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기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하늘연못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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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가는 특유의 결벽증을 갖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내 주변인들의 마루야마 겐지에 대한 찬탄과 권장에도 불구하고 차마, 한 권 빼들기를 주저주저하였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가 일본 문학과 문단에 대해 안쓰럽고 민망할 정도로 질타하는 내용과 자신은 최고의 문학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인터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디 얼마나 잘 썼는지 보자' 하는 심정으로 맨 먼저 읽기 시작했던 책이 바로 <밤의
기별>이다. 한 소년이 등장한다. 이 소년은 마루야마 겐지의 다른 소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나 그밖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남다르고 치열해 보이는 주인공이 아니다. 비정하지도 단호하지도 않은 이 소년의 나래이션은 듣기에 참 좋다. 배경은 2차 대전 이후이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끌려 갔고, 혼자가 된 어머니와 여동생 이들은 어떤 큰 저택을 소
유한 남자의 비호 아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길에서 다리 하나를 읽은 상
이 군인을 보게 되는데 그는 소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소년 홀로 그 저택에서 나와
아버지와 살게 된다. 그러면서 소년은 많은 사람들과 알게 되고, 아련하고도 찬찬하게
성장을 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딱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둘 중에 플롯의 단단함과 빛나는 묘사와
서사적인 문체에 있어서 단연 <밤의 기별>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 책은 지금의 나의 수중에 없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영화라는 장르에 뭍혀 소멸하고
말 것이라고 단언하던 나의 한 친구에게, 그 친구의 말을 반증(反證)하고 싶은 의미로
다가 선물로 영원히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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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 - 조르주 상드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까지
로사 몬떼로 지음, 정창 옮김 / 작가정신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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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이라는 제목은 너무나 웅장하고도 처연한 제목이다. 그래서 출간 당시부터 너무나 읽고 싶은 책의 목록 중 하나였음에도, 이 장엄한 제목이 주는 약간은 허황되고 거창한 냄새 때문에 읽기를 한사코 미루었다. 그러나 미리 밝히지만 이 책은 거창하지도 허황되지도 않으며, '오늘날 같으면 잘 나갈 수 있었던 천재적인 여자들이 시대를 잘못 만나 망가졌다는 류'의 책은 분명히 아니다.

필자는 자신이 15명의 여성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 우선 순위나, 상징적으로 중요한 인물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을 주는 여성들을 꼽았다고 밝히는 데, 이 점에서 진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미국의 작가, 로라 라이딩을 세기의 악녀로 표현한 부분에서, 제시한 일부의 자료를 근거로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평가가 같아서, 자뭇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서론 부분의 '들어가는 글'은 일반 여성학에서도 자주 다루어지는 서양의 여성 들에 대해 통사론적인 시각으로 기술하는 데에 25페이지 상당을 할애하는데, 이 부분은 약간 지루한 느낌을 준다. 이상의 두가지 점만을 제외한다면 이 책은 너무나 주옥같다.

로라 라이딩과 딸을 죽인 어머니 아우로라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대체로 한없는 애정을 갖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맥락에 잘 근접해서, 꼼꼼한 자료들을 제시하며 삶의 궤적을 비교적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필자가 다룬 모든 여성들이 시대에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처철하게 화려하게 소박하게 때로는 지나친 광기로 각자의 삶을 살았지만, 그 중에서도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는가보다. 특히 독자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기인해 어느 특정 인물을 더욱 호소력 있게 느끼는 것일 거다. 나는 다음 세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다.

남편과 취미 생활을 함께 하기 위해 애써 골프를 배우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도 했던 에거서 크리스티는 어느날 바람기 있던 남편에게서 이혼 요구를 받게 된다. 그후 스스로 열흘간 자신의 실종 사건을 꾸미고, 남편과의 삶을 예전엔 없었던 것인 양 말끔히 잊고 또다른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죽는 그날까지 강박적으로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꾸미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그녀의 삶이 그녀가 펴낸, 수학적으로 완벽한 추리물들과 별반 어긋나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병원 24시>를 연상시키는 프리다 칼로를 투병기. 그녀는 여섯 살 때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았고, 열여덟살 때는 끔찍한 교통 사고를 당했었다. 그후 무시무시한 후유증으로 삼십년간 수많은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스무살에 만나서 마흔 일곱의 죽는 날까지 평생을 함께 한 남편의 끊임없는 부정을 목도해야 했고(심지어는 아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도), 당대의 여성에 대한 편견에도 맞서 싸웠다.

