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경험의 차이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워드나 엑셀 프로그램의 저장 아이콘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글이었다. 그제서야 플로피디스크가 사라진지 제법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씨디롬조차 안달린 컴퓨터가 나온다는데, 플로피디스크를 알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콘은 직관적이다. 보는 순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데 플로피디스크를 모르는 아이들은 그것이 저장버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낼까? 그냥 외우는 것일까?

 

요즘 경험의 차이로 인해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을 몇 차례 겪었다. 서로의 경험과 상황과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 이들이 만나 관계를 잘 풀어가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중간에서 이쪽의 편이 되어주지도 못하고, 저쪽의 편이 되어주지도 못했다. 양 쪽 모두에게 좋은 해결안이 무엇일까? 아니 그런게 과연 있기는 한 걸까?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가 한발 물러서서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일텐데,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아니 지금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마저도 내 개인적인 잣대에 따라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은가? 과연 내 경험에 따라 내가 내린 판단에 100% 이해하고 따라 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둘. 새 것과 헌 것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동네 작은 공원에 다녀왔다. 몇 해 전에 사두었다가 모셔두기만 했던 축구공과 줄넘기를 갖고 갔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다니며 공을 찼고, 오랜만에 줄넘기도 해봤다. 그런데 한창 줄넘기를 하다가 잠바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뒷 케이스와 배터리가 분리되어 나뒹굴었고, 급히 줄넘기를 멈추고 주워들었더니 액정이 깨져 있었다. 강화유리로 되어있을 액정은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금이가있었다. 혹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일까 겁이나서, 급히 배터리를 끼우고 폰을 켜봤다. 다행히 잘 켜졌고, 전화를 비롯한 기능에 이상은 없는 듯 했다. 다만 화면의 대부분이 깨진 거울처럼 보여서 글씨를  읽기가 불편했다. 이런저런 기능을 작동시켜보다가 손가락이 금간 유리조각에 베여 피가 났다. 그제서야 액정보호 필름 남은 것이 어딘가에 있었을텐데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금간 유리위에 보호필름을 붙였다. 

 

다음날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보여줬더니, 금이 아주 예술적으로 가서 마치 무늬처럼 보인다는 농담을 했다. 보호 필름 덕분에 손을 베일 걱정은 없으니 그냥 (예술적인)무늬로 생각하고 (조금 불편해도) 그냥 계속 쓸 것인가? 이번 기회에 낡은 스마트폰을 최신 폰으로 바꿀 것인가 고민을 했다. 최근 약정 기간이 끝났고, 그 전부터 약정 기간이 끝나면 폰을 바꾸려고 마음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건 폰을 바꾸라는 징조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덥석 바꿀까 싶기도 했지만, (폰 시세를 잘 아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최근이 워낙 빙하기(녀석의 표현에 의하면)라 좀 더 기다리는 것 좋겠다고 하니 돈도 없는데, 그냥 써야하나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새 폰을 질렀다. 이전 약정기간에 워낙 비싼 요금제를 쓰고 있어서, 제법 좋은 폰(완전 최신은 아니다!) 질렀는데도 오히려 요금제는 더 내려갔다. 그래 오히려 예전보다 돈을 더 아끼는 것이다. 어쨌거나 새 폰을 받아들었는데, 여전히 나는 불편했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고, 새로운 기능을 익혀야했다. 만약 액정이 깨지지 않았다면, 익숙해진 헌 것을 두고 굳이 불편한 새 것을 사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셋. 적응과 매너리즘

 

3월과 4월 작은아이는 유난히 짜증을 많이 부리고,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아내는 이를 두고 '엄마엄마 병'에 걸렸다고 표현했는데, 왜 갑자기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작년 연말부터 지역에 있는 시민신문에 아이들과 지내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마감을 앞두고 글을 쓰다가 그 답을 찾았다. 3월부터 새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는 학년을 올라갔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는 아직 어렸고, 작년 담임 선생님을 거의 엄마처럼 여기고 지냈는데, 하루 아침에 새로운 엄마와 지내야 하게 되었으니, 그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이다. 그제서야 왜 아이가 엄마엄마 병에 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4월 중순부터 작은아이는 많이 좋아졌으며, 5월이 되자 어느정도 적응을 한 것처럼 보였다.

