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맹렬하게 울린다.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는다. 화면 아랫쪽의 버튼을 끝까지 밀어야 알람이 멈추는데, 잠결에 자꾸만 손가락이 멈춘다. 잠을 쫓으려 애써보지만 뇌는 자꾸만 더 자라고 명령을 내리는 듯, 핸드폰을 쥐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5분 후에 다음 알람이 울리고 있다. 무거운 머리를 흔들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바로 일어서질 못하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직도 눈이 저절로 감기려 한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면장으로 향했다.

 

일과 시간 내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요청되는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작 계획했던, 그리고 꼭 해야할 일들을 하나도 진행하지 못했다. 맘먹고 일 좀 하려고 하면 또 전화가 와서 뭔가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하고, 뭔가 확인해서 연락달라고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었다. 결국 싫어도 야근을 해야할 상황.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서 잠시 건물 1층 편의점에 뛰어가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왔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삼각김밥을 씹으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눈으로는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저녁에서 밤으로 흐를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커피는 벌써 몇 잔째 마시는지 모를 지경이 될 즈음 대략 일도 마무리가 되어갔다. 그런데 헉! 벌써 12시가 넘어서 지하철 막차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정리를 하고 가방을 챙겨서 나섰다. 간신히 막차에 몸을 싣고 시계를 보니 12시 40여분. 그런데 이 열차는 집에서 한참 못 미치는 역까지 밖에 운행을 안한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집 근처인데, 거기까지만 어떻게 안될까? 안타까워해도 방법은 없다.

 

종착역에서 우루루 내리는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내린 듯,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대부분 조금 걷다가 택시를 잡기 위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래서는 택시 잡기도 어렵다. 지갑 속엔 택시비도 없기도 하거니와, 오랫동안 모니터만 들여다본 탓에 밤 공기를 마시며 좀 걷고 싶어졌다. 집까지 걷는다면 한 50분쯤 걸리려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최근의 고민들. 바쁜 일정들. 답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의 복잡한 관계들. 생각의 갈피들을 쫓아 이리저리 헤매다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내 발은 집 근처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등은 땀에 젖었고, 목 뒷덜미로 땀 방울 하나가 또르르 구르는 것이 느껴진다.

 

새벽 2시 컴퓨터를 켜고 사무실에서 하던 작업을 마무리 한다.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지고 어깨는 자꾸만 처진다. 대충 일을 끝내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나니 새벽 3시. 물을 마시고 잠시 인터넷 검색을 좀 더 하다가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든다.

 

잠시 눈만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또 다시 알람이 맹렬하게 울린다. 제발 오늘이 주말이기를 부질없는 바램은 소용없다. 알람은 평일에만 울리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요청은 곧이어 떠오른 지각이란 단어 하나에 무참하게 거절당한다. 안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 아 왠지 어제와 같은 피곤한 하루가 반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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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캬라멜 마끼아또 한 잔 사드리고 싶어지네요.

감은빛 2012-09-12 10:04   좋아요 0 | URL
사주세요! ^^
다락방님께서 사주신다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마시게 될 것 같아요.

Jeanne_Hebuterne 2012-10-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우스 클릭을 너무 많이 해서 팔이 저리고,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해서 시간을 보았더니 새벽 두 시.
그런 날들이었어요, 감은빛 님. 그런 날이었나 봅니다, 감은빛 님.

감은빛 2012-10-15 13:34   좋아요 0 | URL
일이라는게 한번 몰리면 한꺼번에 몰려오고,
없을 때는 또 별로 없더라구요.

쟌님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키워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마 시골에 살았다면 달랐을테지만,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입에 풀칠할 일을 걱정해야 할 집안에 애완동물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우리 처럼 방 한 칸 얻어 사는 집들이 십여가구 있었던 우리 집(하나의 대문을 사용하는 건물로서의)에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은 전혀 없었다. 또한 좁은 골목마다 수십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동네 전체에서도 동물을 키우는 집을 본 기억은 없다. 그러니 살면서 마주친 (인간 이외의)동물이라고 해봐야 바퀴벌레와 이와 모기, 파리 따위의 곤충들이 대부분이었고, 참새들, 비둘기들 등의 조류들이 가끔 마주치는 존재들이었다. 흔히 우리가 딱 '동물'이라고 떠올리는 포유류 중에서는 아주 가끔 만나는 길고양이들이 전부였고, 개를 길에서 마주친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될 때까지 만났던 친구들 중에서도 동물을 기르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자라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다른 동물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였다. 한 친구가 집에서 고양이를 두 마리 길렀는데, 교복에 자주 고양이 털이 붙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그것이 무척 보기 싫었고, 외출할 때마다 늘 고양이 털을 신경써야하는 일이 무척 귀찮게 보여서 더욱 기억난다) 그 집에 놀러갔다가 고양이이가 손등을 할퀴었던 일도 기억난다.