마지막으로 브론테 가의 여자들. 세 자매는 모두 짧은 기간 기숙학교를 다니다가, 학교의 열악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중도하차하고 아버지로부터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짧은 생애 동안 좁은 집과 황량한 들판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상상을 했고, 책을 읽었으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한계를 뛰어 넘고자 엄청난 노력을 하였다.

이렇게 전기를 읽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살았던 이 여성들의 인생의 여로를 들여다보며,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남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살기에 시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나다운 생을 자유롭게 구가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여기서 필자가 후기에 쓴 한마디를 떠올린다. '정상적'이라고 이름 붙여지는 제도와 관습에 스스로를 묶어두지 말라는 그 한마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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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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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소설책을 읽는 것은, 별로 기쁠 일이 드문 인생의 순간에 있어서, 가끔 누리는 아주 큰 기쁨이다. 그럴려면 지식 및 정보 습득이라던가 소기의 목적을 의도하지 않아야 하고, 아무 시, 아무 날에 아무 곳에서나 빠져드는 책읽기여야 한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은 독자로 하여금 꼼짝 못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다음 순간 지구가 무너진다고 해도, 그 무엇도 책장을 넘기는 일에 제동을 걸 수 없게끔 만드는 기술 같은 게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런 문필력을 소유한 사람들의 소설을 읽고 나면, 뭐랄까, 향수병도 아니고, 상사병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병 하나를 앓게 되는데 그건 바로, 나는 저런 소설 하나 써보고 죽었으면 하는 병이다. 몇 달전 히라노 게이치
로의 <달> 이후로 이런 소설을 또 만났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 책을 소개해 준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꺼내 읽으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위안을 주는 책이야' 라고. 그러면서 이 책이 폴 오스터의 작품 중, 가장 역작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 두가지만을 우선 말하고 싶다.

첫째, 이 소설은, 작중 역사학자 비버(주인공 포그의 아버지임이 밝혀진)가 쓴 소설 '캐플러의 피'를 통해, 미국 역사에서 인디언의 멸망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캐플러의 피'에서 나오는 종족은 주인공 포그와 그의 삼대째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인디언의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의 핏줄이 인디언이었거나, 혹은 인디언과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냈던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백인이면서도 은연중에 이런 역사 의식을 드러내는 폴 오스터가 약간은 이채롭게 느껴진다.

둘째, '주인공 포그가 여러 가지 여정을 거쳐 결국엔 어떻게 되었는가'를 즉물적인 시각에서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사랑하는 여자와는 헤어지게 되었고, 둘, 에핑이라는 노인의 아들이라고만 알았던 역사학자 비버, 그런데 이 비버와 좋은 시간을 함께하고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에까지 다달아 지내던 어느날, 비버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었고, 비버는 몇 달후 저세상으로 가야 했다. (어머니, 외삼촌,
에핑이 죽은 후, 하나 남았던 혈육마저 포그를 떠난 것이다.)

셋, 비버로부터 어느 정도의 유산을 물려 받게 되었음에도 그것 마저도 여행 중에 도난 당한다. 위의 셋을 통틀어서 결론을 내자면, 주인공 포그에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만 놓고 보았을 때, 이 얘기는 한없이 우울하며 절망적인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실은 어떤지, 과연 <달의 궁전>이라는 이 이야기가 우울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절망'을 '삶의 아이러니'로 바꾸어 풀어내는 데 있다. 우연의 엇갈림으로 짜여지고, 군데군데 희망을 가장한 여러 변수가 기다리고 있는 뒤틀린 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독특한 인식의 방식과, 불운한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그 태도에 이 소설의 매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한 이 이야기가 장엄한 목소리로 타이듯 '젊은이여, 희망을 가져라' 투가 아님을 말해야 겠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빈털터리가 된 주인공이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는 가 보는 데까지 다 가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불행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연과 우연으로 얽힌 예측 불가능한 이 세상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유유히 즐기기로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이야깃거리를 발견하리라고 맘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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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3-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완벽한 미국 서사의 모형이지~ 싶다...
 
소박한 삶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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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본 <시사 매거진 2580>의 내용 중 하나는 우리 서민들의 일확천금의 꿈에 대한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요즘 텔레비전 광고 중에서 모 신용카트 회사의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을 언급한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그것이 설령 꿈에서 그칠지언정.