 

큰아이도 이제 2학년이 되어 학교 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입학하기 전에는 울음이 많고 여린 아이가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해나갈까 싶어 걱정을 했고, 실제로 엄한 선생님을 만나 많이 힘들어했다. 지금까지 학교라는 공교육 시스템에 대해 들어오고 또 피상적으로 생각해왔던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내 문제가 되었다. 혁신학교라는 곳으로 옮겨 볼까? 계속 고민하다가 돈 때문에 포기했던 대안학교를 다시 알아볼까? 돈 문제는 대출로 해결하면 안될까?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내가 아이랑 지내면서 홈스쿨링을 할까? 나는 강사 생활도 제법 해봤고, 아이들과 노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잘 해낼 자신도 있는데 말야. 아니 그래도 아이들은 또래랑 지내는 게 제일 좋지. 아무리 무너진 공교육이라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제일 좋지 않겠어?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아 낼거야! 아이를 믿고 시간을 주자. 등등 수많은 생각과 고민들이 끊임 없이 들었다.

 

어쨌거나 이제 어린이집과 학교에 적응해가는 아이들을 보니 한편으로 대견하면서, 한편으로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삶이라는 여정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한심한 내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사실 잘난 척을 좀 하자면 나는 늘 적응을 참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왔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여졌던 모양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초기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금방 내 것으로 만드었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밤새 술을 마시며 금방 친해지곤 했다. 대학 시절 몇 가지 알바를 뛰었을 때에도 빨리 배우고 성실하다는 평을 들었고, 학원 강사 일을 할때도 금방 익숙해졌고, 아이들과도 상당히 잘 지냈다. 몇 군데의 시민단체 일을 하면서도 단체의 중심이 되는 활동과 내부 살림살이를 고루 익히고 배웠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며 선배들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잘난 척을 빼고, 솔직하게 말해본다면 남에게 보이는 모습만 그랬을 뿐, 그 과정들에서 나는 늘 힘들었고,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부터 해오던 업무는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해야하나. 너무 방심해서 가끔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가 있을 정도인데, 작년 연말부터 새롭게 맡은 업무는 이제 배워가는 입장이다. 서툴러도 너무 서투르다. 노력한다고, 시간을 들인다고 쉽게 익숙해지거나 적응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 내가 이렇게 모자라는 인간이었구나. 이제서야 자만심에서 벗어나 솔직하게 내 부족함을 들여다 본다.

 

그냥 예전 업무에서 새로운 업무로 전환이 된 것이라면 또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텐데,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맡고 있으니, 더 정신을 못 차리는 듯 하다. 새로운 일은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해 계속 삽질 중이고, 그러다 익숙했던 예전 일에서도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것도 제대로 못하고, 저것도 제대로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넷. 깨어나자!

 

진보와 혁신은 낡은 것을 제대로 잘 살펴보고 그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면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의식적으로 자꾸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이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내 견고한 매너리즘을 깨어보려고 노력중이다. 예전에 학생운동에 살짝 발을 두고 있었을 때, 여러가지 갈등과 문제를 겪으면서 나는 앞으로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지 말고, 계속해서 깨어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의 그 생각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그 각오를 새로이 다지면서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겠다. 끝없이 반성하고 깨어나려고 노력하자! 낡은 틀에 갇히는 순간 나는 예전에 내가 경멸했던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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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0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05-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많이 깨져 봐야 한다, 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말로 바꾸면 추락해 봐야 한다, 또는 실패해 봐야 한다...
그래야 자만심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글을 읽으니 깨어나자 로 표현해도 될 듯해요.
그런데 깨어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시민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것, 읽고 싶군요. 축하드리고 싶고요. ㅋㅋ

감은빛 2013-05-10 17:1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그닥 잘쓴 글이 아니라서 부끄럽네요.
(여기 쓰는 글도 물론 잘쓴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관심가져주시니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은평시민신문을 검색해서 들어가시면
오른쪽 박스에 연재물 목록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쉽게 제 글로 추정할 수 있는 연재물 제목이 있을거예요.

