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은 그의 친구 톰 건이 이십대에 쓴 시 <온 더 무브>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아무리 나빠도 우리는 움직인다. 아무리 좋아도

절대에 가닿지 못하는, 안식할 곳 없는 우리.

언제나 멈춰 있지 않아, 더 가까워진다.


생의 마지막 1분까지 쉼없이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 받았지만, 60년대에 캘리포니아라는 신세계 샌프란시스코에서 터를 잡다가, 뉴욕에 30년간 산다. 아무리 소란하다 해도 대도시가 필요하고, 다양하고 방대한 신경계 환자 인구가 있는 곳에 머물러 살아간다. 의사 부모님(영국 최초 여성 일반의 어머니) 아래 4형제 중 막내였고, 두 형도 의사였다. 그러나 정신 분열증을 앓는 바로 위 형이 있었다. 1951년 그가 동성애자라는 얘기에 그의 어머니는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했는데, 비난보다 비통한 심정의 토로였다. 한 아들을 정신분열증에 잃었는데, 이제 또 한 아들을 동성애로 잃을까봐 두려운 어머니의 비통함(당시만에도 동성애는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낙인이었으므로)이었다. 그가 스물일곱에 영국을 떠날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희망 잃고 방치된 애처로운 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마음이 환자들에게서 정신분열증과 뇌-정신 장애를 탐구하고 하는 강한 의지를 낳게도 해 준 듯하다.

책 앞머리에 이 책을 빌리에게 헌정한다고 나와 있다.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는 아들이나 형제 혹은 학문적인 동지애를 넘어서는 친애하는 지인이겠거니 했는데, 약간 달랐다. 책의 중간 두 지점에 사진들을 첨부했는데, 맥락을 파악하는데 아주 요긴하고 재미있었다.


세계적인 유수의 저널에 부쳐진 추천글이 너무나 눈부신데, 다 마지막 페이지 책장을 덮고 나서 그것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 평들의 구절 어느 것 하나 넘치고 모자람이 없었다. 심지어 알라딘 엠디 님의 추천글까지 더없이 멋지구리하다. 나는 그의 저서를 하나도 읽은 게 없지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6년 전에, 그리고 작년 겨울 도서정가제 때 ‘깨어남’과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를  구매했지만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음에,,,) 타고난 글쟁이들의 농밀대는 언어의 서사 구조와 자전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의 자서전을 읽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읽고 나니 벅차도록 감동적이다. 근래들어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것인 듯하다.



요동치는 증상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망막과 시력이 종양과 레이저 광선에 조금씩 갉아먹히면서 다양한 시각현상에 매료되는 사람(그러지 않았더라면 일상생활은 더더욱 힘들었겠지만.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신나는 생각에 상황을 뚫고 나가는 듯하다.


 


그는 ‘노령이어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글을 써온 사람이었나 보다. 책 후반에서 일흔다섯에 다시 피아노와 음악 교습을 받으려고 했었으니, 좌골 신경통으로 고통을 받는 내용이 나온다.


그 시기에 그가 많이 생각하고 쓰고 읽은 것은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고통에 대한 직접 고통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통증이 있음을 서술한다. 무릎 수술에서 오는 통증, 철저하게 국소적인 것, 무릎 부위 너머로는 절대 퍼지지 않는 통증이다. 수술로 인해 수축된 흉터 조직을 얼마나 스트레칭해주느냐에 따라 기꺼이 이겨내고 안줄 수 있고, 훈련으로 이겨내고 정복할 수 있는 ‘착한 통증’이다. 그러나 좌골신경통의 경우 통증이 통증에 그치지 않고, 고난 혹은 공포 아무튼 불쾌한 감정 요소까지 포함되는 그것이란다. 신경통은 기꺼이 안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맞서 싸울 수도 그냥 적응할 수도 없는 통증, 사람을 으스러뜨려 영혼이 빠져나가도록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강철같은 의지도, 인간적 존엄성도, 그런 통증의 공격을 받으면 산산이 바스라지고 만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좌골신경통으로 그는 일흔다섯살 처음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흔 다섯 살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 책 앞에 헌정자의 이름으로 올라간 그 분.


우리는 요리를 배우고 건강한 식사를 함께 먹었다. 이날 이때까지 나는 시리얼이나 정어리 통조림으로 연명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여러 코드로 읽힌다. 인내심 많고, 혜안이 있는 자신의 편집자이야기, 




283

“나는 보통 환자를 보러 갈 때는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갔다. 조너선은 비디오 촬영 기록과 즉시 재생 기술을 어떻게 환자 진료에 이용하는지 궁금해했다. 당시만 해도 비디오 촬영은 신기술이어서 이런 방법을 활용하는 병원은 드물었다. 조너선은 가령 파킨슨증 환자가 자신이 걸을 때 속도가 빨라지거나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영상으로 자기 자세나 걸음걸이를 보고 나서는 바로 알아차리고 교정하기 위한 요령을 익히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

 

289  

“언젠가 라디오를 듣는데 2차 대전 때 나처럼 어린 나이로 가족과 떨어져 대피해야 했던 사람들의 기억과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세 가지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유대를 형성하는 문제, 어딘가에 소속되는 문제, 사람들의 말을 믿는 문제요.“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460쪽 12째줄

나는 그의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못한 데는 --> 나는 그의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한 데는


두려움에 떨면서 의기소침한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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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6-02-11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죄송합니다~ 좋아요 눌러 주시며 관심 주신 분들께ㅠㅠ
쓰다가말아서 비공개로 둔다는 것이 ㅠㅠ
피시가 아니라서 수정도 안 되네요 당장은

단발머리 2016-02-12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 책이군요. 저는 `아내를 모자로~~`만 읽었는데 그 한권 읽고나니 이 분이 참 좋아지더라구요. 의사라고 난체 하지 않고 환자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않고...
저도 북플로 쓰다보면 그런 일이 잦아서 글은 물론이고 댓글도 될수 있으면 피씨로 쓰려하는데 가끔 지금처럼 핸폰으로 두드릴때 사고가 난다는..... ^^
icaru님, 설 잘 보내셨지요?

icaru 2016-02-17 09:28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
`아내를~` 책 읽으셨군요! ㅎ,ㅎ)) 저는 가깝게 지내는 아이엄마들하고 책 이야기는 잘 안 하는데, 그저 책 좋아하는 것은 제 개인 취미라고 생각하고, 먼저 이야기 꺼내는 일이 마치 먹물처럼 보일까봐서요~ 그런데 가까운 아이친구엄마가 아내를~이 재밌다며, 아아... 그래서 올리버 색스의 작품은 대중적인 축에 속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ㅎㅎ)) 저는 하나도 읽은 게 없어요~
그런데 온더무브의 아우라가 꽤 오래가요. 위안을 주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16-02-17 09:3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일단 읽고 싶어요~에 넣어둡니다. 제가 좋아하는 알라디너 분도 이 책을 하도 칭찬하시길래... 두 분의 추천을 발판삼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