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범우 한국 문예 신서 79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1994년 11월
구판절판


복거일이 말하는... 자신이 자유주의자가 되기 힘든 이유

첫째 그것을 이해하려면 큰 지적 투자가 앞서야 한다. 이미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제도와 관행의 타당성에 물음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상향을 지향하는 특질이 적다. 또 이상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기가 없을 뿐 아니라 기득권 세력으로 오해받는다.
셋째, 사회의 모든 소수를 옹호한다. 덧붙이자면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풍속의 감시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왜냐 하면, 자유주의자는 모든 가치를 집단보다 개인에게 부여하며 존중하기 때문이다.-148쪽

장 그르니에의 <까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의 까뮈를 추억하며 를 읽다.
어느 모자이크에서 발견해 인용한 "놀기, 사냥하기, 해수욕하기, 이것이 산다는 것이다. "라는 글귀에 밑줄을 쳐놓았다. "그것을 위해서 날씨 조건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북부 아프리카의 프랑스인들이 다른 숨겨진 생각없이 삶을 즐기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인가를 알게 되면 본토 프랑스인들이 놀란다. 127~128 사람에 대한 알제리인의 이런 태도가 까뮈로 하여금 지상에서의 삶을 긍정하도록 사유를 유도했으며, 그르니에의 초월적 실재에 대한 지향과 차이나도록 했다. 그르니에는 까뮈의 주인공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알베르 카뮈가 상상해낼 모든 인물들은 살고 싶다는 미친 듯한 욕망을 선언한다. 이방인이나, <오해>의 마리아, 칼리귤라처럼, 그들은 보다 나쁜 장애물과 부딪치지만, 어느 것도 그들의 악착스러움을 이겨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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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의 <지식인들>

저자는 이 책의 어느 장에 '문학인'과 '지식인'을 나누고 있기도 한데, '문학인'은 '지식인'과 달리 사회 개혁에 몰두하거나 정치를 신으로 섬기지 않으며, 문학에만 일생을 바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라고. 구태의연한 의도로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대개의 문학인들은 자신이 쓴 글로 명성을 얻은 후에, 자신의 명성을 사회 개혁이나 사회적 발언에 이용하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글나부랭이로 명성을 얻은 많은 문학인들이 얼치기 지식인으로 변신하게 되는데, 문학인이 지식인으로 변신하는순간 따뜻한 인간애는사라지고 차가운 이념인만 남는다. 폴 존슨이 브레히트를 '쓰레기'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고, 문학인으로 출발해서 지식인 놀음에 빠졌으나 다시 문학인의 자세로 돌아온 에드먼드 윌스은 비난이 섞이지만 우호적인 평을 받는다.

그는 지식인을 세 종류로 나누어 사회 개혁의 신념을 가졌던 20세기 초기의 지식인을 '구 지식인'으로, 또 인간의 행동은 본래 비합리적인 것이므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기획보다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부류를 '반 지식인' 으로, 그리고 개인적 행복 추구를 우선하고(쾌락주의) 모든 규제 특히 무제한의 성적 자유 주장과 체제 거부와 같은 탈규제주의, 또 폭력주의 등의 반이성적 기치 아래 모인 20세기 말의 지식인들을 '신지식인'으로 부른다. 폴 존슨은 신구 어느 쪽 지식인도 신뢰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휴머니스트들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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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의 <어떤 미소>