불편하게 알려드려 죄송합니다.
즐거운 금요일 밤 되세요!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자주 ‘빨갱이’라고 불린다. 한 후배 녀석은 나를 ‘성골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아버지께서 노동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듣더니, 나름 빨갱이 중에서도 족보 있는 빨갱이라고 그렇게 부른다. 그 단어가 녀석이 생각해도 재밌는지, 아주 열심히 부른다. 그 외에도 꼭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불리는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도 스스로 빨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종북좌파’라고 불렀다면 화를 냈을 거다. 나는 좌파는 맞을지도 모르지만 종북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빨갱이라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에게 시사문제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 내 의견을 들려주다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 등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개는 현상에 대해서는 체감하고 있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숨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순과 부조리를 깨닫지 못하는 걸까? 깨닫기를 원하지 않는 걸까? 깨닫기를 원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걸까? 혹은 깨달았음에도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모르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 우리과에는 아주 독특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조선일보를 1면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고, 우리나라 어지간한 대기업 총수들 이름을 다 외우고, 그뿐 아니라 그 총수들의 성공스토리도 대체로 다 꿰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랑 대화를 나누면서 불편했던 건 대기업을 회장 개인의 소유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친구랑 논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논쟁은 늘 평행선을 달리가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방식으로 끝났다. 결국 불편함을 참지 못해 그 친구와의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만약 그때 이 책이 나왔었다면, 그리고 내가 읽었더라면 훨씬 더 논리적으로 그 친구와 논쟁을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고보니 이 책은 과거에도 나왔었다고 한다. 2001에 미국에서 [Divine Right of Capital]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2003년에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가 다시 절판되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같은 책의 2003년도 판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번 책에는 저자인 마조리 켈리의 한국어판 서문이 실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책이 처음 나온 후 지난 10년간의 대략적인 변화를 짚어주고 있다. 그리고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미국과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소득 불평등이 높은 나라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큰 틀에서 알려주고 있다.

 

앞서 대학시절 친구와의 논쟁을 소개했지만,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기업의 주인을 경영자와 주식을 가진 주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대기업은 일개 개인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럼 그 기업에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무엇일까? 기계나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일까? 그래서 실제로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실컷 혹사당하다 나중에는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인가? 그래서 기업을 운영해서 남는 수익을 주주들이 사이좋게 나눠가지고, 노동자는 아무것도 받아가지 못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종업원이 창출한 부를 투기꾼에게 주는 것은 분명히 시장 원칙을 무시하는 짓이다.” (여기서 종업원이란 표현을 노동자로 바꿔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번역자가 굳이 종업원이란 단어를 쓴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해법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재산권을 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사실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워커즈 콜렉티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노동자 공동체가 운영하는 기업과 거의 비슷한 개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루기에는 매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제도적, 법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식회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고, 그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작은 반란을 일으켜 대중의 열의를 결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 계층들을 위해 ‘반란을 위한 설명서’를 적어놓았다.

