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 국민요리 - 요안나의 제철 재료 밥상
이혜영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마련인가 보다.  나는 솜씨가 좀 없고, 시어머니는 솜씨가 좋으시고, 남편도 그 피를 쬐금 물려 받은 듯....(친정 엄니 솜씨는 노코멘트)

남편은 안타깝다고 했다. 어머님이 반찬가게를 했으면 꽤 성업중이었을거라면서. 이제는 늙으셔서 그런 업종을 꾸리는 게 힘들거라고 당신께서는 항상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그렇듯, "맞아, 정말 솜씨 좋으신데." 조용히 응수했다.

남편이 드디어 한술 더 뜨고 나왔다. 그 맛은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거기서 끝일거라고. 며느리들이 둘 씩이나 있지만, 보고 배울 마음이 없는지라, 전수가 안 될거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마음 꽉찬 남편 님 당신이 전수하시던가요~' 했는데, 내마음을 엿듣기라도 한듯,

내가 회사 그만두면, 엄마한테 배워서 음식 장사할거야, 라고 하신다.

"듣고 있자니, 내가 음식(살림) 솜씨 없다고 비난하는 거 같네." 내가 말하자 

침착한 건지 교활하신 건지 모를 남편 님 왈,

"아니야.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단 얘기를 하려는거야. 사람 천성은 누구도 어쩌지 못하거든."

천성!

세상에 천성을 운운하다니, 그간 내 부족한 솜씨로, 해먹인 밥공깃수가 얼만데.... 남편은 내가 늘 하는 것(요리)만 하고, 그것도 어머니의 깊은 맛이 안 난다는 맥락의 말을 넌지시 돌려 말한다.   

내가 하는 요리만 하게 되는 이유를 정작 남편 님은 모르는 걸까?

김을 재서 굽거나 고등어 자반을 맛깔나게 쪄내거나 하는 걸 안 한다는 의미이다만,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걸 선호할수밖에 없는 내 사정을 정말 모르실까? 

내가 이러구러 말을 하는데, 그걸 궁색한 변명 쯤으로 만들어버리는 일격...

"아니, 너한테 뭐라고 하는게 아니야. 시간 들이는 걸 못참아한다는 건, 음식 만드는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는 의미고, 그런 너의 성미는 바로 천성이고, 사람은 그 천성을 바꾸지 못해."

 

바꾸지 못해, 라는 확인 사살. 명중하시었다.

 

나는 그게 환경탓이지 왜, 천성 들먹이냐고.... 말하고 싶은 거다. 내가 억울한 건, 내가 마음이 왜 없나, 내 노력이 눈물겹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저 말이 "너는 형편없는 주부야. 하지만, 네가 바뀌리라 기대하지 않아." 와 뭐가 다른 말이냐!

남편과 나눈 이 대화는.....또 하나의 노스텔지어를 부른다. 저 먼 시절.....

고3 때, 같이 공부하고 밥먹고, 야자 쉬는 시간에 캄캄한 운동장에 나와 수다떨며 몇 바뀌씩 걷던 친구가 있었다. 속깊게 사귄 친구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암기과목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푸념을 하던 중 "그러게, 넌 그 쪽으로는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 같아!" 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와 맞먹는 쇼크랄까.   

뭐냐, 뒌장 또 치부책으로 흘러갔다. 

요는 이 책을 샀고, 이만큼이나 재료도 다양하며 요리의 가짓수 또한 많다는 것에 포식한 느낌.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책의 뚝배기 불고기 메뉴얼을 따랐다가,   

식구들로부터 맛이 웃기고 황당했다는 평을 들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내일 고민해야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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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9-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 웃으면 저도 누워서 침뱉기인데요~ 웃겨요ㅋㅋㅋㅋ 치부책-_-;;

icaru 2011-09-1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jy 님 안녕하세요~ ㅎㅎ 새벽에 쓴 거라, 많이 민망하네요~ 님이 웃어주시니, 하 그래도 선방은 했구나, 합니다. 요리 정말 잘 하고 싶어요. 간절합니다...ㅋ 뚝불은 실패했지만, 다른 건 해볼만 한 것 같아요.

별족 2011-09-1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성, 저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료를 씻거나, 다듬거나, 써는 것도, '에구 안 죽어'라던가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아'라면서, 빨리 해서 먹는 게 급한 사람인데, 남편은 나의 태도에 '정성'이 없다고 분개했었거든요. 하도 싸워서 '먹을 거면 토달지 말고 먹어!,라고 했더니 지금의 남편은 밥상에서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김치에 고추만 찍어먹더라도.

icaru 2011-09-15 11:30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왜 그토록 인정하기 싫은 건지 모르겠어요~ 천성을요.
저도 정색하고 '토달지마!' 할 경지에 곧 오를 거 같아요~ 고지가 보여요.
결국, 아쉬운 사람이 팔걷어 부치는 거지요. ㅎ

반딧불,, 2011-09-1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무리해도 꼭같이 되기는 힘들어요. 똑같은 재료로 아무리 똑같이 해도 불조절이 다르고 양이 미묘하게 달라요. 그왜 유명한 궁중요리대가분이 쓰신 글 중에 그런 글이 있어요.
(그 유명한 한**씨 따님이 인용했던지 아니면 인터뷰에서 봤을텐데요) 당신이 궁중요리를 하셨던 숙선(?)께 배울때 가장 힘든게 양념의 양이었답니다. TS이 아니라 한줌,두줌, 그런 식의 표현을 하셨고 따님이 그걸 계량화 했는데 그게 아무리 비슷하게 해도 미묘하게 다르더랍니다. 거기에 더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말안하는데 음식은 재료가 반이랍니다. 그 재료들을 제철에 딱 그곳에서만 나는 재료로 하는데 그걸 어떻게 쫓아가요? 소금 하나, 설탕 하나 양 뿐이 아니라 넣는 시기까지 미묘하게 맛이 달라집니다. 그게 요리구요. 본능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거죠. 저같은 사람은 별로 잘 만들지도 못하면서 맛은 또 귀신이라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ㅠㅠ;;결론은 레시피대로 해서 정말 같은 맛이 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 거의 조금씩 다르게 합니다. 다를 수 밖에 없구요. 하물며 프랜차이즈도 맛이 다른 것을요^^
참, 어지간하면 오래된 상처는 헤집지 말자구요.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는거지 뭘. 아니 다 요리 잘하고 암기과목 잘하면 세상은 뭐...그니까 다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어지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답니다. 아시죠? 제가 하고픈 말요. 걍 무시하고 긍정만 해도 모자라다구요.

icaru 2011-09-16 08:45   좋아요 0 | URL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있네요. 솜씨 좋은 어머님은 항상 제철의 신선한 최선의 재료로 요리를 하시는 것은 맞거든요. 전, 남은 야채처리라던지, 냉동실에 얼려둔 고기나 해산물류를 꺼내 쓰는 경우가 많고.

근데, 뚝불 말인데요... 다음날 중요한 손님(남동생 여친 인사 온다고)이 오는 날이라, A++ 한우로 눈 질끈 감고 샀던 고기재료였는데, 망쳐서 좀 속상했었어요. ㅎㅎㅎ
암기과목은 정말 그땐 그게 큰 상처라 속으로만 의절할 뻔 했어요..
소심한 과라 그래요~ 뭐든 잘한다 까지는 아니어도,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