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품절


어떤 차별용어나 금기어를 강제로 금할 수는 있겠지만, 생각하는 것만큼은 금할 수 없다. 물론 이 세상에는 감수성이 무딘 사람이 많으므로 그들의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막아 주는 효용은 있다. 그러나 그런 금기를 전혀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솔직한 의견 교환까지 저해하는 폐단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나는 결점이 많은 여자이긴 하지만 인종차별만큼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탈리아 놈하고 결혼하지도 않았을 테고, 내 사랑하는 아들도 이탈리아 놈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별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금기어나 차별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보다는 당당하게 정면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긴장하거나,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그런 심리가 드러나고 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말해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는 서로 바보가 아니다. 입에 담지 않더라도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 누구든 눈치로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상태를 나쁘게 만든다.

-1쪽

나는 더스틴 호프만, 잭 니콜슨과 로버트 드니로가 미국 영화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이 세 사람의 작품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진다. 그 이유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원숙한 그들의 연기 자체에 있다. 그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뛰어난 표현력으로 묘사하는 인간과 세상의 현실에 그만 질려버리고 만다. 마치 현실에 대한 어떤 편향된 인식을 강요당하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

한번이라도 창작에 손을 대본 사람이라면 동의해주리라 믿지만, 원래 창작이라는 행위는 약간의 과장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과장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어떤 현실을 부각시킬 수 있고, 인상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옛날 사람들은 이런 사정을 진실과 거짓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로 표현했을 것이다. (...)
아카데미상을 노리는 것은 좋지만, 마약중독자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 창부나 강간당하는 여자를 연기하지 않으면 그 상을 손에 넣을 수 없는 현실이라니. ...
"인생은 성냥갑과 비슷하다. 너무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다루다가는 화상을 입고 만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 그런 불행을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큰 문제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더스틴 호프먼이나 잭 니콜슨 그리고 로버트 드 니로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는사람이 많은 이유도 일종의 그런 강압적 보편주의 경향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은근한 아이러니의 멋도 모르면서 목소리 높여 자신을 주장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정신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로서.

-2쪽

그녀가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챕터에서 한 말이다....

우리집을 찾아오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관찰해보면, 자유로운 교육을 받은 사람들보다 왠지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 쪽이 장래성이 있는 듯이 보였다. 그 이유는 알 수없지만, 구속이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3쪽

그녀가 마피아 영화 <표범>에서 한 말이다......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바로 어떤 종류의 일을 태연하게 저지를 수 있는 인간과, 죽어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이 차이는 계급이나 교육 정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연령의 차이도 아니고 남녀의 차이도 아니다. 그렇다면 스타일 즉, 품격의 차이가 아닐까. -4쪽

작가로서의 스티븐 킹은 별로였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그리는 작가상은 참으로 재미있다. 왜냐 하면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늘 작가인데다가 제3자가 묘사하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가 그리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샤이닝 쪽은 잘 안팔리는 작가가 글도 잘 안 써질 때, 작가의 상상력이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여 많은 환상과 유령을 보게 되고, 그 결과 아내와 부인까지 함께 자멸하는 길이었다면, 미저리 쪽은 그 반대로 잘 팔리는 작가가 글도 잘 쓸때의 소설가의 공포를 그린 것.
궁지의 상황에서 미저리의 주인공 작가는 제정신을 잃지 않는다. 스스로 작가인 킹은 쓸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 직면해서도 올바른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샤이닝> 속의 소설가는 제정신을 잃어가지만, 다만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때로, '제정신을 잃어버린 애독자'라는, 쓰지 못하는 작가라면 걱정도 하지 않을 그런 위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스티븐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작가의 심리 상태를 좌우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영화들이 단순한 공포물로만 보이지 않는다.
-5쪽

수재가 아닌 입장에서 수재를 바라볼 때 느끼는 걱정거리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나 그녀들에게는 인간적 통찰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그마한 벌레에도 혼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아무리 자질이 떨어진다 해도, 자신이 남에게 이해받는다는 확신을 가지면 올바른 길을 찾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6쪽

내가 역사상의 인물 가운데서도 특히 제1급의 인물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그냥 유명인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며, 위인이나 영웅이 아니면 존경할 수 없다는 속물주의에 빠졌기 때문도 아니다. 일류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사소한 존재에도 혼이 있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피가 통하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인간성에 대한 진정한 태도를 본다. 그리고 진실로 상냥한 인물에게 더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7쪽

천재란 늘 자신감에 차 있고 밝고 느긋한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자부심이 저 혼자 잘나서 앞으로 돌격하면, 그건 더 이상 자부심이 아니라 유아독존이 되어 버린다.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유아독존만큼 제 무덤을 파는 일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창작자는 한결같이 자신의 자실에 대한 회의랄까 두려움이랄까, 그런 것을 자부심과 함께 늘 지니고 있다.
이해와 칭찬이 창작하는 자에게 늘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회의나 두려움이나 걱정은 창작 도중에 늘 머릴를 든다. 그래서 이해와 칭찬이 더없이 좋은 약이 된다. 그런 이해와 칭찬은 진정한 창작자로 하여금 유아독존에 빠지게 하는 법이 없으므로, 얼마든지 많이 주어도 상관없다. -8쪽

품위 있는 행동이라든지, 유머 감각이라든지, 절묘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모든 일에 대처하는 능력은 시험으로 측정할 수 없는 자질이다. 시험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은 노력과 의지와는 관계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9쪽

시오노 나나미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 중 멋진 말.....

"유효하게 쓴 하루의 마지막에 기분 좋은 잠이 찾아오듯이, 유효하게 쓴 일생의 끝에는 기분 좋은 죽음이 찾아온다. "

"나는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어리석음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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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7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2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저도 박애적인 저 말이 주는 따뜻함에 울구 싶었어요~

잉크냄새 2005-07-27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을 당시 알라딘 서재가 있었더라면 몇 구절 옮겼을 수도 있겠구만 싶은 구절이 있네요. 하지만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아요. "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인간의 망각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말 위안으로 삼아야겠어요.

icaru 2005-07-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17:08에 속삭이신 님... 잉크냄새 님과 통하셨네요~ 17:08 님의 눈엔 확인 되시죠?
잉크냄새 님... 제 책을 빌려 드리고 싶네요~~~~ ^^ .. 다시 밑줄 그으실 수 있게...


icaru 2005-07-2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그리고 저 것도... 교정 좀 봐 주시지 흐...

2005-07-27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27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읽은 거~ 나머지도 리뷰로 올릴 생각인데... 매우 곱하기 2 성실한거죠오~

2005-07-27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2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 님~ 머리는 안 돌아가죠... 감흥은 남기고 싶죠...
그래, 저 수밖에 없었답니다.
좀 미련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저렇게 미끄러매 두면...아주 잊어먹지 않을테니까~
어떻습니까아?... 간혹 무릎을 치게 하는 구절이 보이지 않나요?

panda78 2005-07-2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리뷰랑 밑줄 때문에 이 책 무지 사고 싶어졌어요. ^^
잘 지내고 계시지요? 복순이는 잘 있나요? ^ㅂ^

icaru 2005-07-2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판다 님...복순이 잘 있지요~
음...이 책요~ 전 꽉찬 별 다섯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