 

저자는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인 ‘주가’라고 말한다. 나도 자본주의가 후기로 갈수록 극심해지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 덕분에 필연적으로 금융위기는 온다고 생각해왔다. 저자는 그런 내 생각을 거의 그대로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다만 진단에 그쳤을 뿐, 그 원인인 주식회사의 형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책 덕분에 한단계 더 실마리가 풀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책을 읽는데 오래 걸렸다. 책을 막 읽을 때에는 빨리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 글을 쓰는데 또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어쨌든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책을 알리고 싶었다.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은 후, 당장 내일부터 이 회사의 주인은 회장이나 사장이 아닌 나를 포함한 노동자들 모두라고 생각하고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은 단위에서라도 서로 모여 논의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나가면 좋겠다. 물론 당장 법과 제도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고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뭔가 더 변화의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일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당장 이 책을 구해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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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3-04-3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기업 사장들이 읽으면 좋을텐데... 그렇다고 모든 사장님들이 이런 책을 읽고 경영의 패러다임이 100% 전환할 지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요즘 경영은 노동자들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리더가 필요해요. 예전처럼 기업의 과업 우선, 리더 자신을 우선으로 쳐주는 경영은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을 뿐더러 내부 조직의 융화를 흐트러지게 합니다.

감은빛 2013-05-10 17:05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말씀 남겨주셨는데, 답이 늦었네요.

제 생각에는 기업 사장님들은 아예 이런 책에 관심을 안두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사회 시스템이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가진 이들이 이 책에 관심을 두기란 쉽지 않겠지요.
못가진 이들, 노동자들 조차도 이런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듯 하구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채식의 배신 -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외국 영화나 책이 국내에 소개되면 꼭 원제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Vegetarian Myth’다. 우리말로 옮기면 ‘채식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채식의 배신’과 비교해보면 느낌의 차이가 크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신문, 방송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 이 책이 언급되고, 여기저기서 이 책을 두고 말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채식을 하는 여러 지인들이 이 책을 언급했다. 그만큼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제목이다.

 

이 책의 저자는 거의 20년간 비건(Vegan) 채식을 했다. 비건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채식의 단계를 알아야 한다. 페스코(Pesco) 채식은 해산물은 먹지만, 육고기를 먹지 않는다. 오보(Ovo) 채식은 해산물과 육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지만, 계란은 먹는다. 락토(Lacto) 채식은 해산물과 육고기와 계란은 먹지 않지만, 우유와 유제품은 먹는다. 비건(Vegan) 채식은 우유와 유제품을 포함하여 모든 육식을 하지 않는다. 내 주위에도 아내(락토)를 비롯하여 채식인들이 제법 된다. 그중에 페스코가 대부분이고 락토는 거의 없으며, 비건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선정적인 제목 때문에 채식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글쓴이가 20년간 비건이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차근차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제목처럼 ‘채식의 배신’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채식만으로는 모자란다는 내용이다. 채식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제였던 ‘채식의 신화’는 채식주의자들이 각자가 빠져있는 신화에서 빠져나와 진실을 보기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도덕적인 이유로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주로 농업 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단순히 동물을 먹지 않는 것으로 도덕성을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주장은 농업의 본질은 파괴라는 내용이다. 농업은 흙을 죽이는 일이며, 강을 마르게 하고, 숲을 없애고, 목초지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 농업 때문에 지속적으로 표토가 사라지는 현상은 전 지구적 위기로 인식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 이 부분은 [흙](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 삼천리 / 2010년)을 읽으면서도 살펴봤던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자가 텃밭에서 민달팽이와 겪었던 일화는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주는 좋은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환경운동가나 공장식 축산에 대한 거부로 채식을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도 2008년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계기로 이 정치적 이유의 채식이 많이 늘었다. 여기서 저자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단순히 사료로 쓰이는 곡물의 양을 지적하는 것을 오히려 문제 삼으며, 채식이라는 행위 즉, 농업을 통해 얻은 곡물을 먹는 행위가 해답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인류의 수가 너무 많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현재의 농업으로는 그 많은 인류를 다 먹여 살릴 수 없으며,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이 텃밭에서 실행했던 바와 같은 다년생 혼작과 더불어 가축을 사육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특히 표토의 복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자연의 기본적인 패턴 안에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은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이다. 앞의 두 부분도 충분히 논란과 논쟁이 될만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이 현재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가장 첨예하게 논쟁 할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여기에 대한 비판의견을 여럿 접했다. 저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상황과 조건에 따라 틀린 말이 될수 있다고 본다.

