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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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육백 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다 읽었음에도 나는 인간 마르크스를 잘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 책 이외의 마르크스를 다룬 다른 전기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가타부타 비교를 할 수도 없는 실정. 그럼에도 이 책에서 유일하게 와 닿는 것은 마르크스도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죽는 그날까지 물심양면으로 우정을 배풀던 절친한 벗인 엥겔스. 그런 엥겔스의 사랑하는 동거녀의 죽음을 위로하는 마르크스의 편지에는 그런 말이 있었단다. '애인을 잃은 너도 슬프겠지만, 나도 나의 찢어지는 생활고 때문에 죽겠다.... 너의 애인보다는 아버지의 유산을 웅켜 쥐고 한 푼도 풀지 않고 있는 우리 어머니가 먼저 하늘 나라에 가시는 것이 맞는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내용을 담은 조심성 없는 편지를 엥겔스에게 보내서 한때 둘 사이가 소원해졌던 적이 있었을 정도다.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강한 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천한 자들을 높일 수 있을까를 골몰한다. 그리고는 마치 뒝벌(공기 역학의 모든 법칙에 따르면 뒝벌은 날 수가 없는 데도 용케 날아다닌다. 마르크스는 이 벌과 비슷하게 중력에 도전하는 재능을 지녔다.)과도 같은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의 의지들을 피력해간다.

-마르크스가 집필한 글에 나온 것 중에서 섬뜩하게 들리던 똑똑한 닭 이야기

똑똑한 닭(이런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지만)은 수십 개의 알을 낳은 뒤 온기가 식기도 전에 탈취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산력이 가장 풍부할 때 자신의 무능을 가장 먼저 의식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한 말 중에 곡해되어 알려진 문장 하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기쁨을 기대할 수 없는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내세에서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약속으로 위안을 삼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가 그들의 울부짖음과 탄원을 들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모든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는 더 힘센 권위자에게 호소하지 않겠는가.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제후는 왕에 대하여 투쟁하고, 관료는 귀족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부르주아지는 이 모두에 대해 투쟁한다.

-훌륭한 저작에 숨은 안타까운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당시 그 책을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사람들은 그 책을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할 사람들이었던 반면,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육받은 엘리트는 그것을 읽고 싶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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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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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움베르트 에코의 <전날의 섬>을 집어 들어 읽다가, 에코가, 중세 이후의 프랑스 왕정에 대해 그야말로 해박한 썰을 푸는 부분에서 나의 짧은 지식이 글줄을 따라가질 못하여, 그만 앞부분에서 그대로 책을 덮었다. 나의 세계사적인 지식이 어느 순간 안개 걷히듯 환해지는 날이 오면 그때나 읽어 볼까 하고, (그런 날 안 올거다...아마..)

그리고는 언제나 그렇듯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았다. <하루키의 여행법>이 눈에 콕 박힌다. 이 책의 표지는 노몬한 전쟁의 전장터였던 어느 몽고의 내륙에서 찍은 사진이라는데, 녹슨 탱크 위에 서서 찍은 것이 아주 가관이다. 양손을 허리에 놓고, 엉거주춤하게 잡은 포즈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그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듯 뵈는 썬글라스하며, 약간 심술스럽게 쳐진 볼의 사진 속 하루키는,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나오는 기타 등등의 사진들은 이 모든 여행(고베 도보 여행제외)을 하루키와 함께한 사진사 마스무라 에이조가 찍었다는데, 이 사람은 하루키의 편안한 여행 동반자처럼 보인다. 복받았네 하루키)

이 책은 차례부터가 참 두서없다. 뉴욕의 이스트햄프턴으로의 여행이 처음 장에 나오다가 그게 끝나고, 일본의 어느 무인도 체류기 다음은 멕시코 여행기가 나왔다가 또 느닷없이 일본의 우동 맛 기행을 했다가 다음 편에 몽고 여행, 그 다음에 또 아메리카 대륙 횡단 등이다. 여정 순서가 아니라, 잡지에 기고한 연대 순서에 따른 차례라서 이런가 하고 살펴봤더니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편이 엮인 것이 특별히 읽는 데 지장을 주진 않는 것 같다. 워낙 전체적으로 널널하고 편안하게 투덜 댄 그야말로 에세이(잡글)이라 그런가보다.

그 일곱 편의 여행기 중에서도, 아메리카 대륙 횡단기가 제일 싱거웠고(읽는 사람은 싱거운 재미로 읽었지만, 글을 쓰는 하루키는 퍽이나 지루하기 짝이 없어 하고 있었다.), 맛있는 우동집을 찾아 다닌 기행들과 고베까지의 도보 여행 기록이 읽는 맛이 있었다.

