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죽음...


1963년 2월 11일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그녀의 생애와 작품 활동은 이미 하나의 문학적 신화나 전설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유고 시집인 <에어리얼>(1965)이 10개월 동안 5000부 이상 팔리는 상업적 성공은 그녀의 작품에 대한 문학적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는 그녀의 짧은 생애와 비극적인 최후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어린 반응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흔히들 예술가가 죽으면 고인의 책상서랍을 뒤적거리며 그리고 그녀의 일생에 대해 너무 깊이 조명하고, 상품화시키고 과장하며, 높이 기리려 들곤 한다.

실비아가 자살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겠고, 그녀의 삶과 생각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일기"인데, 아쉽게도 자살을 하게끔 한 지대한 원인 제공자(남편 테드 휴즈는 아씨아 웨빌과 교제하다가 실비아에게 발각됨. 실비아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런던에 아파를 얻어 생활하기 시작하지만, 그러나 그해 겨울은 100년 만에 찾아온 혹한이었고,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실비아 플라스는 끝내...)는 자살 직전의 일기 한권을 통채로 폐기하고 일기 중간중간을 삭제했다. 이는 생존한 이들을 위한 배려라고 하지만, 이는 생존한 이 중 자신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왜냐 하면,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중,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하고 나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다. 라고 시작하는 1958년 12월 12일 일기는 실비아와 그녀의 어머니의 관계를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게 무리가 있는 장으로 보여지는데 왜 삭제하지 않았을까.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있다는 의식이 항상 그녀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발견을 하는 족족 조금은 괴롭기까지 하다.

 


 


*독서와 창작 프로젝트로 나 자신을 꽉 채워야 한다.

*글쓰기에 겁을 먹고, 얼어붙어 있어서야 되겠나. 태어나지도 않은 소설의 망령은 메두사의 머리다.

위험은 내가 테드에게 너무 의존적이 되어간다는 사실에도 어느 정도 기인하는듯하다.

*시를 쓴다는 건 산문 쓰기를 회피하기 위한 핑계요.


*삶은 어디 있었지? 삶은 흩어져, 성긴 공기 속으로 휘발해 사라져버리고, 내 삶은 계량되고 결핍을 선언 받은 채 남아 있다.


*예의 우월감에 치사한 경쟁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 혹시 명성을 얻으면 그이가 참을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가 일을 해야 한다.


*일을 시작하고, 나 자신을 분석하지 못해 안달하던 욕망들이 이제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마치 우리 둘 다, 특히 내 경우에 살갗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아니 우리 사이에 살갗이 한 장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는 구절에서 남편에 대해 유사한 의존성을 드러낸다. 그녀가 예술가로써 겪어야 했던 끊임없는 사투는- 두려움과 공허함의 악마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를 느끼고, 자기 자신만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 - 그러한 공생 관계를 부수고 나와 해리된 분노의 기억상실증을 거부하고 종처럼 생긴 유리단지를 산산조각으로 깨뜨리는 일을 요구했다.



*치졸한 사업 아이템 같은 걸 연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느 날 그들은 사랑 사랑 사랑을 외치며 결혼해 돈도 넉넉하게 벌게 될 테고 그러면 만사가 꿀처럼 달콤해지리라.


*하지만 내가 어떻게 행보할 수 있겠느냐고 어머니는 생각하셨다. 내 감정에 눈이 멀어 어머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무시하고 메리 엘렌 체이스의 못마땅함과 실용주의적인 미국 사회의 차가운 눈길을 모두 눈감아 버리고도 어떻게 행복하겠느냐고, 게다가 저 남자는 뭘 하고 사느냐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위험하니까.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엄청나게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누군가가 되거나 아무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쉽다.


*지금 열심히 노력하며 갈고 닦으면 언젠가 어중간한 작가들 이상이 되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쓸데없이 튀는 우리들한테 세상이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건 아닐까? 작업을 하고 글을 써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기 싫으니까.


*그들이 뭘 원하는 것 같지? 돈, 자동차, 좋은 학교, 식시세척기와 무엇보다도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걱정, 우리도 이런 것들은 좋지만, 더 중요한 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겁ㄹ이 난다. 우리도 먹어야 하고 살 곳이 있어야 하고 아기를 키워야 하니 돈이 필요한데, 글로는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결코 넉넉한 돈을 못 벌지도 모르니까. 사회는 "그것 봐라"는 식으로 우리를 향해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2-26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26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6-02-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는 다른 시각으로 읽으셨구랴...님은 왜 제가 짜게 주는 별점책마다
후한 별점을 주는 겁니까!!! 나만 미워하고..흙...

이누아 2006-02-27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 별점이란 게 표시할 때마다 누가 이거 정말 참고하는 거 아냐 싶어 찝찝해요. 얼마나 다르게 읽을 수 있는데.

로드무비 2006-02-27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탐을 내어 선물 받아놓곤 아직 읽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큰맘먹고 달려들어야 할 책 같아서요.^^

히피드림~ 2006-02-27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실비아 플라스의 "벨자"를 샀어요. 지금부터 읽어보려고요. 이카루님의 리뷰가 입맛을 돋꿔주는 애피타이저 역할을 하네요.^^

icaru 2006-02-2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 몸이다보니...확실히 예전보다 기동성은 떨어지는 거 같아요~ 소중한 님들의 코멘트에 댓글을 다는 거 마저도요~
파란여우 님...께서 후하게 별점 주시는 책들은 제겐 아직 어렵고... 여우 님이 깎아 보는 책은 제가 또 후하고..ㅎㅎ
근데 얼마전 시오노 나나미의 나는 영화관에서 인생을 배웠다 였나...그 책을 다시 들춰 봤는데요~ 제가 뭐가 그렇게 홀라당 넘어갔었나...도통 기억이 안 날만큼.. 또 안 들어오더라고요... 님은 그 책 별점 세 개 주셨었나~

이누아 님.. 하하하.. 세심하세요~ 누가 이거 정말 참고하는 거 아냐 싶어 찝찝함... 모두 자신만의 별점인 것을~

로드무비 님... 저 책이 두께는 베개통 만해가지고는... 정말 호락호락하게 읽히지도 않더라고요... 저도 작은 맘 먹고 달려 들었다가 나가떨어지고 맘 고쳐먹고 읽었더니 읽을만 했어요 헤헤...

펑크 님... 벨자 오늘 부터 읽으시는 거예요? 흐흐... 어떼요?

비로그인 2006-02-2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아 플라스 말대로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을 져야하는 고통스러움이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며(살아가는 걸 강요당하며) 기만적인 만족감에 허우적거리는 것보단 그냥 혼자서 슬퍼하는 게 낫겠어요.

icaru 2006-03-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복언니는... 복언니의 본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2006-03-06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