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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퇘지 - 양장본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참으로 묘한 울렁거림이 일었다. 먹은 것을 쏟기 직전의 어지럼증 같은. 이 책은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소리를 옮겨 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고도 보인다. 다른 변신 모티브 소설들을 보면, 몸은 변신을 했으나, 사유는 인간의 사유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이런 표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육체의 사유를 한다. 자기가 빠져 있는 혼란에 대한 정신적 자각 증세를 나타내지 않는다. 둔감의 극치랄까.
앞부분 여자 주인공이 나날이 암퇘지 면모로 거듭나는 과정은 그닥 읽을 만했다. 그리고 수간을 묘사한 아수라장, 다른 사람이 토한 배설물을 다시 먹는 혼교 파티장의 모습을 표현하는 부분은 정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후반에 숫퇘지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영화 <울프>나 <헐크>의 모티프를 빌어다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을 프랑스의 시대 상황과 시사적인 배경 지식들이 따라 주었다면 읽는 재미가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일개 평범한 대한민국 독자에 지나지 않고, 세계사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소설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바지런함이 없다.
역자가 뒤에 밝혀 말했듯 소설은 변신의 테마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 새로운 것도 의미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서 변신 테마를 빌어다 쓴 것은 전혀 조명할 것이 못 된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번역자는 이 소설이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채 서른도 안 된 여인이 썼다고 보기에는 의심이 들 정도로 죽음에 대한 꽤나 격렬한 경험을 적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른이 되기 전에 읽을 걸 그랬나 보다. 그랬으면, 역자처럼 나도 이 소설에 심히 감탄했을까.) 그러나 내가 읽은 어느 구절에도 죽음에 대한 격렬한 경험이라 붙일 수 있는 사유, 한 자락도 나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죽음에 대한 ... 운운은... 작품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일 뿐.
아무튼 역자는 이 소설이 작가가 대중적인 언어를 구사하여 작가가 흡수한 거의 무의식적인 이미지들과 모티프들과 인식의 틀들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대중적이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에고 이게 무신 풀뜯어 먹는 소린지...)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보고 이 책 재밌겠다 싶어서, 골라놓은 책이다. 그런데 결과는 이리도 신통치 않다.
인상 깊은 구절 하나
“부자들은 우리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단지 그들이 먹다 남은 뼈다귀와 울 수 있는 눈 이외에 남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