 

한때 사귀었던 후배는 개를 정말 좋아했다. 아직 제대로 입맞춤도 해보지 못한 연애 초기에 후배가 어디선가 나타난 개를 보고 반가워하며 쪼르르 달려가서는 쓰다듬고, 안고, 심지어 뽀뽀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다. 속으로 나도 아직 느껴보지 못한 입술의 감촉을 웬 X개가 먼저 느끼다니 라고 생각하며 짜증이 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 후배가 참 신기했다. 어쩜 저렇게 개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요즘은 동물을 기르는 집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 뿐 아니라 햄스터, 고슴도치, 카멜레온, 토끼, 거북이, 사슴벌레 등등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다. 길을 걷다 개와 고양이를 한번쯤 안만나는 일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동네에는 길고양이들도 많고, 사람들이 데리고 나온 개들도 많다.

 

아마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된 듯 하지만, 지금 내 주위에도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 분들은 반려동물들의 엄마나 아빠(혹은 언니, 오빠)가 되어 정말 가족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문화에 익숙치 않은 나는 역시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신기하게 느껴졌다.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도 인간과 똑같이 소중한 생명체이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 지금껏 머리로만 알고 있던 그 사실을 이제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이다. 피터 싱어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사회운동인 '동물권 운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동물권 운동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쟁점들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마음에 남는 건, 4장 '잔인한 오락' 부분이다. 사냥, 투우, 로데오, 경마, 서커스, 해상공원, 동물원, 애완동물 등의 인간 문화가 동물들에게는 잔인한 오락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중 몇몇 부분은 이제껏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라서 더 맘에 남는다. 

 

또한 6장 '잔혹한 패션' 부분도 역시 인상적이다. '잔인한 오락', '잔혹한 패션' 이 책에서 만난 소제목들이 자꾸만 아프게 와닿는다.

 

 

 

 

 

 

 

 

 

 

 

 

 

 

다음에 읽을 책으로 보관함에 담아둔 책. 1975년 피터 싱어의 문제작 [동물 해방]의 개정판이 마침 최근에 나왔다. 동물권 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필독서이다.

 

 

 

 

 

 

 

 

 

 

 

 

 

 

얼마전 이 책을 읽고 뜬금없이 거미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통 같은 것에 가둬놓지 않고 그냥 집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반려 동물로서 거미를 길러보는 것. 어떨까? 물론 우리 집 세 여우가 비명을 지르며 반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거미는 모기나 파리 등 우리를 귀찮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곤충들을 잡아주고, 인간에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 게다가 거미줄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모든 거미가 다 징그럽고 무섭게 생긴 것은 아니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주홍거미 같은 녀석은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다. 이런 거미가 우리 집 한켠에 거미줄을 치고 함께 살아간다면 나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역시 아무래도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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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 사람들 중에는 고양이 발톱에 할퀸 경험 때문에 고양이를 싫어하더라고요. 저는 고양이 자체를 싫어하는건 아닌데 새벽에 짝 찾아 목놓아 우는 고양이 소리가 싫어요, 조용한 새벽에 들으면 너무 무섭거든요 ^^;; 귀여운 고양이도 좋고 애교 부릴 줄 알고 충직한 이미지의 개도 좋습니다. ^^

카스피 2012-09-05 22:00   좋아요 0 | URL
고양이를 길러봐서 아는데 발정기때 새벽에 우는 고양이 울음은 꼭 아기 울음같아서 좀 징그럽지요.그보다 더한 것은 자는데 고양이가 쥔 좋다고 목을 햟는데 고양히 혀가 까칠해서 자다가 흠찟 깨어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ㅡ.ㅡ

감은빛 2012-09-11 15:54   좋아요 0 | URL
저는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아요.
익숙하지 않아서 좀 낯설어할 뿐이죠.
귀여운 아기 고양이 사진을 보면 키우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 둘 키우기에도 정신없는 신세인지라,
여기에 또 어떤 존재를 더 키우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거미가 우리 집 어느 구석에 함께 살아주면,
때때로 관찰도 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카스피 2012-09-0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은빛님과 달리 전 개를 키워 새키도 길러보고(나중에 부모님이 다 남 줘버렸지만..),고양이도 길러보고(요놈들은 결국 가출했지요..),금붕어도 비둘기도 키워봤네요^^
동물권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위에서 말씀하신대로 고대부터 동물을 이용한 잔인한 오락을 인간이 많이 즐기긴 했네요.

