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연
지난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이틀 연속으로 중요한 일정들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내가 일하는 일터인 협동조합에서 조합원 송년회가 있었다. 지난 글에서도 썼는데, 우리 조합 송년회는 매년 재미있는 행사들을 기획하기 때문에 참석하시는 조합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 송년회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 해보자. 토요일 오후에는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의 12주년 후원의 날이자,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나는 이 도서관과 초기부터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었다. 초기부터 이 작은 도서관을 후원하는 후원회원이며, 초기 한동안 운영위원도 했었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에는 자주 여기 데려와서 함께 놀기도 했다. 12년 전에는 녹색당 창당할 즈음이었다. 여기 도서관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녹색당 지역 모임을 여기서 했었고, 이후 긴 시간 동안 녹색당 활동의 거점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었다. 2020년 초에 비례위성정당 사태로 인해 탈당하기 전까지 나는 지역 녹색당 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그때 이 도서관이 중요한 거점 공간이 되어주었다.
이 도서관의 12년 역사를 담은 책이 나왔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구매하고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당일 두 저자의 대담 내용을 들어보니 옛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 이 도서관에서 많이 놀았는데, 책 제목에도 표현되어 있듯이, 이 작은 도서관은 조용하게 책만 읽는 도서관이나 독서실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다. 이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이 친구 역시 나와 함께 녹색당 활동을 했던 친한 지인이다. 놀이 강사라고 불리지만,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함께 놀고 지내는, 아이들의 친구라 할 수 있다. 한때 유행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에서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와서 좀 신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구체적인 행위를 들여다보면 그 드라마의 등장인물과는 많이 다를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함께 노는 태도는 비슷하다.
토요일 행사장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다양한 공연과 프로그램들은 모두 얼마나 성실하게 준비했는지 느낄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무려 3부까지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제공된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의 뒷정리를 도왔다. 그리고 주최측이 알려준 뒷풀이 장소로 갔다가 아주 특별한 인연들을 다시 만났다.
무척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인연은 두 시인이었다. 안상학 선생님과 문동만 선배님이 그 두 사람이다. 일단 문동만 선배님은 예전에 일했던 노동자 문학을 주로 내는 출판사에 일할 당시에 알게된 분으로 당시 여러 시인 선배님들을 만났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제일 호감이 가는 분이었다. 너무 오래만에 만난 거라 혹시 나를 못 알아보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인사를 드리니 조금 기억을 떠올리다가 알아보신 듯하다.
안상학 선생님은 이 도서관 덕분에 인연을 맺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잠시 운영위원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 시기에 안상학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그 프로그램의 진행을 내가 맡았었다. 강의야 선생님이 그냥 하시면 되었지만, 강의를 마치고 질의 응답 시간을 좀 길게 가졌는데, 그 진행을 내가 맡았었다. 그날은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날이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 도서관에 와 있었다. 아이들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자기들끼리 그림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등 알아서 놀았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간단한 음식과 술을 먹으며 안상학 선생님과 참가자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당시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큰 아이가 자기가 쓴 시에 직접 그림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려고 가져왔었다. 옆에 계시던 안상학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쓴 시를 보셨고, 그 시가 무척 좋다고 칭찬을 하시더니, 다른 시도 있으면 보여달라고 하셨다. 큰 아이는 신이 나서 직접 시를 쓰고 그림도 그린 종이들을 가져왔다. 당시 선생님은 아이가 쓴 시를 크게 칭찬하시며, 나중에 모아서 출판하면 좋겠다고 하셨고, 그 중 일부를 가져가고 싶다고 하셔서 몇 장을 드렸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큰 아이는 지금 고3이며, 이번에 모 대학 문창과에 합격했다. 약 한 달 반 뒤에는 졸업을 할 것이고, 3월에는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다. 안상학 선생님을 엄청 오랜만에 뵙게 되어서 반가웠던 나는 그 옛날 아이의 시를 보시고 크게 칭찬하셨었다고 기억 나시냐고 여쭤봤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기억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그 초등학생이 지금 모 예고 문창과에서 시를 전공하고 있으며, 이번에 모 대학 문창과에 합격했다고 큰 아이의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께서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시인들에게도 옛날 그 일화를 전하시며, 우리 아이가 당시 썼던 시들이 엄청 훌륭했다고 칭찬을 하셨다. 나는 딸바보 팔불출이라 계속 입이 귀에 걸리고 어깨가 으쓱한 상태로 그 시간을 즐겼다. 사실 낮에 큰 아이에게 그 도서관 행사에 같이 가자고 권했었는데, 만약 아이가 따라왔다면 다시 선생님을 뵙고 직접 인사드릴 수 있었을텐데 하고 아쉬운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다. 아이가 귀찮다고 집에 있고 싶다고 했던 것이 아쉬웠다.
