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12월 들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좀 있었는데, 계속 여유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하고 12월이 거의 다 지나버렸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내가 준비하고 진행한 행사 이야기도 있었다. 강의 이야기도 있었고, 내 실수로 잘 진행이 되지 않았던 업무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그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는 것이 조금 귀찮아졌다. 참 이래저래 일이 많았던 12월이었다.
배우 이선균 씨의 자살 이야기가 어제 오늘 여기저기서 돌고 있다. 늘 그렇듯이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안타까운 사건이고 너무나도 아까운 한 생명이 그렇게 사라진 것에 대해 일단 애도의 마음을 보탠다.
언론에서 자꾸 '극단적 선택'이란 단어를 쓰는데, 자꾸 마음에 걸린다. 왜 그 단어를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 단어가 과연 바람직한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에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다. 하나 둘 해결해나가면서 하고 싶은 일들도 조금씩 시도해보고 싶다. 내일과 모레 이틀 연속 또 중요한 행사들이 있다. 토요일까지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나면, 일요일은 좀 조용히 지낼 수 있겠지.
사주와 MBTI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사주팔자도 믿지 않는다. MBTI 도 사람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측면에서 재미는 있지만, 그 역시도 믿지 않는 편이다. 무척 친한 후배 한 명이 언제부턴가 지인들의 사주를 열심히 보고 있다. 내 사주도 여러 번 봐주었다. 그 말들을 속속들이 믿지 않지만, 그 친구는 사주팔자가 보여주는 방향성과 우리 실제 삶의 양상을 연결해서 설명하곤 하는데, 그런 측면의 이야기는 조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무조건 안 믿는다고 선을 긋고 벽을 세우기 보다는, 그렇게 우리 삶을 바라보는 방법도 있구나. 그런 시각으로 보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경향과 방향이 보이기도 하는 구나.
요즘은 누구든 MBTI 를 묻는 일이 많다. 나는 두 번 검사를 받았는데, 두 번 모두 INTP 가 나왔다. 그게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지만, 듣는 이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내게 N 이 뭘 의미하는 지, T 는 무슨 뜻인지 등을 알려주곤 한다. 반면, 매우 의외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맨 앞의 I 가 아니라 E 가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나는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를 해야 하는 일이 많고, 그때마다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모습을 주로 본 사람들은 E 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개인적으로 나와 친한 사람들은 I 라는 내 말을 수긍하는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겠지. 그 중에 본인이 좀 더 편하고 마음이 가는 성향이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반대 성향으로 행동하고 움직이는 일들도 분명 생길 것이다. MBTI 유형을 취업 면접에까지 적용한다는 뉴스를 보고 실소가 나오는데, 사람을 겪어보지 않고 그저 알파벳 4개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노래 연습
내가 일하는 조합의 송년회는 매년 마지막 금요일에 하고 있다. 다른 곳들 대부분 12월 초에 하는 편이고, 좀 늦어도 중순에는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아예 연말로 일정을 정했다. 해마다 이런저런 컨셉으로 재미있게 놀아보려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JTBC 손석희 사장의 뉴스룸이 한창 화제가 될 때에는 뉴스룸과 유사한 구성으로 해서, 당시 이사장님이 손석희 역할을 내가 기자 역할을 맡아서 키워드로 조합의 주요 뉴스를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었었다. 대본도 작성하긴 했었는데, 나는 전체 행사 준비에 시간을 많이 뺏겨서 해당 코너 준비를 잘 할 시간은 없었다. 결국 당일 임기응변으로 어떻게 넘어갔는데, 당시 이사장님은 나름 준비를 많이 하셔서 손석희 사장의 손동작이나 표정 등 디테일을 잘 살렸었다. 게다가 그날 맨 마지막 코너였던 앵커 브리핑을 아주 감동적인 내용으로 잘 준비해서 참석하신 분들이 모두 감명 받았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임원들과 활동 조합원들이 나서서 다양한 공연이나 영상 등으로 재치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었다. 뭔가 이슈가 되거나 유행하는 걸 잘 캐치해서 응용하길 잘 하시는 분들이 기획을 잘 해주셨었다.
한편 초기부터 송년회에서 조합원 장기자랑을 종종 했었다. 춤과 악기 연주, 노래, 시낭송, 꽁트, 코메디, 성대모사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조합원들이 참가해 의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고, 거의 프로급의 실력을 가지신 분들이 멋진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작년 송년회에는 아예 가요제 형태로 진행했다. 우리 조합원이자 나와도 무척 친한 사이인 분이 여러 투쟁 현장들에서 노래(민중가요)를 부르곤 하시는데, 이 분을 초대했었고,또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가진 또 다른 나와 친한 지인도 초대했었다. 우리 조합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활동가 역시 노래 실력이 무척 출중하여 참가했었고, 임원 중 한 분도 무척 매력적인 목소리와 판소리 창법을 접목한 독특한 창법으로 참가했었다. 그렇게 사전에 주위에서 어지간히 노래 잘 하는 분들을 여러 분 모셨고, 당일 현장에서도 즉석 신청을 받았는데, 다소 멋적어 하며 참가하신 두 분의 조합원도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암튼 이렇게 작년 가요제가 대흥행하면서 참가자들의 반응이 엄청났었다.