감은빛 2012-09-11 15:56   좋아요 0 | URL
개와 고양이, 금붕어 까지는 이해했는데, 비둘기도 키우셨군요!
새는 보통 작고 귀여운 종류로 키우지 않나요?
비둘기 하면 왠지 도시에서 흔히 마주치는 닭둘기들이 떠올라서요.

많은 동물들을 키워보신 카스피님께서는 남들보다 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실 듯 해요.

양철나무꾼 2012-09-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동물도 싫고,
곤충은 더,더,더 경기하게 싫어해요.

예전에 울아들 급식겁수위원을 했었는데,
HACCP 인증이 된 급식업체를 갔었어요.
그때 급조된 청결을 유지하는데,
거미줄과 거미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거미는 더러운 거 아녜요. 깨끗함의 지표 곤충이라고 봐야돼여.'해서,
제가 그랬죠.
'아무리 깨끗함의 지표 곤충이라고 해도 그렇죠~,
거미가 잡아먹는 온갖 곤충들도 깨끗한 건 아니잖아여~--;'

감은빛 2012-09-11 16:08   좋아요 0 | URL
제가 만나온 대부분의 여성분들은 양철님과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우리집 세 여우도 마찬가지랍니다.
아직 어린 작은녀석도 날파리 하나만 보아도 '파이(파리)!'라고 소리를 막 지르곤 해요.

그런데 인간이 아무리 다른 생명체와 분리되어 '깨끗하게' 살고 싶어도,
이 자연 생태계의 구조상 그건 불가능한 듯 해요.
당장 우리 집에는 개미, 바퀴벌레, 거미, 흰개미, 불개미, 모기, 파리, 날파리, 하루살이, 집먼지 진드기, 좀벌레, 집게벌레, 쌀벌레 등등 셀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우리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들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책에 그런 징그러운 존재들이 잔뜩 들어있죠.
아무 양철님께서는 절대 못 읽을 책 중에 하나일 듯 싶어요. ^^

레나 2013-06-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내일 당장 도서관가서 책 빌려 읽어봐야 겠네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거미를 좋아해서 키우곤 했었습니다. 매일 나가서 거미잡아서 창문에다 놓고 길렀었거든요ㅎㅎ 엄마는 항상 기겁하곤 했었어요. 지금은 공부하는데 시간이 거의 다 소비되어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안으로 들여오지는 못하지만 독립하게 되면 다시 길러볼 생각이에요.
혹시 사막쥐라고 저빌 길러볼 생각 없으신가요? 진짜 깨끗하고 온순하고 귀여워요 단점은 번식이 너무너무 빠르다는거;;

아무튼.. 동물권에 관해 흥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3-06-12 10:49   좋아요 0 | URL
창문에다 놓고 기르는 것 아주 좋은 방법이군요.
물론 아내와 아이들이 기겁을 해서 실행하기는 쉽지 않겠지만요.
언젠가 도시에서 벗어나 살게되면
자연스럽게 거미와 다른 곤충들과도 공생하게 되겠지요.

사막쥐라는게 있군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떤 끄적임

 

점심을 먹다가 들은 얘기다. 어느 탁구장 사모님(즉 사장님의 부인)을 오랫만에 뵈었더니 살이 쏙 빠져서 건강해 보이길래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장사가 잘 안되어서 한동안 가스 검침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엄청 많이 걷다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지더라고 한다. 질문을 던진이는 혹시 탁구를 열심히 쳐서 살이 빠졌다는 답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이는 살을 빼기 위해 탁구장에 갔으니 말이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보면 막혔던 어떤 생각들이 저절로 술술 풀리기도 하고, 갑자기 어떤 글감이 떠올라 머리속에서 스스로 이야기가 막 진행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작은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끄적여 놓기도 했는데, 워낙 악필인데다 간략하게 핵심적인 단어 위주로만 기록을 해놓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때 어떤 생각으로 이걸 끄적였는지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며칠 전 퇴근 길에 걸어가다가 마주 오던 어떤 여성과 부딪힐 뻔했다. 그리고 어떤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좋은 글감이라고 생각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 메모장 자판을 두드렸다. 하루 이틀 안에 이걸 글로 옮겨야지 생각하고 핵심적인 단어와 문장만을 적었다.