 

어쨌거나 ‘채식’이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크게 관심 두지 않을 주제로 논쟁을 일으켜, 주의를 환기하고 다양한 정보와 주장을 들려준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저자의 여러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그저 ‘신화’(맹목적인 믿음 혹은 어리석은 믿음)로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이 책은 농업 문명과 흙의 문제를 환기시켰고, 채식보다 더 근본적인 실천을 강조한 점에서 한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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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2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부분만 조금 읽고 읽기를 멈췄는데, 충분히 읽어볼만한 이야기(우리는 원래의 사과를 지금처럼 달콤하게 변형시켰죠. 그렇다면 도덕주의측면에서 볼 때 육식을 하지 않는것만이 옳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식물도 생명임에는 틀림없으니까요.)라고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은빛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이 책을 안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을 다 읽었어도 저는 이렇게까지 정리를 잘 해서 생각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제게는 책 본문보다 더 잘 읽히고 유익한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

감은빛 2013-03-29 09:5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금요일이네요.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

숲노래 2013-03-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농업 방식으로 전 세계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는가 있는가'는 딱히 할 말이 없는 대목이곤 해요. 왜냐하면, '현재 농업 방식'보다 큰 문제는 '현재 도시 물질문명 방식' 사회에서는 사람들 누구나 '과식'을 너무 끔찍하게 하면서 '음식물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내놓거든요.

저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느끼지만, 시골사람 가운데 손수 논밭 일구는 사람치고 '밥쓰레기' 나오는 집은 아무 데도 없어요. 밥 먹고 남은 찌끄레기 조금 있으면, 소를 주거나 밭에 뿌려 거름으로 삼아요. 그나마, 할머니 할아버지 사는 집에는 음식물쓰레기가 나올 일조차 없어요. 저희 집도 음식물쓰레기 나올 일이 참 없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현대 사회처럼, 도시 중심으로 흐를 뿐 아니라, 도시사람 스스로 과식과 음식물쓰레기 철철 넘치는 얼거리를 그대로 두면, 이러한 도시사람 먹여살릴 농업은 이루어지지 못해서, 유전자조작 곡식과 비료 많이 쓰는 농업이 될밖에 없어요.

그러나, 도시 문명 얼거리를 깨고, 사람들 스스로 텃밭을 일구면, '참말 누구라도 소식(적게 먹기)'가 되어요. 사람들이 고기집에 가서 삼겹살 먹으며 풀(상추) 많이 먹는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 밭에 씨앗 뿌려 풀을 얻으면, 또는 그냥 저절로 자라는 풀을 뜯어서 먹으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더 못 먹지요.

"채식 신화"를 쓴 분은, 무엇보다 당신 몸 구조와 생체리듬을 똑똑히 밝혀서, 글쓴이 당신한테는 어떤 밥문화와 밥흐름이 알맞는가를 제대로 이야기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대로 알맞고 아름다운 길 걷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올바르고, 이 책이 한국에서도 올바르며 슬기롭게 읽히리라 생각합니다.

감은빛 2013-03-29 09:59   좋아요 0 | URL
이 글에 언급하지 않았는데,
저자는 전 세계에서 농업에 알맞은 땅이 대략 20% 밖에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책을 안갖고 있어서 수치가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땅은 농사를 지을 수는 있지만,
그러면 표토를 빠르게 잃고, 강과 개천을 마르게 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현대와 같은 대규모 농업방식
(아마 미국의 거대농업 시스템 같은 걸 말하는 듯)
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벼나 밀과 같은 1년생 초본을 대규모로 농사짓기 보다는,
소규모로 다년생 혼작을 하면서 여러 가축을 적절히 길러서,
채식과 육식을 함께 해야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주장해요.

