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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0
김미경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미혼이어도 엄마가 되어도 이 방면의 문제는 정말이지 쉽지 않을 거다. 이 방면이라 함은. 딸이나 아들로, 아내나 남편으로 아버지나 어머니로, 주부나 노동자나 그밖의 다른 생산 인력으로, 다중적인 어떤 역할을 맡고 무람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말이다.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이 일견 처절해지기마저 하다는 요근래의 생각 때문에 집어들었다. 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간절히 듣고 싶었다. 실천할 수 있다면 실천해 볼 참으로 말이다. 각설하고.
(나는 이 책이 혹 두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1, 2장은 저자가 쓰고 3, 4장은 누가 급하게 대신 마무리해 준 게 아닌가 하는.)
이 책은 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 2장까지의 현재의 노동 구조가 여성들의 삶과 노동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남편과의 독일 유학 경험을 살려 서구 선진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 와야 할 것인지를 지적하는 부분이 공감이 갔다. 우리는 대체로 선진화된 나라를 통해서 발달한 복지 체계와 산업 구조에만 관심을 갖고 그것을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발달한 산업 사회로서의 선진성보다는 다른 점에서 주목했다. 비록 개인주의화가 팽배해 있는 사회이기는 하지만, 그 구성원들의 연대 의식이 강하고 비판적 지식인들 또한 많다는 사실에서 그 곳의 미래를 읽고 있었다. 개인의 출세나 입신 양명을 쫒기보다는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은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라는 사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옳지 않은 길을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보다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하는 게 필요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저자는 성별 구분 관념이 없는 자유로운 노동 사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남녀 관계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에코 페미니즘의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거론한다. 정부는 쌀 씻은 물을 그냥 하수구로 버리지 말고 화단에 버려야 한다는 둥 우유팩을 잘 씻어 말려야 한다는 둥 호들감을 떨지만 주부들은 그 많은 가사와 육아 부담에 더하여 환경 정화에 한몫 거들어야 하는 애로 사항이 있다고. 그러나 진정으로 환경 친화적인 사회를 원한다면 소비를 창출해야 하는 불필요한 확대 생산이 먼저 중단되어야 하고, 소비문화의 이기주의 극복해야 한다고.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고 공감한다. 이 역시 개인보다는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것.
그렇지만 3, 4장에서는 아주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4장에서 독자들은 저자가 구체적인 미래상을 그려 줄로 믿고 있었다. 목차에도 그것을 기대하게끔 나왔고 말이다. 하지만 대안다운 대안을 제시했는가는 사뭇 의아스럽다.
여성이 여성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버릴 것, 그리고 사회적 강자로 군림하는 남성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여성과 연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의 구체적인 거론들이 저자의 입에서 더 나와 주기를 기다렸지만...음....
이밖에도 미흡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더 이야기하자면, 4장에서 ‘남성학이 필요한 때’라는 소주제에서, 뜬금없이 독일에서 부인이나 애인을 상습 폭행했던 남성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또 소제목과 내용이 잘 연결이 안 된다. 필자의 타국 유학 생활에서의 알고 지낸 교포 주부의 일례를 든 것도 내용과 맞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뒤로 가면서 엉성하고 진부한 나열로 흐른 책이 되어버렸다. 세간에서 공론화한 이야기들을 별다른 성찰 없이 주섬주섬 끌어다 붙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음 마지막 4장에 가서 한 줄짜리 대안이 나온다.
“우리의 일상에서 유토피아를 꿈꿀 줄 아는 상상력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
그렇다. 저자의 엉성함을 탓할 게 아니라, 사실 진실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허지만허지만.... 적잖이 아쉽다.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