"연애 중에 평소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일이 확실히 나를 잃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여주인공은 뤽크와의 밀월 이후 "이미 모든 것이 그에 집중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의존되어 좌우되었고. ‘내’가 없이 이루어져 갔다. 사랑도 하나의 훈련이다. 특히 사춘기 소년 소녀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떤 미소의 여주인공은 그녀의 두 번째 사랑에서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둘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범백한 정의는 물론 완벽하지 않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흔히 여자만이 ‘나’를 잃고 ‘나’아닌 주체에 복속된다.
‘둘이서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남녀 공평하게 경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만 하는 것이다. 또 ‘어떤 미소’에 만 한정해 볼 때 유부남과 사춘기 소녀의 사랑은 일방적으로 여주인공의 자기 희생과 할애만 요구한다. 많은 멜러물에서 보았듯이 유부남과 소녀간의 사랑은 여자 쪽이 유부남의 가정을 얼마만큼 지켜주느냐에 따라 더 지속하거나 파탄을 맞이한다. 그것도 몰고 사랑의 정의만 내세워 둘이서 하나 되자고 읍소할 때, 유부남은 ‘나’의 생활, 아내, 자식을 내세워 앗 뜨거라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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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의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 읽기> (1), (2)

평소에 여러 잡지를 통해 기고된 저자의 글을 관심 있게 읽어왔다. 그러나 이 두권의 책을 모아 읽은 끝에 동어반복이 심하고, 원서 요약적인 글이 많아서 약간 실망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권의 책에 실린 저자의 열정적인 글쓰기와 자유로운 생각들이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동어반복과 원서 요약적인 글쓰기에는 격정적인 계몽의 목소리가 담겨 있고, 조금은 모순되지만 저자가 전편을 통해 역설하는 탈식민 지식인의 몸부림이 엿보인다. 어떤 글에서 저자는 자신의 학문적 관심이 인류학에서 넓은 의미의 사회학으로 변해왔다는 것을 밝히고 현재는 "비판 이론과 페미니즘의 시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연구 공간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저자의 비판 이론은 하버마스만을 지칭하고 있는 듯 보이며, 저자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역시 하버마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같이 느껴진다.
'주변부'나 '수다'에 대한 저자의 강조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에 빚진 것이 많은데, ....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는 저자가 쓴 이 두권의 저작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임을 따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162쪽

충무로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가장 큰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말이 '어, 그 작품 컬트네!'라는 말이라고 하는데 컬트란 하나의 영화문법, 하나의 문체가 아닌가. 무슨 말인가 하면 소설가에게 가장 큰 칭찬은 '그 이야기 재밌네'여야지 '그 소설 참 문체가 좋네!'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아닌 문체로 기억되는 작가는 불행하다. 이떤 작가의 이름을 듣고 곧바로 '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 독자에게 기억되는 것이 '아, 이러저러한 특별한 문체를 지닌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보다 행복하다. 이야기꾼의 이빨은 어떤 내용이나 주제와 소재도 씹어 살킬 수 있지만, 문체는 그 자신이 이야기이자 울타리여서 자신이 쓸 수있는 내용과 주제를 한정시킨다. 신경숙의 작품이 대부분 여성심리 묘사와 내면에 침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43~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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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9-0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거일이 여기저기서 욕 많이 먹네요. ㅎㅎ

비로그인 2005-09-03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존스의 <지식인들>귀절 말입니다. 지식인이냐, 문학인이냐..를 취사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결론은 씨부리지 말고 조용히 실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비정한 사회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발휘하는 작품으로..(그래도 국가가 또라이짓을 할 땐 당당히 쐐길 박아줘야..거, 참..노통 연정발언 신문 1면에서 읽었을 때, 청와대에서 신입 개그맨들을 새로 뽑은 줄 알았어요, 큭..'생방송 폭소클럽'을 국회의사당에서 촬영하나봐요..심했나, 내가..+_+)

icaru 2005-09-0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니까...장정일이 복거일 이야기 하듯...공병일을 말하더군요... 공병일 그 이름 만큼이나 괴상한 사람을 본 일이 없다고...

복돌이.. 언니..음.. 풍자 정신...높이삽니당 ^^
폴 존슨은 신구 어느 쪽 지식인도 신뢰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휴머니스트들을 지지한다. 그러게요.. 두 쪽을 취사선택하란 것이 아니라...조용히 실천이나 하라는...문학으로...

2005-09-05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9-0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의 점심 시간은 너무 짧다랗군요..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