 

'귀한 인상', '복', '공이 날아온다', '돌이 날아온다'

 

기록된 단어와 문장은 이렇게 4개다. 적을 때는 분명히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도입부에 쓸 핵심만을 써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그때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귀한 인상'은 아마도 길에서 행인들을 붙들고 늘어지는 소외 말하는 '도를 아십니까?' 부류의 사람들이 흔히 내게 건네곤 했단 말을 기록한 것이다. '복'이란 단어도 같은 뜻이었을 것이다. 주로 '복이 참 많으세요!'하고 접근하곤 하니까 말이다. 시도때도 없이 툭툭 나타나서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는 이 사람들과 불시에 날아오는 '공'이나 '돌'을 연결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째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순발력'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 앞쪽에서 갑자기 누군가 웃으면서 다가오면 나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거나 살짝 속도를 줄여서 뒤에서 따라오던 누군가를 먼저 보내고 그 바로 뒤를 따라서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그 글의 주제가 '순발력' 이었다면 분명히 그 단어를 먼저 적어놓았을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좋은 글감이 하나 떠올랐다. 그러나 도저히 멈춰서 기록해둘 짬이 나지 않아 그냥 머릿속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놔두었다. 출근하고 나서 점심먹기 전에 좀 여유가 생겨서 그걸 기록해놓으려고 메모장을 띄웠는데, 머릿속이 하얀 백지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맨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분은 대충 생각이 났는데, 그 뒤로 한참 진행해놓은 내용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벌써 치매인 걸까?)

 

 

대화 기피

 

잘 알고 있다. 말이란 것이 얼마나 상처 주기 쉬운 무기인지. 살아오면서 적을 참 많이 만들어왔다. 내 날카로운 말들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 내 거친 태도로 인해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날카로워야 한다고! 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제대로 된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날카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날카로운 시각을 유지하는 것과 입으로 내뱉는 말까지 날카로운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가능하면 날카로운 내 생각을 부드럽게 바꿔 말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대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요즘 나는 서로간의 의견을 나누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가 하는 회의에 빠져있다. 다른 건 별로 잘 하는게 없어도 나름 말 하나는 잘하는 편이라고, 학생운동을 할 때에도, 학원 강사를 할 때에도 자만에 빠져있곤 했는데, 요즘 들어 나는 참 말을 못하는 구나 싶다.

 

그래서 이젠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싫다. 그냥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혼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차비도 없고, 밥 사먹을 돈도 없어서 며칠간 자취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나오고 살았던 적이 있었고, 복수전공 때문에 혼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다른 캠퍼스로 수업을 들으러 간 덕분에 일주일 간 한마디도 안하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그땐 아마도 외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가 부럽다.

 

언젠가 누군가와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었다. 혼자 무인도에 가서 평생 책이나 읽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 물론 무인도에서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책 읽을 시간이 더 많을 것 같다. 아니면 한 달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책 읽다 돌아올 수는 없을까.

 

할 일은 많으나, 일하기는 정말 싫은 금요일 오후 한 달간 무인도에 짱박힌다면 무슨 책을 가져갈지나 한번 고민해볼까? 일단 최근 나온 책들 중에는 아래 책들을 먼저 넣어야겠지. 아! 상상만으로도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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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8-24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시에 날아오는게 공이라면 (이승엽의 홈런볼 정도는 돼야겠죠?) 잡으려 시도해 보겠고 돌이라면 무조건 피해야죠. 그리고 그 날아온 돌 집어서 내게 던진 사람에게 (무지 강하게) 패스를..... ^^. 무인도라면 평소에 엄두를 못내는 토지나 대망 같은 길고 긴 대하소설을 가지고 갈래요.

감은빛 2012-08-25 22: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공은 잡고, 돌은 피해야겠죠. ^^
그런데 그건 도입부의 얘기겠고, 뭔가 더 내용을 구상했는데,
며칠 지나고나니 도무지 생각나지 않더란 말이죠.

무인도에 간다면 역시 대하소설이겠죠!
저도 그 생각을 했었어요.

