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에바 헬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기 위해 들고 다니는 내내 화려한 책 표지와 책 제목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집중시키며 다녔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모든 것이 달라지더라고 말하더냐'고 직접적으로 내게 물었는데 거기에 합당한 대답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마땅한 대답 대신 '한 남자 때문에 지지고복고 하던데.'라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주인공 '나'는 스물 다섯 즈음에 영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자칭 진보적인 지식인 여대생이다. 그렇다, '자칭'이다. 스스로를 퍽 자부하는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학교에 강사인 고트프리트만 빼고(이 소설의 막바지 부분에 가면 주인공 '나'는 이 인물에게 가장 많이 실망을 하게 된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약간은 속물 취급을 하거나 한수 아래로 보곤한다. 물론 때때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그녀 내부의 목소리를 글줄로 읽을 때마다 '사실은 너,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셈이야!' 하며 냉소적인 포즈를 취하지만, 그녀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악의적이지만은 않게 그러니까 유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끊임없이 겪게 되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독자이며 여성인 '나'의 모습들을 보는 것도 같아 마음이 껄쩍지근해지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주인공 콘스텐체와 그 주변의 여러 여성들의 인물 유형은 남다르고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사실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그녀는 항상 지적인 자기 향상에 가치를 두고서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사회의 인습과 제도를 거부한다. 딴에 그렇다는 거다. 이런 그녀는, 이 사회의 결혼 제도와 가족 제도는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권력 유지의 수단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며 인간의 자연스런 자아를 왜곡시키는 억압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동거인이자 애인인 잘생기고 인색한 병원 수련의로 있는 남자 친구 알베르트가 있었지만, 그는 '나'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동반자가 되기엔 부족한 전형적인 현실주의자이다.

그녀는 이성적이며 전적인 상호 합의하에 이 남자 친구 알베르트와 이별을 한다. '전적인 상호 합의 하의 이별'란 이 글의 나래이터이자 주인공이 말하는 진술이고, 독자가 보기에는 함께 쓰던 소지품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 내 것이라 네 것이라고 옥식각신 할만큼 치졸한(?) 결별이었다.

그리고나서 지성적인 남성의 전형으로 생각한 영화 학교 강사 고트프리트와 동반자적 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 고트프리트의 실체는 '혁명가를 가장한 아주 완강한 보수주의자'의 그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영화 학교 강사와의 교제 시도는 '나'에게 실망과 좌절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관계의 허구성에 대해 깨닫는다.

결국 헤어졌던 옛날 남자 친구 알베르트와 다시 재결합 즉, 결혼 약속을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란 상대방의 인생관과 인격을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맞춰 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소설의 작가는 장장 500페이지 남짓되는 이 소설을 큰 사건도 없이 끌고 온 것 셈이 되긴 하지만, 뭐 퍽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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