안상학 선생님은 앞서 언급한 문동만 선배님에게도 내 큰 아이 이야기를 했고, 문동만 선배님도 놀라며 아이의 문창과 합격을 축하해주셨다. 그리고 안상학 선생님은 가방에 1권 있는 본인 시집에 아이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해주셨다. 아이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나중에 시집을 전해줬는데, 불행히도 큰 아이는 당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에 언젠가 인사드릴 일이 또 생기겠지.
이 책이 그날 안상학 선생님께서 사인을 해주신 책이다. 그 자리에는 이 시집을 발행한 '걷는 사람' 출판사의 대표인 김성규 시인도 계셨다.
정신 없었던 날
올해 송년회 이야기를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야겠다. 늘 이런 저런 행사를 기획할 때마다 어떻게 홍보하고 얼마나 많은 참가자를 모시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도 며칠 전까지 참가자가 적을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하면서 행사 준비를 했다. 그런데 당일 시간이 다 되었을 때부터 사전에 참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조합원들이 오시기 시작하더니 점점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왔다. 행사를 본격적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준비했던 약 서른 개의 의자가 다 차버려서 새로 의자들을 옮겨와야 했다. 우리가 준비한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서 딱 30명 정도가 알맞은 곳인데, 막판에 살펴보니 거의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오셨더라. 의자를 더 가져와도 배치할 공간이 없었는데, 몇몇 분들은 아예 서서 참여하시기도 했다.
준비 단계에서 영화 퀴즈(유명한 대사를 듣고 제목 맞추기)를 한다고 들었는데, 당일 낮까지도 어떤 방식으로 명대사를 보여줄 지 정하지 못하고 있길래, 그냥 내가 대사를 말하겠다고 했다. 준비팀에서 뽑은 대사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 아는 것들이었고, 몇몇 대사는 그 특유의 억양을 살려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대모사는 절대 아니고, 그저 대사 톤 흉내내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막상 그 많은 사람들 앞에 서고 보니, 진행자가 '연기'라고 표현했다. 아! 나는 절대 연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는데. 암튼 졸지에 여러 명대사를 연기하게 되었는데, '발연기' 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뭐, 어쩌겠는가? 내가 무슨 연기자는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노래. 약 10 팀의 장기자랑 공연이 있었다. 시낭송과 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노래였다. 두 팀은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준비팀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내 노래를 맨 뒤로 돌렸다. 지난 글에서는 친한 후배와 함께 노래를 준비한다고 썼었는데, 둘이 직접 노래를 불러보니 서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의견이 갈렸고, 결국 각자 따로 부르기로 했다. 나는 한때 참 좋아했던 [푸른 하늘]의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라는 긴 제목의 노래를 골랐다. 일단 이 노래의 음정을 외우고 있어서 별도로 연습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유가 제일 컸고, 다음으로 가사가 송년회와 잘 어울린다고 후배들이 말해줬기 때문이다. 이 선곡 때문에 내 순서가 맨 뒤로 간 것이기도 했다. 노래는 내 기준으로는 망했고, 몇몇 친한 지인들 외에는 내 노래를 거의 들은 적이 없는 당시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그럭저럭이었던 것 같다. 일단 첫번째 실수는 마이크 선택이었다. 유선과 무선 마이크가 있었는데, 앞의 참가자들이 유선 마이크와 무선 마이크 중 각자 가까이 있는 것들을 골라 쓰는 것을 보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내 바로 옆에 손이 닿는 곳에 유선 마이크가 있어서 그걸 집어 들고 노래를 불렀는데, 생각보다 내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 당황해서 음정이 좀 불안해지거나, 원하는 형태의 목소리가 안나오는 등의 실수들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워낙 오랜만이기도 했고, 앞에 글에서 썼듯이 무대에서 실수했던 경험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긴장을 하기도 했다. 암튼 결론적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어서 이 정도면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네 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았다. 하나 다행인 것은 내 순서가 맨 뒤이기도 했고, 곡의 분위기 덕분에 행사장의 불을 완전히 끄고 사람들이 휴대폰 플래쉬를 켜줬다. 한창 긴장해 노래를 시작했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고 관객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불 끄고 폰 플래쉬를 켜 달라고 한 사람에게 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유튜브 알고리즘
새해를 맞자마자 여러 사건 사고들 소식이 이어진다. 우리 집에는 티비가 없어서 나는 뉴스를 유튜브로 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주요 뉴스 클립들을 몰아서 보고,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꼭 날씨를 보는 편이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8시 뉴스나 9시 뉴스를 켜놓고 씻고 가벼운 집안 일을 한다. 내 유튜브 메인 화면에는 뉴스,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 일부 스포츠 소식들, 영화 관련 소식들이 나온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렇다.
