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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일기
루요우칭 지음, 김혜영 외 옮김 / 롱셀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엔 자신이 투병 중인 암 때문에 생긴 고통을 정면으로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적다.
'나는 일기가 아름다움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병색에 물들지 않도록 했고 사망의 기운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오후의 티타임인 셈이다. 다만 우리가 앉아 있던 카페가 공교롭게도 저승과 이승의 길목이었을 뿐이다. 차를 다 마시고 이야기가 끝나면 그대는 가고, 나는 남아 묻히면 그만이다.' 여서였을까?
다만 어느 하루의 일기에서 그의 정신적 고통을 극렬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대형 할인점에 간다. 나의 주머니 속에는 장난감 만년필이 들어 있고, 이 만년필 안에는 대량 살상이 가능한 독극물이 들어 있다.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다. 대형할인점에서 독극물 유출로 500명 사망. 나는 그 할인점에서 501번째의 사망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내가 먹을 독극물이 담긴 병뚜껑을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어지지가 않는 거다. 병뚜껑을 열려고 애를 쓰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 류요우칭이 숱한 날을 반복해서 꾸었던 악몽 한 토막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죽음의 고통을 악물고 남은 가족에게도 자기가 없을 날들에 대비해 따뜻한 조언들을 나눠주고, 지나왔던 삶에 대해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담담해 보일 만큼 의연하게 서술을 하지만, 투병자의 본질은 격렬한 감정의 저 수없이 반복되는 악몽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죽음을 눈앞에 둔 자가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일종의 시기이고 질투이다. 처연하지만 현실이다.
그럼에도 얼마 되지 않는 나날 중 대부분을 류요우칭은 일기의 기록을 통해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삶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려 했다.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으니 '삶' 이해하고 끝까지 제대로 살아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하였다.
물론 그도 병 때문에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걸 너무나도 원망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충분하다는 것 자체가 원래 사기일지도 모른다고.
가끔은 무엇이 이유가 되었든지 간에, 살아가는 일 자체가 두려워서 혹은 괴로워서 때로는 권태로워서 그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뭐가 그렇게 도통 즐겁지 않은건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지만.....
인생에 있어 즐거움은 한순간에,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사건만으로도 맛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변이 급할 때 화장실만 찾으면 금세 즐거워지는 것처럼 즐거움은 쉽게 올 수도 있는데...... 그렇게 바꾸어 생각을 해보지 못하는 것은, 살면서 마음에 관심을 덜 쓰고, 힘을 빼야 할 때도 힘을 주고 살아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힘 조절이 안 되는 요즈음의 나를 건드려 요상한 방식으로 마음에 진동을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