양철나무꾼 2012-09-1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핸드폰 메모장은 잘 사용 안하고,
메세지로 만들어 임시보관함에 저장해 놓곤하는데...
지금 중요하게 담겨있는 메세지는,
카톡의 애니팡이란 게임 잘하는 법이예요~--;

감은빛 2012-09-11 16:12   좋아요 0 | URL
애니팡이란 게임 한번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

예전에는 어딜가더라도 항상 볼펜과 수첩은 꼭 갖고 다녔는데,
요즘은 약속 정할때도 스마트 폰을 먼저 꺼내보게 되더라구요.
 
오늘의 지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과학으로 읽는 지구 설명서
김추령 지음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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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라는 행성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룩이 ‘가이아 이론’ 이란 이름으로 소개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오고 있다. 과학적으로 이 이론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지구의 어느 한 쪽에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것이 다른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어떤 문제를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런 현상을 나비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생각해본다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고 깊게 생각해보면 이 지구상의 모든 현상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머리말에서 글쓴이는 ‘골드버그 장치’ 이야기를 꺼낸다. 루브 골드버그라는 미국 만화가의 이름과 작품에서 따온 이 골드버그 장치는 작은 하나의 행동이 연쇄작용으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여러 현상을 거쳐서 결국 전혀 관계없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인터넷으로 골드버그 장치를 검색해보니 재미있는 광고영상을 비롯한 동영상들이 제법 나오는데 하나같이 흥미롭다!) 나는 자연의 이러한 연쇄작용을 떠올리면서 ‘도미노’를 떠올렸다. 골드버그 장치에도 도미노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불규칙하고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알기 어려운 골드버그 장치보다는, 비교적 규칙적이고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도미노의 연쇄작용이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듯하다.

 

이 책을 쓴 김추령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마치 소설가나 동화작가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으로 현장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각 장의 흐름과 구성은 대개 비슷하다. 앞부분은 동화나 소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독자를 빨려들게 만드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이야기를 맺으면서는 왜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각 장마다 이야기와 과학적 설명의 2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우이거나 패러디를 한 경우인데, 입 아프게 재미없는 설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실제로 일어났던 비극이나 현실을 비꼬아 놓은 패러디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지금의 위기을 알려주고 있다.

 

1장은 위펑서 부부의 실화로 시작하여 황사와 사막화현상 등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2장은 카트리나로 인해 에반 가족이 겪은 실화로 시작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들(슈퍼태풍, 쓰나미)등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3장은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하나님 이야기를 빗댄 광합성 이야기로 시작하여 탄소순환과 바다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그래서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문제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4장은 투발루에 사는 어린이 리또의 일기로 시작하여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한 설명으로 끝난다. 5장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으로 시작하여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 차가운 바닷물이 심해로 유입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6장은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기후 변화로 인해 생긴 가뭄과 기근의 악순환, 그리고 전쟁과 기아, 말라리아 등을 이야기한다. 7장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뒤죽박죽 동화’(여러 구전설화를 섞어놓은 것)로 시작하여 멸종위기종과 생물 종 다양성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8장은 정휘창의 동화 [원숭이 꽃신]을 각색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피크오일과 핵 폭발사고와 원자력에 대한 문제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9장은 조선 후기 우화소설 [두껍전]을 각색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국제기후변화협약과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적정기술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 10장은 ‘기후게이트’와 ‘빙하게이트’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찬반논쟁에 대한 설명으로 마친다.

 

