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실체는 공룡 혹은 고래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태블릿을 켜고 유튜브에 접속해서 뉴스 영상 하나를 찾아서 재생시키고 일어나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밤 사이 사건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었는데, 중부고속도로 어딘가에서 얼어 있는 노면 때문에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짧은 뉴스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최재천 교수님의 영상이 자동 재생으로 이어 나왔다. 올해가 용띠 해라고 용의 실체에 대해 교수님께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내용이었다. 과거 미국 모 대학에 계실 때, 학술 교류 행사 같은 곳에서 어느 타 대학 교수님이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용의 모습을 비교해 설명하면서 서양 용은 날개가 있는 도마뱀 형태에 가깝고, 동양 용은 날개가 없고 뱀의 형태에 가깝다는 내용 등을 발표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다 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 구체적인 내용들은 조금씩 다 다르다는 점이다. 이어 최재천 교수님은 자신은 용이 무엇인지 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답은 공룡의 뼈나 고래의 뼈였을 것이라는 추정이었다.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면 분명 무엇인가를 보긴 봤다는 것인데, 우리는 용이라는 동물이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그 형태가 존재하기 어려운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도 안다고 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살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공룡 뼈들을 보았을 것이고, 해안가에서는 고래 뼈를 보았을 것인데, 그 거대한 뼈를 보며 상상한 동물의 형태가 용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라고 말씀하셨다.


믿음과 의심, 신뢰와 불신


어떤 단어들을 나란히 나열하는 류의 제목을 좋아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건 제인 오스틴 소설들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과 편견]은 평생 가장 많이 다시 읽은 소설이고, [이성과 감성] 역시 두세번 읽었다. 대립하는 혹은 반대되는 혹은 유사한 단어를 병렬로 두는 것을 제목으로 삼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끼고 그렇게 제목을 정하는 것을 종하하는 성향은 분명 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연말, 아마도 한 달쯤 지난 일인 것 같다. 밤 늦게까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크게 의견 다툼이 일어났다.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유명 정치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평소 정치인 이야기를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관심도 두지 않으려고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아도 뉴스를 볼 때마다 자꾸 알려주니 어쩔 수 없이 소식은 듣고 있지만, 그냥 흘려 듣는 편이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정치인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걸 그냥 흘려 들었겠지만, 그날은 내가 언성을 높여가며 대화에 끼어든 이유가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내가 참 좋아하는 후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선배와 후배들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암튼 나를 제외한 세 명이 해당 정치인에 대해 불신하는 주장과 신뢰하는 주장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류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하면서 그냥 앉아 있었는데, 도무지 이 대화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같은 주장이 반복되고, 양측은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국물을 뜨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양측을 잠시 진정시킨 다음, 일단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대화를 해보자고 말을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것이든 곧바로 믿지 않았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도, 선생님의 설명도,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소식도. 뭐든 정말 실제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무엇이든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성향으로 자란 것은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 전기 내용들 탓이 크다. 어렸을 때 나는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서 며칠씩 시간을 보냈었다. 같이 놀 또래도 없고, 마땅한 장난감도 없던 그 곳에서 나는 외삼촌들의 책장에서 이것저것 책들을 꺼내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책장에는 엄청나게 크고 두꺼운 백과사전과 인명사전이 있었다. 나는 인명사전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사전에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이 정리되어 있었는데, 중요한 인물들은 그 분량이 몇 쪽에 달하기도 했고,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인물들은 매우 적은 겨우 몇 줄 정도의 설명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설명들 중에는 간혹 대립되는 주장들이거나, 전혀 다른 행적에 대한 설명들이 같이 담겨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내용들을 유심히 읽으며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기록이다. 그 기록을 남긴 사람이 골라서 남긴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해도 그 취사선택 과정에서 그 사람의 생각이나 취향이 반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록을 남긴 사람이 많으면 더 다양한 시각에서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내용들을 볼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과연 그 사람이 그 당시에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를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한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과거부터 일본 땅이었다고 끊임없이 우기는 그 기록들만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남게 된다면, 그 먼 훗날의 사람들은 독도가 처음부터 일본 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될 확률은 지극히 낮고 거의 일어날 수 없겠지만, 가정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달리 얘기해볼까? 이승만 이라는 사람은 어떤가? 일제시대 당시부터 그가 독립운동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사람이었다는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이후에는 부정선거를 지시하며 독재를 이어갔다. 그런데 일각에서 그를 대한민국의 국부로, 훌륭한 독립운동가로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모 정당의 비대위원이 언급했다는 김구 선생은 어떤가? 이승만과 달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굳건히 지켜오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던 선생을 레지스탕스나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열거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작년 연말 늦은 밤에 지인들에게 얘기한 것도 비슷한 취지였다. 우리는 정말 역사적 사실들만 제대로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할까? 지금 현재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 역시 그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채 묻히는 일이 대부분이다. 누군가가 어떤 정치인들, 법조인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성상납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들이 제대로, 낱낱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경우를 보았던가? 일부러 밝히지 않았던, 고의로 묻어버렸던 어떤 일들은 그렇게 묻혀지기도 하는 법이다.


