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놈은 자고, 둘째놈은  까이유를 본다. 

둘째는 늦게 잔다. 내가 컴퓨터로 딴본일 좀 보고 싶을 때는 아이에게, "까이유 볼래?" 하고,  

아이는 "나는 까이유 보고, 엄마는 일 해 일!" 이런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무조건 일하는 거라고 아이에게 확실히 세뇌. 
  

내일은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오늘 밤은 좀 늘어지게 앉아서(사실,일상다반사 매일밤 허리 고장난 사람처럼 눕다시피 의자에 앉아 정말로 하릴 없어 웹서핑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무리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옛날에 썼던 리뷰들도 들춰보고, 리뷰를 쓸 만한 책이 있을까, 오랜만에 책장도 들쑤셔 본다~ 켁켁 너무 간만이라 먼지 날린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는데, 지지난주부터 틈틈히 읽기 시작했던 은희경의 이 책, 이제 중반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을. 이것을 안주 삼아 말을 트면 될 것 같다.  

사람은 기분의 우주를 가진 동물이라, 약간은 실없어도 즐겁게 재잘대는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고, 당사자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그런, 사소한 상처를 타인에게 받거나 여타의 이유로 너무 우울해서 또 재잘되고 싶을 때가 있다. 후자는 스스로 많이 경계하는 편이다. 지나고 나서 다시 보면,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이건 뭐 치부책도 아니고. 싶은 것이.... 

오늘은 즐겁게 재잘대고 싶다. 껀수가 없을까 눈을 희번덕거리다가 이 책을 참 좋은 타이밍에 발견했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데는 시간 꽤나 걸리리라는 계산이다.  

한 단락, 한 페이지, 한 챕터 읽다보면, 꼭 낚시질하는 것처럼 글과는 연관되지만, 개인적으로 겪었던 체험들, 나는 어떠했더라 같은 미시사적인 것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책을 덮고 딴생각에 허우적거리다가 나오고.. 

자고로 좋은 책이란 이렇게 생각의 단초들을 무차별적으로 던져 주는 무엇?  

창작이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 창작욕에 불을 지피는 좋은 장작 자재 같은 책이다.  게다가 이여사님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조련사인듯. 적재적소의 아주 다양한어휘들을 구사해 주신다.

나처럼 작가 은희경 님께 애정이 있는 분들이 읽으면 더 좋다. 그녀의 풀풀~~ 나는 인간미, 잘생긴 청년들을 보면 기운을 얻는 점이라던지, 만지기만 하면 고장나는 가시손을 가진 점, 개그콘서트를 꼭 시청한다는 것. 같은 거. 무엇보다도 대전제는 인생은 즐겁다, 라는 것. 술친구들도 많으신 것 같고, 게다가 게다가 문득문득 사랑하는 사람들도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그러니까 은희경은 술 좋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신 듯.

그밖에 소설 쓸 때 온힘을 다해 자신을 믿고, 쎈척하고, 활기와 명랑을 연출하고, 뻔뻔스러워지고, 오로지 고독했던 지난한 굴곡들을 거치고그렇게 해서 작품을 끝마치고 난 후의 방전 상태에서 쓴 산문들을 엮은 것이라서 소요와 미열의 흔적들이 뚝뚝 묻어난다. 어딘지 달뜬 것 같고, 실실 실없이  해살거리며, 우스개말을 쏟아내는 느낌. 그녀 스스로도 이것을 쓰는 기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고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이라고.  

하지만. 이 아득하고 천진한 그의 한 시절 또한 기억해두고 싶어졌기에, 조금은 낯 뜨겁고 공허해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것도 출판사에 여러 차례 책을 낸다 만다 번복한 끝에.  

독자로서는 이렇게 나와 준 작가의 첫 에세이집. 역시 은희경이야! 당신 센스쟁이. 한다. 소설책처럼 마지막 장을 시원스럽게 덮고 저 재미와 유익을 떠나서 저멀러 치워두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자주자주 들춰낼 것 같다. 은희경 여사님이 뭐라고 썰을 푸셨더라~ 하면서.  

참, 그리고 기이하게 여겨졌던 것은 작가의 가족 이야기는 완전 배제되었던 점. 그가 두루뭉수리하게 언급하고 있는 보고 싶은 사람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가족이 포함되겠지만, 가족 구성원으로 짐작되는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던 점. 은희경처럼 소설가 생활 십수년만에 첫 에세이를 낸 온다 리쿠의 글에서도 자신의 오빠네집 운운한 부분이 아주쬐금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면.   

지레짐작으로는 소년을 위로해줘는 자신의 아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 아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쓰게 된 게 아녔을까, 이 짐작에 대한 확신이 될만한 구절을 은연중에 찾으면 읽었던 거 같은데, 없더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섬 2011-09-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쟁여놓고 있는데 얼른 읽어야하는데 이 리뷰 읽으며 계속 부러워만하고 있어요.
얼른 시간내서 읽어야겠어요.^^

icaru 2011-09-13 00:05   좋아요 0 | URL
명절 연휴 잘 보내고 계세요? 전 역시나 많이 먹어 좀 두리두리 ㅋㅋ
연휴 틈틈히 이 책 다 읽었어요. 역시 작가 은희경다운 산문집. 첫 산문집. 제가 부러우신거예요? ㅎㅎ 전,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를 읽으신 꿈섬님이 더부럽다는..