함께살기님 말씀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3-03-2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식의 배신과 채식의 신화, 비슷해도 약간 다른 느낌을 받는 것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은빛 2013-03-29 10:02   좋아요 0 | URL
'배신'이란 단어가 주는 강한 거부감이 있죠.
아마 출판사는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책을 홍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책의 중심내용(본질)을 왜곡하는 제목이 된 것 같아 안타깝네요.

맥거핀 2013-03-31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사 같은 데서 다루어진 것만 보고, 단순히 채식에 대한 비판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감은빛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야기가 좀 다르네요. 말씀하신 대로 그간의 채식주의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군요.

글쎄요. 좀 다른 얘기겠지만, 위의 함께살기님 말씀대로 도시문명의 물질주의적 현상과도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공장식 축산, 공장식 농업을 소비하는, 소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결국 없는 사람들이죠. 적어도 현재의 구조 하에서는요. 현재의 구조에서 채식주의는 그렇게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선택'이죠. 그런 선택 자체를 사실 없는 사람들은 할 수도 없고(예를 들어 채식을 다루는 식당들 중의 상당수는 비싼 식당들이죠), 해도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고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채식주의를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함께살기님 말씀대로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데...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감은빛 2013-05-07 19:41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 많이 늦었습니다.
벌써 한달이 넘게 답을 드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저도 함께살기님 말씀이나 맥거핀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스템에 거스르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채식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고 실천해보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맥거핀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잘 모르지만,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견고한 이 구조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는 시도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움직임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기 있다. 순간적으로 몸이 긴장했다. 짧은 머리칼을 한번 매만지고, 헛기침도 한 두번 해보고, 얼굴을 찡그렸다가 입을 벌리면서 안면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옷 매무새를 한번 만져보고 천천히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다가갔다. 얼마 전부터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는 여성을 만났다. 처음엔 그냥 자주 보네 정도의 느낌만 가졌다. 이 버스는 우리가 타는 정류장에 올때쯤엔 늘 사람들로 꽉 차있다. 만원 버스라서 누가 먼저 타던 우린 바로 붙어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날엔 내가 그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면서 가고, 어떤 날엔 등 뒤에서 그이의 시선을 느끼며 가곤 했다.

 

이틀 전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던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기에 무슨 일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이 버스는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이다. 과학 시간에 배운 관성의 법칙이 이런 걸까? 내 앞에 서 있던 그이가 다음 순간 내 품에 안겨있었다. "어머!"라고 높은 소프라노 톤의 비명이 버스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정작 내게 몸을 기댄 그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니 "아!"하고 작게 소리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당황한 그이는 서둘러 몸을 바로 세우려 했지만 차기 기울어져 있어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는 의도치 않게 안은 모양새가 되어버린 팔을 살짝 벌려서 옆의 손잡이를 잡았다. 곧 버스가 출발하면서 그이는 몸을 바로 세웠으나, 다음 순간 다시 버스가 급하게 멈췄다. 그이는 또다시 내 품에 안겼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낯선 남자에게 두 번이나 안기다니! 처음과 달리 이번엔 거의 무방비여서 그이의 어깨가 내 가슴을 들이받을 때, 제법 충격이 느껴졌다. 버스는 시동을 다시 켜서 천천히 출발했다. 그이는 다시 몸을 일으켜 손잡이를 단단히 잡더니 내 쪽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마 5초쯤 되었을까? 그이가 안겨있던 그 짧은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만원 버스 안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얇은 면티셔츠를 통해 그이의 체온을 느꼈던 터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의식하지 않는 척 했지만, 자꾸만 그이의 옆 얼굴을 훔쳐보게 되었다. 그이 역시 모르는 척 하고 있지만 아마 내 쪽을 신경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문득 그이가 고개를 돌려 차분하고 조용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또 다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 그 눈빛을 마주 보기가 어려워 고개를 돌렸다. 왜 갑자기 나를 보았을까? 내가 자길 힐끔거리는 게 기분이 나쁘다는 뜻일까? 지금도 보고 있을까? 짧은 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잠시 후 버스에서 우루루 사람들이 내렸다. 드디어 조금 여유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보이길 바라며 자세를 바꾸면서 그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줄 알았던 그이는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창밖으로 눈을 주고 있었다.

