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이데올로기
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자주 ‘빨갱이’라고 불린다. 한 후배 녀석은 나를 ‘성골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아버지께서 노동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듣더니, 나름 빨갱이 중에서도 족보 있는 빨갱이라고 그렇게 부른다. 그 단어가 녀석이 생각해도 재밌는지, 아주 열심히 부른다. 그 외에도 꼭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몇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불리는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도 스스로 빨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종북좌파’라고 불렀다면 화를 냈을 거다. 나는 좌파는 맞을지도 모르지만 종북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빨갱이라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에게 시사문제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 내 의견을 들려주다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 등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개는 현상에 대해서는 체감하고 있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숨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순과 부조리를 깨닫지 못하는 걸까? 깨닫기를 원하지 않는 걸까? 깨닫기를 원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걸까? 혹은 깨달았음에도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모르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 우리과에는 아주 독특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조선일보를 1면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고, 우리나라 어지간한 대기업 총수들 이름을 다 외우고, 그뿐 아니라 그 총수들의 성공스토리도 대체로 다 꿰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랑 대화를 나누면서 불편했던 건 대기업을 회장 개인의 소유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친구랑 논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논쟁은 늘 평행선을 달리가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방식으로 끝났다. 결국 불편함을 참지 못해 그 친구와의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만약 그때 이 책이 나왔었다면, 그리고 내가 읽었더라면 훨씬 더 논리적으로 그 친구와 논쟁을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고보니 이 책은 과거에도 나왔었다고 한다. 2001에 미국에서 [Divine Right of Capital]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2003년에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가 다시 절판되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같은 책의 2003년도 판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번 책에는 저자인 마조리 켈리의 한국어판 서문이 실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책이 처음 나온 후 지난 10년간의 대략적인 변화를 짚어주고 있다. 그리고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미국과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소득 불평등이 높은 나라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큰 틀에서 알려주고 있다.

 

앞서 대학시절 친구와의 논쟁을 소개했지만,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기업의 주인을 경영자와 주식을 가진 주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대기업은 일개 개인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럼 그 기업에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무엇일까? 기계나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일까? 그래서 실제로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실컷 혹사당하다 나중에는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인가? 그래서 기업을 운영해서 남는 수익을 주주들이 사이좋게 나눠가지고, 노동자는 아무것도 받아가지 못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종업원이 창출한 부를 투기꾼에게 주는 것은 분명히 시장 원칙을 무시하는 짓이다.” (여기서 종업원이란 표현을 노동자로 바꿔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번역자가 굳이 종업원이란 단어를 쓴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해법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재산권을 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사실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워커즈 콜렉티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노동자 공동체가 운영하는 기업과 거의 비슷한 개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루기에는 매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제도적, 법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식회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고, 그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작은 반란을 일으켜 대중의 열의를 결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 계층들을 위해 ‘반란을 위한 설명서’를 적어놓았다.

 

저자는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인 ‘주가’라고 말한다. 나도 자본주의가 후기로 갈수록 극심해지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 덕분에 필연적으로 금융위기는 온다고 생각해왔다. 저자는 그런 내 생각을 거의 그대로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다만 진단에 그쳤을 뿐, 그 원인인 주식회사의 형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책 덕분에 한단계 더 실마리가 풀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책을 읽는데 오래 걸렸다. 책을 막 읽을 때에는 빨리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 글을 쓰는데 또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어쨌든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책을 알리고 싶었다.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은 후, 당장 내일부터 이 회사의 주인은 회장이나 사장이 아닌 나를 포함한 노동자들 모두라고 생각하고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은 단위에서라도 서로 모여 논의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나가면 좋겠다. 물론 당장 법과 제도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고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뭔가 더 변화의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일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당장 이 책을 구해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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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3-04-3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기업 사장들이 읽으면 좋을텐데... 그렇다고 모든 사장님들이 이런 책을 읽고 경영의 패러다임이 100% 전환할 지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요즘 경영은 노동자들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리더가 필요해요. 예전처럼 기업의 과업 우선, 리더 자신을 우선으로 쳐주는 경영은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을 뿐더러 내부 조직의 융화를 흐트러지게 합니다.

감은빛 2013-05-10 17:05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말씀 남겨주셨는데, 답이 늦었네요.

제 생각에는 기업 사장님들은 아예 이런 책에 관심을 안두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사회 시스템이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가진 이들이 이 책에 관심을 두기란 쉽지 않겠지요.
못가진 이들, 노동자들 조차도 이런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듯 하구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