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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르를 벗겨라
베흐야트 모알리 지음, 이승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왜곡과 과장이 되도록 절제되어, 이슬람 문화권 두 여인의 삶을 보여 주는 실화로, 모처럼 만난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쓴 베흐야트 모알리는 적절한 안배로, 자신과 한 여인 타라( 살인죄로 기소된 상태에서 모알 리가 끝까지 변호를 맡았던 여인)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진술하는 방식으로 어린 시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그렸다.
두 여인의 인연은 이란 여성 변호사인 저자 베흐야트가 같은 이란 여성 타라의 국선 변호사를 맡으면서이다. 그녀의 갸름한 얼굴은 흙빛에 이상한 창백함을 띠고 있었다. 굵은 눈썹은 서로 이어질 듯하고 그 아래 길고 검은 속눈썹만이 얼굴에 생기와 어둠을 동시에 드리워 주었다. 베흐야트는 놀랐다. 타라를 만나기 전 타라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 키가 크고 강한 체구의 여성을 생각했는데, 타라는 여리고 아이 같은 순진한 인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타라가 두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다니.......
여기서 타라의 일생을 잠깐 이야기하면, 타라는 가난한 이란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늙은 신랑의 아내가 된다. 타라는 어릴적부터 상상력이 좋았고, 공부를 하고 싶어했으며, 넓은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의 인생은 남편의 그늘 아래에 묶이게 된다. 다행히도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아이들을 낳고 행복해질 즈음, 남편이 죽게 되면서 타라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는 여자로써 겪어내기 힘든 온갖 역경들이 시작된다.
이슬람 농촌 사회에서 모두가 함부로 하는 위태로움에 처한 사회적 지위란 다름아닌 아버지가 사망한 딸들, 남편이 죽은 과부였다.
남편이 죽자, 타라는 자립하여 아이들을 키우고 살고자 하나, 이웃의 남자들은 호시탐탐 그녀에게 추근댔고, 이웃의 여자들은 그녀를 따돌리고 경계했다. 사회 제도상 생계 유지상 시게(가정이 있는 부유한 남자의 첩으로 들어가는 일)를 택해야만 했던 타라.
한편 베흐야트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특히 이란 사회가 잘못된 여성관을 가졌다는 것을 베흐야트가 일찍부터 깨닫게 하는 데 일조를 해 주신 분은 그녀의 할머니였다. 그 후 사회 활동에 대해 많은 이해심을 가진 남편을 만나고, 자신이 원했던 교사 자격증으로 따고 교사 활동을 병행하면서 법학 공부를 하는 베흐야트.
그런 베흐야트에게도 이란 사회는 장벽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교사 생활에 소신을 가지고 열심을 발휘했지만, 당국으로부터 이런저런 제지를 받고, 심지어는 전담 감시자까지 따라 붙게 된다. 이후 법률 공부를 통해 변호사가 되지만, 이러한 제재는 여전하다.
민주주의와 여성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애를 썼던 그녀는 결국 남편으로부터도, 이란 당국으로부터도 철저히 외면을 당하고, 여러 절차 끝에 독일로 망명을 하게 된다.
매순간 한 인간의 개인적인 운명을 눈앞에서 상상하며 여권 변호 일을 하는 베흐야트의 어떠한 장벽 앞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을 높이 사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