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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배신 -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외국 영화나 책이 국내에 소개되면 꼭 원제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Vegetarian Myth’다. 우리말로 옮기면 ‘채식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채식의 배신’과 비교해보면 느낌의 차이가 크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신문, 방송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 이 책이 언급되고, 여기저기서 이 책을 두고 말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채식을 하는 여러 지인들이 이 책을 언급했다. 그만큼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제목이다.
이 책의 저자는 거의 20년간 비건(Vegan) 채식을 했다. 비건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채식의 단계를 알아야 한다. 페스코(Pesco) 채식은 해산물은 먹지만, 육고기를 먹지 않는다. 오보(Ovo) 채식은 해산물과 육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지만, 계란은 먹는다. 락토(Lacto) 채식은 해산물과 육고기와 계란은 먹지 않지만, 우유와 유제품은 먹는다. 비건(Vegan) 채식은 우유와 유제품을 포함하여 모든 육식을 하지 않는다. 내 주위에도 아내(락토)를 비롯하여 채식인들이 제법 된다. 그중에 페스코가 대부분이고 락토는 거의 없으며, 비건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선정적인 제목 때문에 채식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글쓴이가 20년간 비건이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차근차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제목처럼 ‘채식의 배신’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채식만으로는 모자란다는 내용이다. 채식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제였던 ‘채식의 신화’는 채식주의자들이 각자가 빠져있는 신화에서 빠져나와 진실을 보기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도덕적인 이유로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주로 농업 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단순히 동물을 먹지 않는 것으로 도덕성을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주장은 농업의 본질은 파괴라는 내용이다. 농업은 흙을 죽이는 일이며, 강을 마르게 하고, 숲을 없애고, 목초지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 농업 때문에 지속적으로 표토가 사라지는 현상은 전 지구적 위기로 인식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 이 부분은 [흙](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 삼천리 / 2010년)을 읽으면서도 살펴봤던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자가 텃밭에서 민달팽이와 겪었던 일화는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주는 좋은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환경운동가나 공장식 축산에 대한 거부로 채식을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도 2008년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계기로 이 정치적 이유의 채식이 많이 늘었다. 여기서 저자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단순히 사료로 쓰이는 곡물의 양을 지적하는 것을 오히려 문제 삼으며, 채식이라는 행위 즉, 농업을 통해 얻은 곡물을 먹는 행위가 해답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인류의 수가 너무 많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현재의 농업으로는 그 많은 인류를 다 먹여 살릴 수 없으며,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이 텃밭에서 실행했던 바와 같은 다년생 혼작과 더불어 가축을 사육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특히 표토의 복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자연의 기본적인 패턴 안에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은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이란 제목이다. 앞의 두 부분도 충분히 논란과 논쟁이 될만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이 현재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가장 첨예하게 논쟁 할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여기에 대한 비판의견을 여럿 접했다. 저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상황과 조건에 따라 틀린 말이 될수 있다고 본다.
어쨌거나 ‘채식’이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크게 관심 두지 않을 주제로 논쟁을 일으켜, 주의를 환기하고 다양한 정보와 주장을 들려준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저자의 여러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그저 ‘신화’(맹목적인 믿음 혹은 어리석은 믿음)로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이 책은 농업 문명과 흙의 문제를 환기시켰고, 채식보다 더 근본적인 실천을 강조한 점에서 한번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