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 영재 교육법
기무라 큐이치 지음, 임주리 옮김 / 푸른육아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에서 나온 칼 비테 아버지나 스토너 부인의 교육법처럼, 언어는 눈이 아닌 귀로 배워야 하기 때문에 생후 몇 개월부터 언어를 가르쳐 만 몇 세가 되면 몇 개국어를 할수 있도록 해야 하고, 몸은 어린 아이지만 정신은 어린아이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는 점 등등에 연연하며 읽으면 결국 상실감과 허무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런 결정적인 시기는 놓쳐버렸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이에게 온 시간과 정성을 매달리기 만무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정성 투자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엄마라면 부모라면 아이를 상대로 외교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 아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하지 말라고 명령하면 반감을 갖기 때문에. 하라고 명령하지 않으면서 하게 하고, 하지 말라고 금지하지 않으면서 하지 않게 하는 법 묘안을 생각해 내야 한다. (이부분을 쓰고 있자니,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원효로 빙의한 것 같음..)

이 정도면 부모는 아이를 상대로 도덕가, 외교관, 놀이 친구까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대체로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고 하니, 타인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배운 사람이며, 어려서부터 근육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두뇌를 써서 지식을 쌓았던 아이인 것이다. 또한 플라톤의 말처럼 사람이 악인이 되는 것은 대부분 부모의 교육이 나빴기 때문이기에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근면한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하거나 자녀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기본 명제인 것이다. 

“교육은 지능의 계발뿐 아니라 동시에 품성을 양성하는 것이다. 대음악가나 대미술가, 대문학자나 대과학자가 조기 교육에 의해 생겨나듯이, 훌륭한 품성도 아이가 요람 속에 있을 때부터 길러진다. 세상에는 어린아이의 품성을 양성해 주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이 임무는 말할 것도 없이 부모 몫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또한 공교육(학교)에 의지하면, 아이를 그르치게 됨을 역설한다. 왜냐 하면 교사는 수업 시간에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반의 중하위권 수준의 아이들에게 수업 내용의 포커스를 두기 때문이라고. 바른 교육도, 아이가 한가지쯤 내로라 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의 역시 부모몫이다. 전적으로 부모몫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가정은 어린아이의 낙원이어야 한다고. 가정이 어린아이의 낙원이어야 한다는 말은 절대로 아이를 방종하게 놔 두라는 것이 아니다. 예의범절을 소중히 여기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아이가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랑으로 아이에게 예절 교육을 시키면 절대로 어렵지가 않다. 불량 청소년은 냉담한 가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바쁜 것은 행복의 비결이다 라고 말했다는 점은 인용하면서 '어린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할 일이 많은 아이는 행복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 속에 공포, 근심, 증오, 분노, 불만족 등의 감정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감정은 아이의 심신을 허약하게 만들고, 병에 걸리게 하거나 성장에 방해가 되게 하기도 한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나왔던 내용과 정반대의 의견이기도 하다. 그 책에서는 지루함을 참을 줄 모르는 아이는 허약하므로,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루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했었다.

비단 육아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부분이 이것 하나 뿐은 아니지만, 요점은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아이로 길러내는가 하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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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3-1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딩으로 리드하라 책을 읽으면서 거기서 언급한 칼 비테 교육서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구입하려니 두 권이 뜨네요.일단 님의 별 다섯 개를 보고서 이책으로 결정했어요.^^
오랜만에 육아서를 한 번 잡아보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