걷어서 선거운동비용에 조금이라도 보태기로 했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녹색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할 녹색당이 요즘 창당과 동시에 총선을 치루기 위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간다. 지역구 후보 2명과 비례대표 후보 3명을 만들어냈다.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기장에 출마한 구자상 후보는 20년 동안 환경운동을 해온 믿음이 가는 선배이다. 탈핵 후보로서, 환경후보로서, 시민후보로서 손색이 없다. 영양, 영덕, 봉화, 울진 지역에 출마한 박혜령 후보는 현재 신규원전부지로 선정된 지역의 여성농민이자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대책위 위원장이다. 여성으로서, 농민으로서 탈핵의 기치를 이끌어나가는 멋진 후보라고 생각된다.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모도 대단하다. 첫번째 후보는 환경단체 활동가 출신으로 미군기지 문제나 에너지 문제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이유진 후보이다. 아주 성실한 분으로, 그 성실함으로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서 지금과 같은 전문가의 영역에 오른 사람이다. 두번재 후보는 현재 팔당 유기농단지를 지켜오고 계신 대책위 위원장 유영훈 님이다. 오랫동안 유기농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자, 4대강 개발에 맞서 유일하게 개발을 막아낸 분이다. 그 분의 삶의 궤적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잠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대단히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세번째 장정화 후보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를 결합한 에코 페미니스트로서, 생명 감수성이 예민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후보이다. 비록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정치인은 없지만,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니,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들 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성실하며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진정한 풀뿌리 정치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솔직히 살면서 단 한 번도 선거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반장 선거 같은 것도 한 번도 안 나가봤고, 대학 때도 학년 대표나 학생회 일은 해봤지만 학생회장에 나가는 것은 늘 거절했다. 골치 아프게 앞에 나서는 것이 싫었던 탓이다. 선배들이 귀찮게 등 떠밀어도 죄다 거절해왔고, 나중에는 후배들이 선거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모두 다 거절해버렸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선거 운동이란 걸 하게 되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돈이 생겨서도 아니다. 지금 출마한 내 동료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또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해 열심히 뛰어주고 싶다. 또 그렇게 하는 일이 나와 내 아이들과 가족 모두, 친구들 모두를 위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조리 있게 잘 전달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요즘처럼 절실하게 말과 글에 대해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소 나는 말도 잘 하는 편이고, 글도 조금 쓴다고 생각해왔으나, 요즘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아직 한참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잘난 척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더 많이 겸손해져야 하고, 그 부족함을 부지런히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글 솜씨와 말주변이 비약적으로 좋아질 일은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말씀 드리겠다. 정당 투표는 꼭 녹색당을 찍어주시기를 바란다! 이 척박한 땅에 어렵게 피어난 녹색 새싹을 잘 키워주시길 바란다! 작지만 의미 있는 여러분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서 이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작은 희망 하나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

 

 

 

때마침 이 땅에 왜 녹색당이 필요한 지, 잘 설명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사실 이 책이 총선 전에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느라고 뒤에서 조금 애를 썼다. 내 글은 정말 부족하기만 한 짧은 글 하나가 들어가 있을 뿐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마치 내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것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더 부끄럽기도 하다. 녹색당을 설명하는 백 마디 말보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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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1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내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애쓴 보람은 결코 헛됨이 없는 법이니

정녕 인간을 위한 사람들이
정치 하기를 바라는 마음 입니다.

감은빛 2012-03-19 12:42   좋아요 0 | URL
애쓴 보람이 결코 헛됨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2-03-1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례대표는 '녹색당' 꼭 투표하겠습니다~ ^^
우리 독서회원들에게도 홍보할게요~ 아자아자!!

감은빛 2012-03-19 12:4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이 댓글 읽고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당투표는 꼭 녹색당을! ^^
고맙습니다!

cyrus 2012-03-1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말씀하신 책이 드디어 나오게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
책의 부제목을 봐서는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언급이 있을거 같은데
저도 읽어보고 지인들에게 홍보해야겠습니다. ^^

감은빛 2012-03-19 12:45   좋아요 0 | URL
프레카리아트 라는 용어는 한 차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 참여한 청소년이 한 명 있고,
20대 필자가 대여섯명정도 있습니다.
20대 필자들이 대부분 이 땅의 청년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요.
시루스님께서도 청년이시니, 당연히 관심이 있을 듯 합니다.
아주 감동적인 글들이 몇 있으니, 강추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카스피 2012-03-1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 나온것 같습니다.축하드려용^^

감은빛 2012-03-19 12:45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

잘잘라 2012-03-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매니아인 저에게 이 책은 으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표지디자인입니다!^^

