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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7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 체험>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중 난해한 작품에 해당한다. ‘외치는 소리’, ‘일상 생활의 모험’과 같은 작품군은 이 책에 비하면 확실히 잘 읽히는 쪽에 속하리라.
주인공은 '버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내이다.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그는 자유로운 땅 아프리카에로의 비상(내지는 도피)를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 복잡한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도 불편하기 그지없을 수 있다. 작가는 아름답기는커녕 추잡하고 꽁하며 더러워 보이는 것에 집착을 보여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의 간난아기가 기형아이기 때문에 심각한 괴로움에 빠졌고,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이야기하려면 버드를 사로잡고 있는 ‘공포심’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주인공 버드의 공포는 전쟁이라든가 커다란 사건처럼 정체가 알려진 위기를 직면했을 때 느끼는 공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존재 양식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존재론적 공포이다. 머리에 머리만한 큰 혹을 달고 태어난 기형아인 자식을 눈앞의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하는 막다른 선택에 대한 공포이다. 버드가 이 공포로부터 도망치려는 몸부림은 아프리카라든가 알콜이라든가 다원적 우주 등의 환상 세계로 나타난다. 결국 인간적인 관계에서의 도망침은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버드는 또한 공포로부터의 탈출구로서 대학다닐 적에 동급생이었던 기미코를 찾아가 그녀의 집에 기거하며 성적 오르가즘에 도달하고 이러한 방식을 예술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으로 파악, 몹시도 탐닉하지만, 그 집을 벗어나면 직면하는 세계인 간난아이로 대표되는 현실 세계는 아이가 죽게 하거나 그 아이 자체의 생을 받아들여 할 것이며... 확실히 '기형 아기'로 대표되는 현실은 예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버드는 그 공포(아기)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자기의 노선을 급격히 수정한다.(이 부분에서 소설이 억지 해피엔드로 흐른다는 비난도 있다.)
버드는 애독서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는다. 어느 아프리카 탐험가가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다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는 마을을 본 적이 있다면서 그 원인은 <절망적 자포자기의 근원적 불만>일 거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것을 읽는 버드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결락되어 있는 것과 근원적인 불만에 관해 철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을 자신이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제각기 자기 내부에 절망의 구덩이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들여다볼수 없고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지도 않는 구덩이.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삶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희망하는지도 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