90년대 중반에 나는 경기도 화성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때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들어서 개봉했던 2003년에 이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이었다. 2019년에 이 사건의 진범이 이미 범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이었던 이춘재라는 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이춘재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 이어지는 연쇄 살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춘재가 모든 것을 명확하게 다 밝혔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정말로 그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기 짓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던 두 사람의 사례 중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유영철은 정남규가 저지른 살인을 자신이 한 짓이라고 했고, 언론에서 그것을 접한 정남규는 화가 났다고 나중에 밝혔다.


우리는 여전히 91년 3월 26일 대구에서 실종된 5명의 국민학생들(개구리 소년)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지 못한다. 수많은 실종자들, 살인을 비롯한 각종 범죄의 피해자들 중 여전히 누가 어떻게 범죄를 저지렀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최근 뉴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흔히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경우도 이제는 그 진실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당시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어이없는 불법 수사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딸과 글을 읽지 못하는 아비를 가스라이팅하고, 윽박지르고, 속여서 살인죄를 덮어 씌웠음이 이제 겨우 밝혀졌을 뿐이다. 이들이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로 밝혀지고, 그 억울함을 널리 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그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천안함 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세월호 사건의 진실 또한 알지 못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로 진실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기준에서 자신만의 취향이나 성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어떤 특정한 정당과 그 정당의 인물들을 무척 싫어한다. 나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내 주장은 내 편견과 감정에 치우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작년 연말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보면 좋겠다는 취지의 내 발언을 그 사람들은 다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그래. 사람은 그런 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남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남이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아니, 남들을 언행을 보고 듣고 느끼며 표면적을 어떤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남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이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용띠해


올해는 용띠해라고 한다. 틀린 말이다. 아니, '아직은' 틀린 말이라고 정정하자. 오늘이 양력으로는 1월 10일이지만, 음력으로는 11월 29일이다. 설날이 되기 전까지 음력으로는 아직 해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12간지에 따라 띠를 붙인 건 음력이 기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력 1월 1일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화 통화하는 사람들마다, 연락하는 사람들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새해 인사를 건네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인사를 듣고 "아직은 설이 되지 않았으니, 새해 인사는 그때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1월 1일을 '가짜 설' 혹은 '까치 설'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정과 구정이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 방식은 좀 받아들이기 어렵다. 설은 그냥 설인 것이고, 1월 1일은 그냥 양력으로 해가 바뀐 날이다. 내 기준에서는 본질적으로는 다른 개념을 같은 층위에 놓고 엮었다는 생각이 드는 구분이다.


얼마 전에 작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그럼 태어난 지 몇 년 지난거야? 올해가 용띠해이고, 아빠도 용띠잖아. 이렇게 물었다.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럼 12년씩 더해보면 되는데. 음. 벌써 그렇게 되었군.


저 앞에 소개한 최재천 교수님 영상에서 교수님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12간지 중에 오직 용띠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말한 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용띠들이 유난히 건방지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농당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건 당연히 알지만, 살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바로 한 해 선배인 토끼띠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건 일종의 띠에 대한 컴플렉스인 걸까? 농담이다.


어떤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자고, 어디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자고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일개 하찮은 인간에 불과하다. 늘 실수하는 나 같은 인간이 어찌 그렇게 훌륭한 태도로 살 수 있겠나? 그냥 살아야지 뭐.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힘든 삶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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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1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죽을 때까지도 모를 진실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당시엔 진실을 안다고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 저는 제 마음도 잘못 알고 착각할 때가 있는 걸요. 진실은 너무 멀리 있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감은빛 2024-01-15 18:01   좋아요 0 | URL
페크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더라구요. 가끔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도 착각하기도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