감은빛 2012-03-19 12:46   좋아요 0 | URL
아! 메리포핀스님 연두색을 좋아하셨죠!
거부할 수 없다면 어서 읽고 주위에 추천을 해주세요! ^^
 
나는 꽃이 아니다 - 세계사 속 여인들의 당당한 외침
신금자 지음 / 멘토프레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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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운동권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학생운동이나 조직운동 경험이 비교적 짧다. 같은 세대의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알만한 조직이나 사건들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친구들은 그런 이유를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운동 내부에서의 세력다툼과 경직된 면들이 싫었고, 운동권 내부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들을 깨닫고 경멸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학생운동과 조직운동에서 발을 뺐다. 그래서 친구들이 대부분 알만한 경험들에 나는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때 몸담았던 학생회 내부에서 보았던 것들은 우리가 비판해왔던 기득권들과 별반 차이없는 태도들이었다. 말로만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말로만 자본주의를 비판하면 끝인가? 그 자신의 태도는 어느 누구보다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적어도 스스로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성운동과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 등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은 없지만, 대개 나는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남녀의 실제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고 그 노력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생활속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작은 차별들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부당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가. 말로서 그런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나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나도 조금만 방심하면 다른 이들에게(특히 나보다 어린 여성에게) 그런 인상을 주지 않을까 늘 생각하고 조심하게 된다. 그래서 늘 반성하고 더 많은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그런 나를 불편해한다. 당연하게 육아휴직을 요구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이렇게 중요한 시국에 개인의 입장만 생각한다는 불만이었다. 아이들 돌봐야 하기 때문에 야근을 할 수 없다거나,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하면, "와이프는 뭐하냐?"는 질문만 되돌아 왔다. 남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가사노동과 육아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 인물 이야기라고 해서 좀 더 참신하고 재밌는 내용일거라고 기대했지만, 책 내용은 기존에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많았고,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썩 참신하다고 느껴지지지 않았다. 그래도 복습하는 기분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차근차근 읽어가는 재미는 있었다. 철저하게 남성 위주로 기록된 역사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만 다로 모아놓았다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사를 남성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여성들도 바라보자는 취지는 좋은데, 역사를 왕과 위인들만의 역사로 바라보는 듯한 태도는 아쉬웠다. 왕들과 위인들만의 역사로 기록된 내용은 거짓 역사이다. 모든 역사의 주인들은 묵묵히 자신의 삶은 살아온 대다수 민중들이다. 성평등을 이라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보려한 저자라면, 권력관계와 참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에 대해서도 모를 리 없을 듯 한데, 전체적으로 그런 면을 찾아볼 수 업어 아쉬었고, 몇몇 인물에 대한 기술에서는 우려할만한 왜곡이 담겨 있어 안타까웠다.

 

가장 좋았던 점은 뒤로 갈수록 잘 몰랐던 근대 이후의 인물들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점이었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고, 차분하게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이야기를 주욱 따라가다보면 다양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거나, 알고 있던 지식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여기에서 짧게 많은 인물들을 다루었지만 나중에 소수의 인물들을 좀 더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여러가지 시각에서 살펴보는 시도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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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와 다르게, 감은빛님의 리뷰는 아주 리뷰다운걸요.
특히 아래에서 세번째 문단의 힘있는 자의 역사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는 평,
참 좋습니다. 그러게요, 사실이란게 얼마나 왜곡되고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겠지요.

균형잡힌 시각이라는게, 날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

감은빛 2012-03-09 15:16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언제나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는 마녀고양이님, 고맙습니다! ^^
저는 마녀고양이님 특유의 글이 참 좋아요!
느낌이 좋다고 해야할까요?
그에 비하면 제 글은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고......

균형잡힌 시각! 정말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cyrus 2012-02-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S***님도 읽으셨던데 감은빛님도 이 책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셨네요. 역사를 공부하거나 연구하는데 있어서
균형적인 시선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게 아닌거 같아요.

감은빛 2012-03-09 15:18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렇죠. 어느 분야에나 마찬가지일수 있지만,
특히 역사 분야에서는 훨씬 더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한 쪽으로(여성의 시각) 공정한 듯 하지만,
다른 쪽으로(민중의 시각) 불공정한 면을 보이고 있어서,
읽기에 불편했습니다.
 