 

어제는 그이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평소보다 5분 늦게 나와 그 버스를 놓친 것이다. 사실 또 마주치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한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처음에 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수 없었다. 시간을 묻는 건 너무 뻔해보이고(우린 계속 같은 시간대에 같은 버스를 타고 있으니), 뜬금 없이 날씨 얘길 건네는 것도 웃기다. 뭔가 자연스레 말을 걸어볼 꺼리가 없을까? 고민을 거듭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또 그이가 저기 버스 정류장 앞에 서있다.

 

 

 

그래. 너무 뻔해 보이긴 하지만 그냥 솔직하게 말을 걸어보자. 자주 마주치는데, 인사라도 한번 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래서 반응이 괜찮으면 계속 말을 걸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그냥 그만두지 뭐.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막상 그이 근처에 다가서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은 더운데, 자꾸만 덜덜 떨렸다. 지금쯤 말을 걸어야 할텐데, 좀 있다 버스가 오면 기회를 놓치는데, 오늘은 꼭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자, 지금이야. 말을 걸어!

 

"저기"

"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그이가 나를 본다. 놀란 듯한 표정.

 

"저, 저희 여기서 자주 마주치네요. 아침마다 계속 마주치니까, 인사라도 하면서 지내면 어떨까 해서요."

 

그이는 같은 표정, 같은 자세로 아무런 말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뭔가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낄 즈음, 그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자주 뵈었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엊그제는 죄송했어요."

"아, 아닙니다. 그 버스가 워낙 그. 그런 일이 자주 생기죠."

 

그이는 여전히 표정변화 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하고는 뒷 머리를 긁으며,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그 뒤에도 매일은 아니지만 계속 그이와 마주쳤다. 난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그이는 작은 목소리로 답하거나, 입은 열지 않고 그냥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인사를 나눈 후에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뭔가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마땅한 꺼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어찌보면 무표정해 보이는 그이의 얼굴을 마주하면 왠지 말걸기가 어려웠다.

 

그 날도 우린 만원버스에 올라 사람들에게 틈에 간신히 끼어 있었다. 그날따라 기사 아저씨의 난폭운전은 극에 달했다. 버스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급하게 속력을 줄이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크게 커브를 돌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사람들 틈에서 밀리고 또 밀렸다. 내리막 길에서 버스는 속도를 한껏 높였다. 버스가 기울어져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쪽 방향으로 쏠렸다. 문득 내 등을 짚는 그이의 손바닥이 느껴졌다. 다음순간 그이의 몸이 내 등에 닿았다. 부드럽고 푹신한 느낌이 닿은 후 그대로 체중이 실렸다. 손잡이를 잡은 팔에 힘을 꽉 주고, 앞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버텼다. 이 내리막길이 이렇게 길었던가? 경사가 급한 크게 휘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내내 그이는 내게 기대어 있었다. 마침내 내리막길이 끝나자 내 등을 짚은 손바닥에 힘이 느껴지더니 등에 닿아있던 몸이 떨어졌다. 이마에 흥건한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아까 등에 닿았던 부드럽고 푹신한 느낌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얼굴이 붉어졌다.