그러나 그 프로그램에서도 나왔지만 연봉 2300의 어느 평범한 가장이 한 달에 30만원씩 적금을 붓는다고 했을 때 그 가정이 한국 사회에서 부자가 될 가능성이란 아주 희박한 것이었다. 한편 얼마 전 주택복권에 억대의 돈이 당첨된 사람이 지금은 그 돈을 흥청망청 탕진하고 파멸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부자의 삶은 행복한 것일까. 즉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자. 보잘 것 없는 수입을 가지고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은 소득을 올리고도 불행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은 소득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이 책은 말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인생을 위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으라고.

우리 사회는 한마디로 돈을 버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이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믿음을 전파하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대중 매체이다. 싸구려 잡지에는 부유층에 대한 얘기가 넘쳐 나고, 그들이 사는 멋진 집과 멋진 차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호화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이것을 지켜보는 시청자들 중 일부는 매체의 위력에 발맞추어 폼나는(?) 인생을 연출하기 위해 살아가고자 애쓸 것이고, 그러다 보면 개개인의 부채는 점점 늘어나며 그 끝은 파멸의 길일 것이다. 끝도 없는 소비 세계에서의 만족에 한계점이라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만의 소비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그 스타일이 이 책에서 말하듯 소박함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풍요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적으로 '소비'에 대한 자신만의 방식을 정립하고, 보다 소박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내면적으로 더 자유로워지고, 여유로워지는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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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기와 삶 읽기 1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바로 여기 교실에서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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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한혜정이라는 이름의 이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한때 신문을 열독해서 읽는 취미를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대문 모 아파트 옥상에서 네명의 여중생이 비관 동반 자살을 했던 것이다.

그때 처음 그 사건에 대해서 조혜정 교수가 쓴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었던 것이다. 그 후에 찾아 읽은 조혜정 교수의 이 책 시리즈. 난 그의 이 책을 읽고 단순하고도 속된 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류의 주장을 피력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학자가 한 열 명만 더 있어도 우리 나라 학계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지.

나는 안타깝게도 이 책을 대학 시절에 읽지 않았다. 만약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의 생활에서 글읽기와 삶 읽기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졸업 후에 알았더라도 이 책을 읽고 많이 느끼고 반성하며 삶에 적용시켜 보도록 노력하였으니 정말 나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두 가지의 경향으로 읽어 낼 수 있다. 하나는 일반 문화 읽기의 사회학적 저서로서, 또하나는 책읽기 방식 지도서로서 말이다. 특히, 나는 조혜정 교수의 한 학기 강의 진행과 학생들의 발표 및 회의 내용 기록 부분을 가장 흥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제목은 왜 '삶 읽기 글읽기'인가? 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 더더욱 우리는 문자 매체와 많은 연관을 두며 살아가게 되었다. 삶의 한 방식이기도 한, 이 읽기 행위가 대한민국 우리 삶에서는 이상하게 굴절되어 있다. 이 부분을 조혜정 교수는 식민지성과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그렇다.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모순되게도, 어릴 적부터 공부를 위한 말과 생활을 위한 말을 분리시키며, 삶과 따로 노는 지식이 공식적 지식으로 군림하게 된다.

어느 교육학자가 입시 위주 교육을 극복하기 위한 세미나에서 이런 예를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아이들은 시험 답안에 '밥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항에 동그라미를 치도록 가르치지만 실제로 밥 먹기 전에는 손을 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반복적인 공부 과정에서 엄청난 의지력과 참을성도 기르고 극심한 경쟁심도 갖추게 되며 자기 속의 소리를 듣기보다 항상 남(특히 입시 출제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는 기술을 배운다. 이런 모든 능력은 거대 규모의 생산 공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산업 역군이 가져야 할 가장 필요한 자질인지도 모른다. 상관의 마음을 잘 읽어 내고 경쟁심을 늦추지 않으며 시키는 일을 아무리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꾸역꾸역 해 내는 인내심을 가진 탈 정치화된 인력 양성의 차원에서 말이다.

나 또한 이 책에 별 다섯을 주고 싶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대학이라는 좀더 넓은 학문 세계에 진입하려 하는 대학생들이 이 책부터 읽어보고, 일찍부터 책읽기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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