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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선언 - 탈핵부터 프레카리아트까지, 녹색당이 필요한 7가지 이유
녹색당 기획, 김종철.하승수.이보아 외 지음 / 이매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확실히 어린이집에 들렀다 갈 때와 초등학교에 들렀다 갈 때의 출근길 느낌이 많이 다르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어린이집에 다니던 큰아이가 이젠 초등학교에 다닌다. 가방도 달라졌고, 안에 들어있는 책들도 다르다. 실내화 주머니도 하나 더 들어야 한다. 게다가 집에서 꽤 멀어졌다. 어린이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끝이지만, 학교는 교문을 들어서서 운동장 한쪽 곁으로 걸어서 건물까지 한참 더 걸어가야 한다. 그뿐인가 등원시간에 비해 등교시간은 더 빨라졌다. 혹 늦게 들어가서 선생님께 야단맞게 될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끌어당기며 걸음이 빨라진다.
아이를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데,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서너 명이 기호와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후보 이름을 부르면서 학교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선거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아직 3월 초인데 벌써 학생회장 선거를 하나 싶었다. 운동장을 거의 다 빠져나올 무렵 그 여자아이들의 진행방향에서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또 다른 팻말을 들고 후보 이름을 외치면서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은 경쟁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교문을 나서기 직전 게시판을 보니, 후보로 나선 아이들 숫자가 상당히 많다. 내 어릴 때 기억에는 두 팀(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이상 나온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얼핏 살폈는데 기호 5번이란 글씨를 본 듯하다. 아이들도 새 학기를 맞아 선거를 치르는구나. 전철역 근처에도 슬슬 정당 플래카드가 걸리기 시작하는데,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선거의 계절, 정치의 계절을 맞게 되는구나 싶다.
3월 초에 창당한 녹색당에서도 뒤늦게 플래카드를 제작했다. 명망가가 없고, 재력가도 없고, 유명한 정치인도 없는 갓 창당한 신생정당이라서 선거비용을 마련할 방법도 쉽지 않다. 십시일반 당원들의 특별당비를 추가로 걷어서 선거운동비용에 조금이라도 보태기로 했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녹색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할 녹색당이 요즘 창당과 동시에 총선을 치루기 위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간다. 지역구 후보 2명과 비례대표 후보 3명을 만들어냈다.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기장에 출마한 구자상 후보는 20년 동안 환경운동을 해온 믿음이 가는 선배이다. 탈핵 후보로서, 환경후보로서, 시민후보로서 손색이 없다. 영양, 영덕, 봉화, 울진 지역에 출마한 박혜령 후보는 현재 신규원전부지로 선정된 지역의 여성농민이자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대책위 위원장이다. 여성으로서, 농민으로서 탈핵의 기치를 이끌어나가는 멋진 후보라고 생각된다.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모도 대단하다. 첫번째 후보는 환경단체 활동가 출신으로 미군기지 문제나 에너지 문제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이유진 후보이다. 아주 성실한 분으로, 그 성실함으로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서 지금과 같은 전문가의 영역에 오른 사람이다. 두번재 후보는 현재 팔당 유기농단지를 지켜오고 계신 대책위 위원장 유영훈 님이다. 오랫동안 유기농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자, 4대강 개발에 맞서 유일하게 개발을 막아낸 분이다. 그 분의 삶의 궤적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잠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대단히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세번째 장정화 후보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를 결합한 에코 페미니스트로서, 생명 감수성이 예민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후보이다. 비록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정치인은 없지만,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니,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들 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성실하며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진정한 풀뿌리 정치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솔직히 살면서 단 한 번도 선거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반장 선거 같은 것도 한 번도 안 나가봤고, 대학 때도 학년 대표나 학생회 일은 해봤지만 학생회장에 나가는 것은 늘 거절했다. 골치 아프게 앞에 나서는 것이 싫었던 탓이다. 선배들이 귀찮게 등 떠밀어도 죄다 거절해왔고, 나중에는 후배들이 선거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모두 다 거절해버렸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선거 운동이란 걸 하게 되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돈이 생겨서도 아니다. 지금 출마한 내 동료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또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해 열심히 뛰어주고 싶다. 또 그렇게 하는 일이 나와 내 아이들과 가족 모두, 친구들 모두를 위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조리 있게 잘 전달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요즘처럼 절실하게 말과 글에 대해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소 나는 말도 잘 하는 편이고, 글도 조금 쓴다고 생각해왔으나, 요즘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아직 한참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잘난 척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더 많이 겸손해져야 하고, 그 부족함을 부지런히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글 솜씨와 말주변이 비약적으로 좋아질 일은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말씀 드리겠다. 정당 투표는 꼭 녹색당을 찍어주시기를 바란다! 이 척박한 땅에 어렵게 피어난 녹색 새싹을 잘 키워주시길 바란다! 작지만 의미 있는 여러분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서 이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작은 희망 하나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
때마침 이 땅에 왜 녹색당이 필요한 지, 잘 설명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사실 이 책이 총선 전에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느라고 뒤에서 조금 애를 썼다. 내 글은 정말 부족하기만 한 짧은 글 하나가 들어가 있을 뿐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마치 내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것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더 부끄럽기도 하다. 녹색당을 설명하는 백 마디 말보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