 

사람들이 많이 내려 차 안이 널널해졌을 때, 내가 앞 쪽 의자가 비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이에게 보았다. 창밖을 바라보던 그이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차분한 눈길이 돌아왔다. 나는 눈짓으로 빈 의자를 가르켰다. 그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사양하지 않고 어깨에 맨 가방을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그이가 내 허벅지를 톡톡 건드렸다. 한 쪽으로 맨 내 가방을 가르키며 달라는 몸짓을 했다. 손을 내저으며 아니예요. 괜찮아요. 작게 말했다. 그래도 그이는 내 가방을 잡더니, 자기 무릎으로 당겼다. 아니. 괜찮아요. 근데 이거 무거울텐데. 억지로 내 가방을 무릎 위 자신의 가방 위에 올린 그이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무얼 보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가만히 그 옆 얼굴을 살폈다. 선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묶어 올린 머리칼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해 여름 내내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함께 탔던 우리는 잠시 사귀다가 여름이 끝나 가을로 넘어가던 무렵 헤어졌다. 나는 버스를 타는 시간대를 늦췄고, 그 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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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1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새벽의 글도 그렇고, 이 글도 좋아요, 감은빛님.
:)

감은빛 2013-03-14 17:5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좋아해주시니 영광입니다! ^^
 
생명공학 소비시대 알 권리 선택할 권리 - 한국인 식탁에 등장하는 GMO와 복제 쇠고기를 둘러싼 쟁점
김훈기 지음 / 동아시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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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동물해방]을 읽은 후 스타워즈 프리퀄의 첫 시작인 [보이지 않는 위험]을 언급하면서 글을 썼다. 이번에도 역시 이 영화의 제목으로 글을 시작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GMO와 복제 동물 식품의 특징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 번째는 ‘위험이 예측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고, 두 번째는 ‘위험의 대상인 식품이 소비자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 두 특징을 한 마디로 줄이면 바도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식품산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눈에 보이고 어느 정도 예상되는 위험과 보이지 않고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 중에 어떤 것이 더 위협적일까? 단연 후자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방사능이 황사처럼 눈에 보인다면 그래도 조금은 덜 무서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볼 수 있고, 가능한 한 노출이 덜 되도록 피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위험을 끼치는 방사능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 위험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굳이 손자병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무섭고 치명적이면서 보이지 않는 적에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렵고 복잡해보이는 이 생명과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과학에 대해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더욱 망설여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책은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설명을 잘 해준다.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기 쉽게 단계를 밟아가며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친절한 설명과 예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더불어 이 책은 2013년 1월 현재 한국 생명공학의 최신 뉴스와 쟁점들을 모두 모아 잘 정리해주었다. 쉽고 친절한 설명에 이어 다루어야 할 꺼리들을 모두 다 담아냈다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최고라는 말을 붙여줘도 좋겠다.

 

책은 GMO라는 용어에 대한 정리부터 시작한다. 과학 용어도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다양한 용어를 알려준다. 그리고 Q&A 형식으로 우리가 자주 궁금해하고 혼동하는 내용들을 정리했다. 이거 정말 처음부터 큰 도움이 되었다. 유전자 조작(변형)을 통한 농산물과 육종을 통한 농산물의 차이부터 왜 그 많은 GMO가 한국 소비자들 눈에는 잘 안보이는지까지 하나하나 잘 몰랐던(하지만 꼭 기억해두어야할)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GM 농산물 수입국의 쟁점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GM 농산물 승인 건수가 많다. GM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우리처럼 순수 수입만 하는 나라 중에서는 무려 2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우리는 그 실태를 잘 모르고 있다. GM 농산물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체에 유해한지를 잘 검증하고, 생태계 교란 가능성에 잘 대비하고, 정부의 심사 과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아울러 GM 농산물 표시제에 의해 소비자들이 반드시 알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수입국의 입장에서 이러한 쟁점들을 잘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는 부분은 두 번째 챕터인 GM 농산물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처음 듣는 용어들을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었고, 각 진행과정 역시 상세하게 알려주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또 복제 동물의 위험성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오랜만에 황우석이란 이름을 되새겨 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식품들에 대해 잘 알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이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친절하고 쉬운 설명을 들려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곧 우리나라가 GM 농산물을 재배하는 생산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곧 우리 밥상에 복제 쇠고기와 같은 복제 동물의 고기가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지금 널리 읽히고, 소비자 단위에서 공론화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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