두번째 책

 

공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된 두번째 단행본이 곧 나온다. 첫번째 단행본은 (알라딘에서는 여러 이웃분들이 아시겠지만) <100인의 책마을>이었다. 솔직히 이 첫 책에 필자로 참여했던 것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무척 부끄럽기도 하다. 책이 나오고 나서, 다른 분들의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고 느꼈다. 다른 분들의 글은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뭔가 의미를 전하고 있는데, 내 글은 그닥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별로 의미도 없는 듯 했다. 그동안 글 공부 좀 했다고 생각해왔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아직 한참 내공이 부족하구나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또 두번째로 단행본에 짧은 원고 하나를 보탰다. 이번에는 단순히 공저자 중 한명으로만 참여한 게 아니라, 기획단계에서부터 필자들 연락하고 책 진행 전반적인 부분을 챙기는 준비팀에 참여했다. 작년 10월 말에 기획을 시작해서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했고, 12월에 필자들에게 원고 청탁하고, 취합하고, 독촉하고, 수정요청하고, 직접 수정하기도 하는 등 한창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도 여러가지 진행을 해오다가 2월 초부터는 또 책의 서문을 쓰느라고 꽤 오랜 시간 고생을 했다. 처음에 글의 컨셉을 잘못 잡았다가 두 차례나 수정을 해야했고, 결국에는 첫 원고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글을 다시 써야했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웠다. 역시 나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많이 느꼈다.

 

 

어제 최종적으로 전체 필자들에게 수정사항을 받아서 취합하고, 표지에 들어갈 필자 소개를 확인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오늘 원고가 우리 손을 떠났다. 인쇄 작업으로 들어갔고 다음주 금요일쯤에 출간된다. 그러면 서점에서 볼 수 있는 건 그 다음주가 될 듯하다.

 

이번 책의 제목은 <녹색당 선언>이다. 작년 10월 말에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해서 이번 3월 4일에 '창당대회'를 여는 '녹색당' 당원들의 글을 모았다. 참여 필자가 무려 29명이나 되고 인터뷰를 한 <일다>의 조이여울 기자까지 포함하면 글쓴이는 30명이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나중에 책이 나오면 다시 해야겠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우선 그동안 원고 취합하고 검토하거나, 여러가지 챙길 것들을 살펴보거나, 서문을 쓰기 위해 괴로워하면서 하얗게 지새웠던 밤들에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두고 싶다.

 

 

인연

 

흔히 "세상 참 좁다!"는 말들을 한다. 나 역시 "한 두 사람만 건너면 다 만난다"는 말을 가끔 한다. 그건 내가 일반적인 사회생활의 범위보다 좀 더 폭이 좁은 곳에 속해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해 운동판이라고 불리는 이 바닥에서는 정말 한 두 사람 건너면 죄다 아는 사람들이다.

 

일주일 전인 토요일 정동에서 연달아 두 가지 행사에 참여했다. <조영관 시인 문학창작기금 수상식>과 예전에 함께 일했던 활동가의 결혼식이었다. 두 곳에서 아주 오랫만에 여러 선배들과 동료들, 후배들을 만났다. 반가운 얼굴들이 정말 한 둘이 아니었다. 문동만 선배와 임성용 선배 그리고 박일환 선생님과 이시백 선생님 모두 무척 오랫만에 뵈었다. 게다가 그 날은 '희망버스' 때문에 갇혀있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난 송경동 선배와 정진우 실장도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최근에는 아내와 더 가까워진 박수정 선배와 그날 '조영관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한 희정 씨 역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터라 반가웠다.

 

결혼식에서 만난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랫만에 얼굴을 보게 된 이들이다. 예전에 일했던 단체의 운영위원 선생님들을 거의 대부분 뵐 수 있었고, 함께 고생했던 선배, 후배 활동가들과도 오랫만에 힘찬 악수를 나누었다. 다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서 처음의 반가움 외에는 이 사람들과 함께 나눌 공동의 관심사가 그닥 없었고, 오랫만에 친한 척 하려니 무척 어색한 듯한 태도가 스스로도 확실히 느껴졌다. 마음으로는 반가웠지만 그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다소 무뚝뚝했으리라.

 