왜 재밌다고 생각됐을까? 먼저 우동집 순례는 그 내용을 보조하는, 코믹하고 자세한 삽화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던 거 같고, 고베 여행은 그야말로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찾아 떠난 도보 여행이라, 마치 맑은 우물에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담담한 필치의 문장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루키는 물건들을 수시로 도난당하고, 연거푸 식중독에 걸려 혼쭐이났던 멕시코 여행을 기록하면서 '여행의 본질'이라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 중의 물건 분실과 구토와 설사 등 인간을 피곤하게 하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고 묵묵히 받아들여 가는 단계가 바로 여행의 본질'이라고. 그런데 이 말은 너무 극단적이다. 왜냐 하면 이런 종류의 피곤은 구태여 멕시코까지 오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멕시코까지 왔던가. 그 물음에 하루키는 또 다음과 같은 명쾌한 답을 내린다. '왜냐 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 밖에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해 보면 여행은 환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환상을 좇아 어딘가로 가서 그 환상을 손에 넣는다. 그들은 그 환상을 좇기 위해 적잖은 돈을 쓰기도 하고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환상을 좇아 다니는 그 사람들. 잘못 되었나? 아니지. 사람들에겐 물거품 같은 그 환상을 누릴 권리가 있다. 있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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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3-31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냐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 밖에 얻어낼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에' 라는 말이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은 여행지에서 밖에 얻어낼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기 때문에"...
 
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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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집필되기 전, 우주비행사들이 표현한 우주 체험은 단순히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기묘한 경험이었다' 식의 서술로 일관되었었다고 한다. 우주 체험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조차 당시의 우주 비행사 자기의 내면에 관련된 기록은 전혀 없었다고. 그러나 그들의 글의 행간에는 자신의 거대한 체험과 그 의미를 좀더 잘 전달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났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들은 이공계통의 전문가들이며, 그럴싸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시인도 철학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 마이클 콜린스의 말처럼 만약 우주비행사가 시인이나 철학자라면 우주선은 우주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고, 도착했다고 해도 지구로 귀환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

이렇게 쓰고 있는 쪽도 답답하고 안타까울테지만 읽는 쪽은 더 답답한 우주 비행사 우주 체험기가 횡행한 와중에, 다치하바나 씨는 우주 비행사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체험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이 책을 집필한다. 이 책을 통해서 보니, 정말로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 체험 이후 사고 방식과 인생관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 면에서 보았을 때는 귀환 후 정신 질환을 앓고, 우주 비행에 대해서 공개적인 언급을 꺼려하는 엘드린의 이야기가 제일 극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우주 비행사들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내게 제일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지구상의 미래에는 밝은 전망이 없다고. 왜냐 하면 그건 인간이라는 종 내부에서 점점 획일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것은 모두, 교통 통신의 발달과 환경의 획일화라는 문명이 초래한 현상에 의한 것이다. 하나의 종이 건전한 생명력을 보존해 가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구 위에서 인간의 환경은 획일적으로 온건하게 되어 간다. 이런 종은 종으로서 약해져 간다. 언제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대파멸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주에 진출한 인간은 우주라는 가혹한 환경에 단련되어 보다 강한 종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9.11 테러 이후 미국 국민들의 애국심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거듭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극보수애국주의 성향의 미국인들이 이 시점에서 읽어 줘야 할 책이 바로 <우주로부터의 귀환>이 아닐까.

우주에 나가면 국가간의 대립 항쟁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가 하는 인식이 생긴단다. 그리고 혹독한 우주 환경이 우주로 진출한 인간끼리 서로 의존하도록 만들고, 살육하기 보단 서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단다.

지구에 있는 인간은 결국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뿐이며, 사물을 평면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평면적으로 보는 한 평면적인 차이점만 자꾸 눈에 띈다. 왜 미국보다 훨씬 못사는 약한 나라가 철혈강국 미국에게 무모해보이는 테러를 자행하려 했었는지는 헤아려보려는 태도는 취할 생각도 없이, 그저 눈에는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이렇게 극보수애국주의자들에게 우주로 나가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의 인생관에 큰 변화가 생기겠지. 그리고 자국의 강력한 에너지를 밖으로 향하기보다는 안으로 향하여 쏟게 될 것이다. 한 사회의 복지와 한 가정이나 가족, 더 좁게는 자신의 내적 정신 상태 같은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시간 현실 속의 우리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웠는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인간이 얼마나 에고 덩어리이며, 다양하고 저급한 욕망, 증오, 공포 등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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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에바 헬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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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위해 들고 다니는 내내 화려한 책 표지와 책 제목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집중시키며 다녔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모든 것이 달라지더라고 말하더냐'고 직접적으로 내게 물었는데 거기에 합당한 대답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마땅한 대답 대신 '한 남자 때문에 지지고복고 하던데.'라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주인공 '나'는 스물 다섯 즈음에 영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자칭 진보적인 지식인 여대생이다. 그렇다, '자칭'이다. 스스로를 퍽 자부하는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학교에 강사인 고트프리트만 빼고(이 소설의 막바지 부분에 가면 주인공 '나'는 이 인물에게 가장 많이 실망을 하게 된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약간은 속물 취급을 하거나 한수 아래로 보곤한다. 물론 때때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그녀 내부의 목소리를 글줄로 읽을 때마다 '사실은 너,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셈이야!' 하며 냉소적인 포즈를 취하지만, 그녀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악의적이지만은 않게 그러니까 유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끊임없이 겪게 되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독자이며 여성인 '나'의 모습들을 보는 것도 같아 마음이 껄쩍지근해지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주인공 콘스텐체와 그 주변의 여러 여성들의 인물 유형은 남다르고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사실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그녀는 항상 지적인 자기 향상에 가치를 두고서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사회의 인습과 제도를 거부한다. 딴에 그렇다는 거다. 이런 그녀는, 이 사회의 결혼 제도와 가족 제도는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권력 유지의 수단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며 인간의 자연스런 자아를 왜곡시키는 억압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동거인이자 애인인 잘생기고 인색한 병원 수련의로 있는 남자 친구 알베르트가 있었지만, 그는 '나'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동반자가 되기엔 부족한 전형적인 현실주의자이다.