일본의 지진 소식은 정말 참담하고 충격적이었다. 작년 튀르키예, 시리아 지진도 정말 충격이었는데, 이번 일본 지진도 그에 못지 않았다. 폭삭 무너진 건물들을 영상으로 보면서, 이 겨울 추위에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린, 혹은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항공기 폭발 사고 소식도 지진 못지 않은 충격이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370명이 넘는 탑승자 전원이 무사히 탈출했다는 소식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화염에 완전히 휩싸인 기체에서 인명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승무원들이 잘 이끌고 승객들이 잘 따라주어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았다. 이게 일본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다. 우리나라였다면? 5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4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일사분란하게 탈출할 수 있었을까? 장담하기 어렵겠지만, 어려울 거란 생각이 먼저 든다.
이재명 대표의 피습 소식도 좀 충격이긴 했는데, 내가 워낙 파란당을 싫어하다 보니, 크게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물론 아무리 싫어해도 그렇게 흉기를 습격을 가하는 피의자를 두둔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자는 마땅한 법의 심판을 받아 죗값을 치러야 한다. 목에 치명상을 입긴 했지만, 천만 다행으로 수술을 잘 마쳤다고 하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필이면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보러 가서 습격을 당한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무조건 파란당의 실책이며, 절대 추진하면 안 되는 개발 사업이다. 이래서 내가 파란당을 빨간당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보니 구급차가 늦게 도착했다고 원망하는 목소리들이 들리던데, 그 동네가 그런 동네다. 언론에서 15분 걸렸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정말 빨리 도착한 거다. 그런 외진 동네에 신공항을 짓겠다고? 아니 전국적으로 이용객 수가 말도 안되게 적은 공항들이 몇 개나 되는지 알긴 하나? 제주 신공항도 그렇고 가덕도도 그렇고. 이 기후위기 시대에 신공항이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인간의 다양한 활동 중에 가장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일은 우주로 로켓을 날리는 일이고, 그 다음이 비행기를 띄우는 일이다. 말로는 기후위기를 떠들면서 비행기를 자주 타고, 공항을 많이 이용하는 일은 내로남불과 마찬가지 태도다.
1:1 테스트 강의 평가
아, 알고리즘 얘기하면서 외국어 공부 영상들을 빠뜨렸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어아어 등이다. 내가 즐겨보는 몇몇 영상들에서 자주 하는 말은 외국어를 공부하려고 들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냥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말이 쉽지 한국에 살면서 다른 외국어에 익숙해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은 꾸준히 하는 일이다. 몇몇 외국어 익힘 앱에 재미를 붙여서 며칠, 몇 주 정도는 꾸준히 하지만, 그게 몇 달까지 가기는 참 어렵더라. 늘 바쁘다는 핑계로 잊혀지곤 한다.
그나마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잊을만 할 때쯤에는 다시 시작하곤 한다는 것. 최근에는 새로운 언어 익힘 앱을 다운 받았는데, 다른 앱들이 무료 서비스를 일부 제한적으로 제공하면서 유료 서비스를 끊임없이 제안하는 것과 달리, 무료 서비스가 맨 처음 단 1회 제공되고 이후엔 무조건 유료 결제를 해야 하는 앱이라는 것을 다운 받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첫 1회는 일종의 레벨테스트 성격의 강의였다. 맨 처음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셋 중 하나의 언어를 선택해야 했고, 그 다음에는 현재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로 되어 있었다. 저 3개를 다 배우고 싶은데, 셋 다 선택은 안 되려나? 아니, 어쩌면 다 돈을 내면 되지 않을까?
일단 영어를 선택해봤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뭐 기초 중의 기초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겠지만, 영어는 그래도 조금은 자신이 있으니까. 영어를 선택한 후에 자신의 레벨을 선택해야 하는 단계에서 나는 좀 오래 망설였다. 레벨 0부터 레벨 7까지 총 8단계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레벨 3과 레벨 4 사이에서 좀 망설였다. 레벨 3은 간단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아마 이런 설명이었던 것 같고, 레벨 4는 익숙한 분야에 대해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열심히 영어 회화 학원에 다녔을 때에는 자신있게 레벨 4나 레벨 5를 선택했을 것 같은데, 이후로 긴 시간 영어를 잊고 살았기 때문에 레벨 3도 좀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레벨 3을 선택하기에는 또 자존심이 상해서 결국 레벨 4를 선택했다.