이렇게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이고, 두 번째 장점은 과학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고, 긴장감 있고 거기에 과학적이라니!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널리 추천하고 읽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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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잣는 사냥꾼 거미
이영보 지음 / 자연과생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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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스파이더 맨? 가수 거미? 독거미? 나는 아주 오래전 혼자 자취하던 시절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오후 햇살이 한풀 꺾였다. 오랫동안 못 만났던 동네 후배가 누추한 자취방을 방문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지저분한 방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코딱지만한 방 하나 치우는데 땀을 뻘뻘 흘린 생각을 하면 청소란 건 역시 자주 할 게 못 된다 싶었다. 못 보고 살았던 시간만큼 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한참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말끔히 청소를 끝내놓은 방구석에서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나는 왠지 그 거미가 신경 쓰여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갔다. 결국 녀석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즈음에 나는 화장지를 한 칸 뜯은 뒤, 살짝 일어나서 거미를 향했다. 곧 이어 그 작은 거미는 화장지에 쌓인 채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그때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맥주를 한잔 마시다가 그 녀석이 갑자기 거미 얘길 꺼냈다. 그 후배에게 샤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참 떠들어댔던 시기가 있었는데, 녀석은 실존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선배가 아무 생각 없이 거미를 잡았다는 사실이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난 집안을 돌아다니는 벌레를 모두 잡아버리는 지극히 평범한 도시인의 모습을 연출했지만, 그것이 내가 평소 떠들곤 했던 무슨 주의나 사상과는 배치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웬만한 벌레가 집안을 돌아다녀도 잡지 않는다. 살포시 집어서 집 밖으로 내보내줄 뿐이다.(물론 바퀴벌레 같은 건 사정없이 잡는다) 아내나 아이들이 집에서 작은 거미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무서워하면 저절로 그 후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럼 난 아이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괜찮아. 거미는 원래 착한 벌레야. 거미가 있으면 나쁜 모기나 파리도 잡아주고, 농사 지을때 피해를 주는 병해충들도 잡아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 그리고 거미는 절대 사람을 물지 않으니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거미를 무서워한다. 아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리 아이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거미를 무서워하는 것은 혹시 독거미에 물릴까 걱정되어서 일까요? 이 책에 의하면 전 세계의 거미는 약 4만 여종에 이르는데, 그 중에 독거미는 20~30여종으로 대략 0.1%도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726종의 거미 중에 독거미는 없다고 한다. 거미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만나면 도망가기 때문에 일부러 괴롭히지 않으면 물릴 일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거미에 물려도 특별한 치료 없이 몇 시간 혹은 며칠 이내에 저절로 낫는다고 한다.

 

이 책에는 사람들이 거미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유전자에서 찾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연구진에 의하면 먼 옛날 조상들이 천적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에 의해 생긴 공포가 그대로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후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여자는 남자에 비해 거미와 같은 벌레를 4배 더 무서워하는데, 여자는 낯선 동물을 더 무서워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남자는 덜 무서워하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란다.

 

이 책의 제목이 참 맘에 든다. ‘실 잣는 사냥꾼 거미’ 실을 자아 거미줄로 그물을 짓고, 걸리는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인 거미는 생태계에서 인간 외에 유일하게 도구(거미줄, 그물)를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먹이를 잡는다. 거미와 거미줄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1장의 제목은 ‘지구의 또 다른 주인, 거미’이다. 지금껏 지구의 또 다른 주인은 ‘개미’ 정도로 생각해왔는데, 거미도 그만큼 종이 많고 그 개체수가 많구나 싶었다.

 

또 흥미로운 점은 ‘거미’라는 이름의 어원과 개별 종명의 어원들도 자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생왕거미’의 ‘기생’이 흔히 말하는 다른 종에 빌붙어 산다는 뜻이 아니라 ‘황진이’와 같은 ‘기생’을 뜻한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거미 박사 김주필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불짜게거미’는 등에 한자인 ‘아니 불(不)’자처럼 보이는 검은 무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갖고 있다는 등 책에 소개된 많은 거미들의 독특한 이름을 설명해주고 있다.

 

아, 이 책에는 정말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 다 언급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1장에서 ‘거미줄 연구’라는 부분이 정말 재밌다. 거미는 거미줄로 그물을 만들어 생활하는 정주성 거미와 깡충거미과, 늑대거미과처럼 주변을 배회하면서 먹이를 사냥하는 배회성 거미로 나뉜다. 이 중에서 정주성 거미가 치는 거미그물은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는데,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거미그물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산왕거미의 정상원형그물 같은 경우는 예술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자, 그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아닌)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거미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인 이 책을 들고 거미를 찾아다녀보자. 행위예술가 ‘꼬마호랑거미’, 멀리뛰기 선수 ‘털보깡충거미’, 흰 눈썹 휘날리는 산신령 같은 ‘흰눈썹깡충거미’, 해안가의 사냥꾼 ‘해안깡충거미’, 해충 잡아먹는 해적 ‘황산적늑대거미’, 알주머니를 입에 물고 다니는 ‘아기늪서성거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홍거미’ 등 개성 넘치는 57개의 거미 이야기를 즐기다보면 거미는 어느새 친숙한 지구별의 동반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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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 2012-08-13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글 읽으니 전 백석 시인의 '수라'라는 시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