올해는 다시 장기자랑으로 돌아가 노래 외에도 다른 것들을 보여주실 분들을 골고루 섭외 중이다. 지난 11월에 나와 동료활동가가 준비하고 진행한 체육대회도 대흥행이었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임원 한 분이 내게 물었었다. 노래를 제법 잘 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한번도 조합 행사에서 보여준 적이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저 앞에서 언급한 작년 가요제에 참여한 분들 대다수와 무척 친한 사이라서 그 분들과 노래방을 갈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때마다 나는 가수라 해도 손색이 없는 그 분들 사이에서 절망감을 느끼곤 했으니까. 암튼 이번 송년회에는 나도 뭔가 해보라는 요청을 두어 번 받았기 때문에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래. 노래를 한번 불러보자. 혼자 해도 좋지만, 나와 친한 다른 후배에게 듀엣으로 노래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친구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인 친구인데, 고음에 조금 약점이 있는 편이다. 나는 최근 두성을 배워서 고음을 익히는 중인데, 서로 약점을 보완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제안을 했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바로 내일로 다가온 송년회를 위해 노래 연습을 해야 하는데, 나와 그 후배 모두 어지간히 바쁜 사람들이라 지금까지 시간을 내지 못했고, 오늘 밤에 만나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어떤 노래를 할지 몇 개의 선택지를 두고 이야기는 나눴으나, 아직 정하지는 못했다. 만나서 불러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솔직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이 안 되어서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뭐 폭망하면 웃음을 줄 수 있어서 좋은 것이고, 나름 괜찮게 부르면 이미지 변신을 하는 것이라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망가져도 좋다는 심정으로 참가를 결정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어렸을 때 나는 참 바보같이 내가 노래를 그럭저럭 괜찮게 잘 한다고 착각했었다. 목소리도 작고, 성량도 작고, 음역대도 좁은 내가 어쩌다 그런 착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 기준에 내 노래가 괜찮게 들렸던 거였겠지. 그게 착각이 깨진 사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과 축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건인데, 그때도 듀엣이었구나. 당시 유행하던 가수 녹색지대의 노래를 과 동기랑 함께 불렀는데, 그 친구는 박치에 음역대가 나보다 더 좁았다. 그때도 노래방에서 연습을 한다고 했지만, 뭐 별로 제대로 못했고, 사실 둘 다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음정과 박자만 잘 맞춰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는? 정말 완전 폭망이었다. 같이 불렀던 동기 녀석이 자꾸 박자를 반박자씩 늦게 들어가고 뒤로 갈수록 음정도 안 맞았다. 나는 당황했고, 뒤로 갈수록 나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둘 다 너무 어이없는 실수들을 저지르고 청중들의 웃음 속에 무대를 내려왔다. 그때 나는 정말 노래를 못하는구나 느꼈다.
두 번째 사건은 그 일이 있고 나서 몇 달 후에 있었다. 과에서 몇몇 선배들이 노래패를 만들면서 후배들에게 가입을 권했는데, 나도 거기 포함되어 있어서 들어간 것이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기타도 칠 수 있으니 뭐든 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동기들과 함께 민중가요 창법을 배우며 노래 연습도 하고, 기타 연습도 했는데, 둘 다 썩 실력이 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몇 달 후에 또 어느 행사에 우리 노래패가 무대에 오르게 되었고, 나는 그 무대에서도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선배들에게 정말 많이 혼나고 욕도 많이 먹었다. 나는 바로 노래패를 탈퇴했고, 다시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바뀌지는 않더라. 환경단체 활동가 시절 전국에서 모인 선배 및 동기 활동가들과 교류하는 자리에서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또 나름 자신 있었던 민중가요를 불렀었고, 그 노래를 들은 동기이지만 나이가 훨씬 많은 형이 내게 호감을 갖게 되어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그 형의 제안을 받아 평택의 환경단체 실무자로 옮겨갔었는데, 그때 그 형의 후배를 만났다. 그날 나는 그 분에게 첫 눈에 반했고, 고백해서 사귀고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날 내가 불렀던 그 노래 덕분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그날 그 노래를 안 불렀다면, 그 형과 그렇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 형의 후배였던 그 사람과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
암튼 어릴 때에도 그렇고 이제 늙어버런 지금도 여전히 노래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걸 즐기는 건 마찬가지다. 좀 못하면 어떤가? 즐기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임해야겠다. 대신 할 수 있는 만큼 준비는 잘 해야겠지.
책이 왔다.
연말에 책을 좀 구매했다. 올해는 유난히 책을 적게 샀다. 이미 구매해 놓고 제대로 못 읽은 책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일에 치여서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만들지 못한 탓도 있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책 욕심에 꾸준히 책을 사모았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좁은 집에 책이 자꾸 쌓이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언제 이사를 나가야 할지 모르는데, 저 수많은 책들을 어떻게 처치할 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참 좋아하는 지인이 최근에 읽고 정말 좋았다는 평을 보고 이 책을 바로 구매했다. 새 책을 사려다가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이 있다고 나오길래 그걸 주문했다. 며칠 남지 않은 올해가 가기 전에 새로 주문한 책들 중 적어도 2권을 읽어야지 라고 생각해본다. 음, 밤 늦게 집에 들어가면 박스를 열어보고 제일 두께가 얇은 책을 찾아야지. 자, 이제 노래 연습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