원어민 강사와 1대1 레벨테스트 성격의 시범 강의 시간을 정하도록 되어 있어서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8시에 매장을 정리한 직후에 그 수업을 받았다. 직접 원어민과 1대1로 소통하는 강의를 받는 것은 처음이라 좀 긴장이 되긴 했다. 강사님은 약간 영국식 억양이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젊은 분은 아니고 조금 나이가 있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스피커 폰 상태로 진행했는데, 목소리가 좀 멀게 들려서 아쉬웠다. 암튼 강사님의 말투는 조금 빠른 편이라 처음에 좀 당황했다. 아, 나 역시 레벨 3을 선택했어야 했을까? 그런데 어쩌면 레벨 선택과 말의 빠르기는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감이 조금 멀게 들리기는 했지만, 열심히 집중해서 들었다. 말이 빨라서 제대로 다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핵심 단어들은 들렸다. 나는 조금 어버버 하다가 곧 적응하여 열심히 대답했다. 강의 안은 미리 정해져 있었는데, 그 수준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강사님이 즉흥적으로 내 상황이나 선택을 묻는 질문이 어려웠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전치사나 동사 변형 형태가 헷갈렸다. 그래도 묻는 질문들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답을 이어갔다.
20분간 정해진 분량의 강의를 마치고, 개인적인 질문들과 기본 내용에서 응용하는 질문들까지 다 소화를 하고 수업을 마쳤다. 강사님은 내 대답에서 어법에 어긋나는 표현들을 짚으며 바른 표현들을 알려줬다. 예를 들면 단수, 복수 표현의 실수들. 전치사 실수들. 동사형과 명사형을 잘 못 쓴 실수들 등. 딱 하나 발음 실수도 짚어주셨다. 길게 발음해야 할 단어를 짧게 한 경우였다. 마지막에 강사님은 종합적으로 내 상태를 알려주셨다.
일단 총평은 레벨 4가 적절한 단계라고 했다. 문법은 7점 만점에 5점을 주셨다. 다양한 표현들을 주저없이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흠, 문법에 전혀 안 맞는 말들만 떠든 것 같아서 민망했는데, 그렇게 엉망은 아니었나 보다. 어휘도 7점 만점에 5점을 주셨다. 의사 표현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어휘력을 갖췄다고 평했다. 다만 한 단어가 가진 다른 뜻들을 유의해서 잘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듣기 역시 7점 만점에 5점을 주셨다. 앞에 쓴 것처럼 사실은 말이 생각보다 빨라서 못 알아들은 부분들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핵심 단어들을 캐치했기 때문에 답을 놓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들키지 않은 것 같다. 사실대로 하면 이건 3점 이나 4점을 받아야 했을 듯. 발음은 6점 만점에 6점을 주셨다. 왜 여기서는 7점 만점이 아니라 6점 만점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만점을 받았다. 단 하나 지적 받았던 단어, 장음을 단음으로 잘못 발음한 단어 하나만 지적했을 뿐, 원어민과 소통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발음이라고 했다. 마지막 평가 항목은 자신감이었는데, 이것도 6점 만점에 6점을 주셨다. 주저하지 않고 끝까지 문장을 말하는 자신감을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좋은 평가를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냉정하게 본다면 문법이나 듣기는 점수를 후하게 줬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생각보다 빨라서 당황한 것 외에는 그 선생님의 태도와 강의 방법은 마음에 들었다. 만약 유료 결제를 한다면 이 강사님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핵심은 유료 결제 금액이 얼마이냐 하는 것이겠지. 당연히 타임 리밋을 정해놓고 이벤트가 곧 끝난다고 서둘러 결제하라는 안내가 접속할 때마다 떴다. 결제는 3개월, 6개월, 12개월 중에 선택할 수 있는데, 12개월은 1달 강의료가 저렴하고 할인이 많이 들어가는 대신, 한번에 결제해야 할 금액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3개월은 할인이 거의 없지만, 한번에 결제할 금액은 부담이 덜했다. 뭐, 이것도 너무 당연한 일이지. 헬스클럽과 회화학원도 다들 마찬가지다. 와! 할인이 이만큼이나! 하면서 12개월을 결제하기엔 나는 이미 이런 경험이 너무 많다.
강사님의 좋은 평가 덕분에 결제를 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던 것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1회 20분 수업은 짧고, 내가 몰랐던 것들을 친절하게 짚어주는 원어민 강사님은 너무 감사하지만, 그 정도 내용을 위해 매달 지불해야 할 금액은 역시 부담스럽다. 사실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다른 무료 앱들을 통해 어지간한 내용들은 다 익힐 수 있다. 물론 제일 좋은 점은 실수를 교정해주는 것인데, 그것도 다른 무료 앱에서 제공하는 것들이 있긴 하다.
일단은 조금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기존에 써왔던 다른 무료 앱들을 좀 더 잘 이용해보는 것으로. 확실히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맞다. 갑자기 영어를 좀 더 열심히 해보고 싶은 의욕이 막 든다. 일단 오늘 자기 전에 다른 무료 앱들을 돌면서 최대한 잘 활용하는 법을 생각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