그녀는 이성적이며 전적인 상호 합의하에 이 남자 친구 알베르트와 이별을 한다. '전적인 상호 합의 하의 이별'란 이 글의 나래이터이자 주인공이 말하는 진술이고, 독자가 보기에는 함께 쓰던 소지품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 내 것이라 네 것이라고 옥식각신 할만큼 치졸한(?) 결별이었다.

그리고나서 지성적인 남성의 전형으로 생각한 영화 학교 강사 고트프리트와 동반자적 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 고트프리트의 실체는 '혁명가를 가장한 아주 완강한 보수주의자'의 그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영화 학교 강사와의 교제 시도는 '나'에게 실망과 좌절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관계의 허구성에 대해 깨닫는다.

결국 헤어졌던 옛날 남자 친구 알베르트와 다시 재결합 즉, 결혼 약속을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란 상대방의 인생관과 인격을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맞춰 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소설의 작가는 장장 500페이지 남짓되는 이 소설을 큰 사건도 없이 끌고 온 것 셈이 되긴 하지만, 뭐 퍽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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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밥 먹구 가 - 오한숙희의 자연주의 여성학
오한숙희 지음 / 여성신문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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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측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매우 좋은 가르침을 주었다. 가르침이란 항상 따금한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고 유하게 만드는 스타일의 가르침도 있나보다.

첫째, 나에겐 물건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예전엔 엄마가 친척집에라도 방문을 하기 위해 여러 날을 비울 일이 생기게 되면 꼭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필요한 물건을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가족끼리 살다보면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다. 무엇인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자리에 두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들.

그런데 자리를 못 찾는 물건을 다 제자리 찾아 주시며, 물건을 찾느라 벌어지는 대혼란을 항상 소리없이(물론 잔소리로 들리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평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집안의 모든 서랍에 무엇이 있고, 없음을 꿰뚫고 계시는 듯하다. 어머니는 물건 정리하는 게 사는 낙이라서 이 고생을 자처하시는 것일까? 평소에 별로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미치었다. 생색도 안 나는 이런 노동을 항상 엄마라는 존재가 도맡아야 하다니.

일반 일리치라는 가톨릭 신부는 <젠더>라는 그의 저서에서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갈수록 이런 그림자 노동이 늘어난다고 했단다. 그의 책에서는 현대 사회의 여성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부분이고, 꼭 필요한 일임에도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예를 들면 '시장 보기'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 시장을 본다고 하면 돈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차를 타고 시장에 가야 하고, 사려는 물건을 둘러보고 가격을 비교해서 적합한 것을 선택하고 돈을 내고, 만약 돈이 모자라면 은행에 가서 찾아야 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 말이다. 이런 것뿐이랴. 집안일은 나날이 정교하고 세분화되어 간다. 그런데 이렇게 정교하게 세분화되어 가는 집안일을 완벽히 어렵다. 숙희는 이 부분에서 집안일을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 내는 인생의 '편집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집안일을 간략
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신영복님이 이 책의 저자 오한숙희씨가 들었던 어떤 강연에서 그런 말을 했단다.
냉장고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음식을 쌓아놓고 혼자 먹기 시작한 것 같다고. 냉장고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이웃 사람들의 배가 냉장고라서, 내가 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주면 그 사람들이 언젠가 음식이 생겼을 때 내 몫을 챙겨 오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음식은 돌면서 정을 만든다. '빈 그릇 주는 법은 없다'고 뭐라도 담아 보낸다. 전기가 아니라 정으로 돌아가는 냉장고.

여성의 본질은 결국 자연과도 같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전제(시골살이의 일담)들을 통해서 보여 주고, 결국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게 서로를 끌어앉고, 감싸 주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해 간다. 그리고 그 구비구비에는 시골살이의 여러 일화들을 풀어놓는 것이 이 책의 스타일이다. 그렇다. 아줌마의 구수한 입담이 느껴지는 편안한 책이다.

상석도 없고 말석도 없는 누구라도 끼어않을 수 있는 여유로운 밥상, 두레반을 펼쳐 놓고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다. 밥먹구 가. 라고. 이웃과 사는 지혜를 십분 발휘하는 것이 조금은 벅차게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함께 잘 사는 인생의 노하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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