이날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반가운 이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민중 가수 이수진씨였다. 처음 만난 건 바로 앞서 언급한 그 단체에서 활동할 때였다. 그는 자원활동가였고, 나는 자원활동가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상근활동가였다. 당시에는 아쉽게도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몇 번 만나지 못한채 업무상의 관계가 끊겼다. 다시 만난 건 아마도 FTA반대 집회에서였다. 수진씨의 풍부한 성량과 매력적인 음색 덕분에 대번에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가운 마음에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반가워하고 그새 바뀐 서로의 상황들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그 후로도 아주 가끔 거리에서(즉 집회에서) 그와 마주치곤 했다가 최근 몇 해동안 한번도 보질 못했고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조영관 시인 문학창작기금 수상삭>의 식순을 살펴보다가 그 이름을 발견했다. 작은 무대였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혼자 흐뭇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스피커와 앰프 등의 장비 옮기는 일에 조금 손을 보태면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조금 생각한 후에 내 이름을 기억해 냈다. 우리는 또 한번 어색하게 서로의 변한 상황을 조금 이야기했다. 알고보니 그는 얼마전 아내가 참석했던 지인의 결혼식에서도 노래를 불렀었다고 한다. 아내와 친하게 지내는 언니(그날의 신부) 동생의 절친이라고 했다. 우린 서로 신기하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정말 한 두 사람 건너면 다 만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정말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예전에 자신에게 너무 친절하게 잘 대해주셨던게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때 내가 그랬었나? 싶었지만 그냥 웃었다. 또 언제 그와 마주치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 좁은 바닥에서 움직이다보면 또 언젠가는 마주칠 것이다. 그럼 또 반갑게 웃으며 안부를 물어야겠다. 반가운 마음이 어색한 태도에 묻혀버리지 않도록.

 

 

※ 아래는 위에 언급한 작가들의 책들

 

 

 

 

 제 2회 조영관 시인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한 희정씨의 책.

 삼성이라는 절대 권력에 맞선 사람들

 책의 주제도 의미있지만,

 희정씨 특유의 섬세하고 탁월한 문장의 힘이 느껴진다.

 

 

 

 

 

 

 

 평택 대추리 농민들, 기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콜트 콜텍 해고 노동자들,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낸 거리의 시인.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로

 구속되었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기륭 집회현장에서 추락사고로 다친 발목에는

 아직 철심이 박혀있다.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차디찬 감옥에서 보낸

 추운 겨울을 생각해본다.

 

 

 

 

 문동만 선배의 매력포인트는 웃음이다.

 따뜻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

 

 앞에 나서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묵묵히 그를 받쳐주는 사람이 있다.

 문동만 선배는 그런 사람이다.

 작가회의에서나, 리얼리스트 100에서나

 늘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해주는 사람.

 

 

 

 

 

 

 

 임성용 선배는 정말 재밌다.

 그의 걸쭉한 사투리와 입심은 웃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읽으면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그의 해학 코드를 이해하려고 애쓰다보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가끔 시인들이 산문을 더 잘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송경동 선배도, 임성용 선배도.

 박일환 선생님 역시 시도 좋지만, 산문도 참 좋다.

 

 물론 이 책은 글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저 위의 희정씨의 책과 함께 소개하기 위해 올려놓는다.

 

 

 

 

 

 

 

 

 

 언젠가 꼭 권하고 싶은 책으로 소개 한 적이 있다.

 이시백 선생님의 글은 설명이 불필요하다.

 그냥 한번 읽어보면 이해할 것이다.

 

 흔히 성석제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한 수 위다.

 

 

 

 

 

 

 

 

 

 박수정 선배의 남미 여행 이야기

 출판 기념회 때 구입해서 싸인을 받아왔지만,

 정작 나는 읽지 못했다.

 대신 아내가 열심히 읽었다.

 

 가끔 아내를 통해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는

 선배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

 그 따뜻하고 넓은 마음으로 더 많은 이들을 품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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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2-2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인의 책마을> 님의 글에 동그라미도 치고 밑줄 그어가며 읽었고, 며칠 전에도 환경도서 확인하느라 다시 펴 보았는걸요.^^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저도 읽어보려고 TTB광고에도 올려두었어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두번째 나오는 책도 기대하고요~ ^^

감은빛 2012-03-09 15:10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제 글을 열심히 봐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네, 삼성을 다룬 책들은 죄다 사다놓긴 했는데, 저도 꼼꼼히 읽지는 못했어요.
소개를 했으니,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마녀고양이 2012-02-2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또 나오는군요, 멋지네요.
감은빛님, 이거 축하드려야 하는거 맞요? ^^

감은빛 2012-03-09 15:10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리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12-02-2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감은빛 2012-03-09 15:11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의 축하는 특히 더 반갑네요! ^^

숲노래 2012-02-25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당선언 미리 축하해요~

감은빛 2012-03-09 15:11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리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cyrus 2012-02-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책 내시는거 축하합니다. 그동안의 노고가 책이라는 결실이 맺게 되었군요.
책이 출간하시는대로 서재에 바로 알려주는 것, 잊어버리시면 안됩니다 ^^

감은빛 2012-03-09 15:12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늦었습니다! 죄송!
그리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이 출간되었는데, 바쁜 일정때문에 알리지 못하고 있네요.
곧 글하나 올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