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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흉년 - 상 ㅣ 박완서 소설전집 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화제작! 문제작! ... 아마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의 카피가 그런 것 아녔을까.
모처럼이다. 주인공 지수연처럼, 위악적인 여자 주인공을 만난 것이. 가치관의 배반으로 미모와 성을 가해의 수단으로 삼는 공격형 지성.
시대는 1970년 중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배경은 도시 서울. 물질 중심주의와 여성 억압에 대한 비판 등 일상적 경험을 사회 비판과 연결지어 작품화하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하면,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온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따뜻한 밥상을 생각하지만, 이렇게 파편화된 가족도 있다.
지수연은 남녀 쌍둥이이다. 할머니는 지수연를 증오한다. 남매 쌍둥이는 쌍피붙는다는 옛말 때문이다. 그런 할머니를 지수연 또한 철저히 증오하리라 마음먹는다. 예전의 사회적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오롯이 간직한 할머니.
1.4 후퇴 때 빈집을 털고 양공주를 거느려 돈을 모아 동대문 시장 포목점 골목에 거부로 부상한 어머니. 돈많은 아내 몰래 불구의 가난하고 못생긴 여자와 이중 생활을 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일류병과 허세와 사치, 금력의 꼭두각시로 맹목적 삶을 사는 법관의 부인인 수연의 언니 수희.
탈춤, 드럼 연주, 데모, 오랜 철장 생활 등, 어떤 것도 다 가능한가 하면,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방랑자 지성. 수연의 애인인 구주현.
형부이자 언니의 검사 남편인 서재호는 수희와 결혼전 수연을 강간하고도 모른척한다.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돈을 빼돌려 불구의 여자와 그 사이에 낳은 아이를 먹여 살리고는 나중에 그 사실에 들통 났을 때, 되려 화를 내며 어머니를 구타하고 어머니는 불구의 몸이 된다. 아버지의 정부의 오빠이자, 집의 운전 기사로 있던 최기사는 어머니와 그렇고 그런 사이다. 모두들 비열하게 서로를 속이고 있는 가족 관계.
자식들에게 돈을 덕지덕지 처발라, 학교를 보내고, 아들과 가난한 여학생과의 교제를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고 나서는 어머니의 삐둘어진 모성.
있는 것은 돈 뿐이고 가족 관계는 헝클어진 정말 심난한 집안이다.
정상적인 일상의 질서 속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은 알기나 알까. 이 도시의 맹장 속에서의 인간들의 끝나지 않는 기다림에 대해서, 끝나지 않는 수모와 원한에 대해서.
파국을 치닫는 이 가족에게 희미하게 나마 난국을 해결할 전망을 제시해 주는 인물이 쌍둥이 오빠의 여자 순정이다.
너무 간만이다. 이리도 적나라하고 파편화된 정도가 심각한 작품. 그것도 가부장제와 물질주의에 대한 고발이다. 이 소설은 실제로도 드라마 되었었다고 한다. 수연 역은 박순애가, 수연의 쌍둥이 오빠는 김주승이, 처제를 욕보인 검사 형부는 유인촌, 그리고 수연이 사랑한 남자 구주현은 김영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