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의사 선생님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44
배빗 콜 지음 / 보림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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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하고 나하고는 좋아하는 그림책의 경향이 많이 다른데, 나는 <미스 럼피우스>같은 정적인 것이 좋은데,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아이는 공룡 연대기를 다룬 책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읽어 주는 게 귀찮아서 "이 책들은 네가 글자 익혀서 혼자 읽는 책" 이라고 일러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통하는 코드가 있다면, 그것은  

수다스러운 책. 약간 지저분한 것도 나오는 이야기. 등이다.  

셀레스틴느는 훌륭한 간호사 같은 책. 그리고 이 책이 딱 그렇다. 

"막내는 화장실에 갔다 온 다음에 손을 씻지 않았어요. 엉덩이를 긁었고, 게다가 손가락을 빨았답니다." 

결국 뱃속에 기생충이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멍멍 선생님이 검보일씨네 식구들의 병을 고쳐 주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앓아 눕고 말았는데,  가족들한테 벗어나 푹 쉬라는 진단을 멍멍 선생님의 의사 선생님에게 듣는다.  

그리고 휴양지에서 룰루~하고 있는데,,,  

해변가에서 병에 담긴 편지를 받는다.  

"우리도 좀 쉬어야 겠어. 곧 그리로 갈테니 만나자.  -사랑하는 검보일 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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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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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용 뿐만 아니라, 제본에 있어서도 장식을 많이 한 책이다. 챕터의 시작마다 엽서 크기의 그러나 엽서도 뭣도 아닌 이 삽화들을 정녕 뭐란 말이냐. 물론 나쁘지 않다.  

조지라는 아흔살 가까운 참으로 괴짜 노익장이라는 캐릭터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주인공이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큰돈을 벌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가진 사업 능력 전부를 발휘해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관광객에세 팔 엽서를 인쇄하고, 교회 바자회에서 싼 값에 헌책을 사서 본 뒤 되팔고, 정가로 파는 새 판본 사이에 새것 같아 보이는 헌책을 끼워 살짝 속여 되팔고, 마지막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자정이 넘어서야 서점 문을 닫았다.  

왜 시간이 멈춰섰나.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멈춰 서기만 한 게 아니라, 떠난 삶 과거의 삶에 대해서 쉼표를 찍는 자리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이다. 자기들 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어 있는 유령을 안고 있다만 곧 유령과 화해하고 서로 갈길 가자며 빠이~를 나누고, 다시 쳇바퀴 속으로 돌아온다. 물론 파리 고서점이라는 중간 거점에 오기 직전의 인생의 정신적 황폐화한 꼴은 모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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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암사자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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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0% 할인이라뉘, 대체 언제부터 책값이 내려간 것인지... 구간임에도 10% 남짓되는 할인폭도 감지덕지하며 구매했었다. 재고가 없어 입고 되었을 때 어렵사리 구입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또한 기억의 왜곡인가? - 최근에 엄청 인쇄를 돌린 모양이다.  

2000~3000원 남짓 없어서, 극도로 빈하게 지내고 뭐 그런 거 아니긴 하지만, 살짝 김샌다.  

헤닝 만켈 작품으로서는 첫 작품으로 읽은 것이었고, 너무 좋아서 다섯번째 여자를 읽는 중(..두어달 전에 덮었는데 진도가 참 안나가더라..)이다.  

주인공 형사, 이런 캐릭터 참 매력있다. 침울하고,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점잖으며 건강 문제가 끊이지 않고, 중년에 이혼을 했던 스웨덴 형사 발렌데르.  그다지 철두철미함은 없지만, 근성 있고, 카페인 중독 같아 보이니, 어쩐지 동류 같아 친근감 들고, 헤비 스모커처럼 보이는 것마저 인간미 풀풀 느껴지게 보이고, 종종 자학하는 부분에서도 공감 팍팍 된다.  

그리고 이런 스케일, 정치적인 비장미,,, 흠 너무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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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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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스러우리 만큼 강하지만,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이에게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일면이 보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가 몇일 째 아파 맹장인 줄 알고 복막염까지 가기 전에 수술해야겠다며 찾았던 병원에서 CT촬영 중에 쓸개 옆에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종양이 악성인지는 제거해 조직 검사를 해 봐야 안다고 했다고 해서, 맹장 수술 하면서 쓸개와 종양까지 제거했다고 들었었다. 그게 2년전 그녀가 30대 중반일 때 이야기다. 나도 그때 수술 이야기라면 기억한다. 중앙대병원 그녀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문병 갔었으니까.  

수술 전날 그리고 수술 들어가기 직전까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문득 잘못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열심히 살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은 어린 삼남매 뿐이고, 또 남은 것은 쓸개 옆에 악성인지 뭔지 모를 종양덩어리....   

다행히 쓸개 옆의 종양은 악성이 아니었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이 시는 아홉개의 단편 중 네번째로 수록된 두번째 아이라는 단편의 도입 시다.  

이 작가의 이 책 펴낸 스타일이 스토리를 구상하고 거기에 맞는 시를 골라 앞머리에 싣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의 삶, 다큐멘타리 다큐 3일하고 맥락이 맞닿은 데가 있다.  

물론 하나는 픽션이요, 다른 하나는 논픽션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야기이지만, 희망이 없다고 해서(공무원, 매장 직원, 주부, 출판사 편집자, 프리랜서임에 그 날이 그 날이라며, 일탈을 꿈꾸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하다는 그런 사람을 살고 있다.) 억지로 꾸며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큐3일은 현실은 남루하고 고단하지만, 열심히 살아보자고  일상을 잘 갈고 닦아보자는 것이 일관된 주제이다.  

그러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다큐 3일이 보이는 것은 이 작품이 삶의 모습, 설령 어두울지라도 있는 그대로 눈 돌리지 않고, 직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차이가 뭔지 아는가? 각본이 있고, 없고라고? 다큐멘터리라고 각본이 없는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보이는 픽션이고, 드라마는 보이지 않는 픽션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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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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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쪽

정말로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은 지적 이론 따위가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며 바로 그것이 주된 이유다.
그럼 그 다음으로 강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그것이 안전에 대한 갈망, 즉 나는 돌봐 줄 큰 형님이 계시는 거 같은 느낌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한다.


51쪽
이 세상은 선하고 전능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창조하기 전 하나님은 세상이 안게 될 온갖 고통과 불행을 내다보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이 세상의 고통은 죄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주장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 (...) 하나님이 인간이 장차 저지르게될 죄악을 미리 아셨다면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하나님은 그 죄악의 모든 결과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고통은 죄를 씻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좋은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물론 자학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대단히 빈약한 변론임에 틀림없다. (...) 고통 받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최선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윤리적 가치에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항시 고통과 불행에 대한 변명거리를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192~193쪽
행카셔 지방에서 직물 산업이 일어난 이후로 영국에서는 선교사들과 면직업자들 간에 긴밀한 동맹 관계가 존재해왔다. 선교사들이 미개인들에게 몸뚱이를 가리도록 가르치면서 면제품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의 몸 중에 부끄러운 데가 전혀 없다면 직물업자들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챙길 수 없었을 것이다.

228 쪽
다수가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는 독재나 마찬가지로 압제적 일 수 있다. 소수를 용인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그러나 이 부분이 항시 충분하게 명심되는 것은 아니다.

 291쪽  

과학자들의 경우,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속세의 권력에 호소하진 않는다. 그 사안을 판단해 줄 증거가 더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하는 사람들로서, 양쪽 다 무오류일 순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학자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어느 쪽이나 매달릴 기준이 없기 때문에,서로 증오하면서 공개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무력에 호소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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